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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아이 인 더 스카이 - 선택의 윤리에 대해 질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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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6 ㅣ No.952

[영화 속 신앙 찾기] 선택의 윤리에 대해 질문하다 -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테러 관련 소식이 전해진다. 군사시설이나 정부기구 등에 대한 테러에서 이제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테러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테러는 그 명분이 무엇이든 비열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관련자뿐 아니라 주변의 무고한 이들까지 희생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테러는 폭력을 통하여 목적을 관철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생명의 존귀함을 해치고 공포를 퍼뜨림으로써 명분도 가치도 잃어버리게 된다. 폭력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물론 테러를 둘러싼 정치역학이나 국제관계는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테러가 결과적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부추기고 공포를 조장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드론 전쟁에 대한 질문

 

‘아이 인 더 스카이’(개빈 후드 감독)는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질러 많은 인명을 살상한 테러 조직을 수년간 추적한 영국정부가 미국과 케냐와 공조하여 이들을 체포하려는 작전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작전의 수행에서 인상적인 것은 테러리스트는 케냐에 은신해 있고, 작전 지휘관은 영국에 있으며, 미사일 발사할 조종사는 미국 공군기지에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테러리스트의 은신처에는 작전과 관계된 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통 합동작전이라 하면 같은 공간이나 전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조 형태를 연상하는데, ‘아이 인 더 스카이’에서의 합동작전은 지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으며, 현장에 작전요원이 없는 가운데 각자 화면 앞에서 회의를 한 뒤에 작전 명령을 수행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전 관계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것은 바로 ‘드론(drone)’이다.

 

드론은 무선전파로 조종하는 무인 항공기로서, 영국이 군사용으로 개발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초로 사용하였다. 그 뒤에 드론은 정찰과 정보수집, 감시, 첩보 등 다양한 용도로 전쟁에 이용되면서 현대식 전투 양상을 바꿔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1만 개 이상의 군사용 드론이 전쟁에 투입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드론이 나온다. 미사일을 탑재한 공격용 드론과 새 모양의 작은 감시용 드론, 곤충 모양의 초소형 감시용 드론 등이 그것이다. 이제 전쟁은 인간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그러나 너무도 비정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을 이 영화에서 확인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드론을 통하여 상대를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대처방안을 결정한다. ‘아이 인 더 스카이’에서 세 국가의 합동작전은 화면 앞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방식은 자칫 현실을 게임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한다.

 

버튼으로 조정하고 결정하는 순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영상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지만 직접 현장에서의 체험을 대체할 수 있을까? 적어도 자신은 안전한 상황에서 상대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때 그 고민과 부담의 크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자칫 드론 전쟁이 전쟁의 참혹함과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희석시키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현대의 드론 전쟁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정의란 무엇인가

 

‘아이 인 더 스카이’는 현대 드론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갈수록 게임화되어 가는 전쟁에 대한 우려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더욱 주목하게 하는 것은 인물들이 놓인 윤리적인 혼란이다.

 

영화에서 영국군 작전 지휘관 파월 대령(헬렌 미렌)은 테러리스트를 생포하려고 하지만 드론이 보낸 영상을 통해 자살 폭탄 테러가 계획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을 감시하던 드론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더 이상 정보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칫 테러리스트를 놓쳐 더 큰 희생을 우려한 파월 대령은 테러리스트의 생포를 포기하고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다.

 

그런데 이때 케냐 소녀가 빵을 팔려고 테러리스트의 은신처 근처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곳은 미사일 폭발 범위 안에 들어가는 지역으로 미사일이 발사되면 소녀는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모의실험과 계산을 거듭해 보았지만 소녀를 살릴 방법은 없다. 어서 빨리 소녀가 빵을 다 팔고 그 자리를 떠나는 수밖에. 영화의 긴장감은 이 장면에서 정점에 이르고, 파월 대령을 포함한 인물들의 선택에 대한 부담감도 최고조에 달한다.

 

자살 폭탄 테러를 획책하는 테러리스트를 놓치면 8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한 명의 소녀를 살릴 것인가? 80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구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영화 속 인물들이 고민하는 어려운 숙제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기시감이 있다. 바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열차 실험’에 관한 내용이다. 멈출 수 없는 열차 때문에 철로 위 다섯 인부를 죽게 할지, 비상선로로 방향을 틀어 그곳에 있는 한 명의 인부를 죽게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하여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처지와 관점, 그리고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한다. 작전 지휘관인 파월 대령은 발사를 명령하고, 정치인 장관은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며, 미사일 버튼을 눌러야 하는 드론 조종사 와츠 중위(아론폴)는 보류를 요청하다 결국 버튼을 누른다.

 

이 영화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처지와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만약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는 그 어떤 결정도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누구도 비난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한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법적으로나 정치적인 책임을 면한다 하더라도 아무 죄 없는 어린 소녀를 희생자로 삼은 도덕적 책임과 그에 따른 죄의식까지는 털어내지 못할 것이다. 작전에 참여한 이들의 표정에서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이 아니라 착잡함과 번민이 묻어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선택의 윤리, 책임의 무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선택과 결정에 자주 직면한다. 그 선택과 결정은 자신과 가족, 주변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 어떤 선택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선택일 수도, 나쁜 선택일 수도 있지만, 좋은 선택을 하거나 적어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직 이 세상에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복잡해지고 상대화되면서 선택은 더 어려워졌다. 내 처지에서는 최선이지만, 상대의 처지에서는 최악의 경우도 많아졌다. 또한 다수를 위한 선택이 거기에서 배제된 소수에게는 치명적이고 불합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가? 선택의 중압감이 덮쳐올 때, 자신의 지혜가 보잘 것 없음을 절감할 때 인간은 신에게 기도를 한다. 그분이 내게 지혜를 주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인간의 몫이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선택의 윤리, 책임의 무게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 조혜정 가타리나 -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이다.

 

[경향잡지, 2016년 9월호, 조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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