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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평신도가 뛴다: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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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13 ㅣ No.451

[평신도가 뛴다]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서울 명동성당에서 청년 레지오 단원으로 2년 동안 활동했었고, 지금은 협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 봉천동에 있는 공부방에서 중학생 영어를 가르쳤는데 함께 공부했던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고3이 되면서 공부방과 인연도 멀어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제 고백부터 하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허정애 엘리사벳 단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 버거웠었다고 당시 제 느낌을 말씀드렸더니, 1단이라도 온갖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남 이후 저는 다시 기도에 대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 레지오 마리애란 무슨 의미이고, 목적은 무엇인가요?

 

레지오 마리애는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입니다. 라틴어인 이 명칭은 ‘마리아의 군단(The Legion of Mary)’이라는 뜻이며, 이 명칭을 비롯한 주요 용어와 조직의 형태는 고대 로마, 정확히 로마 군단(Legio Romae)에서 사용하던 것을 따왔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시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강력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해 설립된 영적 군대입니다. 이 군대를 총지휘하시는 분은 성모님이며, 레지오 단원들은 충성과 덕행과 용기로 위대한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단원들은 교회의 지도에 따라 뱀의 머리를 바수고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성모님과 교회의 사업에 기도와 활동으로 협력해 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 한국에는 레지오 마리애가 언제 도입됐나요?

 

한국에는 지난 1953년에 광주교구 산하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처음으로 탄생했습니다. 당시 광주교구장 서리였던 현 하롤드 신부(제5대 광주교구장)의 지도로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생기면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장됐습니다. 서울에는 1955년 8월 흑석동(구 명수대)본당에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첫 번째로 설립됐습니다.

 

이어 1957년에는 혜화동 본당에 ‘상지의 좌’ 꾸리아가 설립됐고, ‘상지의 좌’ 꾸리아는 1960년 3월 한국 무염시태 꼬미씨움으로 승격됐으며, 1974년 9월에는 레지아로 다시 승격됐습니다.

 

이후 한국 레지오는 도입 25주년을 기념해 발전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꼰칠리움 경축사절로 내한한 맥그래드 신부가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해 서울 레지아를 국가 최상급 평의회인 세나뚜스로 승격시킬 것을 꼰칠리움에 제시, 1978년 12월 23일 서울 대교구에 정식으로 세나뚜스가 승격 설립됐습니다.

 

 

*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란 무엇인가요?

 

레지오는 선배 단원과 후배 단원으로 2인 1조가 되어 쁘레시디움에서 매주 배당되는 활동을 완수하는 것이 주된 역할입니다. 완수한 활동은 쁘레시디움 주 회합 때 매주 보고를 하게 됩니다. 레지오는 보통 ‘후배 단원이 선배 단원들과 함께 다니며 활동하면서 익히도록 하는 방법과 쁘레시디움에서 보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도제제도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지속되는 활동은 레지오 내부적으로는 단원의 자질을 계발하고, 외부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교회 내에서 활동이라고 하면 레지오가 연상될 정도로 레지오는 활동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신앙인으로 신심이 깊은 자매와 형제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 방식도 있습니다. 과거 어떤 자매의 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병문안을 갔을 때 일입니다. 레지오 단장 시절, 제가 돌보았던 레지오에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자매와 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딸의 아픈 모습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한 모습으로 기도를 부탁한 자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였죠. 나중에 저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자매가 본인이 얼마나 자만했는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때로는 열 마디의 말보다 한 번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저도 느끼게 됐습니다.

 

이 밖에 레지오에서 하는 실질적인 활동은 입교(개종)권면, 예비신자 돌봄, 교우(신영세자, 쉬는 교우, 전입자, 혼인장애자) 돌봄, 어려움을 겪는 이(교우 및 외인 상가, 이재 및 빈곤자, 병원 및 복지시설) 돌봄, 레지오 확장, 본당 협조, 교회 출판물 보급, 자연 보호, 거리 청소,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입니다.

 

 

* 레지오 마리애는 서울무염시태 세나뚜스와 광주 세나뚜스, 대구 세나뚜스로 나뉩니다. 이 중 서울무염시태의 규모가 가장 큽니다. 이곳의 주된 업무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움직임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전국으로부터 활동에 대한 보고를 받습니다.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는 서울을 비롯해, 원주, 춘천, 청주, 인천, 수원, 대전까지 담당합니다. 서울 세나뚜스에서 직접 관할하는 레지오 활동 단원들만 15만 명 가량 되고, 협조단원까지 더하면 약 30만 명 정도 됩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주 회합을 하는 것을 ‘쁘레시디움’이라고 하는데, 10개의 쁘레시디움이 모이면 ‘꾸리아’라고 부릅니다. 보통 규모의 본당은 2~3개의 꾸리아가 움직이는데, 이런 경우 20~30개의 쁘레시디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꾸리아를 모아서 관장하는 곳이 ‘지구’입니다. 지구를 관장하는 단체를 ‘꼬미시움’이라고 하는데, 상급단체로 보면 됩니다. 원주를 비롯해 춘천, 수원 등은 각 시별로 관장하는 사람들을 ‘레지아’라고 부릅니다. 서울은 동서울, 중서울, 서서울로 나뉘어 있고, 서울 세나뚜스가 총괄 담당하고 있습니다.

 

 

* 단장은 어떤 방식으로 선출하나요? 어떻게 해서 단장이 되셨나요?

 

단장은 3년에 한 번씩 선출하는데, 투표를 합니다. 꾸리아 간부들이 모여서 꼬미시움 4간부를 선출하고, 그 4간부가 모여서 레지아 간부를 선출합니다. 레지아 간부들이 모이면 90명가량 되는데, 이들이 선거해 투표 결과에 따라 선출합니다. 저의 경우는 전임 단장과 제가 후보로 올랐고, 투표 결과 제가 당선됐습니다. 단장의 임기는 3년이며, 한 번의 연임 기회가 있어 최대 6년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11월 말에 최종 선출됐습니다.

 

사실 저는 서른한 살부터 레지오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예순을 훌쩍 넘겼으니, 30년이 넘은 시간을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해 왔습니다. 오랜 시간을 레지오에 몸담고 있으니, 꾸리아 단장부터 꼬미시움 단장, 레지아 단장 등을 거쳐 서울 세나뚜스 단장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분야에서 꾸준히 평의회 간부를 하면서 일에 익숙하도록 훈련을 거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4대에 이어 제가 두 번째 여성 단장으로 선임됐습니다.

 

 

* 30여 년간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가장 기억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냉담교우를 찾아다니며 만나는 일입니다. 저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꾸준히 활동을 나갑니다. 실질적인 레지오를 체험하려고, 현장체험을 통해 레지오를 느끼고, 그 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특히 저는 병원을 주로 다니며 주로 냉담교우를 만났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위암으로 투병 중인 형제를 만났는데, 이 형제는 오랫동안 냉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위암 투병에 이어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동시에 겪고 있었는데, 특히 타인에 대한 적대심으로 고통받는 경우였습니다. 다행히 위암 수술이 잘 끝나 퇴원하게 되면서, 저는 병원 방문에서 가정 방문을 통해 형제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형제는 전직 경찰로서 아내와 다 큰 자녀들도 있었는데, 돌봄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자 아내 역시 제게 속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하나둘씩 시작하면서 가족 전체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10년이 지난 지금도 돌봄을 하고 있는데, 현재는 가족이 굉장히 행복해졌습니다. 그 가족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한 번 만나면 끝까지 돌보는 것, 그것이 성모님이 바라시는 레지오 마리애의 진정한 활동입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석같은 레지오 단원들 때문에 지금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성모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단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임기 3년 동안 단장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오랫동안 레지오 활동을 하다보면 내부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레지오 활동에도 스며들어 활동대상을 만나는 데 제약이 되고 있습니다. 가령, 사회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 안에 숨어 있는데, 가정방문이 원활하지 않아 쉽게 만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또 레지오 단체가 커지면서 발생한 이런저런 문제 가운데, 본당의 영적지도 신부님과의 연결고리를 되찾으려고 합니다. 레지오 단체의 ‘상명하복’ 문화 때문에 간혹 사제와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을 바꾸려고 합니다.

 

각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를 이끄는 꾸리아장부터 본당의 영적지도 신부님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작업입니다. 현재 서울 세나뚜스 담당이신 정영진 도미니코 신부님을 도와 큰 크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작업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평신도, 2016년 봄(계간 51호), 대담 · 정리 권지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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