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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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비추어라: 124위 시복, 순교영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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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06 ㅣ No.268

[일어나 비추어라] 124위 시복, 순교영성의 의미


사랑 · 믿음의 힘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예전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하느님을 증거할 필요가 없는 이 시대에 순교자들의 순교 영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살아내는 것은 현대 신앙인의 과제다. 그림은 탁희성 화백이 그린 ‘절두산 순교 성지도’.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결코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순교 영성

순교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사랑 그리고 희망 때문에 자유롭게 선택하고 수락한 자신의 죽음으로 진리를 증거하고 하느님을 증거한다.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목숨을 내어 놓는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 때문에 모진 박해와 혹독한 형벌을 견디어 내면서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순교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남긴 순교자들의 신앙 고백을 들어보면 이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키워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렸으나 오늘 우리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순교 영성의 재해석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예전의 순교자들처럼 물리적으로 피를 흘리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 하느님을 사랑하고 믿으며 증거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순교의 삶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순교의 삶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래서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순교 영성을 새롭게 해석해 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1) 사랑하며 살자

순교는 집착과 탐욕 그리고 명분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자유롭게 해방되는 행위다. 그리고 나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질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랑은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순교는 또한 사랑의 극치다. 사랑은 자기를 앞세우는 한 불가능한 행위다. 자신을 절대화시키고, 아집과 고집에 사로잡히는 한 불가능한 행위다.

우리는 사랑하기에 믿는다. 동시에 믿기 때문에 사랑한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도록 그렇게 창조됐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까닭도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내 존재 이유여야 한다.

2) 하느님 중심으로 살자

우리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언제나 맨 나중에 하느님을 찾는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는 내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며 배회하고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모습대로 우리를 지어내실 정도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그대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인간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느님의 가치관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 순교의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은 결국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힘이다.
 
3) 하느님을 믿는 사람다운 삶을 살자

하느님을 믿는 사람다운 삶은 하느님의 눈으로 이 세상과 사물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믿는다는 것은 증명이 아니다. 희망이며 신뢰다. 그리고 사랑이다. 하느님 때문에 우리의 삶이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사는 우리 신앙인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가져다주는 힘과 능력을 믿으면서 살아야 한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고, 그렇게 살기 때문에 당하는 온갖 불이익을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순교의 삶일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알고,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한 17,3)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결코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회의하고 불안해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나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낸다”(이사 46,4)는 처방을 내리신다. 더 이상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이 또 있겠는가? [평화신문, 2014년 7월 6일, 제공=교황방한준비위원회 영성신심분과]



[일어나 비추어라] 내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 세상을 위로하는 양 냄새나는 목자



추기경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교황으로 선택한 이유는 교황이 선출 직후 첫 축복을 하며 하신 소박하고 짧은 말씀에 잘 담겨 있다. 교황님은 교황으로 선출됐다고 말하지 않고 로마 주교로 뽑혔다고 하셨다. 이어 로마 교구 신자들을 격려하고, 신자들을 축복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당신을 강복해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신자들에게 부탁하셨다. 그리고 침묵 중에 백성이 기도하는 동안 머리를 숙이셨다.

감동이 밀려왔다. 어느 주교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교황님은 그때 교황 권위를 나타내는 붉은 어깨보나 망토를 입지 않은 채 단지 흰 수단 차림으로 나오셨다. 그분 말씀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교황과 백성은 하나가 됐다.

교황님은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사제들에게 목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십시오.” 이는 교황님이 로마 주교로서 처음으로 교구 신부들과 함께한 성유축성미사 때 강론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 한마디만으로도 교황님 뜻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으리라.

그동안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분, ‘함께하는 목자’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바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교황님을 뵈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이 저절로 떠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리스도인이 혁명적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것은 폭력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교황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복음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순간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만 자기 신앙을 꺼내는 ‘시간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다.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무 많이,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 마세요. 우리는 변함없이 일관된 삶으로, 온 삶으로 말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오늘도 이렇듯 짧고 쉬운 말씀으로 우리에게 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신다. 교황님 말씀은 언제나 힘이 있다. 말씀이 쉽기에 더 그렇다. 교황님은 우리의 좋은 목자시다. 그래서 교황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듯하다. 교황님은 그 사람들을 통해 세상이 좀 더 복음적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하신다.

「프란치스코 교황」(가톨릭출판사)에 실린 김종수 신부 글 요약 [평화신문, 2014년 7월 6일, 김종수 신부(로마 교황청 한인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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