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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 심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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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11 ㅣ No.835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 심성론

 

정인재(서강대학교 명예교수)

 

1. 서언

 

질문[愼後聃] : 서태[마테오 리치]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星湖 : 이 사람의 학문은 없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그가 지은 바의 문자 예를 들면 《천주실의》, 《천학종정》 등의 여러 저서로 보건대 비록 그 도가 반드시 우리 유학에 합치 되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그 도에 나아가 그 이를 바를 논하면 역시 성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질문[신후담(1702~1761)] : 그 학문은 무엇을 가지고 종지로 삼습니까?

 

이장 : 그가 말하길 머리란 생명을 받은 근본이다. 머리에는 腦囊이 있어 기억의 주체가 된다. 또 말하길 초목은 생혼을 가지고 있고 금수는 각혼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학문을 논하는 대강의 요점이다. 이것은 비록 우리의 심성설과 같지 않지만 역시 그것이 반드시 그렇지 않음을 어찌 알겠는가?1)

 

茶山 丁若鏞(1762~1836)의 심성론이 서학의 아니마[영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기에 앞서 그 연원을 찾아보고자 한다. 성호 李瀷은 《天主實義 跋文》을 쓰면서 이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제자는 西學을 비판하는 攻西派와 서학을 신봉하는 信西派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성리학을 주로 연구하였다면 후자는 양명학과 서학을 연구하였다. 이것을 보면 양명학과 서학의 친밀한 관계를 알 수 있다.

 

성리학자들은 마테오 리치의 《天主實義》와 프란체스코 삼비아시[畢方濟]의 《靈言?勺》 등을 보고 이를 비판하였고, 신서파들은 다른 서학의 저서를 보고 받아 들였다. 그들이 본 저서가 무엇인지 뚜렷하지는 않으나 알레니(Giulio Aleni, 1582~1649)의 저서 《성학추술》을 접하지 않았는지 염두에 두고 논의를 펼치고자 한다. 알레니가 쓴 《萬物眞源》은 주로 중국 신유학의 이기론(理氣論)을 비판하면서 천주의 창조를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학자는 《만물진원》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이와 달리 《영언여작》과 《성학추술》은 전적으로 아니마를 논한 저서이다. 중국의 인성론이 이기론과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서학도 天學과 人學을 나눌 수 없다. 특히 아니마를 氣로 이해하느냐 理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내함이 다를 수 있다. 성리학자들은 靈을 氣로만 이해하였으며[虛靈不昧], 양명학에서는 靈을 良知로 이해하여[靈明] 천리와 같은 자리가 되었다.

 

영혼이라는 낱말은 리치가 서양의 아니마[anima]를 처음으로 번역한 이래 예수회 선교사들이 사용하였던 것이다. 靈魂이라는 단어는 초사에 한 번 나오지만 리치가 사용한 의미와는 다르다. 알레니와 같은 배를 타고 온 삼비아시가 지은 《영언여작》에서는 리치를 따라 영혼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영혼을 氣로 이해한 한국의 철학자 신후담은 영혼 불멸설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영성을 양지로 간주한 양명학과 동조하여 아니마를 靈性으로 번역한 알레니는 이러한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아니마를 氣로 이해하는 한 영혼불멸설은 주자학의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靈性을 양지로 이해하는 양명학에서는 영혼불멸설이 허용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우선 중국사전과 철학에서 靈과 魂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먼저 살펴보고 동양 심성론에서 영혼과 관련된 사상의 의미를 간략히 개괄하고 영혼론의 주요 저작인 삼비아시가 구술한 《영언여작》과 알레니의 《성학추술》의 내용을 살펴 본 뒤에 한국 유학자의 비판과 수용, 그리고 다산의 수정과 심성론을 검토하고자 한다.

 

靈이란 글자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2)

 

이십 여개의 뜻이 있는 靈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가리키는 바와 같이, 靈자의 첫 번째 뜻이 바로 巫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巫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인간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Hermes라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 靈자는 인간이 자연적이며 초월적인 존재와 서로 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기도 하고, 또 인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초월적 능력(특히 알 수 있는 힘)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죽어서도 가지고 있는 어떤 능력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魂에 관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3) 혼의 의미는 항상 魄과 함께 氣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음양사상으로 魂魄을 설명한 것이다.

 

 

2. 영혼의 심성론적 이해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물론 서학적 이해가 중요하겠지만, 이에 앞서 정통적 심성론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서양의 아니마론을 받아들인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한문으로 지은 저서 또는 역서를 통하여 이루어 진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유학자들은 이러한 한문서적을 통하여 서학을 접하게 되었으며 조선후기 유학자들 예컨대 성호 이익과 그의 제자 安鼎福, 신후담, 芝峯 李?光 등을 거쳐 다산 정약용, 明南樓 崔漢綺 등이 직접 간접으로 서학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특히 신후담은 유가의 심성론의 입장에서 서학의 아니마론을 비판하고 있으며, 정약용은 《心經密驗》 등의 저서를 통하여 서학과 유학을 결합시켜 자기 독창적인 철학체계를 수립하고 주자학의 틀에서 벗어나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최한기는 기학의 입장에서 서학의 아니마론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그의 기철학의 체계를 수립하였다.

 

서학의 영혼론은 사유하는 인식의 주체가 마음이 아니라 뇌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에 비해 동양의 심성론은 두뇌가 아닌 마음(心)에 생각하고 느끼는 작용이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아니마론은 서양의 의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여 전개된 것 인만큼 우선 우리가 감각하고 사유하는 주체인 영혼은 두뇌의 주머니[腦囊]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동양은 사유하고 추리하며 인식하는 주체보다는 도덕의 근원이 되는 주체인 마음을 중시하였다.

 

이제 간략하게 전통적인 심성론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孔子는 마음에 대하여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일생을 15세에서 70세에 이르는 단계로 설명하면서 일흔 살(70)을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가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4)는 자유와 필연이 합치된 성인의 경지로 토로하였다. 심성론이 본격적으로 논의 된 것은 孟子에서부터였다. 그의 성선설은 마음(心)의 도덕성(仁義禮智)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맹자는 마음과 본성(心性)을 하나로 보았으며 마음과 감각적 지각(耳目口鼻)을 구분하여 전자를 大體 후자를 小體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음을 극진히 발휘하면 본성을 알고 본성을 알면 하늘[천]을 안다[盡心 知性 知天]고 하였으며 마음을 간직하고 본성을 길러[存心養性] 하늘을 섬긴다[事天]고 하였다. 마음을 둘로 나누어 말한 것은 莊子에서 비롯되었다. 장자는 人心, 機心, 成心 등 세속의 마음과 常心, 靈府, 靈臺 등 본래의 마음을 구분하였다. 장자는 밖으로 향해 내달려 늘 고달픈 세속적인 마음의 질곡을 풀고 天光이 빛을 내고 영대가 드러나게 하는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천광, 영대의 본래 면목은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경상초〉는 “영대란 것은 의지(持)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의지하고 있는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의지 할 수가 없는 것이다”5)라고 하였다. 이것은 영대의 마음은 신령스런 빛[靈光]의 비추임[照耀]을 지닐 수 있으나, 이 비추임 가운데는 따로 지니고 있는 물건이 아무 것도 없다. 그리하여 비추는 그 자신(本身) 역시 처음부터 잡아서 지니고 있을 물건이 아니게 되므로, 인간은 언제나 마음을 비우고(虛心), 마음을 조용히 하고(靜心), 마음을 씻어냄(?心)을 통하여 이 신령스런 빛(靈光)이 언제나 있음을 보게 된다.6)

 

2. 荀子에 이르러 마음에 대한 인식론적인 논의가 강화되었다. 순자는 마음은 형체의 군주이며 신명의 주인[心者, 形之君也, 神明之主也]이라고 하여 마음이 형체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마음은 “스스로 금하고 스스로 시키고 스스로 빼앗고 스스로 취하고 스스로 다니고 스스로 주재한다. 그러므로 입은 겁을 주어 침묵시킬 수 있고 형체는 겁을 주어 굽히고 펼 수 있으나, 마음은 겁을 주어도 뜻을 바꾸게 할 수 없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고 그르다고 여기면 거절한다”7)고 하였다. 그는 또 人心과 道心을 구별하여 “인심의 위태로움과 도심의 미미함이라고 《道經》이 말하였는데 위태롭고 미미함의 기틀은 오직 밝은 군자인 뒤에 그것을 알 수 있다”8)고 하였다. 순자는 마음과 氣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물과 불은 기를 가지고 있으나 생명이 없고 초목은 생명을 가지고 있으나 지각이 없다 짐승은 지각을 가지고 있으나 義가 없다. 사람은 氣도 있고 생명도 있고 지각도 있고 의도 있다. 그러므로 가장 천하의 귀한 존재가 된 것이다”9)라고 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과 비슷한 견해를 보여 주고 있다.

 

3. 마음(心)과 靈氣의 관계를 논한 것은 管子에서 시작되었다. 영기가 마음에 있기 때문에 마음은 사려를 할 수 있고 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관자는 “영기가 마음에 있어 한 번 와서 한번 가고 그 세밀함은 더 이상 작은 안이 없고 그 크기는 더 이상 큰 밖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잃어버리는 까닭은 조급함으로 해가 된다. 마음이 다잡아 조용하게 할 수 있다면 도는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10)

 

4. 다음으로 《黃帝內經》에서 말하는 마음은 생명의 근본인 동시에 神의 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마음이란 생명의 근본이며 신의 변화이다”11)라고 말하였으며, 마음은 사람의 神明이 발생하고 기탁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음이 사유하는 기관이므로 ‘신명’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 《황제내경》은 중국철학사상 처음으로 두뇌의 인간 생리활동과 정신활동의 작용을 언급하였다.12) 〈素問〉은 “두뇌란 정명의 창고이다”[頭者 精明之府]라고 하여 비록 두뇌와 인간의 정신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였으나, 다만 그것이 사유기관임을 명확히 인식하지는 못하였다

 

5. 불교는 깨닫는 마음을 중시하므로 마음의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禪宗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특히 神會는 如來禪에서 분석적 방법으로 여래장 청정심 또는 초월적 眞心을 확립하여 成佛의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이 진심은 보편적으로 모든 중생이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신회는 이러한 진심을 靈知眞性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영지란 일종의 靈明한 지각이요 영명한 예지이다. 이 영명한 예지가 사물에 접촉 하였을 때 직접 그 사물 속으로 꿰뚫고 들어가 그 안의 본질을 알아차리게 된다13)고 하였다. 몇 세대를 지나 신회의 영향을 받은 宗密은 《禪源諸詮集都序》에서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은 영명한 앎이고 어둡지 않다. 이것이 바로 텅 비고 고요한 앎이다. 이것이 그대의 참된 본성이다. 아무리 미혹되고 아무리 깨달아도 마음은 스스로 안다. 안다는 知란 글자 하나가 모든 오묘함의 문이다”라고 하였다.14)

 

6. 신유가의 철학은 주자학이건 양명학이건 모두 도가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주자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텅 비어 영명하면서 어둡지 않다”[虛靈不昧]든가 ‘텅 비어 영묘한 지각’[虛靈知覺]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주자가 “영묘한 곳은 단지 마음일 뿐 본성이 아니다”[靈處只是心 不是性]라고 한 것은 마음(心)은 氣의 靈일 뿐이요 理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이란 기의 알맹이다”[心者 氣之精爽]라고 하였는데 精이란 거칠고 뒤죽박죽 섞인 것[粗]과 반대되는 것으로 알차고 신령스러운 것을 말한다. 그리고 爽이란 어두운 것[昧]과 반대되는 것으로 밝고 환한 것을 가리킨다. 精爽이란 그러므로 정밀하고 어둡지 않고 밝은 氣인 것이다. 그는 “지각되어 진 것은 마음의 이치이며 지각 할 수 있는 것은 기운의 靈이다”15)라고 하였다. 이른바 靈이란 지각하는 주체의 神明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동시에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을 말한다. 주자는 “마음의 기능[心官]은 지극히 신령스럽다. 지나간 것을 간직하고 올 것을 안다”16)고 하여 기억과 예측의 주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靈의 능력에 의하여 마음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주자는 “대개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신령하여 앎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다”17)고 하였다. 주자는 또한 靈은 혼백의 빼어난 알맹이[精英]라고 생각하여 “백이란 形의 신이다. 혼이란 氣의 신이다. 혼백은 신기의 정영이다. 이것을 영(靈)이라고 한다”18)고 말하였다. 그는 또 “옛날 학설은 靈을 巫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본래 신이 내려서 이름을 얻은 것을 알지 못한다. 대개 영이란 신이다. 巫가 아니다”19)고 하면서 주자는 靈의 신적인 특성을 부각시켰다.

 

아울러 주자는 인간의 신령한 능력을 혼과 백으로 나누어 “혼이 올라가 신이 되고 백이 내려와 귀가 된다”20)고 하여, 귀신이 혼백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형체를 떠나 올라간다. 그리고 혼은, 형체와 흔적이 없으면서 운동 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혼은 정기 중 형체와 흔적이 없는 것이다”21)라고 하였으며, 아울러 “움직이는 것이 혼이다. 조용한 것은 백이다. 動靜 두 글자는 혼백을 개괄한다. 대체로 움직이고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혼이다. 백은 할 수가 없다. 이제 사람이 운동할 수 있는 까닭은 모두 혼이 그렇게 시킨 것이다”22)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혼은 백과는 달리 형체와 흔적이 없으면서도)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신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魄은 정태적(靜)인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인 동시에 기억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주자는 “보기에 魄은 그 안에 물사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펼쳐져 나와 귀와 눈의 밝음이 된다”23)고 하여 魄을 감각기관이라 보고, “귀, 눈, 코, 입의 류가 백이다. 魄은 곧 귀이다”24)라고 하였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감각기관의 작용을 魄이라고도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밝고 귀에 들리는 것이 분명한 것이 魄의 작용이다”25)라고 하였다. 魄은 또한 기억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음[魄]은 저장하고 받아들임을 주관한다. 양[魂]은 운용을 주관한다. 대체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모두 魄이 저장하여 받아들인 것이다”26)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면 魂과 魄의 관계는 어떠한가? 주자는 “사람이 살았을 때는 혼백이 서로 교감한다. 죽으면 떨어져 각기 흩어져 가버린다. 혼은 양이 되어 위로 흩어지고 백은 음이 되어 아래로 내려온다. …비록 각자 나뉘어 음양에 속하지만 음양 가운데 각자 음양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대체로 백은 형체에 속하고 혼은 정신에 속한다고 했다”27)고 주장하였다.

 

혼백은 이처럼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능 또한 다르다. 혼백이 서로 교감하고 서로 작용하고 있을 때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양자가 서로 떨어져서 조화되지 못 할 때는 죽은 것이다.28) 주자에 의하면 인간과 만물은 기의 모임과 흩어짐[氣之聚散]에 의하여 형체가 생겼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사물이 생겨나 비로소 변화하는 것을 형체를 받은 시초라고 한다. 精血이 모이는 그 사이에 靈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이름 지어 魄이라고 하였다. 이미 魄을 낳고 양을 魂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이 魄을 낳으면 바로 따뜻한 氣가 생기어 그 사이에 神이란 것이 있다. 그것을 이름 붙여 魂이라고 한다”29)고 하였다. 이처럼 氣가 모이면 사람이 되고 바로 魂과 魄이 있게 되는데, 氣가 흩어지면 사람은 죽고 魂과 魄이 서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魄은 땅으로 내려온다. 양이란 기이고 魂이며 하늘로 돌아간다. 음이란 바탕이고 魄이며 땅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30) 그런데 인간의 ‘魂氣’는 모조리 다 흩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혼기’는 천년이 지나도 그 자손이 제사를 지내면 흠향하러 오는데, 이는 그 자손과 서로 감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기’는 영혼과 비슷한 것이다.

 

주자의 철학체계에서 ‘혼백’과 서로 관련 있는 것은 바로 ‘귀신’설이다. 그는 귀신은 음양의 기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귀신은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의 기가 통함을 말한다. 혼백은 사람의 몸을 주로 하여 말한 것이다. 바야흐로 기가 펼쳐지고 정백이 단단히 갖추어진다. 그러나 신이 주가 된다. 기가 굽어지게 되면 혼기가 비록 간직되어 있으나 鬼가 주가 된다. 기가 모조리 다 해버리면 백이 내려와 순전히 鬼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귀라고 한다”31) 이처럼 귀신이 하늘과 땅 사이를 통하는 기라면 귀신은 형이하의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주자는 “귀신은 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다. 단지 형이하자일 뿐이다. …대개 귀신은 기의 정영이다”32)라고 하여 귀신은 어디까지나 형이하의 기일 뿐 형이상의 이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데 귀신은 기의 굴신 왕래하는 기능이라고 생각하여 “귀신이란 기의 오고감이다”33)라고 말하였으며, 또 “무릇 기가 와서 바야흐로 펼쳐진 것이 신이고 기가 가서 이미 오므라든 것이 귀이다. 양은 펼침을 주관하고 음은 오므라듦을 주관한다. 이것은 하나의 기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기로 말하면 음이 귀가되고 양이 신이 된다.”34) 귀신은 기의 음양을 가리키며 또한 펼치고 오므라드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귀신은 음양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기능을 하고 어떠한 사물도 다 이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귀신은 어느 사물에나 다 존재한다고 보았다. 주자는 “정은 백이고, 백이란 귀의 왕성함이다. 기는 혼이다. 혼이란 신이 왕성함이다. 정기가 모여서 사물이 되니 어떤 사물에 귀신이 없겠는가”35)라고 하여 귀신은 어디에도 있고 언제나 있는 보편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특히 신의 작용은 측정할 수 없이 신묘하다고 생각하여 “이른바 신이란 만물을 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묘한 곳이 바로 신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신이라고 한다”36)고 주장하였다.

 

왕양명은 하늘의 靈에 힘입어[賴天之靈] 양지의 학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왕양명은 “저는 어려서 배움을 찾지 않았다. 사특하고 기이한데[邪?] 빠진 지 20년 비로소 노장 불교에 마음을 다하였는데 하늘의 靈에 힘입었기 때문에 깨달은 바가 있었다. 비로소 이에 周敦?, 二程의 학설을 따라서 구하였다 거기에서 얻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37)고 하여 젊어서 기이한데 빠졌다가 다시 노장 불교에 심취하고 신유학의 주돈이, 이정의 학문을 추구하게 된 계기는 하늘의 ‘영’에 힘입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왕양명은 “저는 참으로 하늘의 ‘영’에 힘입어 우연히 양지의 학에 대하여 견해를 갖게 되었다. 반드시 이것으로 말미암은 뒤에야 비로소 천하는 다스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매번 이 백성의 고통에 빠져있는 것을 생각하면 슬프도록 마음이 아파서 자신이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양지학으로 그들을 구제하려고 생각하였다.”38) 여기서 ‘하늘의 영에 힘입어’[賴天之靈]를 필자와 한정길은 ‘하늘의 은총에 힘입어’라고 번역하였다.39) 이것은 영의 초월적이며 미지의 세계를 알려주는 Hermes와 같은 역할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었다. 왕양명은 양지를 하늘이 심은 신령한 뿌리[靈根]이기에 스스로 그 이어받은 생명활동을 계속해간다40)고 하였는데, 양명이 그의 체험을 통해 파악해낸 영근=양지의 활동은 … 인간 본래 생명력의 활동이었다. 이것이 꿈으로 나타났을 때 영근=양지의 활동은 그 메시지(하늘의 소리[天聲])를 直悟하게 된다41)는 것이다.

 

왕양명은 마음을 靈明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黃以方이 가르침을 청하였다 “선생 : 그대는 이 천지 가운데서 무엇이 천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답 : 일찍이 사람이 천지의 마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생 : 사람은 또 무엇을 마음으로 삼는가? 대답 : 단지 하나의 靈明일 뿐입니다. 선생 :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것은 단지 이 하나의 영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단지 형체 때문에 스스로 사이가 떨어져 있을 뿐이다. 나의 영명이 바로 천지 귀신의 주재이다. 나의 영명이 없다면 누가 하늘의 높음을 우러러 보겠는가? 나의 영명이 없다면 누가 땅의 깊음을 굽어보겠는가? 나의 영명이 없다면 누가 귀신의 길함과 흉함, 재앙과 상서로움을 변별하겠는가? 천지 귀신 만물이 나의 영명을 떠난다면 천지 귀신 만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영명이 천지 귀신 만물을 떠난다면 또한 나의 영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다면 곧 하나의 기운[一氣]이 흘러서 통하는 것이니 어떻게 그 사이를 격리시킬 수 있겠는가?”42) 하였다. 즉 나의 영명이 천지 귀신 만물의 존재 근거인 동시에 또한 역으로 천지 만물도 영명의 존재 근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지 만물과 영명 사이에 천지 만물을 일체로 하는 하나의 기운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본사가 질문하였다. 사람은 허령함을 가지고 있기에 비로소 양지가 있습니다. 풀, 나무, 기와 돌 같은 것도 양지가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양지가 바로 풀, 나무, 기와 돌의 양지이다. 만약 풀 나무 기와 돌에 사람의 양지가 없다면 풀, 나무, 기와 돌이 될 수 없다. 어찌 풀, 나무, 기와 돌만 그러하겠는가? 천지도 사람의 양지가 없다면 역시 천지가 될 수 없다. 천지 만물은 원래 사람과 일체이며 그것이 발하는 가장 정밀한 통로가 바로 사람의 한 점 靈明이다.”43) 왕양명에 의하면 사람의 양지가 바로 천지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되고, 그 양지가 발하는 정밀한 통로[精竅]가 영명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이라 왕양명은 마음이 발동한 意의 영명한 곳을 앎[양지]이라고 보았다.44) 왕양명의 양지의 학은 초월적인 하늘[天]의 영명에 힘입어 얻게 된 것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이 양지의 영명이 천지만물의 내재적 존재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왕양명이 말하는 양지는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주자가 말하는 靈은 氣의 측면을 가리키지만, 왕양명이 말하는 靈은 초월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자는 어디까지나 윤리적 차원에서 靈을 언급하였다면 왕양명은 윤리적인 것은 물론 종교적 차원에서까지 영명을 말하였다.

 

 

3. 선교사들의 아니마(영혼)론

 

서양의 예수회를 비롯한 여러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와 활동한 것은 明나라 시대였다. 이 시기는 元代 이래 자리를 굳힌 주자학이 여전히 관학으로 그 지위를 유지하였으나, 科擧의 합격을 위하여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爲人之學]이 되고, 도덕적인 자기 수양을 지향하는 자기 사람됨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은 그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이에 양명학이 민간 학문[民學]으로써 일어나 양지론으로 주자학의 이기론적 본체론을 비판하고 있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양명학자들의 주자학 비판의 방식을 원용하여 이기론의 본체론을 비판하고 원시유학(Original Confucianism)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교와 천주교의 합치점을 찾아내어 補儒論의 방식으로 서학을 중국에 토착화 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따라서 서양의 아니마를 어떻게 번역하여야 한자 문화권에서 잘 이해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靈이란 글자의 의미가 초월적 존재와 소통하는 사람[巫]을 뜻하기도 하고, 天神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며, 사망한 사람의 혼백을 말하여 어떤 초월적인 힘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 또 어둡지 않고 환하게 사물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虛靈不昧]을 말하기도 하였으며, 불교의 空寂靈知 같은 경우에는 근본 무지[無明]를 여의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靈이라는 글자는 서양의 이성(ratio)과 비슷하지만, 이성 보다 한 차원 높은 신적(Spiritual or Divine) 경지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그리고 魂의 의미를 살펴보아도 인간이 죽으면 神과 魂은 鬼와 魄과는 달리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아니마가 天神과 같은 類라는 의미와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주교의 天主라는 낱말도 주자학의 천리처럼 궁극적 존재를 나타내지만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원시유학의 주요개념인 상제나 천의 뜻에 가까운 용어인 것이다. 이러한 토착적 작업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 리치이며, 그가 쓴 《천주실의》는 중국학자[中士]와 서양학자[西士] 사이의 질문과 대답형식으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유학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논의를 전개한 것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 또는 그 뒤에 여러 선교사들이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아니마[靈魂]의 문제를 직접 다룬 것이 삼비아시가 구술하고 徐光啓가 받아쓴 《영언여작》과 알레니가 쓴 《성학추술》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선교사들이 논하는 아니마론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니마론에 토대를 둔 스콜라 철학에 근거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삼비아시는 아니마를 영혼 또는 영성이라 번역한다고 하였다. 그는 “아니마의 학은 필로소피아 중에서 가장 유익하고 가장 존귀하다”45)고 처음부터 그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신후담은 “이 책은 모두 4편으로 되어 있다. 제1편은 아니마의 본체를 논하였고, 제2편은 아니마의 능력을 논하였으며, 제3편은 아니마의 존귀함을 논하였고, 제4편은 아니마의 아름답고 좋은 것을 지향하는 성질을 논하였다”46)고 저서 전체를 소개하였다.

 

우선 아니마의 본체에 대하여 삼비아시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마는 자립하는 실체[自立之體]이며, 이것은 본래 스스로 있는 것[本自在者]이고 이것은 神의 類이며, 이것은 죽을 수가 없으며[不能死] 이것은 천주로 말미암아 만들어져 이루어진 것이며,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데[無物]에서 존재하는 것[有]이다. 이것은 나에게 부여한 곳과 나에게 부여한 때에서 이루어 졌다. 이것은 내 몸의 형상[eidos 體模]이며 이것은 마침내 성총(聖寵, gratia)에 의존한다.47)

 

그리고 아니마의 특징을 9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자립하는 실체이며, 2.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3. 神의 류에 속하여, 4. 영원불멸하여 죽을 수 없는 것이고, 5.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며, 6. 無로부터 존재하는 것이며, 7. 일정한 장소와 일정한 시간[時空]의 부여를 통하여 드러나며, 8. 나의 신체의 형상(eidos)이며, 9. 하느님의 은총의 빛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은총을 거론한 것은 리치가 자연의 빛으로만 《천주실의》를 논한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비아시는 학문의 방법[格物]은 어떤 사물을 구분 할 때 전칭판단[總稱]과 특칭판단[專稱]으로 나누어 설명하여야 함을 역설하고 나서, 그 예로서 초목과 짐승, 그리고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는 생명은 전칭판단에 의한 것이고 사람만이 이치를 따지고 헤아릴 수 있는 이성, 즉 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특칭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립하는 실체를 설명하기 위하여 특칭판단을 통하여 아니마의 첫째 특성을 설명하였던 것이다.

 

알레니는 《성학추술》에서 아니마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였다.

 

아니마. 이것은 혹 혼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즉 살아 있는 것[活物]의 본성이다. 사물에는 살아 있는 형상[活摸]이 모두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초목의 꽃과 열매로 각각 生死와 榮枯가 있다. 사행[지수화풍] 쇠와 돌이 절대로 가지지 못한 것이다. 하나는 금수, 벌레, 물고기이다. 생장 밖에 다시 촉각 운동하는 능력이 있다. 또 초목이 절대로 가지지 못한 것이다. 하나는 우리 사람이다. 이미 생장과 지각을 가지고 있고 다시 이치를 밝히고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금수가 절대로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혼의 소속은 세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生魂, 하나는 覺魂, 하나는 영혼이다.48)

 

알레니는 마테오 리치와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기반을 둔 스콜라 철학의 아니마론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아니마를 폭넓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유가의 경전은 물론 도가의 장자가 사용한 용어까지 섭렵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으며, 특히 양명학의 양지를 거론하였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 중국학자에게 魂자와 性자는 다른 의미인 것 같다. 魂은 氣에 속하고 性은 理에 속한다. 오늘날 사용하는 魂性 두 글자는 역시 구별이 있는지 없는지? [알레니] 답 중화의 글자 사용이 매우 활발하고 저서는 각기 그 의미를 가지고 있어 글자가 비록 같다하더라도 의미는 혹 크게 달라 모두 위아래 문장으로 그 취지를 미루어서 안다. …靈性을 말하는 것은 天性을 말하는 것이지 조물주가 부여한 사람의 義理의 性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魂자도 역시 그러하다. 魂이란 살아서 활동하는 근원이다. 거기에 生자를 덧붙이면 초목이 생장 양육할 수 있는 까닭을 가리키고 거기에 覺자를 덧붙이면 금수가 지각 운동할 수 있는 까닭을 가리킨다. 거기에 靈 또는 神자를 덧붙이면 사람이 이치를 밝히고 추론할 수 있는 까닭의 근원을 가리킨다. 총괄하건대 사람은 靈神, 肉軀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논한다면 그[사람] 내면의 신령한 대체[內神大體]를 혹은 영성이라고 일컫는데 그 靈明한 본체를 가리키며 본래 사람의 본성을 말한다. 혹은 그것을 영혼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생혼, 각혼과 구별한다. 혹은 靈心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육체의 심장과 구별한다. 혹은 靈神이라고 하는데 神體는 그 영명하여 形氣에 속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혹은 그것을 良知라고 하고 靈才라고 하는데 본체의 자연스런 靈을 가리킨 것이다. 혹은 靈臺라고 하는데 그것이 방촌의 마음에 깃들인 것을 가리키는 영혼의 누대[臺]이다. 혹 그것을 眞我라고 하는데 육구는 잠시 빌린 집이고 그 안의 靈이 바로 진아임을 밝힌 것이다. 혹은 天君이라 하는데 천주가 나에게 부여한 한 몸의 임금을 가리킨다. 혹은 元神이라 하여 이것으로 元氣를 구별하는데 양자는 결합하여 사람을 이룬다. 《대학》은 그것을 명덕이라 하였는데 본체가 스스로 밝고 또 온갖 이치[萬理]를 밝힐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중용》은 그것을 未發之中이라 하였는데 그 본체를 가리키며 여러 정감이 나오는 곳이다. 《맹자》는 그것을 대체라고 하였는데 그 존귀함을 가리킨 것이다. 총괄하건대 명칭은 각기 하나로 되어있지 않지만 가리킨 바의 본체는 오직 하나일 뿐이다.49)

 

알레니는 우선 영혼과 관계된 삼혼설을 밝히고 사람은 영혼[靈神]과 육체[肉軀]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중국 고전에 나오는 여러 가지 용어, 즉 영혼, 영심, 영신, 양지, 영재, 영대, 진아, 원신, 명덕, 미발지중, 대체, 등 유가 · 도가 · 불가의 개념을 막론하고 모두가 영성, 즉 아니마와 같은 의미라고 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주자학에서 말하는 의리지성은 천성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양명학에서 알키메데스의 점과 같은 양지의 개념을 아니마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양명이 육체적 자기[軀殼之己]와 구별하여 양지를 참된 자기[眞己]라고 한 맥락과 비슷하기(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알레니에게서는 명나라에서 성행하였던 양명학의 양지학에 대하여 깊이 이해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시대에 서학을 수용한 학자[예를 들면 정하상]들이 양지를 거론하였다는 사실은 아마도 알레니의 글을 보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알레니는 리치나 삼비아시 보다 중국의 문헌에서 영(靈), 영성의 의미를 다양하게 찾아내어 중국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서양의 아니마를 이해하는 통로를 열어준 것이다.

 

그는 영성이 ‘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성리학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기의 취산으로 보는 것을 비판하였다. “초목은 생혼으로 生氣의 발육을 하고 금수는 각혼으로 혈기의 정화가 된다는 말은 이치에 가깝다. 그것은 초목의 생기나 금수의 覺氣가 있어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본성은 순수하게 신령이어서 절대로 기에 속하지 않는다”50)고 하였다. 그는 만물일체론을 부정하고 인간과 만물은 하나의 본성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보았다.51) 그리고 영혼은 세상을 떠난 뒤에 인간 세상을 윤회하지도 않는다52)고 하여 불교의 윤회설을 비판하였다.

 

알레니는 覺性의 한 기능으로 분별의 직능이 사물의 실정을 저울질 하는 것53)이라고 하였다. 즉 쥐가 고양이를 보고 도망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분별의 직능이 작용하여 고양이를 보는 순간 머리에서 저울질하여 그것이 나에게 해를 주는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알레니는 각성과 靈性의 다른 점을 논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질문하였다. 각성과 영성은 서로의 거리가 거의 드물다. 유교와 불교는 언제나 覺이 바로 靈이고 靈이 바로 覺이다. 그러므로 눈이 보고 귀가 들으며 입이 맛보고 코가 냄새 맡고 손발이 움직이는 것은 모두 이것이다. 인간과 동물은 하나의 본성이어서 피차가 윤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둘로 나누는데 … 어떤 증거가 있는 것입니까? 알레니는 이에 대하여 대체로 사람이 어떻게 생사를 갖게 되었는가? 어찌 육체와 정신[形神]이 합하면 살고 형신이 분리되면 죽는 것이 아닌가? 神은 性의 별명이다. 성은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각성이고 하나는 영성이다. 하나는 금수에 있고 육신[肉軀]에서 발한 것이다. 하나는 사람의 몸이니 천주가 특별히 부여한 것이다. 하나는 形質의 쓰임이고 하나는 義理의 쓰임이다. 하나는 현재에 국한되어 있고 하나는 무한을 비추어 본다. 하나는 생전의 육구가 필요로 한 것을 돌아보고 하나는 죽은 뒤 神靈에 필요한 것을 아울러 생각한다. 양자의 본성은 서로 반대되며 그 사실은 서로 멀다. 어째서 세상 사람들은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하나로 보는가?54)

 

알레니는 각성과 영성을 구분하고 인간이 육체[形]와 정신[神]이 합쳐진 존재임을 말하면서 육체와 정신[形神]이 합하면 살아 있고 분리되면 죽는데 인간의 영성은 하느님이 부여해 준 것이기에 무한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으로 사후의 신령, 즉 영혼을 돌 볼 줄 안다고 하였다.

 

이어 알레니는 嗜欲과 愛欲을 논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知覺의 욕구[欲]가 있고 靈明의 욕구[欲]가 있다. 무엇을 지각의 욕구라고 하는가? 대개 욕구는 앎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그 아름다움을 알면 반드시 욕심이 생겨난다. 그 아름답지 못한 것을 알면 반드시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앎에는 본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관에서 말미암은 것인데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더듬는 것이며 그 안의 4직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각의 기욕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義理의 이성[明悟]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영성이 발한 곳이다. 드디어 영명의 애욕이 된다. 이 두 욕구란 것은 하나는 有形에 좇아서 육체[肉軀]적인 편리함에 따라간다. 다른 하나는 유형, 무형, 편리함, 불편함에 구애되지 않고 중하게 여기는 바는 오로지 이치[理]가 꼭 적합한 데에 있다”55)

 

알레니는 여기서 지각의 욕구와 영명의 욕구로 나누고, 전자를 지각의 기욕이라 하고 후자를 영명의 애욕이라 하였다. 그는 감각적인 기욕과 영성의 애욕을 분명히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기욕과 애욕이 모두 마음에 있다고 하여 “기욕이 마음에 깃든 것은 여러 감각 기관이 두뇌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무릇 사람이 사랑하고 즐거우면 마음이 넓고 태평하며 춤을 춘다. 근심하면 그 마음은 닫히고 오르라든다. 노하면 그 마음은 번뇌하고 실망하면 그 마음은 위축된다. 이것은 지정욕(知情欲)의 발동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56)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욕과 애욕의 차이점을 7가지로 분석하고 나서, 애욕이 기욕을 주재한다고 보고 애욕과 기욕은 귀천이 뚜렷하게 다르기 때문에, 血氣의 정감[情]과 의리의 정감[情]이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57)고 하였다.

 

어떤 이가 질문하였다. 애욕이 저울[權]을 잡고 있는 것은 본래 마땅하고 기욕이 물러나 명령을 듣는데 어째서 기욕이 횡행하여 거리낌 없이 분노가 펼쳐지는가? 이에 대하여 하느님[천주]이 본성을 내려주었는데 영명이 주인이 되고 온갖 이치[萬理]가 모두 갖추어 졌다. 부모의 태 안에 들어오면서부터 理와 欲이 뒤섞여서 영성이 도리어 육체적인 간섭을 받아 저울[權]이 거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아아! 사람이 스스로 靈에 어긋난 것이지 어찌 靈이 사람에게 갖추어지지 않았겠는가?58)

 

알레니는 여기서 영명 혹은 영성의 애욕이 저울[權]을 잡고 있는 주인이고, 육체적인 기욕은 명령을 듣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애욕의 저울[權]이 육체의 간섭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알레니는 “마음이 靈君인 것은 본래 그러하다. 이른바 마음에는 혈육의 마음이 있고 지각의 마음이 있다. 혈육은 가운데 있으며 지각은 몸을 두루 통하고 있다. 중앙이 方寸인데 다만 그 자리일 뿐이다. 그것이 온 몸[百體]에 두루 통한 것은 마치 大君이 관섭하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다”59)고 하여 마음이 영명의 주재자[靈君]이며, 그리고 또한 마음에는 血肉之心과 知覺之心도 있다고 보았다.

 

 

4. 아니마론에 대한 조선유학자들의 비판과 수용

 

조선의 유학자들이 서학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17세기 초부터였다. 서학이라 함은 과학과 기술, 철학(윤리, 논리, 인식론을 포함), 그리고 종교[신앙] 등의 분야를 포괄하는 서양학문을 가리킨다. 아니마론은 동양의 심성론과 다르면서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동서철학 대화의 중심자리에 서 있었다. 18~19세기 조선시대에 아니마론에 대한 비판과 수용, 그리고 수정이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1] 서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성호 이익과 그 제자들

 

성호는 서학의 과학기술의 새로움과 그 정확성에 감탄하였으며, 또한 《천주실의 발문》을 썼는데 여기에서 알레니, 삼비아시, 판토하(龐迪我), 우르시스(熊三拔), 디아즈(陽瑪諾)의 이름을 거론하였다. 아마도 그들의 저작들을 읽은 것 같다. 성호는 천주와 상제는 비슷하다는 것과 예수의 생애를 간략하게 소개하였으며, 리치와 예수회원들이 어떻게 중국에 도착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그들이 중국의 관원들과 학자들을 사귀면서 벼슬을 주어도 받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불교를 비판하였지만, 성호가 보기에는 불교의 가르침과 같은 견해에 빠졌다고 지적하였다. 이를 보아 성호는 서학에 대하여 매우 개방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니마론을 연상시키는 심론(心論)을 전개하였는데, 心을 活物로 보았다. 그는 돌과 흙에는 생명이 없는데 식물에는 자라고 시드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각이 없다. 그런데 금수는 거기에 또한 지각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거기에 덧붙여 도덕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血肉之心과 神明之心으로 나누어 心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는 한국 최초로 서양의 마음이 심장[heart]이 아니라 머리[brain]에 있음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心을 영어로 번역할 때 mind & heart라고 하는데 mind는 머리의 cognitive 한 면을 가리키고, heart는 정서적인 면을 가리키는 심장을 의미한다. 즉 동양에서 마음[心]은 생각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60)

 

성호의 제자들은 두 계열로 나누어지는데 한 계통은 주자학의 입장에서 서학을 비판하였다. 그 대표자들이 바로 하빈(河濱) 신후담(愼後聃)과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이었다. 이들은 아니마론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였다. 다른 계열은 양명학을 몰래 공부하고 서학을 받아들인 학자들이었다. 그 대표자들이 성호의 조카 이병휴(李秉休, 1710~1776)와 권철신(權哲身, 1736~1801)이었다. 특히 후자는 천진암 주어사에서 강학회를 열어 이벽의 주도로 정약전, 이승훈 등과 함께 서학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아니마론[영혼불멸]에 근거하여 천당, 지옥설을 굳게 믿었는데, 그중 이벽의 영향을 받은 정약종과 그의 아들 정하상은 순교에까지 이르렀다. 정하상의 《上宰相書》에서는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세 가지 가운데 양지를 두 번째로 거론하였다. 양명학적인 영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사실 양명학은 주자학과 달리 이단에 대하여 관대한 편이었다. 명대에 삼교합일이 나타난 것이 그 좋은 예이기도 하다. 아마도 알레니가 아니마를 양지로도 해석한 것이 그러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에 서학이 양명학과 함께 소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벽의 영향을 젊었을 때 받은 정약용은 18년간 귀양살이 하면서 서학과 원시유교를 종합하여 새로운 유학을 창조하였다. 그는 아니마론을 수정하여 자기의 성기호설로 만들었다. 19세기 말의 인물인 최한기는 성호계열에 속하지 않았지만, 기학(氣學)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아니마론을 수정하여 추측론(推測論)을 전개하였다.

 

[2] 아니마론에 대한 비판

 

하빈은 성호를 찾아가 《천주실의》에 대한 내용을 질문하였다. 성호는 아니마의 三魂說을 설명하면서 유가의 심성설과 크게 어긋나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이 점에서 성호는 제자보다 개방적이었다고 하겠다. 하빈은 또 천당 지옥설을 질문하자 이것은 불교와 비슷하다고 대답하여 비판적 태도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하빈은 《천주실의》, 《영언여작》, 《職方外紀》를 읽고 하나하나 비판하였다. 그 가운데 《영언여작》은 아니마론을 본격적으로 논한 저서인데, 하빈은 4부로 나누어 소개하고 비판하였다. 본고에서는 그 가운데 아니마의 본체와 그 기능만을 다루고자 한다.

 

삼비아시는 아니마의 본체를 9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하빈은 이 중에서 6가지만을 소개하고 주자학의 입장에서 비판하였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동서 철학이 부정적인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첫째는 자립지체에 대한 소개와 비판이다. 영혼은 의뢰체[속성]가 아니라 자립체[본체]라는 것에 대하여, 하빈은 주자학의 혼백론에 의거하여 魂을 陽氣의 靈이요 ‘기’의 펼쳐짐[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魂은 ‘기’의 의뢰체[屬性]라는 것이다.

 

둘째 영혼이 그 자체만이 가지고 있는 유적인 특성을 불멸의 ‘본래 스스로 있다’[本自在]라고 한데 대하여, 하빈은 種差의 구별을 무시하고 영혼도 생혼, 각혼과 하나이기 때문에 이와 함께 사라진다고 하여 그 불멸성을 부정하였다. 하빈은 영혼의 특수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뛰어난 기[秀氣]일 뿐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셋째 영혼은 신류[神類]라고 한 것에 대하여, 하빈은 서양의 초월적인 하느님 같은 존재를 믿지 않았으므로 귀신론에서 말하는 ‘기’의 양의 측면을 神氣라고 보았다. ‘기’가 없다면 魂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넷째 죽은 귀에 생혼, 각혼은 없어지지만 영혼이 불멸한다고 하는 견해에 대하여, 하빈은 생혼, 각혼과 함께 영혼도 사라진다고 하였으며, 설령 영혼이 천당에서 불멸한다고 하더라도 지각이 없다면 그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다섯째 영혼은 우리의 의모[依摸. 외적인 모습]가 아니라 내적인 형상[體貌, eidos]이라고 하였는데, 하빈은 체모와 의모의 구분을 무시하고 ‘혼’은 신체에 의존하므로 형체가 있고나서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형상[體貌]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말이다.

 

여섯째 하느님의 진복은 사람의 의지력이나 공적인 은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은총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빈은 만약 하느님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지 않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은총을 베푼다면 공정하지 못하고 사적인 것을 면키 어렵다고 비판하였다.

 

그 다음으로 하빈은 아니마의 기능에 대하여 소개하고 비판하였다. 이것은 심리철학과 인식론의 일종으로 외물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하빈은 성리학적 심성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하고 비판하였으므로 그 내용을 소화하기에 어려웠던 것 같다.

 

첫째로 삼비아시는 아니마의 감각기능을 내외 두 가지로 나누고 외적 감각[外覺]은 눈, 귀, 코, 혀, 몸[眼耳鼻舌身]의 오감[五感]이고 내적 감각[內覺]은 다시 공적인 기능[公司]과 생각하는 기능[思司]으로 나누었다. 그 밖에 또 내외 지각이 받아들인 것을 좋아하거나[欲能] 싫어하는[怒能] 기능인 기사[嗜司]를 설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빈은 외각 내각설은 합리적인 원리에 맞지 않으며 사람의 지각은 마음의 지각[心覺]일 뿐 특별한 지각은 없다고 하였다. 또한 內覺이란 것은 魂이란 한 글자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며, 이것들은 모두 근거 없는 설명으로 통일된 주체인 마음을 확립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둘째로 《영언여작》은 아니마의 靈能을 기억[記含], 인식[明悟], 욕구[愛欲]로 구분하고, 기억 중에서 형체 있는 것을 기억하는 司記含은 頂骨 뒤의 뇌낭에 있으며, 형체 없는 것을 기억하는 靈記含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이라고 하였다. 하빈은 마음의 텅 비고 영특한 지각[虛靈知覺]이 주체가 되어 기억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응수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여 마음의 기능을 강조하면서 뇌낭이 기억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셋째로 삼비아시는 이성[明悟]을 둘로 나누어 만상[萬像]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만들어 내는 능동이성[作明悟]과 만상에 빛을 비추어 그 이치를 얻는 수동이성[受明悟]으로 구분하였다. 하빈은 먼저 작명오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만상은 음양오행의 작용[交運 順布]에 의하여 변화, 생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사람의 명오는 사적인 의도[私意]를 가지고 造化를 엿보는 인위적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수동이성[受明悟]을 부정하였다. 사람이 물리를 명오하는 것은 심령이 하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一本萬殊의 妙한 道와 器의 구분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넷째로 욕구[愛欲]를 세 가지로 나누어 동식물이 다 가지고 있는 본성적 욕구[性欲]와 동물에게만 있는 감각적 욕구[司欲], 그리고 인간에게만 있는 이성적 욕구[靈欲]로 삼비아시는 구분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빈은 그가 말하는 본성적 욕구[性欲]란 성리학의 본성[性] 개념에 따라 덕을 좋아하는 마음이거나 맹자의 경우처럼 맛, 색깔, 소리, 냄새 등의 기질도 性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삼비아시가 말하는 본성은 德性도 形氣도 아닌 常生의 眞福을 추구하는 사사롭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불교나 노장의 이단이 추구하는 이기적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외에 삼비아시는 본성적 욕구가 향하는 利美好, 감각적 욕구가 향하는 樂美好, 그리고 이성적 욕구가 향하는 義美好 세 가지를 구분하고 이 모두는 하느님의 영원한 진복을 향한 至美好의 한 부분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빈은 이것은 결국 지극한 복락[至樂]과 커다란 이익[大利]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군자가 善을 행하는 것은 福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그[삼비아시]의 학문은 오로지 利, 한 글자에서 나왔다61)고 부정하였다.

 

한편 이 가운데 네 번째 논의를 수정하여 다산은 성기호설을 전개하였고, 세 번째 논의를 수정하여 최한기는 추측설을 펼쳐나갔다.

 

[3] 아니마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

 

A] 鹿菴 權哲身과 曠菴 이벽은 천진암 강학을 통하여 천주교 신앙의 길을 열어 놓았다. 강학회에서 주로 유가의 수양에 관한 글들[숙야잠 · 경제잠 · 사물잠 등]을 보았는데, 그것은 이기론이 아닌 수양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천주교 신앙은 바로 이 수양론이 가장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문화와 지평융합을 하여야 이해 될 수 있기에 그들은 기존의 유교 수양론에 근거하여 이와 유사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녹암은 1766년부터 양명학을 공부하여 지행합일, 致良知 등을 논하였으며 왕양명의 후학자인 羅汝芳의 孝悌慈설을 원용하여 명덕을 풀이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벽의 권유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는데, 그의 동생 권일신은 1791년 辛亥迫害로 순교 당하였다. 그는 동생이 인천에서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얻어왔고, 그 안에 있는 흠숭 주재설, 생혼, 각혼, 영혼의 아니마론, 火氣水土의 四行說은 진실로 지극한 이치가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아니마론에 관한 저서를 읽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B] 德操 이벽은 천진암 강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여 많은 사람을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는 1779년 12월 강학회를 마친 뒤에 한글로 된 《천주공경가》를 지어 천주교 신앙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였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집안에는 어른 있고 나라에는 임금 있네. 내 몸에는 영혼 있고 하늘에는 천주 있네. …이 내 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면은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62) 정약용의 《中庸講義補》에 의하면 이벽은 마음이 性靈으로부터 발현이 되는 것은 理發이 되고 마음이 신체로부터 발현이 되는 것은 氣發이 된다고 하여 성령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니마론의 번환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C] 정약종은 이벽의 권유로 1784년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1801년 신해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동요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그것은 아니마론에 근거한 영혼불멸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교요지》를 저술하였는데 상편에서 천주가 전지전능하고 유일한 존재이며 죽은 뒤에 영혼이 상벌을 받으며 천당 지옥이 있음을 말하였다. 그는 “사람이 죽은 후에 몸은 썩어도 영혼은 죽지 아니한다. 짐승의 혼은 제 몸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배고프고 춥고 더운 것이 제 몸에 붙은 일만 알기에 죽으면 그 몸에 붙었던 혼도 따라 없어지고 사람의 혼은 몸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몸이 태어날 때 천주가 신령한 혼을 붙여주시니 그런 까닭에 제 몸 밖의 일도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으니 말하자면 남이 나를 기림[칭송함]으로 내 몸이 배부를 것이 없다. 그러나 공연히 좋아하고 남이 나를 훼방함으로 내 몸이 아플 것이 없되 공연히 싫어하니 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반드시 그 몸으로 솟아나지 아니하고 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영혼은 죽어도 불멸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몸이 태어날 때 천주가 신령한 혼을 붙여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령한 혼은 바로 영혼을 말한다. 몸의 탄생과 더불어 영혼도 함께 탄생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몸의 감각적인 욕구가 아닌, 몸 밖의 이성적 욕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삼비아시의 아니마의 기능에서 긍정적 기능[欲能]과 부정적 기능[怒能]을 연상시킨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은 짐승과 달리 영혼이 따로 있기에 몸이 죽어도 따라 죽지 아니한다. 또 신령한 혼은 형상이 없어 불에 탈 것도 없고 칼에 상할 것도 없고 병들 것도 없는고로 죽을 길이 없다”고 하여 사후의 영혼불멸을 재차 강조하였다. 그는 “천주는 위로 천신을 내시고 아래로 짐승을 내시고 중간에 사람을 내시니 사람의 영혼은 위로는 천신과 같고 몸은 아래로 짐승과 같다. 그 영혼은 신령하고 明利하기로 만사를 통달하여 천신과 같고 그 몸은 귀와 눈과 손과 발이 있기로 음식을 먹고 운동하여 짐승과 같으니 짐승과 같은 몸이 짐승같이 죽고 그 천신과 같은 영혼은 천신과 같이 길이 살리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이 몸과 혼[靈肉]을 함께 가지고 있는 중간자적 존재임을 역설하였다. 이것은 뒤에 다산이 神形妙合으로 인간을 파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D]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은 《상재상서》를 통하여 천주교 사상을 옹호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 上帝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로서 세 가지를 들었다. 만물, 양지, 그리고 성경이었다. 두 번째 양지는 양명학의 기본사상인데 그는 양지를 말하면서 착한 사람을 상주고 악한 사람을 벌주는[賞善罰惡] 위대한 주재자께서 인간의 마음[心頭]에 새겨져 있어 천둥 번개를 두려워하고 궁지에 몰려 비통한 상황을 만나면 천주를 부르면서 그에게 아뢴다고 하였다. 이것은 타고난 마음과 아름다운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르치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바로 이 양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섬길 줄 안다63)고 하였다. 心頭란 말은 양명이 잘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한 것을 보면 그에게 양명학이 서학과 함께 전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하상의 아니마론은 그의 부친이 논한 것 보다 《천주실의》에 가깝다. 그는 삼혼을 논한 뒤에 인간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한 이유는 그 혼이 영명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영혼은 죽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데 선한 영혼은 하늘에 올라 상급을 받고 악한 자의 영혼은 땅으로 들어가 벌을 받는다고 하였다. 상급이란 천당의 영원한 축복이요 벌이란 지옥의 영원한 고통이라고 하면서 세상의 행복은 일시적이지만 하늘의 행복은 영원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성리학자 하빈이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

 

 

5. 아니마론에 대한 수정과 다산의 심성론

 

다산 정약용은 서학의 아니마론과 원시유학을 결합하여 자기의 성기호설을 주창하였다. 다산은 이미 16세 때에 성호의 저서를 읽으면서 서학을 알게 되었고, 23세 때(1784) 마현에서 서울로 오는 배에서 이벽으로부터 천주교의 가르침을 듣고 경탄하였다. 이어 서울로 돌아온 뒤에 이벽으로부터 《천주실의》, 《칠극》 등을 입수하여 서학서를 읽었으며, 그해에 이벽과의 토론을 통해 《중용강의보》를 저술하여 중용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신유박해로 인하여 그는 천주교 신앙을 나타낼 수 없었으며, 그 후 40세에서 57세까지 강진에서 귀양살이 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썼다. 그는 서학의 영향 하에서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양자를 종합하여 동아시아 유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 놓기도 하였다. 그 업적 중에서 주자학의 심성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성기호설을 제출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였다.

 

그의 중형 정약전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性자의 뜻이 기호에 있다 함을 듣고 나자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보는 듯, 《맹자》 7편 가운데에 성을 논하는 곳들이 환히 얼음 풀리듯 다시는 의문이 없었다. 성이 기호인 것을 누구나 일상으로 말하지만 이 《맹자》의 관건을 푼 것은 美鏞(정약용)의 손을 반드시 기다렸다니!”64)

 

다산은 性을 즐겨 좋아한다는 의미의 嗜好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인성론의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해석이었다. “사람의 잉태가 이미 이루어지면, 하늘은 영명하고도 無形한 실체를 부여해 주었는데, 그것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며 덕을 좋아하고 더러움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것을 성이라 한다”65)고 하였다. 이것은 선을 좋아하고 덕을 좋아하는[好善, 好德] 도덕 가치를 판단하고[權] 실천할 수 있는[勢] 근거가 性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산은 인간을 육체[形]와 정신[神]이 오묘하게 결합된 존재로 보고 “신과 형이 묘하게 합하여 인간을 이룬다”66)고 하였다. 이것은 마음[心, 大體]과 몸[身, 小體]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다산의 心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이란 글자에는 그 구별이 세 가지이다. 첫째 오장의 심장이다. 가령 비간의 심장에 일곱 구멍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 둘째는 영명한 마음이다. 가령 상서에서 말하길 각각 너희 마음에 중을 세워라. 《대학》에서 말하길 먼저 그 마음을 바로 잡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셋째 [영명한] 마음이 발동한 마음이다. 가령 맹자가 말한 바 측은한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이것이다”67) 다산은 마음에는 오장지심, 영명지심, 심지소발지심 세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셋째의 마음은 의식작용[심]에 의하여 만들어진 모든 것을 말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또 “같은 하나의 마음이란 글자인데 원래 세 등급이 있다. 그 하나는 영지의 전체를 마음으로 간주하였다. 이른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및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부류 같은 것이 이것이다. 그 둘째는 감동 사려가 발동한 것을 마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른바 측은한 마음 비벽한 마음 같은 것이 이것이다. 그 셋째는 오장 가운데 혈과 기를 주재하는 마음이다. 이른바 심장에는 일곱 개 구멍이 있다는 것 같은 것이 이것이다. 첫째, 셋째는 하나이며 둘이 없다. 둘째의 마음은 넷으로도 일곱으로도 될 수 있고 수백 수천으로 될 수도 있다. 운부에 나열된 것이 어찌 제한이 있겠는가? 그 나누어짐을 살펴보니 인심, 도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심이 아니면 도심이고 도심이 아니면 인심이다 공과 사가 나누어지고 선악이 갈라지는 곳이다.”68)

 

다산은 心을 생리적인 심장을 가리키기도 하고 영명한 마음과 이 마음이 발동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다산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 心, 神, 靈, 大體는 거의 같은 의미로 총칭하기도 하였고, 때에 따라서는 그것을 전칭하기도 하였다. 다산은 기호로서의 性에는 영지의 기호가 있고 형구의 기호가 있다고 하여 “귀, 눈, 입, 몸을 성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형구의 기호이다. 천명의 본성은 본성과 천도이며 성선(性善) 진성(盡性)의 본성이다. 이것은 영지의 기호이다”69)라고 말하였다.

 

영지의 기호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다산의 인간의 세계 만물에 대한 지위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다산은 세계의 생명 존재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무릇 천하의 모든 삶과 죽음이 있는 만물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초목은 생명이 있으나 지각이 없고 금수는 지각은 있으나 靈이 없다. 사람의 大體는 이미 생명도 있고 지각도 있으며 또 다시 영명신묘의 작용이 있다. 그러므로 만물을 포함하여 빠뜨리지 않고 온갖 이치[萬理]를 미루어 다 깨달을 수 있으며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함이 양지에서 나온다. 이는 그것[靈]이 금수에서 멀리 구별되는 것이다.”70) 다산은 인간이 식물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영명 혹은 영지에 있다고 보았다.71) 다산이 여기서 영명의 작용으로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함[好德恥惡]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양지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왕양명은 양지를 영명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好善惡惡]하는 도덕 판단의 주체라고 보았다. 다산은 영지가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形]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인간은] 정신[神]과 육체[形]가 묘하게 결합되어있다. 그렇다면 인성 가운데는 기질 쪽에서 가지고 온 것이 없을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사람이 악에 빠지는 것은 모두 이 육체[形]로 말미암는다. 이는 성인이나 범인이나 다 같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山川風氣의 剛柔와 부모 精血의 淸濁은 지혜롭고 어리석음이 되는 까닭이지 선약이 되는 까닭이 아니다”72)라고 하였다.

 

한편 다산은 인간이 악에 빠지는 원인을 주자학에서처럼 기질의 성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기질에는 청탁, 후박, 정편, 후박의 차이에 의하여 탁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악에 빠지기 쉽다고 보았다. 다산은 기질의 청탁은 지혜와 우둔을 결정할 뿐 선악을 좌우하지는 못한다고 인식한 것이다. 즉 청탁의 기질은 주위 자연환경[山川 風氣]과 부모의 정혈로 인하여 생긴 것이어서 이것은 자연적이며 사실적인 것이지, 가치적인 선악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악은 결코 기질의 청탁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 것이다. 인간은 한편으로 영명한 존재[神]이므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好善恥惡]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形]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동물적 차원의 감각적 욕구를 따라가는 정신과 육체의 묘한합일[神形妙合]의 이중적 존재이기에 기호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산은 영명의 유래를 하늘이라고 하여 “대체로 인간은 胚胎가 이미 이루어지면 하늘이 영명무형의 체를 부여한다”73)고 하였으며 “하늘의 영명이 인심을 직접 통한다”74)고 하여 인간의 영명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중용의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고 한다’[天命之謂性]에서 본성을 천이 부여해 주었다는 것과 상통한다. 성리학에서는 천을 천리로 이해하고 성을 성리로 해석한 것과 달리 다산은 천의 영명을 중시하였다. 이 점에서 주자학의 천리를 본성으로 보는 性體에서 하늘[天]의 영명과 직통하는 靈體의 철학으로 전환한 것이다. 다산은 영체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총괄하면 영체 안에는 세 가지 이치가 있다. 그 性에 대하여 말하면 선을 즐겨하고 악을 부끄러워한다. 이것은 맹자가 말하는 성선이다. 그 權衡에 대하여 말하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이것은 告子의 湍水의 비유이다. 揚雄의 선악이 뒤섞인 설이 유래한 곳이다. 그 行事에 대하여 말하면 선해지기는 어렵고 악하기는 쉽다. 이것은 荀卿의 성악설이 유래한 곳이다. 순자와 양웅은 性자를 인식함이 본래 잘못되었다. 그 학설은 이 때문에 차이가 났다. 우리 사람의 영체 안에 이 세 이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권형을 이미 주었다. 그 아래로는 선하기 어렵고 악하기 쉬운 육체[具]를 주었으며 그 위로는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性을 또 주었다. 만약 이 性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은 예부터 아주 하찮은 작은 선이라도 할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75)

 

다산은 영체 개념을 性, 권형, 행사의 세 가지로 나누어 지금까지 잘못 인식된 본성론, 즉 성선설, 성악설, 성혼설을 정리하고 있다. 순자와 양웅의 설은 본성을 논한 것으로 보면 안 되며 오직 맹자만이 본성을 바르게 논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자기의 성, 권형, 행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다산은 맹자의 성선설을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好善恥惡]하는 능력으로 파악하였으며, 고자의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可善可惡]는 설은 인간이 선과 악을 저울질하여 선택하는 권형으로 해석하였고,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이 선하기 어렵고 악하기 쉽다[難善易惡]는 경향을 설명한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다산은 성, 권형, 행사라는 용어 대신 性, 才, 勢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것은 才이다. 선하기 어렵고 악하기 쉬운 것은 勢이다. 선을 즐기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性이다. 이 본성을 따라 어김이 없으면 도에 나아 갈 수 있기에 선하다고 말한다”76)고 하였다. 그리고 “하늘이 영지를 부여함에 才도 있고 勢도 있고 性도 있다”77)고 하였다. 이제 세 가지 영체의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호로서의 性은 영명한 마음의 속성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만이 금수와 달리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기호는 우리가 일상 쓰는 기호품들, 예컨대 담배 피우는 사람의 기호품이 담배인 것처럼 자기가 즐겨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자발적인 기호에 의하여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이다. 다산은 도덕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렇게 자기가 즐겨하고 좋아하는 대상을 형구[형]의 기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차원 높은 영지[神]의 기호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기호에는 양단이 있다. 하나는 눈앞의 탐락을 기호라고 한다. 예를 들면 꿩의 성이 산을 좋아하고 사슴의 성이 들판을 좋아하며 오랑우탕[猩猩]의 성이 술을 좋아하는 것 이것이 하나의 기호이다. 또 하나는 반드시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궁극적 생명욕구[畢竟之生成]의 기호다. 예컨대 벼의 성은 물을 좋아하고 기장의 성은 마른 곳을 좋아하고 파의 본성은 닭똥을 좋아한다. 이것도 하나의 기호이다. 이제 사람의 성을 논하면 사람은 선을 즐기고 악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의 선을 행하면 그 마음은 뿌듯하여 기뻐하고 하나의 악을 행하면 그 마음은 서운하여 기가 꺾인다. …대개 이것은 모두 기호가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선을 쌓고 의를 모아가는 사람은 그 처음에 하늘을 우러러 보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워할 것이 없고 자기 내부를 반성해 보아도 부끄러운 바가 없다. 그것을 쌓은 것이 오래되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은 통통해진다. 맑은 빛이 얼굴에 보이고 등에 넘쳐흐른다. 그것을 쌓고 오래되면 될수록 꽉 찬 호연지기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메운다. 이렇게 되면 부귀가 음란하게 할 수 없고 빈천이 뜻을 옮길 수 없다. 위협과 무력이 그를 굴복시킬 수 없다. 이리하여 신묘하게 백성을 변화시켜 天地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빛을 합하여 마침내 덕을 온전히 하는 사람을 이룬다. …대체로 이것이 기호를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하는 궁극적인 것에서 체험하는 것이다.78)

 

다산은 여기서 두 가지 기호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하나는 본능적인 감각적 욕구이고 궁극적 생명의 욕구로서의 기호이다. 다른 하나는 영지의 기호로서 인간이 선을 즐겨하고 악을 부끄러워[樂善恥惡]하는 것을 쌓아가[集積]면 호연지기가 생기고 끝내 천지와 덕을 합[合德]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2] 판단으로서의 권형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택 판단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말한다. 權은 저울추이고 衡은 저울대이다. 저울을 무게를 재는 데 사용하는 것처럼 기호의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기울어짐을 판단하는 것이 마음의 권형이다. 형구와 영명의 기호 중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서 聖人이 되고 凡人이 된다고 한다면 자기의 자유의지인 저울[權]의 선택에 따라서 그 행위가 功이 되기도 하고 罪가 되기도 한다. 다산은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주장은 자기로 말미암는다. 활동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선은 이에 공이 되고 악은 죄가 된다”79) 인간의 선악에 대한 책임은 모두 그것을 즐겨하는 자신의 기호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다만 부득이 선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공적[功]이 없다. 이에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저울[權]을 부여하여 그의 주장[自主]을 들어준다. 선을 향하는 욕망도 들어주고 악을 뒤쫓으려는 욕망도 들어주니 이에 공적[功]과 허물[罪過]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하늘은 이미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성을 부여하니 그가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쉽게 옳길 수 있게 하고 그가 하는 대로 맡겨두니 [하늘의] 이 신권묘지(神權妙旨)의 의연함은 두려워 할 만 한 것이다”80)

 

다산은 분명히 선악이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필연적인 것이라면 거기에서는 공과[죄]를 물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인간은 신형이 묘하게 결합된 존재이므로 감각적 욕구[기호]와 영지의 욕구[기호] 사이에 늘 긴장관계에 놓이게 된다. 언제나 선택의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결단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택과 판단을 하는 권형인 것이다. 이러한 실존적 결단을 야스퍼스와 연결시킨 학자도 있다.81) 기존의 연구에서 ‘자주지권’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신자는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와의 비교를 통해서 다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다산의 철학은 실존주의적 실학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가 모든 실존주의 철학자에게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다산이 본질주의적인 성리학을 비판, 해체하고 자신의 인성론 그중에서도 ‘자주지권’을 언급한 것은 바로 그 실존적인 결단의 면을 분명히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서 ‘실존실학’, ‘실존유학’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偶然한 것이 아니라 그의 행사를 통한 ‘실심실학’에서 연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심은 성실한 마음[實心, sincere mind]을 뜻하며 다산은 늘 삶과 죽음의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 속에서 하늘을 섬기며 조금이라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허물을 반성하며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실심으로 하늘을 공경한다[實心敬天]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82) 이러한 점에서 실심은 한 점 부끄럼 없이 하늘[靈明主宰之天]을 공경하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3] 실천으로서의 행사는 다산이 勢라고 표현하기도 하여 “勢란 그 처지[지]요 기틀[기]이다. 식욕, 색욕이 안에서 유혹하고 명예와 이익은 밖에서 끌어당긴다. 또 기질은 사사로운 안일을 좋아하고 노고를 싫어한다. 때문에 세가 선을 따르는 것은 기어오르는 것 같고 악을 따르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하늘이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이 된 후에야 그가 선을 한 것이 귀할 수 있다.”83) 勢는 우리가 선을 행하는데 좋지 않은 안팎의 악조건을 말한다. 이러한 열악한 내외의 환경에서도 공력을 들여서 선을 실천한 것이야 말로 고귀한 것이다. 행사는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 다산의 실학에서 행사 개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다산은 심성과 행사를 연관 지어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性을 논하고 心을 논하여 장차 무엇에 쓰려고 하는가? 선을 밝히는 것은 이것으로 자신을 참되게 하려는 것이고 성을 논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이것으로 행사를 하려는 것이다. 맹자가 측은한 마음을 논한 것은 이 마음을 확충하여 仁에 도달하여 천하를 덮으려고 한다”84) 다산은 이 문장에서 분명히 심성을 논하는 이유를 행사를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행사의 개념은 또한 실심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심이란 영명한 마음이 실제로 행사에 드러나는 것[所發之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실심으로 실사[爲善去惡]를 실행하는 것이 바로 행사인 것이다. 다산은 이렇게 말하였다. “富가 집을 윤택하게 하고 德이 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마음 속[中]에서 참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실심으로 악을 제거하고 실심으로 선을 행하여 그가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행하는 까닭에 몸을 윤택하게 하는 덕을 가질 수 있다. 만약 텅 비고 적막한[空寂] 데 마음을 내달린다면 덕을 가질 까닭이 없다. 행사한 뒤에 덕의 이름이 세워지는 것이다.”85) 다산은 실심으로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행한 뒤에야 비로소 덕의 이름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리학의 덕이 사람의 본성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과 다른 입장이다. 그것은 실심으로 실사를 실행하였을 때 덕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실심에 대한 언급은 다산의 실학을 다시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산의 실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실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할 필요가 있다. 성호 이익이 서학의 과학기술을 소개하였을 때 제자 신후담은 그것은 器에 관한 학문일 뿐 道에 관한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한 적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다산의 실학을 실용실학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다산이 실사구시, 이용후생, 경세치용을 집대성하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正德이 빠진 이용후생과 경세를 제대로 하지 않은 致用의 실용실학은 오늘날 우리의 亂개발을 낳았고 利害관계로만 접근한 것이다. 실심이 없는 실용은 얼[철학]이 빠진 실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산은 실심에 기반을 두고 실학을 한 것이지, 실용만을 위하여 실학을 추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 학계는 조선후기에 서학의 과학기술 등을 도입하거나 토지제도의 개혁을 한 脫주자학적인 인물들을 일러 실학자라고 부른다. 그렇게 되면 실학은 철학이 없는 기술학이며 제도를 연구하는 분과 과학[器學]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동안 우리 학계는 실학을 道가 빠진 器를 중시하여 기학을 실학으로 간주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철학이 없는 분과 학문만을 실학으로 생각한 것이 된다. 다산에서 실심에 의한 행사 개념은 따라서 그의 실학에 철학적 기반을 만들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6. 결론

 

서학의 아니마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한 스콜라 철학에 수용되었으며, 이것을 예수회 선교사들인 리치, 삼비아시, 알레니 등이 중국에 소개하였다. 그들은 중국문화에 적응주의를 채택하여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학을 소개한 것이다. 아니마는 한자로 영혼으로 번역되는데 때에 따라서 영성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왜 영혼, 영성으로 아니마를 번역하였는가? 그것은 靈자가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미지의 세계를 인간에게 알려주는 무당의 의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늘[天]과 사람[人]을 연결해 주는 것을 바로 ‘영’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영’이란 글자의 제일 처음 나오는 巫는 바로 서양의 Hermes와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영’자는 뒤에는 인간의 초월적인 능력, 즉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사유 추리 능력을 뜻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 고전에서도 고대 선진제자에서부터 신유학에 이르기까지 ‘영’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되었었다. 《장자》의 ‘영대’, 《관자》의 ‘영기’, 《황제내경》의 ‘신명,’ 불교의 ‘영지진성’, 종밀의 ‘공적영지’, 주자의 ‘허령불매,’ 양명학의 ‘영명’ 등의 다양한 용어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예수회 선교사들은 서양의 아니마를 어떻게 번역하여야 한자 문화권 속에서 잘 이해 될 수 있는지 용어선택에 고심하였다. 그 결과 ‘영’이란 글자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이 초월적 존재와 소통하는 사람 즉 ‘무’를 뜻하기도 하고, 사물을 환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것은 서양의 이성의 의미와 비슷하지만 한 차원 높은 신적인 경지를 나타내는 용어였던 것이다.

 

리치에 이어 중국에 온 삼비아시는 《영언여작》을, 알레니는 《성학추술》을 저술하여 아니마를 소개하였다. 이 저서들이 중국철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철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삼비아시의 《영언여작》은 신후담이 성리학의 입장에서 비판하였으며, 알레니의 《성학추술》은 정하상의 《상재상서》나 정약용의 저서에 그 영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서학이 들어올 때 삼교합일을 주장한 양명학, 특히 양지 개념을 원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의 심성론에서는 서학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산은 중국에서 미처 발전시키지 못한 서학을 조선의 유학과 융합하여 새로운 유학을 창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인성론도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기호설을 제창하였던 것이다. 성기호설이 물론 알레니나 삼비아시의 애욕, 기욕과 유사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를 신형묘합이라고 본 점에서는 완전 일치한다. 그리고 혼삼품설에서 식물, 동물, 인간을 생혼, 각혼, 영혼이라고 한 것은 다산의 인성론에서도 많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을 심장[形]과 영명[神]으로 구분한 것도 서학의 인성론의 자취를 지울 수가 없다고 본다. 다산은 하늘[天]의 영명을 중시하였다. 이 점에서 주자학의 천리를 본성으로 보는 性體에서 하늘[天]의 영명과 직 통하는 영체의 철학으로 전환한 것이다.

 

심성론에서 다산은 주자학의 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성기호설을 제출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였다. 다산은 性을 즐겨 좋아한다는 의미의 기호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인성론의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해석이었다. 성이란 내 마음의 기호이다. 이것은 선을 좋아하고 덕을 좋아하는[好善, 好德] 도덕 가치를 판단하고[權] 실천할 수 있는[勢] 근거가 性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산은 인간을 육체[形]와 정신[神]이 오묘하게 결합된 존재로 보고 “신과 형이 묘하게 합하여 인간을 이룬다[神形妙合, 乃成爲人]고 하였다. 이것은 마음[心, 大體]과 몸[身, 小體]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산은 마음에는 오장지심, 영명지심, 심지소발지심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는데, 셋째의 마음은 영명[심]에 의하여 만들어진 모든 것을 말한다. 다산은 心을 생리적인 심장을 가리키기도 하고 영명한 마음과 이 마음이 발동한 것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다산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 心, 神, 靈, 大體는 거의 같은 의미로 총칭하기도 하였고 때에 따라서 그것을 전칭하기도 하였다. 다산은 기호로서의 性에는 영지의 기호가 있고 형구의 기호가 있다고 하여 “귀, 눈, 입, 몸을 성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형구의 기호이다. 천명의 본성은 본성과 천도이며 性善, 盡性의 본성이다. 이것은 영지의 기호이다”고 말하였다.

 

다산의 영체 개념을 性, 權衡, 行事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 기호로서의 性은 영명한 마음의 속성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만이 금수와 달리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2] 판단으로서의 권형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택 판단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말한다. 權은 저울추이고 衡은 저울대이다. 저울이 무게를 재는 데 사용하는 것처럼 기호의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기울어짐을 판단하는 것이 마음의 권형이다. 형구와 영명의 기호 중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서 성인이 되고 범인이 된다고 한다면, 자기의 자유의지인 저울[權]의 선택에 따라서 그 행위가 공적[功]이 되기도 하고 허물[罪過]이 되기도 한다. 3] 실천으로서의 행사는 다산이 勢라고 표현하기도 하여 세는 우리가 선을 행하는데 좋지 않은 안팎의 악조건을 말한다. 이러한 열악한 내외의 환경에서도 공력을 들여서 선을 실천한 것이야 말로 고귀한 것이다. 행사는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다산의 행사 개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학자들이 주목하지 못하였다.

 

다산은 심성과 행사를 연관지어 이렇게 말하였다. 선을 밝히는 것은 이것으로 자신을 참되게 하려는 것이고 성을 논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이것으로 행사를 하려는 것이다. 다산은 이 문장에서 분명히 심성을 논하는 이유를 행사를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행사의 개념은 또한 실심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심이란 영명한 마음이 실제로 행사에 드러나는 것[所發之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실심으로 실사[爲善去惡]를 실행하는 것이 바로 행사인 것이다. 다산은 실심으로 악을 제거하고 실심으로 선을 행하여 그가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행하는 까닭에 몸을 윤택하게 하는 덕을 가질 수 있다. 만약 텅 비고 적막한[空寂] 데 마음을 내달린다면 덕을 가질 까닭이 없다. 행사한 뒤에 덕의 이름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실심으로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행한 뒤에야 비로소 덕의 이름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리학의 덕이 사람의 본성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과 다른 입장이다. 즉 다산은 실심으로 실사를 실행하였을 때 덕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실심에 대한 언급은 다산의 실학이 다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 학계는 조선후기 서학의 과학기술 등을 도입하거나 토지제도 개혁을 한 脫주자학적인 인물들을 일러 실학자라고 부른다. 그렇게 되면 실학은 철학이 없는 기술학이며, 제도를 연구하는 분과 과학[器學]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동안 우리 학계는 실학을 道가 빠진 器를 중시하여 기학을 실학으로 간주하였다. 그것은 근본적인 철학이 없는 분과학문만을 실학으로 생각한 것이 된다. 따라서 다산의 실심에 의한 행사 개념은 그의 실학에 철학적 기반을 만들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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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紀聞編〉, 《河濱 先生全集》 7, 亞細亞文化社, 2006, 3쪽.

 

2) ① 巫이다. 무는 옥으로 神을 섬긴다. 설문 ② 神靈이다. a 팔방의 신 b 天神 c 구름의 신[雲神] ③ 신의 精明한 것을 일려 靈이라 한다. 오직 사람만이 만물의 靈이다. 靈은 신이다. 태어나면서 신령하다[生而神靈]. ④ 좋은 것(善)이다. 靈은 좋은 것이다[靈, 善也]. ⑤ 죽은 이(死者)를 靈이라 한다. a 사망한 사람[亡人]의 魂魄이다. b 만유의 精氣 元氣 - 신령이란 品物의 本이다. c 사람 몸[人身]의 精氣이다 - 영부에 들어 갈 수가 없다[不可入於靈府]《장자》〈덕충부〉 注 영부란 정신의 집이다[靈府者精神之宅[ d 죽은 이에 대한 존칭을 靈이라 한다. 靈柩 靈位가 그 예이다. ⑥ 精誠이다. ⑦ 마음(心思)이다. - 작으면 보내고, 性靈을 펼친다[小則申舒性靈]. ⑧ 살아 있는 것[生靈], 살아있는 백성[生民] = 人類 - 생령을 보호하고 우주를 돕는다[道庇生靈志匡宇宙]. ⑨ 命 令 - 나라의 령을 훔친다[竊國靈] - 영은 명이다[靈, 命也]. ⑩ 걸출한 것[傑出者] - 강한의 영웅과 령무, 연나라 조나라의 기이한 준걸[江漢英靈 燕趙奇峻]. ⑪ 機敏한 것을 영이라 한다[機敏曰靈]. 물건이 精巧한 것이 靈이다. 대체로 물건이 볼품이 없지 않은 것도 역시 靈이라 한다. 예를 들면 재빨리 움직이는 것을 靈動이라 하고 교묘하게 잘 만들어 진 것을 靈巧라고 하는 것이다. ⑫ 醫藥 등이 效驗이 있는 것을 靈이라 한다. 예를 들면 靈草는 죽지 않는 약을 말한다. ⑬ 귀신에 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靈은 귀신을 미신하는 것인데 기도에 응함이 있는 것을 령이라고 한다[靈, 迷信鬼神者 祈禱有應曰靈]. ⑭ 위령威靈이요 威光이다. 寡君의 령으로[以寡君之靈] 무력의 위광이 이미 왕성하고 문화의 힘이 또 펼쳐진다[武靈已暢 文德又宣]. ⑮ 빛[光輝]이다. 두 여자의 靈이 이곳의 사방 백리를 비출 수 있다[二女之靈 能照此所方百里]. (16) 영은 복이다[靈 福也]. (17) 도움(祐)이다[靈 祐也]. (18) 고임받는 것(寵)이다[靈 寵也]. 사랑(仁)을 쌓는 것이 영이다[積仁爲靈]. (19) 깨달음(曉)이다. 또렷한 깨달음이다[明曉]. 크게 어리석은 자는 종신토록 불령하다[大愚者終身不靈]. (20) 零과 통한다. 신령은 지각이 있다[神零有知]. (21) ?과 통한다. 아래에 복령이 있다[下有伏靈]. (22) 죽은 뒤의 공을 기리는 이름(諡)이다. 죽어서 뜻을 이룬 것을 영이라 한다[死而志成曰靈]. 어지러워도 덜어내지지 않는 것을 영이라 한다[亂而不損曰靈]. 귀신을 지극히 아는 것을 영이라 한다[極知鬼神曰靈]. 죽어서 신의 능력을 보이는 것을 령이라 한다[死見神能曰靈]. 귀신을 제사지내기를 좋아하는 것을 영이라 한다[好祭鬼神曰靈]. 《장자》에 “그가 영공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其所以爲靈公者何耶] (23) 성(姓)이다. 靈씨는 아들의 성이다[靈氏子姓]. 송대부의 아들은 영의 후손이다. 혹은 ‘제령공의 후손으로 자를 씨로 삼은 것이다’라고 말한다[或曰濟靈公之後 以字爲氏者]. 《左傳》에는 ‘靈撮’이라는 성이 있다.

 

3) ① 사람의 태어남과 자라남을 도와주는 陽氣. 정신을 주로 하는 혼 육체를 관리하는 것을 魄이라고 한다. ‘云鬼’라고도 하는데 양기이다. 從鬼云聲. 《周易》 〈繫辭〉는 “떠도는 혼이 변이다”[遊魂爲變]라고 말하였다. 《좌전》 〈소공 7년〉에 “사람이 처음 태어나 변화하는 것을 일러 백이라 하는데 이미 생겨난 것은 백이다. 양을 혼이라 한다”[人生始化曰魄, 旣生魄, 陽曰魂]고 말하였다. 그 疏에서 “혼백은 신령한 이름이다. 형체에 붙어 있는 영이 백이 되고 기에 붙어 있는 신이 혼이 된다”[魂魄, 神靈之名. 附形之靈爲魄, 附氣之神爲魂也]고 하였다. 《淮南子》 〈說山訓〉에 “백이 혼에게 물었다”[魄問於魂]고 했는데 그 注에 “백은 사람의 음신이다. 혼은 사람의 양신이다”[魄, 人陰神也 魂, 人陽神也]. ② 사물의 근본[物之本也]이며 육체의 주재이다[肉體之主宰]. 《廣雅》 〈釋天〉은 “사물의 근본이 혼이다”[物之本爲魂]라고 하였다. ③ 마음이다[心也]. 《呂氏春秋》는 “신을 허비하여 혼을 상한다”[費神傷魂]. ④ 혼혼(魂魂)은 많은 모양.

 

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逾矩(〈爲政篇〉, 《論語》).

5) 靈臺者有持, 而不知其所持 而不可持者也(〈庚桑楚〉, 《莊子》 23).

6) 唐君毅, 《中國哲學原論》, 臺北 學生書局, 1978.

 

7) 自禁也, 自使也, 自奪也, 自取也, 自行也, 自主也. 故口可劫而使?云 形可劫而使屈申 心不可劫而使易意 是之則受 非之則辭(〈解蔽篇〉, 《荀子》).

 

8) 道經曰 人心有危 道心有微 危微之幾 惟明君子以後能知之(〈解蔽篇〉, 《荀子》).

9) 水火有氣而無生 草木有生而無知 禽獸有知而無義 人有氣有生有知亦且有義 故最爲天下貴也(〈王制篇〉, 《荀子》).

10) 靈氣在心 一來一逝 其細無內 其大無外 所以失之 而躁爲害 心能執靜 道將自定(〈內業〉, 《管子》).

11) 六節臟象論 心者 生之本 神之變也(〈素問〉, 《黃帝內經》).

12) 張立文 主編, 《心》, 中國人民大學出版, 1993.

13) 吳汝鈞, 《中國佛學的 現代詮釋》, 臺灣 文津出版社, 1995, 180쪽.

14) 空寂之心 靈知不昧 此卽空寂之知 是汝眞性 任迷任悟 心本自知···知之一字 衆妙之門(《大正藏》 48).

15) 所覺者 心之理也 能覺者 氣之靈也(〈性理〉2, 《朱子語類》 5).

16) 心官至靈 藏往知來(《朱子語類》 5).

17) 蓋人心之靈 莫不有知(《大學章句》).

18) 魄者 形之神 魂者 氣之神 魂魄是神氣之精英 謂之靈(《朱子語類》 87).

19) 楚辭集註 九歌 楚辭辨證 上 舊說以靈爲巫 而不知其本以神之所降而得名 蓋靈者 神也 非巫也

20) 魂升爲神 魄降爲鬼(《朱子語類》 87).

21) 魂乃精氣中無形迹底(《朱子語類》 87).

22) 動者 魂也 靜者 魄也 動靜二字括盡魂魄 凡運用作爲게魂也 魄則不能也 今人之所以能運動 都是魂使之爾(《朱子語類》 3).

23) 看來魄有個物事形象在裏面···所以發出爲耳目之精明(《朱子語類》 87).

24) 耳目口鼻之類爲魄 魄卽鬼也(《朱子語類》 63).

25) 見于目而明 耳而聰者 是魄之用(《朱子語類》 3).

26) 魄陰主藏受 魂陽主運用 凡能記億 階魄之所藏受也(《朱子語類》 87).

 

27) 人生是魂魄相交 死則離而各散去 魂爲陽而散上 魄爲陰而降下···雖各自分屬陰陽 然陰陽中又各自有陰陽也 或曰 大率魄屬形體 魂屬精神(《朱子語類》 87).

 

28) 張立文, 《朱熹思想硏究》,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0.

 

29) 楚辭集註 楚辭辨證上物生始化云者 爲受形之初 精血之聚 其間有靈者 名之曰魄也 旣生魄陽曰魂者 旣生此魄 便有暖氣 其間有神者 名之曰魂也

 

30) 魂升于天 魄降于地 陽者氣也 魂也 歸于天 陰者 質也 魄也 歸于地 謂之死也(《朱子語類》 83).

 

31) 鬼神通天地間一氣而言 魂魄主于人身而言 方氣之伸 精魄固具 及氣之屈 魂氣雖存 然鬼爲主 氣盡則魄降而純于鬼矣 故人死曰鬼(〈答梁文叔〉, 《朱熹集》 卷44).

 

32) 鬼神主乎氣而言 只是形而下者···蓋鬼神是氣之精英(《朱子語類》 63).

33) 鬼神者 氣之往來也(〈答呂子約〉, 《朱熹集》 卷47).

34) 凡氣之來而方伸者爲神 氣之往而旣屈者爲鬼 陽主伸 陰主屈 此以一氣言也 故以二氣言 則陰爲鬼陽爲神(《朱子語類》 63).

35) 精是魄 魄者鬼之盛也 氣是魂 魂者神之盛也 精氣聚而爲物 何物而無鬼神(《朱子語類》 3).

36) 所謂神也者 妙萬物而爲言 妙處卽是神···不測者 則謂之神(《朱子語類》 68).

 

37) 別湛甘泉 某幼不問學 陷溺於邪?者二十年 而始究心於老釋 賴天之靈 因有所覺 始乃 沿周程之說求之 而若有得焉(〈別湛甘泉〉, 《王陽明全集》 7).

 

38) 僕誠賴天之靈 偶有見於良知之學 已爲必由此而後天下可得而治 是以每念斯民之陷溺 則爲之戚然痛心(〈答攝文蔚〉, 《傳習錄》 7).

39) 정인재 · 한정길 역주, 《傳習錄》 2, 청계출판사, 2002, 572쪽.

40) 良知卽是天生靈根 自生生弗息(정인재 · 한정길 역주, 《傳習錄》 2, 청계출판사, 2002).

41) 최재목, 〈왕양명 양지론에서 ‘영명’의 의미〉, 《양명학》 31, 한국양명학회, 2012, 17~18쪽.

 

42) 黃以方錄 聽聞 先生曰 ?看這天地中間 甚?是天地之心? 對曰嘗聞人是天地之心 曰 人又甚?敎做心? 對曰只是一箇靈明 先生曰 可知充天塞地中間 只有這個靈明 人只爲形體自間隔了 我的靈明 便是天地鬼神的主宰 天沒有我的靈明 誰去仰他高? 地沒有我的靈明 誰去俯他深? 鬼神沒有我的靈明 誰去辨他吉凶災祥? 天地鬼神萬物却我的靈明 便沒有天地鬼神萬物了 我的靈明離却了天地鬼神萬物 亦沒有我的靈明 如此 便是一氣流通的 如何與他間隔得(정인재 ? 한정길 역주, 《傳習錄》 2, 청계출판사, 2002).

 

43) 朱本思問 人有虛靈方有良知 若草木瓦石之類 亦有良知否? 先生曰人的良知 就是草木瓦石的良知 若草木瓦石無人的良知 不可已爲草木瓦石矣 豈惟草木瓦石爲然 天地無人的良知 亦不可爲天地矣 蓋天地萬物與人原是一體 其發竅之最精處 是人心一點靈明(정인재 ? 한정길 역주, 《傳習錄》 2, 청계출판사, 2002).

 

44) 指意之靈明處謂之知(정인재 · 한정길 역주, 《傳習錄》 2, 청계출판사, 2002).

45) 亞尼瑪[譯言靈魂 亦言靈性]之學 於費祿蘇非亞[驛言格物窮理之學] 中 爲最益 爲最尊(畢方濟, 《靈言?勺》).

46) 이만채 편찬, 김시준 역주, 《천주교전교박해사(벽위편)》, 국제고전교육협회, 1984, 43쪽.

47) 畢方濟, 《靈言?勺》, 8쪽.

48) 《性學鄒述》 卷1, 生覺魂靈三魂總論 45쪽.

49) 魂性諸稱異同(《성학추술》 1, 46~49쪽).

50) 靈性非氣(《성학추술》 1, 51쪽).

51) 人物不共一性(《성학추술》 1, 59~63쪽).

52) 靈魂身後不輪廻人世(《성학추술》 2, 105~111쪽).

53) 論分別之職(《성학추술》 5, 163쪽).

54) 辯覺性靈性 180쪽(《성학추술》 6, 180쪽).

55) 論嗜欲與愛欲 187쪽(《성학추술》 6, 187쪽).

56) 《성학추술》 6, 197쪽.

57) 《성학추술》 6, 202쪽.

58) 《성학추술》 6, 203쪽.

59) 《성학추술》 6, 225쪽.

60) 心之官則思(《孟子》).

61) 《河濱 先生全集》 7, 23~54쪽.

62) 이성배, 《유교와 그리스도교》, 분도출판사, 1979, 48~49쪽.

 

63) 何謂良知 若夫白晝晦暝 雷電相薄 雖孩提便知奮畏 ?目累足 置身無地 此可知賞罰善惡之大主宰印在心頭矣 閭巷間 愚夫愚婦 若遇蒼黃窘急之勢 悲痛寃恨之時 必呼天主而告之 此其本然之心 秉懿之性 有不得掩者 故不敎而知 不學而能 但不知何以事之而畏之 則均然 此以良知而知有上帝也(丁夏祥, 《上宰相書》).

 

64) 임형택, 《19세기 서학에 대한 경학의 대응》, 성대 유교문학연구소, 307쪽.

65) 蓋人之胚胎旣成 天則賦之以靈明無形之體 而其爲物也 樂善而恥惡 好德而恥汚 斯之謂性也(〈中庸自箴〉, 《與猶堂全書》).

66) 神形妙合 乃成爲人(〈大學講義〉, 《與猶堂全書》 2).

 

67) 心之爲字 其別有三 一曰五臟之心 若云比干心有七竅 是也 二曰靈明之心 若尙書曰各設中于乃心 大學曰先正其心 是也 三曰心之所發之心 若孟子所云 惻隱之心 羞惡之心 是也(〈答李汝弘〉, 《與猶堂全書》 19).

 

68) 同一心字 原有三等 其一以靈知之全體爲心 若所謂心之官思及先正其心之類 是也 其二以感動思慮所發之心 若所謂測隱之心 非僻之心 是也 其三以五臟之中 主血與氣者爲心 若所謂心有七竅是也 第一第三 唯一無二 若其第二之心 可四可七 可百可千 韻府所列 豈有限制 但ㄴ此千百之心 靜察其分不出于人心道心 非人心則道心 非道心則人心 公私之所分 善惡之所判(〈梅氏書評〉, 《與猶堂全書》 32).

 

69) 又以耳目口體之嗜好爲性 此形軀之嗜好也 天命之性 性與天道 性善盡性之性 此靈知之嗜好也(〈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16).

 

70) 凡天下有生死之物 止有三等 草木有生而無知 禽獸有知而無靈 人之大體旣生旣知 復有靈明神妙之用 故含萬物而不漏 推萬理而盡悟 好德恥惡 出於良知 此其逈別於禽獸者也(〈論語古今註〉, 《與猶堂全書》).

 

71) 이숙희, 〈영체와 행사에서 본 정약용의 종교적 의식연구〉,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이에 따르면 영명과 영지의 용법을 유배 이전, 유배 시기, 해배 이후 시기로 구분하여 유배 이전과 유배 시기에는 영명을 주로 쓰고, 유배 이후에 영지의 사용빈도가 많아졌다.

 

72) 神形妙合 則人性之中 不能無氣質邊帶來者 雖然人之陷惡 總由此形 此凡聖之所同畏者 若夫山川風氣之剛柔 父母精血之淸濁 所以爲慧鈍 非所以爲善惡(〈論語古今註〉, 《與猶堂全書》).

 

73) 蓋人之胚胎旣成 天則賦之以靈明無形之體(〈中庸自箴〉, 《與猶堂全書》).

74) 天之靈明 直通人心體(〈中庸自箴〉, 《與猶堂全書》). 

 

75) 總之靈體之內 厥有三理 言乎其性 則樂善而恥惡 此孟子所謂性善也 言乎其權衡 則可善可惡 此告子湍水之喩 揚雄善惡混之說所有作也 言乎其行事 則難善而易惡 此荀卿性惡之說所有作也 荀與楊也 認性字本誤 其說以差 非吾人靈體之內 無此三理也 天旣予人以可善可惡之權衡 於是就其下面 又予之以難善易惡之具 就其上面 又予之樂善恥惡之性 若無此性 吾人古以來 無一人能作些微之小善者也 體(〈心經密驗〉, 《與猶堂全書》 2).

 

76) 可善可惡者 才也 難善易惡者 勢也 樂善恥惡者 性也 率此性而無違 可以適道 故曰性善也(〈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2).

77) 天之賦靈知也 有才焉 有勢焉 有性焉(〈梅氏書評〉, 《與猶堂全書》 32).

 

78) 嗜好有兩端 心經密驗 嗜好有兩端 一以目下之耽樂爲嗜好 如云雉性好山 鹿性好野 猩猩之性好酒醴 此一嗜也 一以畢竟之生成爲嗜好 如云稻性好水 黍性好燥 蔥蒜之性好鷄糞 此一嗜也 今論人性人莫不樂善而恥惡 故行一善則心充然以悅 行一惡則其心?然而沮. …凡此皆嗜好之顯於目下者也 積善集義之人 其始也俯仰無조 內省不? 積之彌久 則心廣體? ?然見乎面而?乎背 積之而久 則??然有浩然之氣 至大至剛 塞乎天地之間 於是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於是神而化之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遂成全德之人 凡此將嗜好之驗於畢竟者也(〈心經密驗〉, 《與猶堂全書》 2). 

 

79) 可以爲善 可以爲惡 主張由己 活動不定 故善斯爲功 惡斯爲罪(〈孟子要義〉, 《與猶堂全書》 5).

 

80) 但不得不善 人則無功 於是又賦之以可善可惡之權聽其自主 欲向善則聽 欲趨惡則聽 此功罪之所以起也 天旣賦之以好德恥惡之性 而若其行善行惡 令可游移 任其所爲 此其神權妙旨之凜然可畏者也(〈論語古今註〉, 《與猶堂全書》 15).

 

81) 김신자, 〈정다산과 Karl Jaspers 사상에 나타난 인간관의 비교〉, 다산연구소 실학박물관 주최 발표논문, 2012.

82) 心性總義 然亦必默運心思 或想天道 或窮神理 或省舊愆 或紬新義 方爲實心敬天(〈心經密驗〉, 《與猶堂全書 》 2).

 

83) 歲者其地其機也 食色誘於內 名利引於外 又其氣質之私 好逸而惡勞 故其勢從善如登從惡如崩 天非不知而使之然也 爲如是 然後其爲善者可貴也(〈梅氏書評〉, 《與猶堂全書》 32).

 

84) 雖然論性論心 將何用也 明善者將以誠身 論性論心者 將以行事 孟子論惻隱之心者 將擴充此心 以之仁覆天下(〈答李汝弘〉, 《與猶堂全書》 19). 

 

85) 富潤屋德潤身者 誠於中而形於外也 然實心去惡 實心爲善 以其去惡爲善之故 得有潤身之德 若馳心於空寂之地 則無緣有德 行事而后 德之名立焉(《大學公議》 1).

 

 

토론문 1 - 송재소(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정인재 선생님의 논문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정 선생님은 삼비시아, 알레니 등 서양 선교사들의 이른바 補儒論的 아니마론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시고, 이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비판과 수용에 대해서도 일별해 주셨습니다. 저는 다산의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 성리학의 심성론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선생님의 논문을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제가 토론자로 나선다는 것이 매우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학술회의이기 때문에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질문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혹 제가 선생님의 논문을 誤讀했거나 무식한 소치에서 나온 질문이라면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정 선생님은 “다산의 심성론이 서학의 아니마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시고 논지를 전개하는 가운데 “다산은 아니마론을 수정하여 자기의 性嗜好說을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다산의 성기호설이 알레니의 ‘知覺의 嗜欲’, ‘靈明의 愛欲’ 설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말씀 같은데, 그렇다면 알레니의 ‘지각의 기욕’과 ‘영명의 애욕’이 다산이 말하는 ‘形軀의 기호’와 ‘靈知의 기호’, ‘氣質之性’과 ‘天命之性’에 해당되는 것인지요? 다산이 알레니의 설을 수정했다면 어떻게 수정하여 성기호설을 완성했는지 궁금합니다.

 

다산의 성기호설은 그의 ‘上帝論’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선생님의 논문에는 上帝論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알레니의 경우에는 嗜欲, 愛欲과 上帝에 해당하는 존재와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알레니의 학설에 上帝에 해당하는 존재가 있다면 다산의 상제와의 同異点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다산이 靈體(마음)의 기능(또는 이치)을 性, 權衡, 行事의 세 가지로 나눈 것을 해설하는 선생님의 글 가운데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다산은 “우리의 靈體 안에 원래 이 세 가지 이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 말했지만, 다산 심성론의 맥락에서 볼 때 그리고 이 글이 개진된 《心經密驗》 心性總義의 문맥으로 볼 때, 權衡과 行事는 아무래도 道心보다는 人心쪽에, 靈知之嗜好보다는 形軀之嗜好 쪽에 비중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人心에서 발하는 形軀之嗜好로 인하여 인간은 명예, 이익, 안일 등에 쉽게 이끌리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 어렵고 악을 행하기는 쉽다는 이러한 마음의 속성을 다산은 ‘行事’라 지칭하고 이를 바탕으로 荀子의 性惡說이 나왔다는 것이 다산의 견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본문에서 “행사는 몸을 통하여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무형의 영지[신]가 유형의 육신[형]을 주재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산이 말한 ‘行事’가 “몸을 통하여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인간에 내재해 있는 마음의 한 가지 경향성을 말한 것으로 보이는데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또 선생님의 진술대로 “무형의 영지가 유형의 육신을 주재하는 것”이 ‘行事’라면 이 행사는 人心의 욕구를 극복하고 善을 행하려는 계기가 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이는(행사는) 순경의 성악설이 나온 원인이다”라는 다산의 진술과 모순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잘못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토론문 2 - 임형택(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정인재 교수의 이번 논문은 중국과 한국의 학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논제였던 심성론과 서양 신학의 아니마론을 비교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서양 선교사의 매개적 역할에 의해서 심성론에 아니마론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접목이 되었던가를 논한 내용이다. 논문의 제5장에 〈아니마론에 대한 수정과 다산의 심성론〉은 본 논문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전체 제목을 서양의 아니마론과 다산 심성론이라 붙인 것이라 생각된다.

 

이 논문은 그야말로 동서와 고금에 걸쳐 전개된 심오하고도 복잡한 철학적 논제를 간명하게 정리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장점과 미덕이 있다. 토론자 자신도 여기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만 한편의 논문으로서 본다면 해설적으로 흘렀고 제목과 내용이 꼭 맞지는 않는 것 같다.

 

나 자신, 이 논문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논리에 동의하고 공감하였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일어서 지적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실학사상과 서학의 관련 양상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할 것이다.

 

1) 3장에서 명대의 학술계 상황을 “주자학이 여전히 관학으로 그 지위를 유지하였으나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고 하며 주자학은 역사적 의미가 끝난 것처럼 단정을 지었다. 과연 주자학의 생명력을 종식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그 이후 청대의 학술계에서도 주자학은 아직 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더구나 한국과 일본 쪽의 학문 경향까지 고려해 본다면 속단이 아닐까 한다.

 

2) 4장의 3절에 “녹암 권철신과 광암 이벽의 천진암 강학을 통하여 천주교 신앙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즉 ‘천진암 강학’을 천주교 공부로 단정한 것이다. 녹암을 모시고 가졌던 천진암의 강회에 대해서는 오직 다산의 증언이 전하는 바 강회석상에서 어떤 글을 가지고 어떻게 했다는 전말이 정약전의 묘지명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날 송독한 夙夜箴 · 敬齋箴 · 四勿箴 · 西銘은 모두 다 유가의 수양에 관계된 글이다. 이 다산의 증언과 전혀 다른 성격으로 천진암 강학을 언급하려면, 그렇게 규정한 근거가 적어도 학문적 논의에서는 제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3) 결론 대목에서 “다산은 중국에서 미처 발전시키지 못한 서학을 조선의 유학과 융합하여 새로운 유학을 창조”하였고, “그의 인성론도 중국에는 없는 성기호설을 제창하였던 것”이라고 보았다. 다산의 성기호설은 “알레니나 삼비아시의 애욕이나 기욕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지만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다산의 성기호설이 대단히 독창적인 것은 맞지만, 단순히 ‘중국에는 없는’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그보다는 맹자가 처음 성선설을 제기한 이래 여러 학자 현인들의 심성 문제에 관한 사색과 지혜의 축적 위에 비약적으로 착상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한다. 서학과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다음에서 포괄적으로 말하겠다.

 

서학과의 관계 양상에 대한 시각

 

오늘의 전체 주제, ‘다산과 서학 및 천주교와의 관계’ 문제에 대한 나의 기본 관점을 말씀드리겠다.

 

다산의 학문사상에서 서학을 수용하고 서학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은 사실인데, 정인재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의 유학과 융합하여 새로운 유학을 창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종래 비교론적 내지 영향론적으로 인식해 왔는데 나는 이에 대해 비판적 관점에 서 있다.

 

나 자신이 취하는 입장은 말하자면 대응론적인 관점이다. 16, 17세기 이래 전 지구적인 움직임으로 다가온 서세동점을 우리로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파고를 높여서 다가오는 서세의 위협에 어떻게 대항할 것이며, 서교의 정신적 침투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서교로의 개종이 하나의 대응방식이라면, 서세, 서교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이른바 ‘벽위의 논리’ 또한 하나의 대응방식일 터이다. 이들과 달리 당면한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선각적인 지식인들은 서학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섭취하고 서교의 내용에도 진지하게 접근하여 유학을 반성하고 유교의 경전을 다시 읽기도 했다. 이 학술적, 사상적 탐색이 다름 아닌 실학이다. 다산이 서세, 서학에의 ‘경학적 대응’으로 하나의 학문체계를 수립했다면, 혜강 최한기는 ‘기학적 대응’으로서 하나의 학문체계를 수립한 경우이다.

 

나는 수용론적 관점이 다분히 정태적이고 비주체적임에 반해 대응론적 관점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쭙잖은 개인적인 소견을 감히 개진하는 뜻은 오늘 이 자리에서 토론의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사 연구 제39집, 2012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 본문 중에 ? 표시가 된 곳은 현 편집기에서 지원하지 않는 한자 등이 있는 자리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첨부 파일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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