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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에서 배운다: 16세기 수도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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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8 ㅣ No.539

[교회사에서 배운다] 16세기 수도회들


초월적, 종교적 중세문화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로 인간적, 현세적 고대문화에 관심을 돌린 문예부흥 운동(르네상스, 14-16세기)은 신(神)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세계관을 바꾸기 시작한다.

게다가 16세기의 교회는 신앙 쇄신의 외침이 신앙의 분열로 귀결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들(1517-1555년[독일] / 1559년[영국])의 영향으로, 서구 주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천만 명이 모교회의 품을 떠나는 재난을 겪게 된다.

그 결과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들이 병립하면서, 서구의 통일된 보편교회가 해체되고 교파화, 지역화되기에 이른다.


역사적 배경

문예부흥기의 인문주의자들은, 세속화되어 복음과 멀어진 교회, 더 구체적으로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부패와 무지를 비판했다. 나아가 지리상의 발견과 의학, 법학 등의 발전은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학문에 종사하는 학자들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레고리오 개혁부터 14-15세기에 이르기까지 서방교회는 성직자 개혁에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귀족들에 의한 고위 성직 독점과 부유한 영주 주교들의 속화로 주교직이 세속 직업같이 되었다. 반면 많은 가난한 하급 성직자들은 교육도 받지 못했다. 수도회들도 일반적으로 속화되었고, 규칙준수를 놓고 내분에 휩싸였다.

종교개혁의 충격으로 내부의 개혁을 시급한 과제로 느끼게 된 교회는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를 통해 교리를 재정립하고, 교회개혁과 반종교개혁을 성취한다.

16세기의 수도회들도 내부에서부터 교회 내부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하게 펼친다. 이 운동들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프랑스로 이어져, 미구에 교회 안에 하나의 포괄적인 기적을 일으키게 된다.


16세기 수도회들의 탄생

이미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 카푸친작은형제회(1528년), 성녀우르술라수녀회(1535년), 천주의성요한수도회(1539년)가 생겨 교회 내부를 개혁하기 시작한다. 카푸친작은형제회는 헌신적 병자 간호, 대중 설교, 지칠 줄 모르는 고해성사로 유명하고, 안젤라 메리치 성녀(1474-1540년)가 설립한 성녀우르술라수녀회는 병자 간호와 젊은 여성들의 교육을, 천주의성요한수도회는 병자들을 돌보는 사도직을 수행했다.

또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영향으로, 특히 스페인과 프랑스의 고대 수도회들(시토회, 베네딕토회, 프란치스코회, 가르멜회)의 대부분이 엄률수도회로 개혁되었는데, 스페인에서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1515-1582년)가 1562년부터 가르멜회에서 이룩한 엄률개혁운동이 대표적이다.

기존 수도회들의 개혁 이외에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부터 17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새 수도회들이 창설되어, 관상생활보다 주로 교육과 성직자의 증가 또는 설교, 교리교육, 선교활동을 통해 백성을 교육하는 활동생활에 진력하면서 가톨릭 생활을 부흥시킨다.

1564년에 이탈리아에서 필립보 네리 성인(1515-1595년)이 창설한 오라토리오회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부터는 종교적으로 쇄신된 프랑스에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1567-1622년)과 샹탈의 요안나 프란치스카 프레미오 성녀(1572-1641년)가 성모마리아방문수녀회(1610년)를,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1581-1660년)이 선교수도회(1625년)를 창설한다. 특히 수녀회들은 청소년 교육과 병자 간호, 그 밖의 사회자선사업에 주력한다.

16세기 초의 타락한 성직 구조는 개혁을 위한 최우선적 과제로, 수도자로서 하느님을 찾는 일에 헌신하며 서원을 통해 복음적 권고의 삶을 충실히 사는 동시에, 세상 안에서 신자사목에 투신하는 재속 신부의 사명과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참된 사제생활의 모범을 보여줄 성직수도회를 절실히 요청하고 있었다.

새 시대가 요청하는 재속 사제의 개혁을 위해서, 생활구조 면에서 기존의 수도회들보다 공동기도와 공동생활의 규율이 완화된 ‘수행성직자 수도회들(Ordines Clericorum Regularum)’, 이른바 성직수도회들이 탄생한다.


수행성직자 수도회들의 탄생

16-17세기에 생겨난 ‘수행성직자 수도회’는 기존의 수도승 개념에 성직자 개념을 새롭게 결합시킨 새로운 수도생활 양식을 창조했다. 이 수도회는 성직자들이 어떤 수도승 규칙을 따르지 않고, 하나의 결정된 회칙을 따라 복음적 권고들을 장엄 서원하고 공동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도직에 헌신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행성직자 수도회들은 문예부흥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교육과 다양한 전문교육에 투신하고자 최대한 세상 안으로 들어가, 인간적으로, 영적으로 잘 훈련된 회원들이 다양한 사도직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봉사함으로써 당시의 부패한 재속 사제들에게 성직자 생활의 모범과 성소의식을 고취시켰다.

최초의 수행성직자 수도회는 가예타노 성인(1480-1547년)이 1524년에 설립한 테아티노회이고, 대표적인 수도회는 예수회(1540년)이며, 1671년에 설립된 마리아노회가 마지막 수행성직자 수도회이다.


수행성직자 수도회 생활의 역사적 의미와 공과

수행성직자 수도회들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 대한 영적 지도, 학교에서의 교육과 양성, 고아와 병자와 노숙자 사목, 본당사목과 민중설교와 고해성사를 통한 신자들의 성화, 지리상의 발견에 따른 선교활동 등의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고자, 사도직을 완수하는데 자신들의 구조를 맞추었다.

수행성직자들은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생활의 전통적인 원칙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온전히 사도직에 봉사하고자 수도복, 봉쇄구역, 엄격한 금욕실천, 야간의 가대기도 등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포기했다. 이들은 사목활동에 깊이 투신하려고 규칙생활을 받아들인 성직자들로서, 사도직에 대한 조건 없는 투신을 통해 하느님 사랑에 도달하고 자신과 이웃의 성화를 추구했다(사제적, 사도적 영성).

교회의 부패는 교회를 이끄는 사람들의 부패이다. 따라서 교회개혁은 우선적으로 사람들이 변화되어야 이루어진다. 수행성직자 수도회들은 수도자로 살면서도 공동기도의 의무에서 벗어나 세상 안에서 사도적 성무 집전과 교육 등의 사도직과 개혁적인 생활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시의 재속 사제들이 새 시대 상황에서 성직자로서의 생활을 개혁하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교회의 전통적인 사제생활 양식을 회복하는 데 이바지했다. 또한 그들의 다양한 사도직활동은 수도자들의 사도직을 풍요롭게 하는데 공헌했다.

수행성직자 수도회들은 교회개혁이 긴급한 상황에서 영성보다는 사도직을 통해 변동기의 대중들과 동반하며 신앙을 전파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요청하던 교회 내부와 제도적인 개혁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어 교회재건에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특별한 사도직을 강조한 수행성직자 수도회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복지, 교육, 의료 등의 사도직에 투신하는 현대의 단순 서원 활동 수도회의 설립에 영감을 주게 된다. 그래서 이후 수도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보잘것없는 이들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봉사(diaconia)’의 모범이 된다.

기원적으로 수도승생활은 평신도운동이었고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생활양식의 특성상 사제직에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8세기의 의전 사제 수도회 이후 본성상 직접적으로 성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성직자 수도회가 출현하면서 사제직과 수도생활이 결정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이후 서방 수도생활에서는 수도생활과 성직수행이 동일시됨으로써 수도생활의 평신도성이 많이 훼손되기 시작한다.

또 지금까지의 수도생활의 양식들은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도전에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응답하면서 출현해 왔다. 그런데 수행성직자 수도회들은 수도생활 역사상 처음으로 현재의 문제에 과거의 해결책으로 응답했다. 수행성직자 회원들은 종교개혁에 반동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교회 내부의 쇠퇴에 응급적으로 대처하여 분쟁을 차단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난세의 영웅처럼 16세기에 등장한 수많은 성인들의 영성 역시 과거의 수도전통에 충실했다.

그 결과 이후의 수도회들은 18세기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며 시대정신에 더 소홀해진다. 결국 수도생활은 시대에 역행하며 점점 수구적으로 되어가던 교회를 깨우는 표징이 되지 못한다.

수도회는 어떤 사명을 실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존재와 행위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설립되어야 한다. 예수 추종이 신비적인 동시에 실천적이기 때문이다. 교계 제도가 아니라 교회의 생명과 성화 차원에 속하는 수도생활은 교회의 궁극적인 생명원리로서 성령을 선포한다.

따라서 수도회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창설자들을 통해 시대의 표징을 포착하여,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봉사에 전적으로 헌신하고자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 오윤교 아브라함 -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 신부.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회사를 전공했으며, 성베네딕도왜관 피정의 집 책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8월호, 오윤교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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