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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에 나타난 인간몸에 대한 천사들의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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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14 ㅣ No.649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8) 영화 속에 나타난 '인간몸'에 대한 천사들의 찬사 -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외 영화들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인간 육체의 위대함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 인간의 몸을 통해 물의 차가움을 느끼는 천사 세스.
 

1. 영화 속 천사들은 성경 속 천사들과 어떻게 다를까? 우선 성경 텍스트를 재현한 '예수 영화(Jesus Story)'에서 천사는 예수님 탄생을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나 부활한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지키는 천사들로 등장해 비교적 성경에 충실한 모습으로 나온다. 그 외 영화 속 천사들은 주로 사람들을 돕는 수호천사 역할이나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개입되는 존재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들 천사 역할은 카메오처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1987)가 나온 이후로 이제 천사들은 영화 속에서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대표적 영화가 브래드 실버링 감독의 '시티 오브 엔젤'(City of Angels 1998), 마틴 브레스트 감독의 '조 블랙의 사랑' (Meet Joe Black, 1998), 노라 애프론 감독의 '마이클 (Michael, 1996)' 등이다.
 
이들 영화들은 한 가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천사와 인간이 지닌, 영적 속성과 육적 속성, 무한과 유한, 관조와 개입이라는 이항대립적 구도에서 천사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동시에 유한한 인간이 지닌 몸의 속성과 그 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오감(五感)의 축복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인간이 되어서 처음 커피를 마시는 천사 다미엘.
 

2.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지상에 자리를 잡고 그것을 지켜본 이들이자, 사람들 곁에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수호천사다. 그들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회상한다. 베를린 콘크리트 제방에 선 그들은 원시 시대의 강물이 강바닥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회상한다.
 
또 빙하가 녹아내리는 긴 세월의 흐름을 잔잔하게 기억하며 들려준다. 그리고 천사들의 역할은 도시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과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다. 그들은 종종 도시의 천사동상 어깨 위, 빌딩 옥상 같은 높은 곳에 있기도 하지만, 사고를 당한 희생자를 위로하거나 자살하려는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실제 천사 카시엘은 다리 위에서 자살하는 청년을 저지하지 못한다. 단지 곁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주거나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주기 위해 머리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놓는 정도이다. 인간에게는 본인 스스로 선택할 몫, 자유의지가 있기에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영화는 늘 지켜보기만 하지 직접 인간들의 삶에 개입할 수 없는 천사의 세계를 흑백화면으로 표현하고, 인간의 세계는 컬러 화면으로 표현한다.
 
천사들은 인간들 세계 속에 존재하지만 인간들의 육체와는 다르다. 때때로 순수한 아이들에게 그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인간과 다르다. 그런데 이들 천사 중에 다미엘이 인간들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느끼고 싶어 하는 욕망을 느낀다. 또 그가 늘 지켜보기만 했던 곡예사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높은 곳에서 그대로 뛰어내린다. '추락천사'가 되어 날개를 잃고 천사의 능력을 상실한 인간이 되어 이제 사랑, 고통, 질병, 죽음이 있는 유한한 세상사 속에 뛰어든 것이다.
 
영화는 천사 다미엘이 세상사에 뛰어내려 인간이 된 이후 사랑에 빠진 곡예사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천사 다미엘이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영원이었다'는 것과 '그날 밤의 일은 죽을 때까지 남을 것이다'는 말로써 그가 영원을 포기하고 유한한 시간에 들어왔으며, 그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암시와 함께 인간이 되고 싶었던 천상의 욕망을 말해준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천사에 대한 한편의 시이자, 철학적 명상이라면, 헐리우드의 '시티 오브 엔젤'은 한편의 이야기이자, '베를린 천사의 시'에 대한 해설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리메이크한 '시티 오브 엔젤'은 오리지널 영화가 암시했던 요소들을 조목조목 명확하게 밝혀놓고 있다.
 
영화 속 천사 세스는 환자의 죽음으로 슬럼프에 빠져 방황하는 의사 매기 곁에 머물며 위로하고 주목하는 사이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마침내 그는 그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들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영혼의 느낌을 교류하지만, 매기는 그가 만지는 느낌이나 그로 인한 오감의 느낌을 가질 수 없는 영적 존재라는 사실에 혼란에 빠진다. 결국 천사 세스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 다미엘처럼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려 피를 흘리고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으로 매기를 찾는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둘이라고 하는 것의 놀라움, 남과 여의 놀라움, 바로 그것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또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영원이었다'는 천사 다미엘의 모호한 고백은 천사 세스와 매기에 의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기는 세스에게 줄 오감의 축복인 음식을 사가지고 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결국 매기는 죽게 되고, 세스는 인간이 되어 혼자 남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허탈한 죽음 앞에서 그는 말한다. "난 후회하지 않아, 그녀의 머리향기, 그녀의 입술과 그녀의 손길을 느끼는 게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나아, 단 한번이라도."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서도 죽음의 천사가 인간사를 들여다보며 인간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그들이 몸으로 느끼는 열정과 정서를 체험하고 싶어서 인간 세계에 개입한다. 그는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한 남자의 몸을 통해 일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업가 윌리엄이 느꼈던 열정과 사랑이 무엇인지 체험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몸을 통해 느끼는 사랑의 느낌과 행복도 체험하지만, 끝내는 사랑받을 수 없는 아픔과 슬픔도 느끼고 다시 천사 세계로 돌아간다.

영화 '마이클'에서는 제목 그대로 이 세상에 휴가를 나온 대천사 미카엘이 나오는데 그는 각박하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이 무엇을 잊고 사는지에 대해 일깨우면서, 인간의 몸이 느낄 수 있는 오감의 축복과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체험을 그리워하고 즐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서 땅콩버터 맛을 음미하는 천사 조 블랙.
 

3.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나 '시티 오브 엔젤'에서 영겁의 세월을 사는 천사들이 인간을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비록 인간이 유한한 삶을 살지만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몸', 그것이 지닌 '오감의 축복'이다. 그래선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나오는 천사들은 한결같이, 오랜 세월 관조의 눈으로 신기하게만 바라보았던, 인간들의 먹는 느낌의 풍경들을 자신들도 '몸'을 통해 체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베를린 천사의 시' 천사 다미엘은 추락천사가 되어 지나던 행인에게 구걸해서 얻은 동전으로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거리 모퉁이에 있는 이동식 자동차 커피가게다. 그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가 보기엔 그만한 나이면, 이미 수도 없이 커피를 마셔봄직한 나이인 데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커피 마시는 행위가 그에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켜보기만 했지 한 번도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지켜봄'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장면을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게 되고, 그가 인간 몸을 통해서 느끼는 그 커피 맛은 감동이자 기적으로 표현된다.
 
또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 인간의 몸을 갖게 된 천사가 신기한 듯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무화과 열매를 입에 물면서 눈을 감는 표정은 하나의 '행위'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의식'처럼 느끼게 한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 나오는 천사가 양복을 입고서도 땅콩버터가 있는 병을 들고 다니면서 맛을 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그의 말처럼 "천년이 영원과 곱해지고, 끝없이 시간과 합성되는 걸 떠올려봐, 난 그 세월만큼 떠돌아 다녔지"라고 할 만큼 영겁의 세월을 살면서도 늘 지켜만 봤던 그가 인간의 먹는 행위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마 그 땅콩버터의 맛은 그가 맛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더 소중한 간절함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또 영화 '마이클'에서 인간 세상에 휴가를 나온 천사 미카엘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휴가이기에 음식을 먹는 행위에 최선을 다한다. 마치 '내일은 더 이상 이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이처럼 지난 영화 속에서 중심 캐릭터로 나온 천사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오감의 축복'을, 특히 '음식을 먹고 온 몸으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남다르고 색다르게, 그리고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4. 천사들이 인간을 부러워한다. 비록 영화지만 상당히 의미가 있다. 인간은 일회적 삶을 살지만, 육체가 있기에 위대하고 소중하다. 육체가 있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예수께서는 그 육체를 통해 우리 인간과 만나셨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저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대화집」에서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나는 맛보고 또 보았습니다. 오, 영원한 하느님이시여…. 당신은 독생성자의 피를 한없이 보배롭게 만드셨습니다…"하고 고백한다. 우리가 그분을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체험처럼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다.
 
우리가 지닌 육체의 소중함을 묵상해볼 수 있는 영화를 찾는다면, 앞의 천사영화들을 추천하고 싶다.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 가치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몸은 곧 하느님께서 주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것을 묵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평화신문, 2012년 10월 14일, 서석희 신부(전주교구,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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