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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길 수도의 길: 보혈 선교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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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9-19 ㅣ No.300

[영성의 길 수도의 길] (22) 보혈 선교 수녀회


성혈의 사도들, 기도하며 소외된 이웃들 위해 봉사

 

 

- 보혈은 성체 신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일치를 이루고, 은총의 샘인 성심과도 떼어놓을 수 없다.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Redemisit Nos, Domine, in Sanguine Tuo)"라는 놀라운 말이 수도회 문장을 둥글게 장식한다. 그 안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성작과 승리의 깃발을 들고 있다. 하느님의 인도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놓고, 끊임없이 하느님을 흠숭하며,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써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하고, 희생하는데 관대하라는 수도회의 네 가지 성덕을 실천함으로써 생명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영성을 함축하고 있다.

 

 

가을 햇살이 내어준 길을 따라 수도회로 접어들면 모든 게 매혹적이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대지에 파문처럼 잔잔하게 번져나가는 맑고 투명한 햇살, 그 순간의 고요와 영적 풍요로움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노인전문요양시설 은혜의 집은 충북 청원군 현도면 상삼리 보혈선교수녀회 한국지부 들머리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청원나들목을 빠져나와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은혜의 집은 보혈선교수녀회가 묵묵히 선교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이다.

 

막 점심시간이어서 보혈선교수녀회 한국지부장 장영숙(수도명 효숙) 수녀ㆍ은혜의 집 원장 권경미(히야친타) 수녀와 함께 식당에 들어서니, 한 할머니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은혜의 집에 입소한 지 10년째인 올해 아흔 살 여언년(마리아) 할머니였다. 6ㆍ25 전쟁 때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평생 외롭게 살아왔다는 여 할머니가 내민 공책엔 예쁜 글씨가 또박또박 씌어 있다. 평생 배우지 못했던 한글과 산수를 익혀 이제는 '공신(공부의 신)' 못지 않은 열정으로 숙제를 하곤 한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머리를 다쳐 요즘은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수족도 제대로 못써요. 게다가 프로그램이 워낙 다양해서 쓸 시간도 없구요. 그렇지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틈틈이 시간을 내 간신히 썼어요."

 

공책을 펴 한 쪽 한 쪽 넘겨보던 수도자들이 글씨가 아주 예쁘다고 칭찬을 하자 할머니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 방금 요리한 쇠불고기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주여성들과 청원군다문화가족센터장 이상화 안젤라(오른쪽에서 두 번째) 수녀. 전대식 기자

 

 

이처럼 오갈 데 없는 할머니들이 모여 1993년 은혜의 집 공동체를 이뤘다. 처음엔 소규모 시설이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을 돌보는 수도자들 정성에 감동해 청원군이 지원에 나섰다. 시설을 증축하고 정원을 80명으로 늘렸다. 치매 어르신 20여 명도 보호를 받고 있다.

 

병설로 지역 어르신 10여 명을 돌보는 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며 각종 심리 정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 또한 일상생활 지원에서 영양제공과 의료재활, 종교활동 지원, 심리사회재활, 인지개선활동(치매 몬테소리 교육), 여가활동 등 다양하다. 이 중 어르신들을 위한 몬테소리 교육, 공예공방(가죽ㆍ도자기), 요리ㆍ음악ㆍ원예ㆍ체조교실 등으로 이뤄진 성 안나학교가 가장 인기다.

 

또 은혜의 집 앞쪽에 장애인보호작업장 '하늘재'도 짓는다. 수녀회가 운영하는 청주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이재례 수녀) 부설 보호작업장 '프란치스코의 집'과 연장선상에 있는 장애인 재활시설로, 직업교육을 받고도 갈 곳이 없는 지적장애인들이 당당하고 자립적 삶을 살도록 하는 데 그 취지를 두고 있다.

 

1996년 12월 개관한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을 통한 장애인 교육은 은혜의 집을 통해 어르신 돌봄을 실천한 데 이어 수녀회가 두 번째로 관심을 쏟는 사도직이다. 충북재활원 사도직을 통해 지적장애아들의 현실을 목격한 수녀들은 1991년 청주시에서 첫 임대아파트로 건립된 산남종합사회복지관에서 활동하다가 6년 뒤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을 맡으면서 장애인사도직을 본격화했다. 특히 교육재활과 의료ㆍ직업ㆍ사회심리 재활에 힘을 쏟았고, 지역사회와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도 애를 썼다.

 

- 올해 아흔 살 오복례 로사(왼쪽) 할머니가 권경미 은혜의 집 원장수녀와 함께 가죽공예 작업을 하고 있다. 전에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도자기 공방이 인기였지만, 요즘 들어서는 가죽공예가 훨씬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전대식 기자

 

 

또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모니카의 집과 야고보의 집, 35살 이상 지적장애 및 자폐성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주간보호센터, 중증장애인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미드미문화체험장 등도 특기할 만하다.

 

최근엔 청원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이상화 수녀)운영을 맡았다고 해서 청원군보건소로 향했다. 보건소 건물 오른쪽 2층에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들어서니 맛있는 불고기 냄새가 솔솔 난다.

 

마침 이주여성들을 위한 요리교실이 한창이었다. 메뉴는 물김치와 소불고기. 물김치 20인분은 이미 요리가 끝났고, 쇠고기에 양파와 당근, 버섯을 넣고 갖은 양념을 한 불고기를 조리하는 12명 이주여성들 표정이 아주 진지하다. 국적은 베트남과 캄보디아ㆍ필리핀 등으로 다양하지만, 센터에서 우리말을 포함 5개 국어로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해 펴낸 「행복반찬 다국어 요리백과」를 들여다보며 어떻게 요리를 할지 고민을 하는 모습은 똑같다. 우여곡절 끝에 이날 센터에서 만든 물김치와 소불고기는 청원군 가덕면ㆍ남일면 일대 어르신들에게 반찬 배달 서비스를 통해 전달됐다.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응웬 티 김홍(25)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4년째인데 여기서 요리를 배워 얼마 전 시댁에 가서 보쌈도 하고 파 강회를 해드리니까 아주 좋아하셨다"면서 "앞으로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청원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같은 요리교실과 함께 상담과 통ㆍ번역 서비스, 한글 교육, 다문화사회 및 가족 이해 교육, 취ㆍ창업 지원, 자조모임, 육아정보 나눔터, 자원봉사활동 멘토링, 다문화 인식 개선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수녀회는 서울 신림4동본당 등에서 본당사도직, 성요셉어린이집을 통한 교육사도직, 본원 내 엠마우스 피정의 집을 통한 피정사도직에도 열심이다.

 

 

보혈 선교 수녀회 영성 및 역사 - 기도하며 일하라

 

 

- 프란치스코 판너 아빠스.

 

 

"아무도 가지 않겠다면 내가 가겠소!"

 

1879년, 프란치스코 판너(1825~1909, 사진) 아빠스는 트라피스트회 유럽 총회에 참석해 남아프리카에 진출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당시 총회에서 수도자들 누구도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판너 아빠스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떠나 아프리카로 향하는 배에 승선한다. 그의 나이 54살 되던 해였다.

 

3년 뒤인 1882년 회원 32명과 함께 남아프리카에 마리안 힐 남자수도회를 설립한 판너 아빠스는 1885년 9월 8일 아프리카 복음화와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될 여성 교육을 위해 여자수도회를 설립한다.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이 깊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는 이름을 수녀회에 붙였고,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친숙한 빨간색 수도복을 수녀들에게 줬다. 이로써 보혈선교수녀회가 설립됐다.

 

트라피스트회원이었던 판너 아빠스의 선교 방법은 '침묵의 선교'였다. 보혈선교수녀회원들은 소임지 어디서나 하루에 일곱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치며 여성 교육과 가정 방문을 통한 선교에 나섰다. 수도자이자 선교사로서 성소의 소명(마르 3,13-14)을 받은 보혈선교수녀회 회원들은 올해로 설립 125주년을 맞기까지 전 세계 22개국에 900여 명이 파견돼 보혈의 사도로서 선교 사도직을 살고 있다. 기도와 철저한 묵상을 통해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 성심과 깊이 일치되도록 하고 사도직 현장에서 노동을 통해 '기도하며 일하라'는 원칙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성혈의 사도'가 되도록 불림을 받은 사도들은 날마다 파스카의 신비를 생활 가운데서 실천하고 있다.

 

한국엔 수녀회 설립 100주년 되던 해인 1985년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현 서울대교구장) 초청으로 진출, 이듬해 11월 한국인 수녀 3명이 충북재활원에서 지적장애아동을 위한 교육을 시작하는 것으로 사도직을 시작했다. 1989년 부강성당 내 한옥에서 수련원을 시작했고, 1990년 충북 청원군 현도면 상삼리에 본원과 수련소, 피정의 집을 신축했다.

 

1998년에는 한국지부로 승격했고, 2006년에는 본원 내에 수련원을 신축했다. 현재 회원 33명이 있고, 파푸아뉴기니와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마, 캐나다에 7명이 선교사로 파견돼 있다.

 

※ 성소모임

 

매달 넷째 주 주일 오후 2시 한국지부 충북 청원 본원 및 서울 신사동본당 분원.

문의 : 043-260-1638ㆍ010-2379-1638(본원), 02-839-1005(서울 신사동분원)

 

[평화신문, 2010년 9월 19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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