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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등불이 된 재속 프란치스칸들 (5)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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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3 ㅣ No.329

[시대의 등불이 된 재속 프란치스칸들] (5)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가난과 사랑, 믿음 실천한 이 시대의 성자 법관

 

 

간암으로 투병 중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천주교회 가족묘역을 찾은 김홍섭 판사.

 

 

'한국의 사도법관'(장면 박사), '한국 법조인의 기둥'(조진만 변호사), '법의 속에 성의를 입은 법관'(법조시보), '절망에 빠진 생명을 어루만지던 사형수의 대부'(한승헌 변호사), '평신도 사도직의 표본'(주광일 변호사), '남을 위해 산 사람'(윤형중 신부), '비범한 가톨릭적 행자(行者)'(장순용 변호사)….

 

김홍섭(바오로, 1915~65) 판사.

 

50년 남짓한 짧은 삶이었다. 하지만 그 삶의 여운은 길고 유장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에게 바쳐진 헌사는 더 큰 진정성이 담기고, 그가 남긴 신앙적 유산은 더 크게 빛난다. 사후 30년이 지난 1995년, 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 변호사와 함께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혔을 정도다.

 

 

'가난의 영성'으로 살다

 

김홍섭은 전북 김제군(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재운ㆍ어머니 강재순씨 사이 외아들이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자라 원평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독학으로 중학과정을 마치고 전주로 간다.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읽고 감동한 그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전주 한 일본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4년간 잔심부름을 하며 공부를 계속할 기회를 찾는다.

 

이같은 노력 덕에 그는 일본인 변호사의 주선으로 니혼대 전문부 법과에 입학, 법률공부에 전념하던 중 1940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일제가 강점한 조선에 그의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무료로 변론한 김병로 전 대법원장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내고 변호사로 활동한다.

 

사형수로 죽은 대자의 묘를 찾아 기도를 바치는 김홍섭 판사. 사진출처=「사도법관 김홍섭-한 법률가의 사상과 신앙」(육법사 펴냄)

 

 

법조인으로서 그의 삶의 진면목은 8ㆍ15해방 뒤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1945년 10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에 임명된 그는 이듬해 6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수사, 그 전모를 공개함으로써 명성을 날린다.

 

하지만 우익으로부터는 수사에 간섭을, 좌익으로부터는 테러 위협을 당하면서 검사 생활 11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고 가족과 함께 서울 뚝섬에 거처를 마련해 채소를 심고 닭을 치며 돼지를 기르는 전원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나 김병로 대법원장의 간청에 흙에 대한 미련과 재판에 대한 회의를 털고 법조계에 복귀, 1948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장, 대법원 판사 및 대법관 직무대리, 광주지방법원장 등을 지낸다.

 

그의 삶은 '가난의 영성으로 가난하게 살다간 판사'로 요약된다. 판사였지만 판사답지 않게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한다.

 

가난한 법관으로서 그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1959년 전주지방법원장 취임 당시 일화다. 평소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은 채 도시락을 들고 출ㆍ퇴근하던 그에게 제대로 된 양복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에 "고향 땅에 법원장으로 부임하며 외투 한 벌 없이 가서야 되겠느냐"며 지인이 외투를 선물했을 정도였다.

 

그는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자신의 삶에 지장을 준다며 처가에서 보내준 쌀가마니조차 되돌려 보냈다. 그러면서도 치명자산 유중철(요한)ㆍ이순이(루갈다) 동동부부 순교자 묘를 날마다 참배하고, 그 산에 순교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1959년 11월 전주를 찾은 교황사절 람베르트니 주교와 함께한 김홍섭(오른쪽, 당시 전주지방법원장) 판사. 왼쪽은 당시 전주대목구장 김현배 주교다.

 

 

죄수들 회개 통해 신앙으로 이끌다

 

이처럼 청렴하고도 강직하게 구도자처럼 산 그가 신앙에 입문한 것은 1953년의 일이다.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을 당시 최남선(베드로, 1890~1957)과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본시 개신교 신자로 예배당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그는 절에 다니며 오랫동안 불교를 연구했다. 그러다 최남선을 통해 가톨릭에서 두고두고 찾던 참된 신앙을 얻었다. 그리고 명동성당에서 동료 이홍규 변호사를 대부로 장금구 신부에게 세례를 받는다. 부인 김자선(엘리사벳)씨와 1977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유학 중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아들 김정훈(베드로)부제 등 가족들도 모두 세례를 받았다.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 그는 많은 죄수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신앙으로 이끌었다. 특히 사형수 선교에 힘썼다. 법정에서 법률에 따라 부득이 사형 선고를 내리고서도 며칠 뒤 교도소를 방문, 직책상 사형을 선고했지만 심히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서 부디 영혼을 구하라고 권면한 뒤 교리책을 감옥에 들여보내고 신앙생활을 권했다.

 

그의 사랑과 관심에 감복한 많은 사형수들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했으며, 그가 보내준 「가톨릭 성인전」 등을 읽고 변화됐다.

 

이는 '갇힌 자들의 대부'로 살며 매달 급여의 절반을 사형수들을 위해 쓴 그의 사랑이 없었다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형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으면서도 그는 힘주어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한 사형폐지론자였다.

 

이처럼 형벌의 궁극에 대해 깊이 성찰한 그는 자신의 독특한 실존적 법사상을 정립, 중화민국 헌법을 기초하고 국제연합(UN) 헌장 구성에 참여한 중국의 우징숑(吳經熊) 박사, 일본 최고재판소장을 지낸 다나카 고오타로(田中耕太郞) 등과 함께 '동양의 3대 가톨릭 법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살다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홍섭 판사 부부(앞줄 오른쪽).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 13년은 법과 양심, 신앙의 진리를 따른 세월이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법관으로서의 삶이었지만, 그는 철두철미 법관이라는 직무의 본질을 자각하고 삶으로 실천했다. 특히 그의 청렴결백은 가족들을 몹시도 힘들게 했고, 자기 자신을 늘 가난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가난의 영성은 결국엔 프란치스코 성인과의 만남으로 열매를 맺는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직에서 물러나기에 1년 앞서 그는 1964년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다. 그 뒤 대전 목동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을 방문하고서는 "8남매를 다 키운 뒤에는 대전 수도원에 가서 종지기로 여생을 지내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 바람 속에서 그는 날마다 미사에 참례하고, 온 가족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쳤다.

 

그러나 수도원 종지기로 살고 싶다던 그의 소박한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법원장 재직 중 간암이 발병, 투병생활을 하게 되면서 재속회원으로서 수도 생활은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그가 재속 프란치스코회원으로 산 기간은 1년 9개월 남짓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이미 재판의 공정성 확보, 나아가 인간의 참된 삶에 대한 불꽃같은 신념으로 사회정화와 인간 구원에 전력을 쏟은 법조인으로서 프란치스칸의 표양을 보였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가난조차 사랑한 그는 사형수들과 삶의 마지막까지 동반하며 위로가 되고자 했던 사형수들의 형이자 아버지였다.

 

또 한동안은 강원도에 '선교 노다지'를 캐러 다닌 선교사였으며, 뛰어난 감수성으로 시를 써 시집 「무명(無明)」(1954년), 수상집 「창세기초(創世紀抄)」(1954년)ㆍ「무상(無常)을 넘어서」(1960년)를 펴낸 작가였다. 법조인으로서, 가난을 덕으로 삼는 재속 프란치스칸으로서 그는 귀감이었다.

 

[평화신문, 2011년 3월 13일, 자료 제공=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국가형제회, 정리=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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