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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교회: 그리스도인 달리트는 더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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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39

[아시아 아시아] 인도 교회 : 그리스도인 달리트는 더 고달프다

 

 

‘깨진’이란 뜻의 달리트는 인도사회에서 최하층 카스트

 

인도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그리고 수많은 신비주의 현자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같은 인도는 간디를 쏘아 죽였고, 아직도 위대한 종교와는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가혹한 신분사회의 비극으로 가득 차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인도의 사회정의권익부 사티야 나라인 장관은 하원에서 하층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인과 이슬람인은 힌두교, 불교, 시크교 소속 하층 카스트가 누리는 공직할당제와 교육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산스크리트어로 ‘달리트(dalit)’는 ‘깨진’이란 뜻이며, 인도 사회에서 예전에 ‘불가촉 천민’으로 대우받던 여러 최하층 카스트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개혁파 힌두교인이었던 간디의 수제자 자와할랄 네루가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을 때, 당연히 공식적으로는 카스트가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 차별은 완고했다.

 

더구나 법적으로는 동등하다 해도 이것이 곧바로 하층 카스트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미약해서 경제권을 거머쥔 상층 카스트의 억압과 속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교직의 일정 비율을 힌두인 달리트에게 할당

 

미국에서 흑인 해방이 곧바로 흑인들의 지위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이유도 흑인들의 경제적 능력과 교육수준이 백인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던 것을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인도는 독립 직후인 1950년 헌법에 달리트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특혜조치를 규정한다. 그리고 구체적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하였다.

 

우선 인도 사회에서 가장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과 교직의 일정 비율을 달리트에게 할당하도록 하였다. 또 학교 정원에서도 일정 비율은 달리트에게 배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조치가 인도의 여러 종교인 가운데 유독 힌두인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다. 곧 이슬람인, 그리스도인, 불교인, 시크인 등은 제외한 것이다. 사실상 종교차별이었다.

 

그러나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으니 ‘불교인 달리트’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슬람인 달리트’나 ‘그리스도인 달리트’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맞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그리고 교리상으로 이슬람이나 그리스도교 안에 브라만과 달리트의 계급 구분은 없다.

 

그러나 인도는 힌두인이 다수인 나라이며, 이들이 예전에 달리트였던 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동등하게’ 대우해 줄 리는 없다. 그들에게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건 힌두인이건 상관없이 그저 ‘쌍놈’인 것이다.

 

더구나 달리트에 대한 특혜를 규정한 이 헌법조항은, 바로 달리트의 소속 종교가 무엇이든 이들이 현재 처한 사회적, 경제적 열세를 극복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땅 한 평 없이 지주의 아량에 매여 사는 소작농과 지주의 관계는 실제적으로 예속관계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헌법상 달리트에 대한 혜택은 종교에 상관없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제외된 비힌두인 달리트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각 종교의 지도부가 이 문제에 얼마나 적극 관심을 보였는지, 그리고 인도의 정치 상황에 따라 각 종교의 달리트는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우선 1956년에 인도 서북부에 많이 살고 있는 시크인들이 힌두인 달리트와 같은 혜택을 받도록 대통령령이 개정되었다.

 

시크교는 평등과 정의에 대한 감각이 유별나게 강하며, 터번과 긴 수염, 그리고 모든 남자가 작은 칼을 지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군대에 가도 터번을 쓰고 수염을 깎지 않는다. 구체적 정황은 모르지만, 이들의 불같은 행동주의 때문에 비힌두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혜택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한다. 물론 시크교 내부에서는 카스트 차별이 없다.

 

 

그리스도인 달리트는 신자의 60%

 

다른 종교들은 그 뒤 수십 년 동안 이 문제에 별로 대처하지 못했다. 인도 인구의 20퍼센트나 차지하는 이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990년에 인도에서 극히 소수집단인 불교가 이 혜택을 얻어냈다.

 

불교를 힌두교의 일파로 보기까지 하는 친화성 때문이다. 그 뒤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에서도 헌법상 달리트에 대한 혜택을 받고자 하는 운동이 불붙었다. 특히 인도의 그리스도교는 신자 가운데 60퍼센트가 이 달리트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달리트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 문제가 매우 중요했다.

 

안드라프라데시 가톨릭 주교회의 ‘하층 카스트와 부족민위원회’ 총무 안토니 하비에르 존 보스코 신부(예수회)는 좋은 교육을 받아야 달리트들이 안정된 직업을 얻을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차별에 대항해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카스트 제도는 성직자를 포함해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설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인 예지만, 지난 2002년에 타밀나두 주의 한 교구에서는 교회 내 다수 카스트에 속한 사제들이 소수 카스트 출신 주교가 다수 카스트를 무시하고 있다며 교회 인사명령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일반 법원에 내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사는 가톨릭 신자 110만 명 대부분은 하층 카스트 출신 개종자들이다. 이들도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더 큰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1980년대에 남미의 해방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 등이 한참 왕성할 때 인도에서는 ‘달리트 신학’이란 것이 나왔다. 달리트의 이장에서 하느님을 보지 않고서는 인도 그리스도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달리트의 권익은 곧바로 신자 대부분, 그리고 교회의 권익이기도 한 것이다.

 

 

힌두인 달리트들의 표를 얻으려는 정부의 책략

 

재미있는 것은 현재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인도 인민당이 이끄는 정부의 반대논리다.

 

자티야 장관은 그리스도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인이 (혜택을 받는 달리트와 받지 않는 비달리트로) 카스트를 기준으로 나뉠 것”이며 국제사회에서는 인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카스트 제도를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것이라는 궤변을 폈다.

 

인도 주교회의는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을 경제적으로 약한 달리트인을 “분할통치하려는 교활한 책략”이라고 규정했다.

 

주교회의 ‘달리트와 소수부족위원회’ 총무 필로민 라즈 신부는 UCAN 통신 보도를 통해 자티야 장관의 논리를 비판하며 현 정책이 이미 달리트를 계층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실적인 반대 이유는 그리스도인과 이슬람인 달리트에게도 할당 혜택을 주면 기존 힌두인 달리트들의 몫이 줄어들까 염려하는 것인데, 바로 인도 인민당은 이처럼 그리스도인, 이슬람인 달리트와 힌두인 달리트를 구분함으로써 힌두인 달리트들의 표를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4년 2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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