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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이 하느님을 노래할 때: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하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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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0-02 ㅣ No.78

[과학이 하느님을 노래할 때]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하였나니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5.14)

 

‘살아있다’는 것, ‘생명’이라는 것, 그 차갑고도 깊은, 저 캄캄한 암흑에, 억겁의 세월 속에서 태초부터 있어왔던 그 캄캄함에 한 줄기 말씀의 빛으로 생명이 창조되었다. 말씀이 우리의 육신 속으로, 영원이 시간 속으로, 빛이 어둠 속으로 들어왔다는 전 우주적 선언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한국과 온 세계를 쓸고 지나간 줄기세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버티며 마주해야 했던 필자에게 이 성경 말씀은 유달리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구절이다.

 

 

생명의 출발점으로서의 수정란에 대한 감회

 

지난 몇 년 동안은 줄기세포와 관련해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창조주와 생명의 신비에 가장 커다란 도전이 있었던 시기로 생각된다. ‘건강과 장수’의 기치 아래 21세기의 불로초로 각광받기 시작한 줄기세포가 마치 모든 질환에 ‘넣기만 하면 바로 치유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라면 수정된 배아를 파괴해서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정란이나 배아가 무엇인가? 태초부터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며 조상 대대로 보존되어 온 정자와 난자가 드디어 먼 길을 떠나, 영원 속에서 시간의 축으로 진입한, 하느님의 생명이 육화되는 순간인 것이다.

 

수정되면서부터 출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태초부터 생명이 탄생하면서 걸어왔던 역사들이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고스란히 재현된다. 수정 그 자체로 태초부터 준비되어 있던 모든 탄생의 에너지에 불이 당겨지며 창조주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배아가 파괴되는 것도, 건강과 치료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입을 모았다. 배아가 그냥 세포덩어리일 뿐, 생명체는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와 같이 그 어떤 이유로도 말릴 수 없는 길을 가는 듯했다.

 

 

복제에 의한 인류사적 위기와 인간 정체성의 위기

 

배아줄기세포의 활용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고 ‘복제’라고 하는 필연적 모순을 잉태하고 있었다. 배아줄기세포와 환자의 유전형을 동일하게 맞추려면 환자의 ‘체세포핵’을 이식한 복제배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게 되면 그것이 바로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것과 똑같이 복제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제인간!’,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자신들이 귀한 것은 창조주 하느님을 통해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인데, 복제에 의해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제조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또 그렇게 해서 제조된 인간은 누구인가? 나 자신은 결코 아니고, 내 형제가 될 수도 없고, 내 자식이 될 수도 없는, 인류의 가족관계라는 축이 무너지면서 전혀 다른 종류의 ‘클론’들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는 인류사적 위기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난치병 환자들을 돕기 위한 절체절명의 유일한 수단인 양 사람들이 당위성을 노래하고, 그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노라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난자를 대량으로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동물의 난자에 사람의 체세포를 주입한 이종체세포 핵이식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과정에서 탄생할 동물과 인간의 혼합생명체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혼란, 곧 절반이 사람인 이 존재가 과연 세상에 태어나기는 할 것인가? 또 태어난다면 이들의 존재를 얼마나 동물로 인정하고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그냥 캄캄한, 끝도 없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과학에 대한 오만이 빚어낸 창조주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고, 그렇게 답답한 시간들은 끝도 없는 터널처럼 지나만 갔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는 말씀의 선언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극적인 반전

 

그런데, 그토록 앞으로만 치달리던 그 어둠의 행진들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발생했다. 우선, 어떤 첨단의 기술로도 인간의 복제된 배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몇 천 개의 난자를 동원하더라도 단 1개의 인간 복제배아도 만들어질 수 없도록 미리 ‘차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간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같은 인간끼리의 배아복제도 이러한데, 하물며 이종 간의 복제는 어떻겠는가? 이종 간의 핵치환은 인간끼리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단호한, 아예 시작부터 세포들이 살아남기도 힘들게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몇 년 전 이런 기술로 소의 난자와 사람의 체세포를 통해 콩팥을 만들 수 있다고 하여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생명공학 회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허구였음이 드러났고, 그 기업에게는 결국 좌초라는 운명이 주어졌다. 이종 간의 교잡을 결코 원하지 않으셨던 창조주의 뜻을 인간이 모르고 있었던 것뿐이다.

 

 

새로운 깨달음들

 

이렇게 인간의 무모한 시도들이 좌초되고 있을 바로 그때, 세상의 또 다른 구석에서는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한창이었다. 성체가 된 우리의 몸의 곳곳에 생명과 소생을 위한 불꽃들이 간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몸의 온갖 종류의 장기마다 골수, 뇌, 간장, 지방조직, 근육에 이르기까지 이들 성체줄기세포가 없는 곳이 없고, 우리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그 줄기세포가 있었다는 것이다.

 

백혈병에 걸렸을 때 골수이식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환자의 몸에 이식된 성체줄기세포이며, 뇌 손상을 받은 뒤 회복된 사람에게서 부단히 그 ‘기적’을 만들어낸 것도 성체줄기세포였던 것이다.

 

또한 우리 몸의 체세포를 거꾸로 분화시켜 만든 ‘유도 역분화(iPS)’라는 것이 만들어져서,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분화능’에 있어 손색이 없으면서도 자기의 유전형과 동일한 맞춤형 줄기세포가 나오게 되었다.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얻으려고 배아를 계속해서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명들아, 노래하라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생명의 씨앗을,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인간은 알고 있었을까? 이토록 우리의 생명 안에는 창조주의 사랑이 숨쉬고 있었다는 것을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인간은 알고 있었는가?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그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긴 적이 없었다.

보라, 다 말라버린 고목나무에서

피어나는 새싹의 기적들을,

나누고 또 나누어도 피어나는

창조주 하느님이 주신 소생의 힘을,

하늘이 있고, 별이 있고

그 아래 창조주의 생명이 있었다.

생명들아, 노래하라,

창조주의 영광을!

 

* 오일환 알베르토 - 의사. 가톨릭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며, 보건복지부 지정 기능성 세포치료센터 소장이고, 식약청 주관 줄기세포 심사평가 연구사업단장이다.

 

[경향잡지, 2010년 9월호, 오일환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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