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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의 화두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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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11 ㅣ No.306

[전하라! 땅끝까지] 신중국의 화두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



한중 국교가 수립되기 전 꿈에 그리던 중국 본토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중국어 교과서에서 베이징의 넘치는 인정미가 자주 소개되었기에 중국 본토를 그리워했었다. 그러나 베이징 공항에 내리는 순간 마주친 중국인과의 첫 만남은 충격적이었다. 짐 검사를 한다면서 가방을 무례하게 굴리고 뒤집고, 째려보는 눈과 함께 묻는 질문들은 죄인에게 던지는 심문에 가까웠다. 내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니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서점에서 잔돈을 홱 뿌려주는 점원의 태도를 보며 하루 만에 중국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 그 뒤 중국 본토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었고 그러면서 중국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중국의 최대 문제점은 인본주의의 붕괴에 있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잘나가는 중국과 떵떵거리는 신중국인들. 거기에는 일만 존재할 뿐 사람이 없었다. 사람에 치이고 밟히니 중국 사회에서 사람은 항상 을이다. 사람이 소음이고 걸리적거림이며 장애물이다. 안 부딪치면 더 좋은 존재, 사람이 사람을 피해 다니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일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중국에서는 사람이 일에 쓰이고, 일에 의해 평가 받는다. 철저히 비인본적이고 사본(事本)적인 사회다.

상하이에 사는 교민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중국인들에게 서비스를 받는 날이 오면 한국 기업들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말이다. 곧 중국인들이 서비스가 하나의 산업 분야임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한국 기업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겪는 불친절과 무례함을 이해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그들은 허탈하게 말한다. 한국에 온 중국 관광객들에게 가 인상적인 부분을 물었더니 “有禮貌(요우리마오, 예의바르다)!”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뒤집어 보면 중국인들 스스로도 비인본주의적인 중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공산주의 문화와 서방의 인문주의 문화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와 태도다. 중국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 국민이 이웃을 대하는 태도, 상인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본(本)이 되지 않는다. 공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했지만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그 가르침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중국은 더 이상 ‘사람다움’을 포기한 나라이다. 중국 사회에서 인본주의가 말살된 것은 공산주의의 등장과 함께였다. 유물론(唯物論)에 입각한 새로운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자 인본주의와 삼강오륜 등 중국의 모든 유교 문화들은 분서갱유(焚書坑儒)되었다. 또 공산사회주의가 발아되던 시기인 1924년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도의 타고르가 중국을 방문했지만 그의 인문주의는 격렬한 반대를 받았다. 그는 거대한 물신주의의 예속과 비인간성으로부터의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갈등 속에 희망이 있다고 피력했지만 중국인들은 비웃었다. 이미 인본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타고르의 비판은 허공의 외침이 되었고 결국 야유와 함께 중국을 떠나야 했다.

인문을 비판했던 그때는 유물사관에 입각한 공산사회주의 사상이 대세였다. 그리고 그 맥이 지금 중국의 반(反)인문사상에 닿아 있다. 뒤이어 진행된 문화혁명은 인본을 말살시킨 중국의 역사 중 최대 실책이었다. 문화혁명으로 중국 문화의 유전자가 완전히 수정됐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했고 친구가 동료를 밀고했으며 제자가 스승을 짓밟으면서 삼강오륜은 사라졌다. 문화대혁명은 물본주의(物本主義)에 의한 인본사상 말살의 현장이었다. 그로 인해 현대 중국인은 인본이 결여된 민족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역사적 오류인 까닭은 인간이 지금까지 밟아온 자취를 부정하고 훼손했기 때문이다. 인간 · 인문 · 교양을 모두 부정한 반혁명이었다. 중국인들을 대하면 한결같이 속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여백을 남긴다. 아직도 불신의 상처가 생생한 문화혁명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공산당 통치의 맹점은 통치자와 영웅만 있고 민이 없다는 것이다. 거시적 역사관에 묻힌 민초의 미시적 역사, 민이 풀뿌리 같이 밟히고 통할되는 사회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공자가 만인의 스승인 이유는 사람을 중히 여기는 인본사상의 효시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에서 중국 문화가 발원하였고 중화의 꽃이 피었다. 공자는 마구간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제자에게 먼저 “사람은 다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사람을 중시하는 공자의 인본정신이다. 인본사상이 중국 문화의 최대 강점이었다. 서양의 인본사상은 키케로가 처음 사용한 후마니타스(humanitas)에 기인한다. 바른 예절, 인간적인 부드러움, 그리고 시민적 덕목을 아우르는 인간적인 학예(humanae artes, 인문학)는 바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다. 키케로는 인문학을 인류 역사를 통틀어 으뜸 가치이며 인문학에 종사하는 것만큼 유쾌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인류에게 종교와 절제, 그리고 큰 용기를 가르치며, 우리의 영혼을 어둠으로부터 끌어올린다.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윤 · 경제성 · 실용성 · 합리성 등 모든 과학적 가치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사람을 본으로 하는 인문학이다.

중국은 지금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최고 · 최다 · 최대라는 가치에 국가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싼샤댐 · 고속철도 · 인공위성 · 달나라 탐험 · 최저수심 잠수 · 스텔스 제조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국가의 모든 가치관이 일에 집중되고 인간이 빠져 있다. 사회적 가치를 논하면서 사람됨에 대한 얘기가 없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이 없다. 국민에게 보여 주기 위한 국정이니 인본이 아니라 사본(事本)이다. 중국에서 10여 년 넘게 살고 있지만 중국에서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귀하지 않고 사람을 가치로 여기는 ‘후마니타스’ 인문학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모든 흐름은 경제 · 가치 · 발전으로 결정되는 나라다. 하지만 남의 나라만 탓할 일은 아니다. 지금 동방예의지국이라던 한국도 인문학이 붕괴되고 있다. 인본을 경시하는 것은 유물, 경제적 사고의 사본편향성에서 생긴 증상이다. 일이 아니라 사람을 중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젊은이들의 사람에 대한 가치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신중국은 대당 시대의 영화를 꿈꾸고 있다. 미국을 넘어 세계의 으뜸이 되고자 발악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아프리카나 남미에 물건을 많이 팔고 형님 노릇 한다고 해서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사람을 중시하지 않는 한 결코 으뜸이 될 수 없고 결코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의 G1이 되기 위해 국가가 무리수를 두고 강국 정책을 쓰고 있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은 여전히 95위인 중국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만리장성을 지으면서부터 크고 길고 높고 많은 것에만 가치를 부여한 중국 문화는 분명 인본의 가치가 무시된 나라이다. 만리장성 공사장에서 강제노역에 죽은 남편 시체를 찾지 못해 통곡을 하니 장성이 무너졌다는 ‘멍장녀의 이야기(孟姜女哭長城)’에서 그 비인본성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이 세계화로 나아가려면 인본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중국의 공산 통치자들은 ‘민(民)이 주(主)’임을 새롭게 인식하고 민주주의를 수용해야 한다. 어느 한 나라의 사상이 통제되고 이념화되면 부패되기 시작하고 사람의 가치가 짓밟힌다. 현재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제로는 백성의 생각을 수렴할 수 없고 사람의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다.

세상은 결국 기능적인 인간보다 인문적인 인간이 승리한다. 그러므로 인문학 없이 사람 사는 사회를 이룰 수 없다. 문화혁명으로 상실된 인간성과 인본사상이 부활해야 중국 문화가 생명력을 회복할 것이다. 중국의 최대 관건은 인성의 재발견이며, 화두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 사람이 살아야, 사람이 본이 되어야 문화가 사는 법이다. 중국이 사람 사는 곳이 될 때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과제이다.

[땅끝까지 제84호, 2014년 11+12월호, 김병수 대건 안드레아 신부(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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