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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철학 에세이: 행복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고 왜 여러 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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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93

[가톨릭 철학 에세이 - 철학이 던지는 행복에 관한 열 가지 질문 2]

행복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고 왜 여러 개인가요?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행복이라고 말하며, 또 잘살며 잘 지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4장).

“행복은 따뜻한 담요”
(찰스 M. 슐츠, ‘피너츠’에서).


찰리 브라운의 세계

슐츠는 만화 ‘피너츠(Peanuts)’를 2000년 그가 타계하기 직전까지 정확히 50년간 그려내어 세대와 국경을 넘어 거듭 읽히고 사랑받는 ‘찰리 브라운의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착하고 감수성이 섬세한 노력파이지만 반복되는 불운과 실패에 시달리곤 하여 독자의 연민을 자아내는 주인공 찰리 브라운, 그가 기르는(?) 사람보다 더 철학적인 예술애호가이자 작가 지망생이기도 한 비글종 개 스누피.

친구 찰리 브라운을 놀려먹고 동생 라이너스에게 호통 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은 듯하고 종종 심리 상담으로 용돈을 버는 루시, 루시의 동생인 라이너스, 루시가 사랑하지만 그녀에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베토벤 경배자이며 피아노 천재인 슈뢰더.

그리고 우드스탁, 샐리, 페퍼민트 페티 등 찰리 브라운과 그들의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어린이들만을 열광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여기에서 향수 어린 즐거움과 인생의 통찰을 얻습니다.

이들이 만드는 이야기에는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따뜻하고 천진스러운 공기가 흐릅니다. 하지만 작가는 장밋빛 낙관의 세계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유쾌한 이야기 사이로 비치는 씁쓸함과 애수 역시 찰리 브라운의 세계가 이토록 어른들을 사로잡는 이유입니다.

「장미의 이름」의 저자이자 박학다식과 촌철살인의 에세이와 평설의 대가인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언젠가 이 만화 주인공들의 행동과 성품을 예리하게 분석한 글을 썼습니다. 그는 찰리 브라운의 세계를 생생하고 설득력 있는 ‘일상적 비극’이라 칭하며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잘 숙고된 입장표명을 보게 된다고 감탄합니다.

에코의 찬사처럼 슐츠는 사람들이 인생살이에서 겪는 크고 작은 기쁨과 행복, 상실과 좌절들을 명료한 일상의 언어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찰리 브라운의 세계에서 의외로 행복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질문과 진지한 대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질문과 추구와 대답이 가리키는 행복에 대한 진실은 “행복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작은 행복은 손이 닿는 곳에, 큰 행복은 아마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행복이 여러 얼굴이 있다는 사실은 먼저 이들이 아주 쉽게 손닿는 곳에서 행복을 얻어내는 데서 드러납니다.

행복은 복잡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철자법 시험에서 100점 만점을 맞는 것, 누군가 반가운 이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 친구들과 놀이터 모래상자에서 사이좋게 싸우지 않고 노는 것, 이제 까치발을 하지 않고도 문손잡이에 손이 닿는 것, 맨발의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수풀을 걷는 것, 18가지 색깔의 색연필을 가진 것이자 영화 관람비와 팝콘에 더해서 막대사탕까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이의 눈에서 보면 행복의 목록은 길고 풍요합니다. 그러나 행복이 여러 개의 얼굴이 있다는 것의 다른 뜻도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에서 우리는 또한 ‘어떤’ 행복은 정말이지 영영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슬픈 사실을 발견합니다.

찰리 브라운이 루시가 세워놓은 미식축구 공을 멋지게 차는 것을, 루시가 슈뢰더의 애정과 관심을 피아노에서 빼앗아 오는 것을, 찰리 브라운에게 루시의 심리 상담이 한 번이나마 제대로 도움이 되는 것을, 그리고 찰리와 친구들의 야구 팀이 시합에서 멋지게 이기는 소식을 기대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온 행복의 얼굴의 뒷모습을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 헤아려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찰리 브라운과 라이너스의 대화 가운데 저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있습니다. 라이너스는 지금 자신을 정말 행복하게 한 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9회말 경기가 패색에 짙어졌을 때 타석에 들어선 라이너스는 최강의 에이스에게 역전 홈런을 뺏어내고 기쁨에 열광한 홈 관중들은 마운드로 달려와 선수들과 얼싸안고 흥분과 기쁨을 나누는 꿈(저도 어렸을 때 자주 꾸었던 꿈입니다!)입니다.

행복감에 아직도 젖어있는 라이너스에게 찰리 브라운이 우수에 찬 얼굴로 한마디 합니다. “그 상대편 투수의 마음을 생각해 봤니?”


라이너스의 담요가 지닌 비밀, 행복

찰리 브라운의 세계는 손에 닿는 행복, 내 힘에선 벗어나 있는 행복, 내 능력으로 일궈낸 행복, 그 행복이 누군가에겐 슬픔이 되는 역설들을 통해 행복의 여러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진지한 행복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탐구의 출발점이 “행복은 왜 여러 얼굴을 지녔나요?”라고 ‘질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여정을 라이너스의 담요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너스는 루시의 동생인 아주 귀엽고 선량한(그리고 소심한) 아이입니다. 라이너스는 야구 팀에서 이미 당당히 자기의 자리를 얻었고 찰리 브라운과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이자 찰리 브라운의 귀여운 동생 샐리의 연모의 정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대단한’ 라이너스가 가진 심각한 ‘객관적’인 문제는 그가 담요에 대한 애착을 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뜻한 담요’는 그의 행복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근심의 근원이니 그걸 잃는 순간 무시무시한 불안과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심술궂은 누나 루시와 장난을 좋아하는 스누피는 수시로 그에게서 담요를 빼앗아 숨기고 찢고 땅에 파묻곤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사라진 담요를 찾느라 온갖 소동을 피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피해를 입은 친구들이 그가 담요에 집착하는 것을 비난합니다. 그때 라이너스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칩니다. “누구나 애착하는 것 하나씩은 다 있잖아! 슈뢰더는 피아노, 루시는 슈뢰더에 푹 빠진 것처럼 말야!”


행복은 바라는 것의 충족

아하! 여기에 라이너스의 담요에 담긴 행복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 비밀은 행복은 각 개인이 정말 바라는 것들이 충족되는 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라이너스의 말처럼 사람마다 바라고 욕구하는 나름의 대상을 가지고 있기에 행복은 당연히 하나의 얼굴이 아니고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대개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원하는 것이 달라지곤 하니 이 때문에도 행복은 번번이 다른 얼굴을 가질 것입니다. 만일 하나의 대상을 여럿이 원한다면 얻는 이는 행복의 얼굴을 보겠지만 얻지 못한 이는 다른 얼굴을 보겠지요.

이 비밀을 행복에 대한 철학의 시원이라 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행복의 다양한 얼굴 사이에서 어떤 객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행복의 객관적 개념은 꼭 필요할까요? 이런 질문을 하며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러 갑니다.

* 최대환 세례자 요한 - 의정부교구 신부. 교구 신학생 영성지도를 맡고 있으며 철학을 공부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 연재하는 동안 행복에 대한 독자들의 견해와 질문을 열린 마음으로 기다린다(theophile@catholic.or.kr).

[경향잡지, 2012년 2월호, 최대환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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