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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로봇,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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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21 ㅣ No.917

[영화 속 신앙 찾기] 로봇, 소리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특히 공중파도 아닌 케이블 드라마의 시청률이 18%를 넘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 드라마의 성공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가 분분하다.

 

이 드라마의 성공요인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지나온 시대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잘 부각시키면서 복고적 향수를 자극했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응답하라’라는 제목은 여기저기에서 무언가를 이끌어내고 소환하려는 주문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영화가 있다. 바로 ‘로봇, 소리’(이호재 감독)다.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 세상의 수많은 소리를 감청하고 기억하며 저장하는 존재가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쏘아올린 인공위성이다. 이 인공위성 로봇은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소리 가운데에 어느 아버지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한다.

 

아버지의 이름은 김해관(이성민 분)이다. 그는 10년 동안 실종된 딸 유주(채수빈 분)를 찾아 헤맨다. 딸이 마지막으로 남긴 휴대전화의 음성 메시지를 꼭 끌어안고 티끌 같은 단서라도 있다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는 딸이 찾아오기라도 할까봐 바뀐 도로명 주소가 적힌 문패도 달지 않는다.

 

어느 날 딸을 찾아 섬에 갔던 김해관 앞에 하늘에서 고철 덩어리가 추락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고철 덩어리를 수리하고 나서야 김해관은 그것이 감청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로봇은 소리에 반응하고 탐색하며 기억한다. 그는 이 로봇이야말로 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여기며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딸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로봇소리는 사실 스파이 위성으로 세상의 모든 음성정보를 감청하고 수집하는 일을 해왔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과 교신 중인 음성들, 공포에 떨며 구해달라고 하는 어떤 외국 소녀의 목소리 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것은 로봇 소리가 어떠한 기능을 담당했는지 그리고 왜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 양쪽에서 이 로봇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암시해 준다. 로봇 소리를 사이에 두고 김해관과 양국의 정보기관 사이에 숨바꼭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응답을 통해서 매개되는 ‘찾는’ 행위

 

이 영화에는 누군가(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공통의 행위가 있다. 아버지는 딸을 찾아야 하고, 정보기관은 로봇을 찾아야 하며, 로봇은 도와달라고 울부짖던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를 찾아야 한다.

 

로봇은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라는 미군의 교신과 학교에 포탄이 떨어지고 겁에 질린 아이들, 도움을 청하며 흐느끼는 소녀의 목소리도 들었다. ‘찾는’ 행위는 흔적을 좇아 이루어지는데, 이 흔적의 방식은 바로 소리다.

 

아버지와 로봇의 찾는 행위는 ‘응답’을 통해서 매개가 된다. 간절히 딸을 찾는 아버지에게 로봇이 응답하고, 로봇은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목소리에 응답하고자 소녀를 찾는다. 여기에는 역시 공통의 정서가 작동하는데 그것은 바로 죄책감 또는 회한이라는 정서이다. 이것은 연민이나 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영화는 응답과 그것을 추동하는 연민이나 사랑의 정서로 채워진다. 아버지는 딸이 2003년 대구 지하철역 화재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인정하게 된다. 딸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딸과의 다정했던 기억, 따뜻한 사랑의 흔적들을 되찾는다.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방식으로 사랑한 아버지, 그것 때문에 딸과 어긋났던 사랑의 방식은 아버지 해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죄의식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로봇 소리와 함께 감행한 탈주에서 딸을 이해하고 그 흔적을 찾아 딸과의 기억을 복원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딸의 마지막 음성을 듣고 화해와 애도가 이루어진다. 로봇 소리 역시 김해관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짊어졌던 소녀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기계와 사람의 교감을 제법 섬세하게 그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원한 우주동화 ‘E.T.’(1982년)가 사람과 외계 존재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적 교류를 포착하고, ‘A.I.’(2001년)는 사람 형상의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존재임을 알린 바 있다.

 

그런데 고도의 정밀성이 부족해 보이는, 그래서 고철 덩어리 같은 ‘로봇, 소리’의 로봇으로부터 사람의 온기와 감정이 전달되듯 느껴지는 것은 꽤 신선한 경험이다.

 

이는 로봇과의 연기에 사람의 온정과 온기를 입힐 수 있도록 감정이입을 한 배우 이성민과 목소리만으로 연기의 합을 맞춘 배우 심은경의 공이 크다. 이성민은 마치 로봇을 아기처럼, 딸처럼 대함으로써 로봇에게 사람의 감성을 입혔고, 심은경은 엉뚱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매력을 발현시켰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

 

우리는 기도를 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늘 달라고만 하는 그런 유아적 자세는 성숙한 신자의 기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기복을 위한 기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 기도를 통하여 주님께 온전히 나를 맡기라 하지 않는가. 간절함과 절박함이야말로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상의 요건이 아닐까?

 

‘브루스 올마이티’(톰 새디악 감독, 2003년)라는 영화에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세상 곳곳에서 올리는 기도 소리 때문에 하느님께서 시끄러워 견딜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그분이 우리 기도를, 외침을 듣고 계시는 것을 익살스럽게 설정한 것이다. ‘시편’에서도 보면 고난에 놓인 다윗이 하느님께 끝없이 자신의 소리(기도)를 들어주십사고 울부짖는 대목이 선연하다.

 

“하느님, 제가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소서. 곤경에서 저를 끌어내셨으니 자비를 베푸시어 제 기도를 들으소서”(시편 4,1).

 

“이 곤경 중에 내가 주님을 부르고 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였더니, 당신 궁전에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네. 도움 청하는 내 소리 그분 귀에 다다랐네”(시편 18,7).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의 소리(기도)를 듣고 계시고, 어떤 형태로든 응답하신다고 믿는다. 스웨덴 영화작가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의 영화 ‘어두운 유리를 통해(Through a Glass Darkly)’, ‘겨울빛(Winter Light)’, ‘침묵(The Silence)’을 영화 연구자들은 ‘신의 침묵’ 삼부작 또는 신과 구원의 삼부작이라고 부른다.

 

이 작품들에 담긴 세상의 불행과 고통과 고독은 과연 신이 있는지, 있다면 왜 신은 침묵하고 있는지를 묻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침묵’의 여주인공이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신은 침묵하고 있다.”라는 대사를 함으로써 ‘신의 침묵’은 베리만 영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로봇, 소리’에서 로봇은 침묵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수집하고 전달한 음성정보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대기권 안으로의 추락을 감행하며 소녀를 찾아나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느 사막,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의 사막을 씩씩하게 횡단하고 있는 로봇의 모습이다. 사실 이 장면으로 영화가 코믹스럽게 되어버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인공지능을 갖춘 이 로봇의 결연한 의지만큼은 돋보였다.

 

‘로봇, 소리’는 아버지의 부성애를 중심에 두고 있으면서 지금 사회의 암울한 그림자들을 슬쩍 건드린다. 바로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나 안타까운 생명들을 앗아간 세월호 사고다.

 

감청 로봇을 둘러싼 국정원의 대응은 민간인 사찰과 미국의 스노든 사건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로봇, 소리’가 처음의 취지를 살리지 못함으로써 그 메시지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조혜정 가타리나 -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이며 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3월호, 조혜정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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