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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길 수도의 길: 성령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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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3 ㅣ No.330

[영성의 길 수도의 길] (34) 성령선교수녀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지팡이로

 

 

잠비아에서 선교활동 중인 한국수녀.

 

 

성령선교수녀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에이즈 감염인을 위한 쉼터인 '작은빛 공동체'를 취재할 때였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가톨릭교회가 세상에서 외면당한 에이즈 감염자와 환자를 위해 마련한 쉼터였다.

 

이 집에서 성령선교수녀회 수녀 세 명이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에이즈 감염인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 이는 사회에서 소외된 에이즈 감염인들도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려는 노력이었다.

 

에이즈 감염인과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것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처음에는 수녀들이 스스럼없이 이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피부병이 생긴 에이즈 환자의 뾰루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짤 정도였으니 말이다.

 

수녀회 본원(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 206-21)은 국립과학관 건너편, 4호선 혜화역에서 걸어서 3분도 안 되는 거리다. 명동거리만큼이나 늘 사람들로 북적대고 음악소리와 상인들 호객소리로 시끌벅적한 대학로 뒤편에 이렇게 고요함과 엄숙함이 흐르는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한국지구는 지구장을 맡고 있는 폴란드 출신 지해인 엘레오노라 수녀를 비롯해 한국ㆍ인도ㆍ인도네시아ㆍ일본ㆍ필리핀ㆍ루마니아ㆍ슬로바키아 등 8개 나라 회원 23명이 다국적 국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다양성을 가진 수도회다. 서로 다른 8개 국적과 문화를 지닌 공동체가 과연 잘 운영될 수 있을까? 얼핏 하나가 되기 힘들 것 같은 공동체가 꽤나 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수도생활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것 같다.

 

지구장 수녀 얘기를 들어보니 회원들 모두 종신서원 직전에 9개월에서 1년 정도 각국 수련자들만 따로 국제공동체를 이뤄 사도직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이는 국제수도회로서 다양한 문화와 국적을 가진 수녀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입회 때부터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수녀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국제성은 저절로 길러질 것 같다.

 

"식탁에서 '냅킨 좀 주세요'라는 푸른 눈의 수녀님 부탁에 우리는 친절하게 통에서 냅킨을 한 장 뽑아드리곤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수녀님이 긴 식탁에서 10여 명의 손을 거쳐 전달된 냅킨으로 입을 닦는 것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성령선교수녀회를 취재하러 찾아간 날(8일)은 우연히도 한국 진출 24주년 하루 전날이었다. 1987년 3월 9일 한국에 첫발을 디딘 수녀회는 초기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 권유에 따라 곧바로 사도직활동에 뛰어들지 않고 회원 양성에 주력했다. 덕분에 2년 만에 한국인 첫 입회자를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한국인 회원 25명을 양성했다. 짧은 역사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2000년 6월, 한국 진출 10년 만에 본격적인 사도직활동으로 시작한 것이 결손가정 소녀들을 위한 그룹홈(공동생활가정) '해솔의 집'이다.

 

의정부교구 이주민센터에서 다문화가정 여성들과 함께 한 성령선교수녀회 안재희 수녀.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여자 아이들이라 정성스레 머리를 빗겨 옷을 입히고 밥 먹여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아침 시간은 전쟁이나 다름없어요. 귀가 시간도 제각각이라 친구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걱정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비록 배 아파서 낳은 딸들은 아니지만 우리 수녀들에게는 친딸과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랍니다."

 

한국에서 첫 사도직으로 아동청소년 그룹홈을 시작한 것은 IMF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난 결손가정 아이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잃고 오갈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어느 곳에 가든지 가장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도직을 찾아 행하라는 것이 우리 수녀회 기본 모토입니다. 특히 가장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희망을 나누려고 합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에이즈 감염인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수녀회가 수녀 4명을 파견해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여성보호센터도 마찬가지. 2008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200여 명 무의탁 여성 행려인을 보호하는 서울시여성보호센터를 위탁받아 몇몇 큰 수도회에 수도자 파견을 요청했을 때 모두 난색을 표했으나 성령선교수녀회가 덜컥 맡아 지금까지 잘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수녀회는 의정부교구 이주민센터 '엑소더스(EXODUS)'에도 수녀 4명을 파견해 다문화가정 지원활동과 이주노동자상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명륜동 본원에서는 수시로 개인피정 또는 소규모 위탁피정을 열고 있다.

 

지 엘레오노라 지구장 수녀는 "국제수도회인 만큼 수녀회에 입회하려면 해외선교에 투신할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실제로 한국인 수녀 4명이 이미 일본과 대만, 잠비아, 보츠와나에 파견돼 있고 해외선교의 꿈을 갖고 찾아오는 성소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수도회 영성과 역사 - 주님 말씀, 뜻 전세계에 전파

 

 

수도회 설립자 성 아놀드 얀센 신부.

 

 

19세기 후반 독일 가톨릭교회는 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으로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수도회들은 문을 닫고 사제들은 정부 허락 없이는 신앙교육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교구 사제이자 평범한 수학교사였던 성 아놀드 얀센 신부<사진>는 신앙생활을 굳건하게 이어가면서 하느님 말씀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수도회 설립의 소명을 느꼈다.

 

그는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 슈타일(Steyl)로 건너가 지원자 3명과 함께 1875년 '말씀의 선교수도회' 모태인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을 설립했다. 말씀의 선교수도회를 설립한지 4년 만에 중국에 첫 선교사를 파견한 얀센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미국, 일본 등으로 계속해 선교사를 파견했다. 1909년 선종할 때까지 매년 50명 선교사를 배출할 만큼 수도회를 발전시켰다.

 

그는 평생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고심했다. 이를 위해 얀센 신부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는 기도를 자주 드렸다. 그가 직접 실천했고 후대 회원들이 본받고 있는 '15분마다 드리는 기도'는 얀센 신부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성령선교수녀회는 1889년 복녀 마리아 헬레나 스톨렌베르크와 마더 요세파 헨드리나 슈텐만스의 협력을 통해 말씀의 선교수도회의 여성 선교 파트너로 설립됐다. 또 얀센 신부는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통해 먼저 설립한 두 수도회의 선교 및 사도직 활동을 기도와 희생으로 지원할 관상봉쇄수도회인 성체조배의 성령선교수녀회를 1896년 설립했다.

 

그는 말씀의 선교수도회 첫 선교사였던 요셉 프라이나데메스와 함께 1975년 복자반열에 올랐고,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로마에 본부를 둔 성령선교수녀회는 1902년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48개국에 진출했다. 현재 3500여 명 수녀가 교육과 의료, 사회복지 사도직을 비롯해 HIV/AIDS 감염인과 이주민 등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1년 3월 20일, 서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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