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생활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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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10 ㅣ No.282

수도생활이란?



1. 정의


1) 하느님을 찾는 삶

 

수도생활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단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정의가 달라질 수 있고 또한 실제 학자마다 여러 가지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다양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수도생활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정의는 바로 ‘하느님을 찾는 삶’ 이라 할 수 있다. 엘리오 감바리Elio Gambari는 수도생활의 핵심을 ‘그리스도교적 완성에 이르기 위하여 홀로 하느님을 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1 하느님을 찾는 일은 전全 수도생활의 존재이유이다. 수도자는 하느님만을 찾기 위하여 수도적 생활양식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수도생활은 “오직 하느님만을 모든 것 위에 찾으며 정신과 마음을 하느님께 부착시키는”2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하느님을 찾는 삶’이라는 정의 자체만으로는 수도생활의 특징적인 면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 삶이 바로 ‘하느님을 찾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을 찾도록 부르심을 받는다.3 이처럼 하느님을 찾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소명인 것이다. 따라서 수도생활은 이 보편적인 세례 소명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즉, 세례 소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4

 

수도자는 자기가 받은 세례의 소명에 새로운 소명을 추가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받는 세례의 보편적 소명을 ‘지금’, ‘여기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5 “수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세례 소명을 완수하고자 노력하는 세례받은 그리스도교 신자이다.”6 토마스 머튼은 “수도자는 하느님을 찾는 일에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투신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7이라고 함으로써 수도자를 하느님을 찾도록 일반적인 소명을 받은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인들과 구별짓고 있다. 수도생활은 결코 그리스도인 삶과 전혀 관련이 없는 특별한 생활이 아니다. 그렇다고 평범한 그리스도인 삶과 아무런 구분이 없는 삶도 아니다.8 “수도생활은 세례에 의한 축성에 깊이 근거하며 이 축성을 더 풍성히 표현하는 특별한 축성이다”9 그것은 그리스도인 삶을 더욱 완전하게 살기 위하여 선택하는10 “그리스도인 삶의 절정이다”11 이처럼 수도생활은 더욱 완전하고 철저하게 하느님을 찾는 삶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인 삶과 구분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하느님을 찾는 삶인 수도생활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2)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 복음적 포기의 삶

 

하느님을 찾는 삶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수는 당신의 전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을 찾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바로 자아포기 또는 비하의 삶이었다. 강생에서부터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삶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이러한 자아포기의 삶을 통하여 예수는 부활의 영광을 입게 되었고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자아포기의 삶을 본받음으로써 그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이러한 자아포기의 삶을 철저하게 사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삶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마태 16,24). 그리고 “완전해지려면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 그렇게 하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마태 19,21). 이처럼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며,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아포기가 전제된다. “포기는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첫째이며 근본적인 힘이다.”12

 

세례를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매일의 삶 안에서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13 그러나 수도자는 더욱 완전하고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수도생활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하나의 응답”14이자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이 세례의 소명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15으로서 이는 바로 ‘자아포기의 삶’16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아포기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곧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적 포기의 생활이다. 수도자는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따르기 위하여 이러한 세 가지 복음적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17 이 세 가지 복음적 포기를 통하여 그는 인간적 애정과 물질적 욕망, 그리고 자기 의지마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께 봉헌한다.18 “수도자는 자신을 포기하고 자기 부정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다른 모든 것에 앞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그분의 복음에 따라 생활하고자 한다.”19 결국 수도자는 하느님을 찾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셨고 또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권고하셨던 복음적 포기의 삶을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에 머튼은 “수도생활은 포기의 생활이며 … 하느님께 대한 전적이고 직접적인 예배의 삶”20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생활은 결국 자아포기의 삶이며 이는 청빈, 정결, 순명의 세 가지 복음적 포기로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수도생활 영성은 흔히 순교의 영성으로 표현되어 왔다. 수도생활은 하느님을 위하여 매일의 삶 속에서 자기를 죽이는 제2의 순교인 것이다.21

 

 

2. 발생 원인 및 동기


1) 발생 원인

 

그리스도교 안에서 수도생활 운동의 정확한 기원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물론 수도생활은 373년 아타나시오가 사망했을 당시까지 놀랍게 성장했고 또 각별한 주목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4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리 두각을 나타낼 만한 운동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수도생활 운동은 박해가 끝나고 교회의 개선이 시작되던 때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22 따라서 4세기에 일어난 사회와 교회의 관계변화 안에서 수도생활의 발생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4세기 초 박해의 종식과 더불어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임에 따라 교회는 박해받는 교회에서 제국의 국교로까지 성장하여 이제 교회와 국가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이로써 교회는 사회를 피상적으로 지배하게 된 한편 세속 사회의 가치들에 의해 침해받게 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사회적 위치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에 철저히 응답하고자 하는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수도생활의 출현은 미지근한 신앙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출구를 제공함으로써 훌륭한 보상이 되었다. 이처럼 박해의 종식으로 인한 ‘순교 기회의 상실’과 ‘교회의 세속화’가 바로 수도생활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23

 

결국 그리스도교 수도생활 운동은 원래 복음에 적대적이었던 시대와 장소 안에서 복음적 권고에 따라 생활하고자 하는 평범한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서 생겨난 하나의 평신도 운동이었다.24 교회의 교계제도와 독립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운동은 313년 종교자유 이래 점차 세속화, 제도화 되어 가는 교회에 대한 하나의 반항인 동시에 변천하는 시대와 환경에 복음의 정신을 새롭게 실천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25 이처럼 4세기 교회에 일어난 변화를 배경으로 하여 하나의 개혁운동으로 나타난 수도생활은 그 기원부터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었던 것이다”.26

 

2) 동기

 

수도생활은 결코 세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감 또는 다른 어떤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도피나 현실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수도생활의 가장 큰 동기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다. 사막이나 광야에서의 수도생활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이 사랑 때문에 초기 수도자들은 세속을 등지고 사막이나 광야로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 깊은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27 따라서 그들의 이러한 운동은 세상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조용히 묵상과 기도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과의 더욱 깊은 일치를 위한 종교적인 열성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28

 

그러나 수도생활의 근본 동기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이러한 은둔생활은 결코 이웃사랑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수도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손노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였고 전염병이 만연할 때는 사막이나 광야에 있는 자신들의 은둔처를 떠나 병자들을 간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단이 풍미할 때에는 도시로 나가서 이단을 거슬러 열성적으로 설교하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영적인 조언을 듣기 위하여 사막이나 광야로 찾아갔다. 그들은 이렇듯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였으나 이웃사랑이 그들의 수도생활의 첫 번째 동기는 아니었다.29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께 대한 강렬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이 그들을 사막이나 광야로 이끌었던 것이다.

 

3. 목표

 

우리가 앞에서 수도생활을 하느님을 찾기 위한 자아포기의 삶이라고 정의하였듯이 수도생활의 목표는 당연히 하느님과 연관되어질 수밖에 없다.

 

요한 까시아노(AD 360-430년)30는 「담화집」 제1권, 9권, 10권에서 수도생활의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집트 전통으로부터 까시아노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수도생활의 목표는 ‘수도생활의 목표가 무엇인가’ 묻는 제자의 질문에 대한 모세 아빠스의 다음의 대답 안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 서원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 또는 하늘나라이나 직접적인 목표는 마음의 순결이다. 이 마음의 순결 없이는 아무도 서원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31

 

이처럼 수도생활의 목표는 크게 궁극적 목표와 직접적 목표로 나누어지는데 그 궁극적 목표는 장차 올 ‘하느님 나라’32이다. 그러나 이 목표는 수도자들이 끊임없는 기도의 수행에 몰두할 때 이미 현세에서 어느 정도 실현된다. 그들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순수한 기도에 인도되고 성령의 유대로 성부와 성자와의 일치에로 인도된다. 따라서 까시아노에 의한 수도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기도와 일치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이다.

 

그리고 수도생활의 직접적 목표는 ‘마음의 순결’로서 이는 궁극적 목표에 이르게 하는 직접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순결이란 직접적 목표는 밭에서 곡식이 자라는 동안 잡초를 말끔히 제거하는 것과 같다.33 “까시아노는 수도자가 먼저 마음의 순결에 이르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마음의 순결은 하느님 나라와는 다르다. 즉, 그것은 하나의 인간적 덕행의 상태이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지금 여기서 실현 가능한 것이다.”34 마음의 순결은 수도생활과 규율 전체의 존재이유이다. 토마스 머튼은 수도생활의 모든 규율은 바로 ‘마음의 순결’이란 하나의 목표에로 방향지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35 이처럼 “수도생활에서 행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나 다 마음의 순결을 위해서이다”36

 

그런데 수도자는 마음의 순결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까시아노는 마음의 순결에 이르는 수단으로서 ‘포기’와 ‘끊임없는 기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마음의 순결이 이 두 가지의 수행을 통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이집트 수도자들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담화집」 제3권 6장에서 까시아노는 수도자의 포기의 삶에 있어 세 단계의 포기를 묘사하고 있다. 첫째 단계는 ‘외적인 포기’로서 이는 세상의 모든 부와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며, 둘째 단계는 ‘내적인 포기’로서 과거의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영혼과 육신의 모든 격정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관상적인 포기’로서 이는 현재의 것들과 볼 수 있는 것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이탈시켜 오로지 장차 올 것들만을 관상하고 볼 수 없는 것에 우리 마음을 두게 하는 것이다.37 마음의 순결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수도자는 이러한 포기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38 그러나 수도자의 이러한 포기는 결국 끊임없는 기도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 안에 기초한 그리고 전적이고 근본적인 예수 그리스도 추종에로 이끄는 이러한 포기 없이는 열심한 기도생활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39

 

한마디로 수도생활의 본질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의해 하느님만을 찾고자 스스로 선택한 자아포기의 삶으로서 마음의 순결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얻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수도생활의 발전과정


1) 동정녀와 금욕가들

 

교회 안에 수도생활이 생겨난 것은 4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 그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교회 초창기부터 동정을 지킨 처녀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해 주고 있다(사도 21,9). 동정녀들은 이미 3세기 초부터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서약을 하는 관례가 생겨, 교회 안에서 하나의 특별한 신분을 갖게 되었고 지극한 존경을 받았다. 또한 남자들 중에 독신을 지키고 극기와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금욕가’asceta라 불리었다. 동정녀들과 금욕가들은 가족과 함께 살면서 덕을 닦았다.40

 

2-3세기에는 동정과 금욕생활은 순교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준비하는 삶의 상태로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다 4세기 초 박해가 끝나자 순교의 이상은 수도생활로 대체되게 되었다.41 이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따르기 위하여 도시를 떠나 사막과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이러한 고행으로만 영웅적인 순교자들의 증거와 생활양식을 계승,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이 ‘수도자’라고 불린다. 옛 교회의 동정녀들과 금욕가들은 거주나 복장으로는 일반인이나 신자들과 구별되지 않았던 반면, 이들은 광야에 은거하여 일반 사회와 다른 독특한 생활양식을 형성하였다.42

 

2) 동방에서의 발전

 

수도생활 운동은 원래 동방(지중해 동쪽)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이집트와 소아시아가 그 중심무대였다. 동방 수도생활은 크게 ‘은수생활’vita eremitica, vita anachoretica과 ‘회수도승생활’vita  coenobitica 두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은 이집트의 성 안또니오(252-356년)이고, 후자는 성 빠코미오(290-346년)가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1) 성 안또니오

 

성 안또니오가 제일 먼저 은수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를 은수생활의 창시자이자 모든 수도자들의 아버지(師父)라 부르는 것은 수도생활에 있어 그의 영향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안또니오는 부자 청년에게 하신 예수의 권고(마태 19,21)에 감동되어 재산을 정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고향 근처의 한적한 곳으로 물러났다. 거기서 그는 자기를 포기하고 하느님을 찾기 위하여 기도와 노동과 금욕생활에 전념하였다. 몇 년 후 그는 가장 맹렬한 형태로 악마와 대적하기 위하여 사막으로 들어가 철저한 고독과수행의 생활을 하였다. 악마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그는 자연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차원 모두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변화되었다.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조언을 구하러 그를 찾아왔고, 그의 표양을 본받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근처에서 은수생활을 하며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처럼 안또니오 생애의 마지막에, 한 영적 사부 주위에 모인 제자들(은수자들)의 무리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수도생활이 최초로 조직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 분리된 독방에서 생활하며 은수생활을 유지하였고, 공동예배 또는 다른 어떤 활동을 위해서 함께 만났다. 이러한 형태의 수도생활은 동방에서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2) 성 빠코미오

 

안또니오가 살아 있을 당시 또 다른 형태의 수도생활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바로 회수도승 생활로서 이미 몇몇 수도 교부들은 수도자들을 모아 수도 가족을 형성하고 훌륭한 규율을 제정하여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성 빠코미오는 처음으로 여러 수도자들을 한 집에 모아 생활하게 함으로써 회수도승 생활의 창시자가 되었다. 빠코미오와 함께 수도생활은 완전한 형태로 조직되었다. 그는 독수생활에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형제애’와 ‘규칙준수’로써 수도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43 빠코미오 공동체는 단순히 한 명의 영적 사부를 둘러싼 개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코이노니아’koinonia44, 즉 형제들의 공동체이다.

 

(3) 성 바실리오

 

회수도승 생활의 이상은 까빠도치아(소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여기서 대표적 인물은 누구보다도 성 바실리오(330-379년)라 할 수 있겠다. 바실리오에게 있어 수도생활은 교회 안에 있는 어떤 특별한 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온전하게 실천하는 그리스도인 생활이었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인 행동을 위한 유일한 기준은 오직 성서뿐이다. 바실리오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오로지 사랑의 이중계명에 대한 응답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 그는 또한 독수도승 생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혼자 사는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게 되지 않고, 겸손을 발전시키지 못하며, 자기 중심적이 되고 애덕 실천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공동생활은 모든 덕을 발전시키도록 도우며 신약성서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보았다. 결국 바실리오에게 있어 수도생활은 빠코미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초기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바실리오는 은수생활에 정반대였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그가 이 두 형태의 삶을 화해시키고 결합시켰다고 증언하고 있다.45“

 

동방 수도생활은 초기 수도생활 역사 이래 거의 발전을 보이지 못했다. 안또니오, 빠코미오, 바실리오의 수도생활은 서로 독자적으로 또는 혼합되어 동방 수도생활의 기본적인 형태들로 남아 있었다.”46

 

3) 서방에서의 발전

 

방에도 이미 수도생활 운동을 장려하는 조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금욕주의가 바로 서방 수도생활의 토양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서방 수도생활은 동방의 직접적인 영향 없이 금욕주의로부터 발전되어 일어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 수도생활이 서방에 큰 영항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47 성 아타나시오(295-373년), 성 예로니모(347-420년), 요한 까시아노와 같은 서방의 영적 지도자들은 동방 수도생활의 훌륭한 영적 가치들을 서방에 전해주었다. 특별히 성 아타나시오가 「안또니오의 생애」를 저술하여 동방 수도생활을 서방에 소개하고 선전한 이후 서방에서도 이 운동이 크게 확산되었다.48 “서방은 동방과는 달리 수도생활의 옛 형태들을 발전시켰고 동시에 새로운 수도생활의 형태가 생겨났다.”49 서방의 고행은 동방만큼 심하지는 않았고, 은수자보다 수도원이 많은 것이 특색을 이루었다.

 

(1) 성 베네딕도

 

당시에는 수도원들 사이에 긴밀한 연락이 없었고 다만 각 수도원에서 아빠스가 정하는 규범을 준수하였다. 따라서 회수도승 생활을 하기에 적합하고 확고한 규칙에 대한 요구가 팽배해 있었다. 이때 성 베네딕도(480-547년)와 그의 규칙이 등장했다. 성 베네딕도 규칙은 ‘뛰어난 분별력’과 ‘정확하고 명쾌한 표현’을 특징으로 하며 서방에서 생긴 다른 모든 수도규칙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8세기 말부터 13세기 초까지 거의 모든 수도원에서 성 베네딕도 규칙을 지킴에 따라 이 규칙이 서방 수도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다. 베네딕도 성인의 역사적 위치야말로 이후 수도생활의 발전과 함께 드러나게 된다. 그는 수도생활을 창시한 것이 아니고 이미 동방에서 시작된 수도생활 양식을 전수하여 서방에 잘 적응시켰던 것이다. 이에 그는 서방 수도생활의 사부로 간주되고 있다.

 

베네딕도 성인이 특별히 강조한 것은 수도자의 ‘정주’定住(Stabilitas)이다. 이에 따라 베네딕도의 전통을 지키는 수도자들은 일생 동안 한 수도원에 머무르면서 ‘공동기도’(성무일도, Opus Dei)와 ‘노동’Labor, 그리고 ‘성독’聖讀(Lectio divina)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는다. 베네딕도가 의도한 것은 교회를 위한 어떤 직접적인 봉사라든지 당시 사회에 대한 문화적 공헌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였다.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은 이내 급속히 발전되어 서방 수도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다.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은 중세 사회의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50 원래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회를 세우지는 않았다. 각 수도원은 자립된 단체로서 자체에서 선출한 아빠스 밑에서 공동생활을 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러 수도원들이 연합의 형태로 서로 유대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성 베네딕도의 규칙을 지키는 수도원들이 연합해서 성 베네딕도회, 씨토회, 트라피스트회, 까말돌리회 등 여러 수도회가 생겨났다.

 

(2) 탁발 수도회

 

13세기 초 성 프란치스꼬와 성 도미니꼬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수도생활51과는 다른 아주 새로운 수도생활의 형태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가난과 설교를 강조하였고, 노동과 경우에 따라서는 구걸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또한 소단위의 공동체에 살면서 자주 이동하였다. 조직 면에서는 자립 수도원을 만들어 온 베네딕도회 전통과는 달리 총장이 다스리는 수도회를 조직하여 지방에 따라 그것을 관구로 나누었고, 도시 안에 살면서 사목에 전념하였다.

 

(3) 예수회와 그 이후의 발전

 

그 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에 의해 예수회가 설립되었는데, 그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구상하였다. 예수회는 교회를 위한 봉사단체로서 완전한 순명과 철저한 학문적 연구로 유명하다. 이들은 일정한 수도복을 입지 않고, 성무일도도 공동으로 바치지 않으며, 세상 안에 파고 들어가 가장 시급하게 여기는 일들을 도맡아서 처리하였다.

 

예수회 이후에 생긴 근대 수도회들은 예수회의 영향을 받아 대개 교회를 위한 봉사를 목적으로 하였다. 이 수도회들의 공통된 특성, 즉 한결같이 어떤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다는 점이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전통적인 수도생활과 구분되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이들 역시 예수회와 비슷한 집중적 체제를 갖추고 있고 외부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봉쇄구역clausura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다. 이들의 수도복도 일반 재속 신부들의 옷과 비슷하다.

 

반면 중세기보다 더 엄격한 봉쇄를 지키는 가르멜회도 근대에 번성하여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데레사, 리지외의 데레사와 같은 성인들을 배출하였다. 현대에는 수도자는 아니지만 사회인으로서 복음적 권고를 지키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의 단체를 ‘재속회’라고 한다. 재속회와 다른 수도회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공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써 수도생활의 역사는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초기 교회의 동정녀들과 금욕가들처럼 세속을 떠나지 않는 수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속을 떠난 전통적 수도생활이 시대에 뒤진 것은 아니다. 교회는 수도생활의 다양성을 인정해 왔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이를 확인하였다.52

 

 

5. 수도생활의 형태

 

교회 안의 모든 수도회들은 창설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그 설립 목적이 다르며 삶의 형태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도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全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목표인 ‘하느님 자신을 찾고’,  참으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 자체인 ‘복음적 완덕을 추구’하며, 끝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도래케 하는 것’을 공동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세 가지 공동목적 중 어디에 더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각 수도회는 크게 ‘관상 수도회’, ‘활동 수도회’, ‘혼합 수도회’로 구분될 수 있다.

 

‘관상 수도회’는 주로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고’, ‘복음적 완덕을 추구’하는 삶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관상 수도회에 속해 있는 수도자라 할지라도 세 번째 목적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백성’에 결합된 그리스도인인 그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이며 또 협력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활동 수도회’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목적, 즉 ‘복음적 완덕’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특별한 강조점을 둔다. 끝으로 ‘혼합 수도회’는 이 세 가지 목적 모두를 취하면서 관상적 특성과 사도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러한 형태의 혼합된 생활이 사실상 단순한 관상생활보다 우월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53

 

한편 교회는 수도회들을 그 삶의 특성에 따라 ‘수도승 생활을 하는 수도회들’(수도승회들), ‘관상적인 삶을 사는 수도회들’(관상수도회들), 그리고 ‘사도직 활동을 하는 수도회들’(활동수도회들)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수도승 생활’은 가장 오래되고 동서방 모두에서 상당히 확산된 수도생활로서, 노동과 정주定住로, 즉 한 수도원에 언제나 머무르면서 내적인 생활과 기도 특별히 전례를 결합하는 삶이다. 이 삶을 사는 수도회가 수도승회이다.54 ‘관상수도회’는 “전적으로 관상에 바쳐진”55 삶을 사는 수도회이다. 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산 위에서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본받고,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주권을 증거하면서 미래의 영광에 참여한다.56 끝으로 ‘활동수도회’는 “다양한 사도직 활동들에 종사하는 성직자들 혹은 평신도들의 단체들”57로서 한 수도회에서 하느님께 축성된 사람들로 형성된 단체들이다. 이 수도회들은 기도와 하느님 백성에 대한 여러 형태의 사도직 봉사에 바쳐진다.58

 

수도생활의 형태를 어떻게 구분하건 간에 각 형태들 간에 우열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은 그 나름대로의 이상과 삶의 방식으로 결국 ‘하느님 나라’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에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생활의 이 다양한 형태는 서로 우열을 가리는 수직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수평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각각의 삶의 형태는 다 나름대로 가치와 역할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활동과 관상은 분리된 별개의 실재가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활동은 관상의 열매이며, 관상은 활동의 토대(근거)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사도직 활동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활동은 한계가 있으며,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관상을 통한 그분과의 깊은 일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생활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요구하기에 사도직 활동을 통하여 그 열매를 맺게 된다. 그래서 활동 없는 관상은 공허하고, 관상 없는 활동 역시 무의미하고 맹목일 뿐이다. 활동과 관상의 관계는 결국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이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로서의 ‘활동’과 ‘관상’은 13세기 도미니꼬회 수도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구분되었다. 그로부터 수도생활을 ‘활동생활’과 ‘관상생활’로 구분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구분을 따르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구분은 스콜라 신학적인 구분으로서 수도생활에 대한 전대미문의 새로운 이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3세기 이전, 다시 말해 탁발 수도회들이 생겨나기 이전까지는 수도생활은 오로지 수도승 생활을 의미했다. 수도생활은 본래 ‘관상생활’과 ‘활동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일치되어 있었다. 활동 따로 관상 따로가 아니라, 이 둘은 수도생활의 두 축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들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활동’이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사도직 활동’이 아닌, ‘수행’, ‘금욕’, ‘수덕’ 등을 뜻한다. 따라서 ‘활동생활’이란 ‘수행생활’ 혹은 ‘금욕생활’ 등을 말한다고 하겠다.

 

13세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최초로 ‘활동’과 ‘관상’을 구분하면서 이제 수도생활도 ‘활동생활’과 ‘관상생활’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활동’이란 더 이상 수도생활 전통 안에서 이해된 ‘영적인 수행들’, ‘수덕’, ‘수행’, ‘금욕’으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사도직 활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수도생활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과 이해가 13세기 이후 점차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이란 그보다 훨씬 오랜 뿌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모를 때 우리는 흔히 수도생활을 단순히 ‘활동(사도직)생활’과 ‘관상생활’로 양분하여 이해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수도원의 봉쇄구역 안에서 생활하건 여러 가지 사도직 활동에 종사하며 생활하든지 수도생활의 기본 개념은 동일하다.

 

 

6. 수도생활의 교회적 차원5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신비와 사명에 속하는 수도생활의 교회적 차원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따라서 수도생활은 교회 일치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성사적 성격에 참여하는 특별한 방법이며 또한 교회 사명 안에서 복음적 증거와 독특한 사도직 등의 모든 은총을 복음적 봉사에 둔다.

 

수도자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는 것이므로 ‘새롭고 특수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수도자들을 ‘교회와 그 신비에 특별한 모양으로 결합시키며’ 갈림 없는 헌신으로 교회 전체의 선익을 위해 일하도록 촉구한다. 그러므로 수도생활을 교회생활로부터 분리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수도자는 교회 안에서 수행되는 특별한 사명에 부응하기 때문에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도생활은 교회 안에서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봉사를 통하여 보편교회 안에서 그리고 보편교회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60 따라서 “수도자들은 자신을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 있는 자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은 세상 안에서 교회의 교의와 생활, 목자와 신자, 교회 사명과의 완전한 일치로 교회와 하나되고 그들 자신이 교회라는 것을 느끼면서, 진정한 교회 정신을 발전시키고 표명해야 한다”61

 

이처럼 “복음적 권고를 서원하는 수도신분이 비록 교회의 교계적 구성에 관계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생명과 성화에 속하는 것이 확실하다”62 “교회의 성화는 수도자의 존재이유라 할 수 있다. 교회는 수도자들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교회가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완전하게 준수하며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도자와 교회와의 특별한 유대는 친밀한 일치와 친교(교회법 제675조 3항), 그리고 교계제도에 대한 보다 큰 의존성(교회법 제590-593조)을 낳게 한다.”63

 

수도생활의 교회적 성격은 교황직과의 특별한 유대를 통하여 표현되고 실현되는데 이는 로마 교황에 대한 사랑의 일치와 순명의 관계 속에서 확고하게 표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수도회들은 하느님과 전체 교회의 봉사에 특별한 방식으로 헌신하느니만큼 교회의 최고 권위에 특별히 종속되며, 각 회원들은 순명의 거룩한 유대 때문에도 그들의 최고 장상으로서의 교황에게 순명해야 한다.64 수도생활은 또한 교회에 대한 의무를 다함에 있어 교회법에 따라 주교들에게 존경과 순명을 바쳐야 할 것이니, 그것은 주교들이 부분교회의 사목권을 가졌고 또한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도 일치와 화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계는 교구 직권자가 수도회들의 적절한 자율성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신앙 교의, 신자 사목, 하느님 경배의 공직수행, 그 밖의 사도직 사업에 대해 주교의 권위에 순종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65 따라서 수도자들은 로마 교황과 일치하여 주교에 대한 마땅한 순종과 지역교회 봉사직에 대한 헌신으로써 그들이 하느님 백성 한가운데서 행하는 증거와 사도적 봉사의 구체적인 성격을 드러내 준다. 이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수도회 총장들에게 “지역교회를 통한 보편교회와의 일치,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66라고 함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표현하였다.

 

지역교회 안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이들을 유기적 체계로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과 ‘교회 안에 주교들과 수도자들 간의 상호관계를 위한 지침서’의 가르침과 위에서 언급한 교회법의 규정들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역교회의 계획과 활동 안에서 수도자와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수도생활의 다양한 카리스마와 사도적 봉사직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수도생활의 역할과 충분한 신학지식과 함께 지역교회의 신학연구와 교회생활의 효율적 관심에 의해 촉진된 상호이해를 전제로 한다. 실제 많은 수도회들이 교구 안에서 본당 사목을 수행하도록 허락된 사목적 필요성의 이유로 오늘날 교구 사도직과 각 수도회의 생활, 고유한 카리스마, 영성과 양성 사이에 필요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시급히 요청된다. 각 수도회의 영성과 고유한 카리스마적 봉사의 풍요로움을 격려하고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수도회들의 존재를 교구 사도직에 축소시키는 것은 수도생활과 지역교회에 중대한 위기가 될 것이다.67 따라서 수도자들은 그들 고유의 카리스마와 지역교회의 필요성을 고려하면서 나름대로 사목활동에 독특한 공헌을 하여야 할 것이다.

 

 

7. 수도생활의 역할 : 삶을 통한 증거

 

복음선포는 전全 그리스도인에게 부과되는 가장 본질적인 사명이다. 이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에 근거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명령인 것이다. 복음선포는 보통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곧 ‘말’과 ‘행동’(삶)을 통해서이다. 물론 복음의 메시지는 일차적으로 ‘말’을 통해서 전달되지만 거기에 ‘행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참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적인 삶의 증거야말로 복음선포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 하겠다. 수도생활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복음적 권고의 삶을 통해 교회와 세상에 그리스도를, 복음을 증거하는 일일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포」에서 복음선포를 위한 증거에 있어 수도생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수도생활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활동력에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교회는 절대자 하느님을 갈망하고 또 성덕에로 불림을 받고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바로 이 성덕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 그들은 그들의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과 교회와 형제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는 표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수도자들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복음선포의 근본적 요소인 증거를 위해서 각별한 중요성을 띠고 있습니다.”68

 

또한 「교회 헌장」은 수도자들은 복음적 권고의 삶 자체로써 거룩함의 증거와 모범을 세상에 증거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수도생활은 복음적 권고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복음화를 위한 수도생활의 일차적 역할이자 수도생활의 사도직인 것이다. 특별한 방법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영성적이고 사도적 카리스마로부터 오는 탁월한 재능과 열정을 그리스도와의 깊은 일치 안에 나타나는 행동으로 복음화의 과제를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깊은 일치의 활력으로 야기되는 복음화는 카리스마적 열정의 쇄신에로 이끌 수 있는 증거의 생활을 요구한다.69 따라서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사도직이 우선 기도와 참회로 함양되어야 하는 수도생활의 증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수도생활의 사부들은 교회를 위한 일정한 봉사보다도 그리스도의 생활 양식(복음적 권고의 삶)을 본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삶 자체가 교회에 영적인 선익을 가져다 주며70 복음화에도 크게 기여한다.

 

수도자들은 생활로써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수도자들에게 이 증거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수도생활은 현시대에 강력한 증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만일 수도생활이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수도생활은 그 존재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8. 종합

 

수도생활은 그리스도인 삶과 무관한 어떤 특별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세례의 소명을 더욱 철저하고 완전한 방법으로 완성하는 삶이다. 이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추종하는 삶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찾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또 권고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늘나라를 위하여 가난과 순명과 독신의 삶을 사셨다. 그런데 이 삶은 자기를 온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삶이었다. 수도생활은 바로 오롯이 하느님만을 찾기 위하여,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가난과 독신과 순명으로 예수의 이 자아포기의 삶을 본받는 생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기인하며, 이 사랑은 자연히 이웃에 대한 사랑에로 확장된다. 수도생활의 사도직은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도직 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적 권고(포기)의 실천을 통하여 하느님만을 찾는 삶 자체가 이미 수도생활의 일차적인 사도직인 것이다. 따라서 수도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적 권고의 삶을 통하여 이 고유한 증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또한 각회의 고유한 카리스마에 따라 교회와 세상을 위한 직접적인 봉사에 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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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lio Gambari, Religious Life, USA, 1986, 191 참조.

2. 「수도생활 교령」제5항.

3. 이 부르심은 달리 “하느님과의 일치” 또는 “거룩함에로의 부르심”(성화 소명)을 뜻한다.

4. 수도생활은 세례생활의 연장일 따름이다. 고대 수도생활 전통 안에서는 특별히 성 예로니모는 수도생활을 제2의 세례로까지 보았다(Francois Vandenbroucke, Why monks?, Washington, D.C., 1972, 102-104 참조).

5. Karl Rahner, “사제적 실존이 따로 있는가?”, 성염 역, 『사목』63호(1979.5), 47 참조.

6. Francois Vandenbroucke, 위의 책, 13.

7. T. Merton, The Silent Life, New York, 1957, 8.

8. Elio Gambari, 위의 책, 39 참조.

9. 「수도생활 교령」제5항.

10. Alberione 외, Religious life in the light of Vatican II, Philippines, 1967, 31 참조.

11. Elio Gambari, 위의 책, 65.

12. Riehard Byrne, “까시아노와 수도승 생활의 목표”, 김 마리로사 역, 『코이노니아』제12집(1987, 가을), 32-33.13. Donato Ogliari, O.S.B, The kenosis theme and monastic theology, ABR 41:2(1970.7), 209 참조.

14. T. Merton, The monastic journey, 위의 책, 6.

15. Donato Ogliari, 위의 책, 209.

16. 요한 까시아노에 의하면 수도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두 번째 포기”(abrenuntiatio secunda) 또는 “마음의 포기”(abrenuntiatio cordis)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그의 삶을 모든 세례받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포기”(abrenuntiatio prima)에 만족하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구분짓는다(Francois  Vandenbroucke, 위의 책, 57 참조).

17. Alberione 외, 위의 책, 31 참조.

18. 남녀 수도회 연합회 편집, 『수도생활』, 분도출판사, 1969, 3 참조.

19. T. Merton, The monastic journey, 위의 책, 6.

20. 앞의 책, 4.

21.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에 두 가지 새로운 생각이 등장하였다. 무엇보다도 성 예로니모 시대부터 수도서원과 세례와 순교를 하나로 연결하게 되었다. 즉, ‘수도서원은 제2의 세례’로 그리고 ‘수도생활은 제2의 순교’로 생각하게 되었다. 313년 종교자유로 인해 순교의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에 수도생활이 순교의 대체물로 나타났던 것이다. 수도적 포기를 통하여 심장으로부터 영적으로 피가 흐른다고 보았다. 사실 수도생활의 엄격한 고행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또 다른 형태의 순교를 가능케 하는 수단들을 제공해 준다. 이처럼 수도서원을 제2의 세례로 볼 때 당연히 수도생활은 제2의 순교가 된다. 순교는 일찍이 세례를 대신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고, 이에 세례받은 이들에게는 제2의 세례로 간주되었다. 수도자의 생활이 순교와 동일시되거나 똑같은 수준에 놓이게 되었을 때 수도서원을 세례에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다(Timothy Fry, 위의 책, 15; Francois Vandenbroucke, 위의 책, 57-59 참조).

22. Timothy Fry, 위의 책, 4 참조.

23. 앞의 책, 15-16 참조.

24. Ruth Fox, O.S.B, The mission the monastic community today, ABR 37:3(1986.9), 228 참조.

25. 김승혜, “사막의 영성: 크리스챤 수도생활 小史”, 『사목』33호(1974.5), 16 참조.

26. Francis Acharya, Poverty in the Christianity Doctrine and Practice, AMC, Kandy-Sri Lan-ka(1980.8.18-24), 39.

27. 진 토마스, “수도자 영성의 역사적 고찰”, 『코이노니아』제4집(1980, 가을), 6 참조.

28. 김성태, 『세계교회사 I』, 성 바오로(1986), 230 참조.

29. 진 토마스, 위의 책, 6-7 참조.

30. 요한 까시아노는 동방 수도승 전통 특히 이집트 수도승 전통을 서방에 전하였기에 그리스도교 수도승 전통은 그를 가장 완전한 서방 수도승 생활의 스승으로 간주해 왔다. 사실 이후 거의 15세기 동안 수도승들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양성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Riehard Byrne, 위의 책, 19-20 참조).

31. 『담화집』1,4,3.

32. 이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 또는 “완덕의 상태”를 의미한다.

33. 앞의 책, 21-29 참조.

34. Terrence Kardong, O.S.B, John Cassian’s evaluation of monastic practices, ABR  42:1(1992. 3), 101.

35. T. Merton, The monastic journey, 위의 책, 7 참조.

36. Riehard Byrne, 위의 책, 29.

37. 앞의 책, 32-33; Mayeul de Dreuille, O.S.B, From East to West, India,179-180; Augustine Roberts, 위의 책, 12-13 참조.

38. W. 투닝크, 『평화의 길』, 김 마리로사 역, 분도출판사, 1980, 193 참조.

39. 제3차 아시아 베네딕도회 모임 참석자들, “A message from the conference”, AMC, Kandy-Sri Lanka(1980.8.18-24), 218 참조.

40. 남녀 수도회 연합회 편집, 위의 책, 13 참조.

41. J. E. Creamer, “Religious life” in the New Catholic Encyclopedia 12, Washington, D.C., 1967, 289 참조.

42. 사회로부터 물러난다는 점이 수도생활 운동을 초기 금욕생활 전통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남녀 수도회 연합회 편집, 위의 책, 14; Timothy Fry, 위의 책, 4 참조).

43. J. E. Creamer, 위의 책, 289-90 참조.

44. “코이노니아”란 낱말은 빠코미오 수도생활의 열쇠가 되는 개념으로서 여기서는 빠코미오의 지도하에 발전된 수도원들의 모임 혹은 연합을 의미한다. 복음사가 루가는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묘사하기 위해 이 낱말을 사용한다. 빠코미오가 최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을 이상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모방하려고 했음이 분명하다(Timothy Fry, 위의 책, 25 참조).

45. Timothy Fry, 위의 책, 32-33 참조.

46. J. E. Creamer, 위의 책, 291.

47. Timothy Fry, 위의 책, 42-43 참조.

48. 한국 가톨릭 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688 참조.

49. J. E. Creamer, 위의 책, 291.

50. 남녀 수도회 연합회 편집, 위의 책, 19-20; 왜관 수도원, 위의 책, 16.23; 한국 가톨릭 대사전 편찬위원회, 위의 책, 688 참조.

51. 1장 각주 1) 참조.

52. 「수도생활 교령」제1항; 남녀 수도회 연합회 편집, 위의 책, 23-30; 한국 가톨릭 대사전 편찬위원회, 위의 책, 688 참조.53. Francois Vandenbroucke, 위의 책, 164-165 참조.

54. 「수도생활 교령」제9항; 「축성생활」제6항 참조.

55. 「수도생활 교령」제7항; 「교회법」제674조.

56. 「축성생활」제8항 참조.

57. 「수도생활 교령」제8항; 「교회법」제675-676조.

58. 「축성생활」제9항 참조.

59. 이 부분은 제9차 세계 주교 시노드, 『교회와 세상 안에서의 축성생활과 그 역할 <개요> 초안』,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역, 제35-40항을 주로 참조했음.

60. 「교회 헌장」제44항; 관계 제10항 참조.

61. Louis  Leloir, “사막의 교부들의 메시지 그때와 오늘”, 김복희 역, 『코이노니아』제18집(1993, 가을), 90 참조.

62. 제9차 주교 시노드, 위의 책, 제35항.

63. 「교회 헌장」제44항.

64. Elio Gambari, 위의 책, 50.

65. 제9차 주교 시노드, 위의 책, 제36항 참조.

66. 앞의 책, 제37항.

67. 앞의 책, 제39항.

68. 앞의 책, 제40항 참조.

69. 교황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포』, 이종흥 역, C.C.K, 1977, 91.

70. 「교회 헌장」제39항 참조.

 

[허성석 지음, 하느님을 찾는 삶 - 성 베네딕도와 함께 하는 영적 여정, 제2장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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