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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를 선물로 여긴 선우경식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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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3 ㅣ No.299

가난한 이를 선물로 여긴 선우경식의 영성



선우경식 요셉의 생애

고(故) 선우경식 요셉은 해방을 보름 앞둔 1945년 7월 31일 평양에서 아버지 선우영원과 어머니 손정복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되던 해인 1951년 1·4 후퇴 때 부모님을 따라 현 성북구 길음동으로 이주하였다. 모태 신앙인 어머니와 신앙생활에 열심이셨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1963년 가톨릭대 의과대학을 입학하여 1969년에 졸업하고 이후 인턴과정, 의무장교 복무를 마쳤으며,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뉴욕 브루클린 소재 킹스브룩 유대교 메디컬센터에서 일반 내과를 전공하였다. 귀국 후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정선의 성 프란치스코 의원(1982~1983년), 사랑의 집 진료소(1983~1986년), 방지거 병원 내과장(1986~1987년)을 역임하였다. 1987년 요셉의원을 개원해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며 선종할 때(2008년 4월 18일)까지 독신으로 헌신하였다.


선우경식 요셉의 영성 ‘보는 마음’

신자들이 흔히 오해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성인들이나 선우경식 선생 같은 분들의 태생이 남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생각은 존경심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말엔 ‘나는 이분들처럼 살 수 없다’는 변명도 숨어 있다. 애초부터 이분들이 남달랐다고 해야 그나마 내가 그리 살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살아보니 이분들처럼 되는 일은 ‘매우 어려울 뿐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박해 시대에 순교자가 한 분도 없었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순교가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순교자가 있었다면 순교는 ‘매우 어려운 일일 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분이 이렇게 하셨다면 다른 의사들이 이리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일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처럼 생각해야 우리가 배우려는 영성이 추상화되지 않는다.

선우경식 선생은 분명 남달랐다. 그는 의사가 된 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정선으로 또 서울의 달동네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1987년 우연히 불려간 신림동 달동네 주말 진료 때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로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선우경식, 《착한 이웃》, 2005년 1월호).

다른 의사들은 이런 현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자원봉사만 하거나 개업한 병원에서 무료진료를 해주는 정도였는데, 그는 그 순간 평생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을 보면 선우경식이 ‘가난한 이의 얼굴을 한 예수’를 ‘보는 마음’(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1항 가)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오랜 세월 마음 안에 선한 열망을 품었기에 짧은 순간 마주친 ‘가난한 이들의 얼굴과 그들의 시선’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안에 깊이 새겨져 있던 하느님 마음이 예수님의 얼굴을 한 가난한 이들을 만났을 때 깨어났던 것이다.

그는 요셉의원 개원 4년차에 이런 체험도 한다. “‘이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주저앉아 있을 무렵에는 어김없이 후원자가 나타나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너무 절묘해서 가슴이 섬뜩할 만큼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곤 했다. 차츰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힘으로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차츰 하느님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선우경식, 《착한 이웃》, 2007년 9월호).

이른바 섭리 체험이다.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 일이 이뤄짐을 깨닫는 체험이다. 적극적이지만 수동적인 그리스도교 신체험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에서 도망가고 싶어 했다. 무례한 환자가 행패를 부릴 때, 후원금이 적게 들어와 빚이 쌓여갈 때, 계속 늘어나는 환자 때문에 쉴 수 없을 때 사고가 나 그만두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처럼 나약했지만 하느님 때문에 강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한 환자들의 모습을 한 예수님의 얼굴 앞에서 자기를 조건 없이 내어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잴 때까지 재고, 힘들 땐 도망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애초에 강하고 잘 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남다른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우리도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7).

[평신도, 2013년 여름호(제40호), 박문수(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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