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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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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13 ㅣ No.469

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교회사 공개대학 ⑥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전례보다 개인 신심 중시, 교회 난립 등 폐단 반면교사, 한국신학 연구 노력 배워야


프로테스탄트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가톨릭 영성운동인 '데보치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근대 신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4세기 말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스콜라 학파를 '고대'(antica)로 지칭하면서 이와 구별되는 근대(Moderna)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인적이고 실천적인 신심을 강조했다. 전례나 성사 참여보다 수난 명상이나 산상 강론을 중시했으며, 관상 안에서 신과의 직접적 통교를 강조하는 신심을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신앙의 개인성과 내면성을 발견했고 이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곧 개신교의 원형적 종교성을 이루고 있다. 게르하르트 흐로테의 공동생활형제단(Brethren of the Common Life, 1383년)이 대표적 조직이며,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나 마르틴 루터, 장 칼뱅, 이냐시오 로욜라 등에게 두루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데보치오 모데르나의 영향을 받아 은총을 확인하는 길은 오직 성경과 신앙뿐이라며 성경 중심주의를 강화하는데 공헌했다. 당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성경과 고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중세 교회 관행이나 관습 중 고쳐야 할 것을 제시했으며, 이러한 인문주의 정신은 중세교회가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춰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징표였다. 안타까운 점은 교회 내에서의 개혁 시도(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보다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시도(루터, 칼뱅)가 더 큰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1517년, 독일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노 엄률수도회 수사 루터가 대사(大赦) 문제에 관해 보낸 95개조는 이단 심문과 논쟁으로 비화됐고 급기야 교황청은 루터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루터는 자신을 지지하는 독일 영주들의 후원으로 루터교파를 설립했고 독일, 스칸디나비아,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지로 퍼져나갔다.
 
이어 장 칼뱅의 개혁운동도 스위스,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라인강 하류 지방, 스코틀랜드로 전파됐다. 이로써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으로 갈라져 나간다.
 
한국교회는 '장감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교세가 크다. 미국과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진출하면서 선교가 이뤄져 장로교가 가장 많은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천주교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개신교를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선 과속성장에 대한 개신교측의 자성은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니다. 교회 난립의 폐단과 과다한 신학생 배출, 함량 미달의 신학(특히 실천신학) 교육, 극단적 배타성 등은 천주교가 곱씹어봐야할 대목이다. 개신교의 목회자 권위주의에 기초한 독재적 리더십은 이제 한국교회에 대안적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한국 개신교의 재정 규모 증대와 재정 지출 경향은 꼭 한국 사회의 고도성장기 경제 운영의 축소판과도 같다. 개신교계 일각에선 교회 분열이 교회의 공공성을 해치고 있다며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 있는 참여를 외면하고 교회와 세상을 양분하는 이원론적 사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 또 물량적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 신학을 향한 개신교의 열정과 노력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비교종교학을 시도한 한국적 신학의 선구자 최병헌, 불교와 유교, 도교의 정수를 흡수해 '한국어로 신학하기'를 내세운 한국적 영성의 정초자 유영모, 무교회주의를 통해 고난사관으로 한국사를 재해석한 함석헌, 성리학의 형이상학을 차용해 '성(誠)의 신학'을 주창한 윤성범, 안병무와 더불어 민중신학을 체계화한 서남동, 한국인의 영성과 종교적 전통에 대한 거시적 통찰을 제기한 풍류신학의 유동식, 음양의 이분법 상징을 통한 주역의 신학을 제시한 이정용 등이 대표적 신학자들이다.
 
최근엔 토착화 신학 발전과 함께 과학기술 발전과 정보화 사회로의 진전, 유전공학 발전, 포스트모더니즘, 디지털 문화의 확산 등 현대 사회의 징후와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평화신문, 2011년 11월 13일, 조현범 박사(토마스,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정리=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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