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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강원지역 교우촌 현황 연구(1882~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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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17 ㅣ No.1241

강원지역 교우촌 현황 연구(1882~1924)*

 

 

1. 머리말

2. 교우촌의 형성

3. 교세 통계표에 나타난 교우촌 현황

4. 지역사회와 교우촌

5. 맺음말

 

 

국문 초록

 

본고는 강원지역의 교우촌 현황을 살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다. 교우촌의 현황은 ‘본당별 교세 통계표 1882~1924’와 신부들의 서한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강원지역 천주교 교우촌은 박해를 피해 이주한 이들에 의해서 형성되었으며, 교우촌은 3개 권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원주 횡성을 중심으로 한 권역, 춘천과 홍천을 중심으로 하는 권역, 영동권역이라 할 수 있다. 강원지역 교우촌 중 평창지역이 1883년 통계부터 상당히 많은 수의 교우가 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대부분 산지로 형성되어 있어, 박해를 피해 이주하고 정착하는데 최적의 조건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1900년 교세 통계표에 나오는 교우촌과 뮈텔 주교의 1900년 강원지역 순방기록에 등장하는 교우촌의 비교 결과, 일치하지 않는 곳이 다수 존재하고 있어 교세 통계표에 나오는 교우촌이 모두 공소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지역 중 특히 이천(伊川)에 주목하였는데, 이천은 실지로 강원지역에서 가장 먼저 성당이 설립된 곳이나, 현재 북한지역에 있어서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이다.

 

이천의 경우, 1882년부터 1924년까지 교우촌의 추이를 살펴보면, 1890년 이전까지는 20개 미만이던 것이 1890년 이후 꾸준한 증가 양상을 보이다가 1914년 정도 부터는 감소하거나 감소한 채로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역사회와의 연계에 있어서는 학교와 성영회를 통해서 살펴보았는데, 일제강점기의 교육정책은 선교사들의 학교 설립 및 학교 운영에도 영향을 주어 인허가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이천에서 운영된 삼애학교는 지리, 역사, 국어, 일어 등을 가르쳤다는 것이 확인된다.

 

교우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선교사들의 서한에서 시대상과 관련하여, 교우들이 의병과 대립되는 모습 및 동학교도들과 천주교인의 대립 그리고 경제적 이유 및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하와이 및 간도로 이주하는 교우들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1882년부터 1924년까지의 교세 통계표를 통해서 강원지역 교우촌의 모습을 보고, 북강원에도 관심을 기울인 이 연구는 지역사와 교회사의 접목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전체 본문은 첨부 파일을 참조하세요.

 

* 이 논문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3S1A5B5A07049813)

 

[교회사 연구 제48집, 2016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이원희(강원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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