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지역사회와 교회: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7 ㅣ No.352

지역사회와 교회 -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 (1)

 

 

1. 변하고 있는 종교

 

세계화와 정보화의 흐름과 함께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과거 근대 산업사회에서 종교는 ‘세속화(Secularization)’ 또는 ‘사적화(Privatization)’ 현상에 내몰려 사사로운 개인의 영역에 국한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종교는 개인의 차원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인 공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욱더 커져가고 있다. 

 

한국사회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정치적 변동에 따른 민주화의 실현과 경제적 급성장을 겪으며 점차 삶의 질을 추구해 왔다. 노동집약적 사회를 넘어 여가와 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 복지, 성, 환경, 생명 등을 축으로 문화적 욕구가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다. 또한 뉴미디어의 도입과 디지털화는 새로운 대중문화와 그에 따른 새로운 소비문화 공간들을 만들어내며 생활양식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종교 분야도 점차 문화의 공적 활동에 참여하면서 대사회적 역할을 통해 ‘종교의 탈사적화(the Deprivatization of Religion)’ 현상, 말하자면 공공 영역에서의 종교적 기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종교 공간의 문화적 활용(the Cultural Use of Religious Space)’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기성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 개신교, 가톨릭만 보더라도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성스러운 예식만을 위한 종교적 공간이 문화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는 추세이다. 불교에서는 전통 사찰에서 ‘산사체험’, ‘수련체험’, ‘템플스테이’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나 생태와 환경운동, 그리고 지역축제와 결합된 활동들이 확산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생태환경, 문화강좌, 문화공연 프로그램이 교회 공간에서 점차 이루어지고, 더 적극적인 예로는 스포츠를 위한 공간이 교회 공간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레포츠 교회’도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에서도 문화강좌, 문화공연, 상담과 쉼터, 생태운동, 그리고 납골당을 위한 공간 등으로 교회 공간이 점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대교구의 명동 주교좌 본당은 198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 인권운동, 빈민운동, 농민운동 등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문화예술 공연과 문화강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과거에는 종교 공간이 단순히 성스러운 공간으로 세속과 분리되어 왔지만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문화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문화 공간으로서 종교 공간의 활용은 해당 종교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지역 간의 문화적 불평등을 해소시키며, 나아가 종교적인 면에서는 간접 선교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반면에, 종교 공간이 문화 공간으로 개방됨에 따라 종교의 성스러움이 상실되거나 종교의 참된 기능이 변질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종교계가 종교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은 앞으로 상당히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쉬는 교우 증가나 신자 증가율의 감소, 주5일 근무제 실시 등에 따른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이러한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며, 실제로 점진적인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 예로서 문화관광부에서는 지역 간의 문화적 발전과 혜택에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기존의 종교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는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고, 이에 대해 몇몇 성당이 정부기관과 함께 새로운 사목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종교 공간의 문화적 활용이 시도되고 있음에도 교회 안에서는 이에 관한 학문적인 연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더 나아가서 각 성당에서 실시되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 교류나 조직적인 운영 체계 모델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글의 궁극적 관심은 최근에 한국 가톨릭 교회가 종교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시도하고, 사례를 분석·평가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글은 먼저 종교 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현재 어떻게 가톨릭 공간이 문화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그 현황을 파악할 것이다. 둘째로, 이 글은 종교사회학과 문화신학이라는 두 가지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을 해석하고, 간단한 모델링 작업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몇몇 성당이 공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문화 프로그램들을 위에서 이론화시킨 모델을 가지고 간단히 분석하고 평가하여 미래의 바람직한 프로그램화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2. 종교 공간의 이해

 

1) 종교 공간의 개념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 공간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 공간으로서의 성전은 “인간들이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며, 신이 인간에게 은혜와 생명을 주려고 내려오는 장소”라고 여겼다. 유대교의 회당, 이슬람교의 모스크, 불교의 사원, 그리스도교의 교회는 각자 독특한 특성과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예배, 기도, 종교교육, 친교가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공간이나 성소로서 자연 공간과 구분되어 있다. 

 

종교 공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핵심 종교 공간’으로서 신자 공동체가 주요 종교의례를 행하거나 수도자가 종교수련에 전념하는 공간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회중이 모여 예배나 미사 등 전례를 거행하는 성전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그분을 만나서 거룩하게 정화되게 하는 장소이다. 둘째 유형은 핵심 종교 공간에 인접하여 있는 ‘부속 공간’으로서, 신자들의 교육, 훈련, 친교 등이 이루어지며 종종 일반인에게도 개방되는 공간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 교육관, 소강당, 단체 회합실과 주일학교 교실, 휴게실 등 각종 편의시설과, 교육, 문화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외곽 종교 공간’이다. 이것은 핵심 공간이나 부속 공간과는 다른 곳에 떨어져 있는 공간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복지관, 양로원, 유치원, 탁아소, 장애인 시설 등 흔히 별도의 장소에 마련되어 있어 일반인과의 접촉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최근 종교 공간이 문화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은 핵심 공간이나 부속 공간의 전통적 기능에 대한 변화를 시사한다. 핵심 종교 공간이라고 불리는 성전에서 연극, 오페라 또는 음악회가 공연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전시회나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한다. 부속 종교 공간에서는 신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문화 센터, 동아리, 평생교육이나 복지 프로그램 등이 실행되고 있다. 따라서 종교 공간을 단순히 신의 현존을 체험하는 거룩한 공간으로만 이해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세속의 영역을 끌어들이고 정화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종의 종교 공간과 같은 ‘거룩한 공간의 일상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2) 교회 공간의 변천사

 

사도시대에는 지금처럼 성당이나 제대가 없고 신자들이 하느님 경배를 위해 모이는 장소가 있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카타콤(지하 묘지)이 모임의 주된 장소였다.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한 집들은 2-3세기의 박해시대에 마련되었는데, 그것은 전례 회중이 모여서 기도했던 ‘전례 회중의 집’이었다. 3세기경에 비로소 교회 건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차 왕, 제후, 귀족들의 사저에 속한 경당 형식으로 도시와 시골에 성당 건축이 퍼져나갔다.

 

중세시대에는 왕, 제후, 귀족들의 사저에 부속으로 있던 경당들이 점차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더욱 화려한 성당 건축이 나타났다. 특히 교회는 중세 도시 내부에서 시의회 청사와 함께 봉건 권력의 핵심이었다. 

 

이 당시 교회는 도시 중심에 위치해 있었고, 교회 앞의 커다란 광장은 시 청사와 맞닿은 주 도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교회 광장은 휴식과 만남의 공간이면서 축제나 일상생활과 어우러진 열린 공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역 사람들이 교회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하였다.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자본주의의 발달과 계몽주의에 따른 세속화로 교회는 도시 중심이 아닌 부수적 공간이 되었고, 세속과는 단절된 신자들만의 집회를 위한 성소로 남게 되었다. 이것을 시공간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시간과 공간이 전통적으로 통합된 ‘위치 구속성(situatedness)’의 형태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이 묶여있었을 중세 당시에 교회 공간은 모든 삶의 활동과 상호작용을 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분리’에 따라 시간과 장소의 특수성에 구애받지 않는 사회활동이 가능해지면서 교회 공간은 일상의 삶과 분리되어 오로지 종교적 의례를 위한 장소로만 기능하게 되었다. 현대의 교통과 통신수단의 획기적 발달은 이를 더욱 촉진시켜 교회 공간에서 신자들을 분리시켜 가상 공간에서의 교회 참석 현상을 낳게 되었다.

 

최근 정보화와 세계화로 공간의 재배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일상의 모든 활동과 교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이 생성되고 있다. 교회 공간도 성스러운 예식만을 거행하고 그에 따른 행정이나 단체 모임 공간, 기도 공간, 교육관, 사제관이나 수녀원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시대적 변화에 따른 공간의 재배치가 일어나 공간 활용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노인대학, 어린이 집, 재활용 매장, 우리농 매장, 문화 센터, 노인 전문 상담실, 가족 상담실, 휴게실, 동아리방 등의 새로운 공간들은 신자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창출되고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교회 공간은 중세시대에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통합된 기능을 수행했던 양상으로 복귀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3.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 실태

 

이미 유럽 대부분의 고풍스러운 성당들은 교세의 침체로 신앙의 자리이기보다는 상업적 색채를 띤 문화 자원으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 성당 건물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명소가 되었고, 성당 광장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물론 관광지로서 성당의 개방은 관광객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통한 간접 선교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많은 유럽 성당들은 더 적극적으로 오페라나 연극, 음악회 등을 공연하는 장소로 성당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교회로 끌어들이는 문화사목을 펼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급변하는 사회현상과 맞물리며 점차 사회에 자신을 개방시키는 사목을 실천하고 있다. 열린 사목 정책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사목을 위한 가톨릭 공간의 다양한 활용이다. 가톨릭 공간은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이다. 각 본당이 보유한 공간들에 대한 상황은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전례나 단체 활동 등 본당 신자들이 사용하는 시간 이외에 비어있는 본당 공간들을 지역사회에 개방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점차 실시되고 있다. 물론 가톨릭 공간의 활용은 지역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1) 지역에 따른 차이

 

성당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본다면 서울의 강북과 강남의 차이가 확연하다. 강남보다 강북에 위치한 성당들이 주로 문화 프로그램을 많이 실시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명동 주교좌 본당, 신수동본당, 화곡본동본당, 목동본당, 신사동본당, 의정부교구의 일산본당, 그 밖에 다른 여러 본당에서 문화강좌나 동아리가 정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반면에 강남에서는 문화적 활용이 별로 없는 편이다. 예를 들어 서초동본당이나 대치동본당과 같은 강남의 대표적 본당에서조차 문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강남 지역 자체가 문화 공간들이 많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굳이 성당에서 문화강좌를 개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역삼동본당에 문화 프로그램이 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삼동본당은 1999년에 ‘강남 가톨릭 문화원’을 개원하였고, 또한 그곳에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 분원이 개원되어 문예 창작, 건강관리, 외국어 교육, 교양교육, 심리교육, 영성교육, 자녀교육 등 7개 과정에 총 29개 과목의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다. 

 

강북에서 문화강좌를 실시하는 본당들은 주변에 문화 공간이 부재하거나 다른 문화 센터보다 낮은 수강료, 또는 성당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프로그램(예: 영어성서강좌, 어린이 방과 후 교실 등) 때문에 신자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접근이 용이하다. 또한 서울보다는 지방에 있는 본당들의 문화적 활용이 활발하다. 예를 들어 수원교구의 안양 중앙본당과 용인 신갈본당, 대전교구의 대천해수욕장(요나)본당과 전민동본당, 의정부교구의 신곡2동본당 등에서는 문화적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다음의 <표 1>은 본당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몇몇 성당을 개괄한 것이다.

 

2) 시설 유형에 따른 차이

 

가톨릭 공간은 시설 유형과 활용 프로그램에 따라 다음과 같이 7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문예공연 시설(음악회, 영화 상영, 연극 공연, 문학 낭송회 등)

(2) 전시 시설(박물관, 미술관 등)

(3) 문화보급 시설(문화강좌, 노인대학, 공부방 등)

(4) 사회복지 시설(양로원, 급식, 재활 센터, 장애인 시설, 쉼터, 근로자 상담, 청소년 상담 등)

(5) 피정, 성지 시설(피정 센터, 순교성지)

(6) 건강(스포츠, 심신수련)

(7) 사회문화 시설(생태환경, 평생의례, 축제, 종교 간 연대 등)

 

위의 유형화에 따라 한국 가톨릭 교회는 다양한 시설 구비와 프로그램 운영을 하고 있다. 명동본당이나 전민동본당은 음악회나 전시회를, 일산본당은 유기농 매장이나 재활용 매장을, 대화본당은 농산물 축제와 음악회, 전시회를, 요나본당은 피서지 관광사목의 일환으로 음악회와 미술 전시회를, 대학동본당은 여성 상담소를, 명동본당, 목동본당, 신수동본당은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신사동본당은 도서실, 컴퓨터실, 영화 상영, 음악제, 구연동화 등 혼합된 형태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본당 신자들뿐만 비신자들도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므로 본당은 지역사회에 열린 문화 공간이 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본당들이 가톨릭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목, 2005년 4월호, 김민수(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지역사회와 교회 -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 (2)

 

 

4.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에 대한 이론화

 

최근 한국 가톨릭 교회가 성당을 문화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추세는 교회 내외적인 이중적 변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에 한국의 시민사회 발전과 그에 따른 공적 영역의 확대 과정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 대사회적인 참여를 유도해 왔다. 교회는 복지, 인권, 환경, 생명, 정의 등의 문제에 지역사회나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열린 사목’의 형태를 점차 지향하고 있다. 반면에 교회는 최근 신자 증가율의 감소, 냉담자 증가, 주일미사 참여율의 저하, 고령화 등 내부적인 문제에 봉착하여 전통적인 사목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교회는 이 시대의 코드인 ‘문화’를 갖고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 현상은 ‘열린 사목’ 또는 ‘통합 사목’의 일종이며, 동시에 ‘사목에 대한 문화적 접근’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사회학의 입장에서 ‘종교의 탈(脫)사사화’로, 문화신학의 입장에서 ‘문화사목’이라는 틀로 해석하고 이론화할 수 있다고 본다.

 

1) 종교의 탈사사화

 

(1) 종교의 사사화(私事化, privatisation)

 

서구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따라 종교는 그것의 사회적 공적 영향력의 감소 때문에 개인적 관심사로 위축되어 왔다. 곧 세속화는 교회와 대중의 관계, 종교제도 자체의 영향력, 그리고 종교적 믿음의 대중성과 영향력을 감소시키거나 쇠퇴시켰다. 이러한 세속화 과정과 맞물려 진행되어 온 것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의 위축’으로 표현되는 종교의 사사화 현상이다. 유명한 종교사회학자인 하비 콕스(Harvey Cox)가 언급하였듯이, 종교의 사사화는 문화적 통합에 대한 상징을 결정하는 종교적인 힘이 사라짐을 의미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공적인 문화 영역에서 ‘성스러움의 쇠퇴’라고 불릴 수 있었다. 종교의 성스러움은 오로지 성전이나 개인의 영역에 머물게 된 것이다.

 

(2) 종교의 탈사사화 : 공적 영역의 재영토화

 

종교의 사사화에 대한 진술은 1980년대 이후로 점차 그 실효성에 의문을 낳게 되었다. 또 다른 종교사회학자인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과거 자신의 세속화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세속화 문헌들 전체의 틀이나 핵심이 오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종교 부흥이 ‘국제 정치 영역’, ‘전쟁과 평화의 영역’, ‘경제 발전 영역’, ‘인권과 사회정의의 영역’이라는 네 가지 영역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바이어는 미국의 ‘뉴 라이트 운동’,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이란의 혁명’, ‘이스라엘의 현대 종교 시오니즘’, 그리고 ‘종교적 환경주의’라는 다섯 가지 예들을 제시하면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종교의 공적 영향력을 서술하고 있다(The Desecularization of the World: Resurgent Religion and World Politics, 2002년, 15면 참조).

 

이러한 종교의 부흥은 궁극적으로 ‘종교의 탈사사화’ 현상으로 불릴 수 있다. 따라서 종교의 탈사사화는 세계 종교가 주변적이고 사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종교, 도덕의 영역을 재(再)정치화하며, 공적인 경제, 정치, 문화 영역을 재규범화하는 것을 뜻한다.

 

(3) 한국 가톨릭 교회의 탈사사화 현상

 

한국사회의 변화와 함께 한국 가톨릭 교회는 1970-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사회정의 실현을 통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참여에 힘입어 2003년 12월 31일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서 천주교 신자는 443만 791명으로 총인구 대비 신자 비율이 9.1%를 기록할 정도로 가톨릭 교회는 성장하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실현되면서 1990년대 이후에 한국 가톨릭 교회는 보수화, 탈정치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동시에 새롭게 출현하는 다양한 신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생명, 인권, 환경, 복지, 남북통일 등의 사회적, 공적 문제에 정부기관이나 비정부 기구(NGO)들과 연대하면서 가톨릭 교회는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는 종교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의 쇠퇴를 예언한 ‘세속화론’이나 ‘사사화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증이 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가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가운데 점차 사회에 ‘열린 교회’로 변화되고 있다. 본당 안에 설립되는 다양한 복지시설은 지역 자치제나 지역 기관들과 연계되고 있고, 동시에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최근 여러 본당들이 어린이 집, 무의탁 노인의 집, 노인전문 상담실, 유기농 매장, 재활용 매장 등 지역 특성에 적합한 복지공간들을 마련하는 추세이다. 또한 본당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복지활동을 수행하는 추세에 있다. 지역 내의 저소득 가정, 장애인, 노인, 아동과 청소년, 실직자, 이주노동자 등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여러 계층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 다양한 자원봉사가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탁구장, 농구장, 지역주민의 회합장소, 영안실, 납골당, 또는 단주나 단도박 모임 등 지역사회에 본당 시설과 공간을 개방하는 예들도 있다. 본당의 시설을 지역사회에 개방함으로써 교회는 지역주민들이 교회에 더욱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간접선교가 이루어지게 할 수도 있다.

 

좀 더 거시적으로는, 교회가 환경문제에 대해 본당 단위로나 여러 종단, 시민단체와 함께 환경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새만금 갯벌 문제에 대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는 정부에 대해 새만금 방조제 공사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또한 교회는 생명이나 인권 옹호를 위한 캠페인이나 시설을 설립하고 있다. 인간 배아 실험을 허용하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대한 개정을 요구해 오고 있고, 낙태나 자살, 안락사와 같은 죽음의 문화에 대항하며,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사회 소외층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목을 펼치고 있다. 남북통일과 북한 주민을 위해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교구별 위원회, 그리고 개별 본당에서 민간차원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공적 영역에서 대사회적 기능을 활발히 실천함으로써 과거의 전통적이고 소극적인 선교와 사목의 틀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사회에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단순히 근대화로 상실해 왔던 자신의 힘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기보다는 시대적 변화 안으로 들어가는 토착화(Inculturation) 과정이며 시대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2) 문화신학

 

문화신학은 문화와 종교 간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정립하는 학문이다. 종교가 문화를 포용하여 실체를 드러내고 문화가 종교를 매개하려면 반드시 문화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모든 문화 현상에는 구체적인 종교체험이 나타난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장소로 변모하는 교회공간이나,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에 의한 가상공간에서조차 종교적 체험을 언급할 수 있다. 문화신학은 바로 이러한 체험들을 탐구하여 서술해 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가톨릭 교회 안에서 거룩한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현상도 문화신학의 입장에서 분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서는 두 가지 해석의 틀, 곧 ‘성(聖)과 속(俗)의 통합원칙’과 이 시대의 새로운 사목 패러다임인 ‘문화사목’으로 문화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1) 성과 속의 통합원칙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에 따르면 종교라는 사회 현상은 성과 속의 이분법적 구분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 Joseph Ward Swain, trans., London, Allen and Unwin, 1915년, 52면 참조). 모든 종교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성과 속의 이분법은 16세기 이래 유럽에서 근대성의 태동과 계몽주의의 확산에 따른 종교의 세속화로 가속화된다. 한국 가톨릭 교회도 여러 분야에서 성과 속의 분리를 철저히 체험해 왔다.

 

먼저,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차별이 존재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직분상의 차이만 존재할 뿐 서로 평등한 존재임을 천명했음에도 최근까지도 성직자는 거룩하고 평신도는 거룩하지 못한 존재로 차별화되어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를 굳건히 해왔다.

 

둘째로, 신앙의 실천이 너무나 자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격리된 채 신앙과 삶의 괴리라는 고질적 문제가 있어왔다. 이러한 문제는 신앙의 형식과 내용을 사회구원보다는 개인구원에 머물러 있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셋째로, 거룩함의 초월성을 강조한 나머지 영성의 지나친 내면화와 예식화로 성스러움의 체험을 일상의 자리가 아닌 성전에 국한시키는 ‘성전주의’의 태도를 낳게 하였다. 더 나아가서 성당이라는 건물의 신성성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사회와 단절된 폐쇄공간으로 남아있게 하였다.

 

그러나 다원화된 탈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종교의 탈사사화 과정과 맞물리며 성과 속의 통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학적으로는 정치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등으로 구현되어 성과 속으로 분리된 신앙이 아닌 ‘성속의 변증법’에 의한 ‘일상의 신앙화’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문화의 시대에서는 ‘문화의 복음화’로 불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상 속에서 성의 육화를 통해 속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인은 언제 어디서라도 주어진 시공간에서 하느님을 고백하고 체험하며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최근 불교나 개신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의 사목자들 사이에서도 성당이라는 성스러운 장소를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방하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열린 사목을 취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체가 모셔진 감실이 있어서 제대에서는 성스러운 미사전례나 그 밖의 전례만 행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음악회나 다른 행사도 가끔씩 허용되며, 미사 중에 음악, 영상, 연극 등의 시청각을 활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단적인 예들을 통해서도 성직자나 평신도들이 지녀왔던 성과 속에 관한 의식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아직도 일부 성직자나 평신도들 중에는 성이 지나치게 속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일상 안에서 자연스레 체험할 수 있도록, 또한 성스러운 장소가 총체적인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는 문화를 실천하도록, 교회가 개방적인 태도를 수용하는 데서 이 시대가 요청하는 문화의 복음화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2) 새로운 사목 패러다임: 문화사목

 

문화나 사목은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 끝까지 선포하라는 지상명령인 ‘복음화’를 위한 형식이며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둘 다 시대와 역사를 창조하는 동시에 산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역동성을 지닌 문화와 사목의 융합은 초대교회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시대적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 왔다. 각 시대의 문화에 따른 사목의 형태와 내용은 다르게 나타났지만 기본노선은 문화의 복음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문화사목’이다. 최근 종교공간의 문화적 활용 현상은 문화변동과 사목변동의 만남으로 해석될 수 있다.

 

① 문화변동: 급변하는 한국사회

 

199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사회는 문화의 세계화와 맞물리며 문화산업, 문화공간의 확산으로 상당한 문화변동을 겪어왔다. 뉴미디어의 도입은 여가와 소비생활을 더욱 증대시키며 새로운 문화공간(예: 노래방, 비디오방, PC방, 찜질방, 헬스클럽, 복합영화상영관 등)을 생성시켰고, 다양한 하위문화들(각종 스포츠, 댄스, 요리, 패션, 디자인, 여행 등)를 확산시켜 왔다.

 

한국사회의 급격한 문화변동에 따라 확산되고 있는 다양한 문화공간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화가 낳은 부산물이며 동시에 정부의 문화산업 육성정책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공간들이 출현하는 반면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구민회관, 주민자치센터, 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관, 청소년회관 등의 공공건물을 확대하고 있다.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공간의 확대 현상은 분명 교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신자들은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본당 안의 기존 단체 활동보다는 본당 밖의 다양한 문화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본당 신자 수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주변의 백화점이나 대학의 평생교육원, 또는 구민회관이나 복지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거기에다가 최근 주5일 근무제나 주40시간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주말농장 체험, 각종 레포츠, 여행, 관광 등으로 실천되는 여가문화는 신자들의 교회 참여를 저조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히 교회공간과 사회의 문화공간 사이의 대조 또는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지닌 사목자는 거룩한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여 신자들에 대한 관리나 그들의 문화적 욕구 충족에 초점을 맞추어 문화사목을 수행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② 사목변동

 

가톨릭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추세는 기존사목 개념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가톨릭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목을 ‘신자들의 영혼을 돌보아주는 일’(개인구원)로 보는 전통적 관점으로는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목자들 상당수가 전통적인 사목 개념을 가지고 사목정책을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반면에 오늘날의 사목이 개인구원뿐만 아니라 사회구원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미 20년 전에 있었던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은 사목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교회의 사목이란 (…) ‘인간구원을 위한 봉사’ 활동이며 ‘보편적 구원의 성사’인 교회가 ‘지금 이곳’에서 처한 세상과 관련을 맺는 모든 활동”(「지역사목」, 6항)이라고 사목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지금 처해있는 세상이 사목활동의 영역이며 따라서 사목의 대상은 종교, 인종, 이념, 국가를 초월한 모든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목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면 오늘날의 사목은 사회구원을 포함하여 다양하고 다층적인 형태와 내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냉담자 증가, 주일미사 참석률 감소, 청(소)년층의 감소와 고령화 등 교회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게 할 사목정책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그러한 사목정책 중의 하나로 의식이 있는 사목자들은 지역사회와 다양한 연계를 가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사목에 대한 문화적 접근 방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교회는 문화사목을 점진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3)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에 대한 모델링

 

위에서 거론된 이론들을 근거로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을 위한 모델링은 다음과 같다.

 

위의 그림은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 현상에 관해 종교사회학과 문화신학이라는 두 가지 접근으로 모델화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종교의 탈사사화에 따라 종교는 사회의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성과 속의 통합이라는 인식과 실천의 변화를 유도하였으며,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이라는 문화사목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겠다. 또한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문화와 사목의 변동이 문화사목의 실천과 확대에 영향을 끼쳐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문화변동은 종교의 탈사사화에 영향을 미쳐왔고, 종교의 탈사사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목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사목, 2005년 5월호, 김민수(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지역사회와 교회 -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 (3)

 

 

5.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에 대한 사례 분석  - 문화강좌에 관하여

 

이번 호에서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실시하는 문화 프로그램들 가운데 문화강좌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현황과 전망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강좌는 신앙인과 비신앙인 양쪽을 포함할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가톨릭 공간을 활용하는 단적인 예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강좌는 시설분류에 따라 ‘문화보급시설’ 유형에 속하는 활용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문화강좌는 대체로 교양, 취미, 취업 등을 목적으로 한다.

 

1) 본당 문화강좌에 대한 이론적 분석

 

① 종교의 탈사사화 영향

 

본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는 한국 가톨릭 교회가 탈사사화된 결과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에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1990년대에는 환경, 생명, 인권, 통일 등의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투신하면서 탈사사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교회의 사회적 참여는 지역사회와 주민에게 열린 교회가 되면서 그들과 여러 분야에 걸쳐 연대하는 사목을 실천해 왔다. 가장 먼저 열린 사목에 앞장선 성당은 명동 주교좌 본당이다. 정의구현운동의 산실 역할을 수행해 온 동시에 명동 주교좌 본당은 1987년부터 범우관을 마련하고 성서 40주간을 비롯하여 사진, 고려 수지침, 서예, 꽃꽂이, 기타 등 여러 문화강좌를 개설하여 현재까지 많은 신자와 비신자들을 참여시켜 왔다.

 

② 성과 속이 통합되는 사목

 

1990년대 이래 여러 본당에서는 종교적 탈사사화 현상에 힘입어 거룩한 가톨릭 공간을 개방하여 백화점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따라 수용하게 되었다. 과거에 오로지 신앙행위만을 목적으로 신자들끼리 모이는 장소로 인식했던 전통적 가톨릭 공간 이해에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강좌의 대상도 신앙의 유무에 관계없이 신자와 비신자를 모두 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는 신자들에게 친교와 일치의 기회를, 비신자들에게는 간접선교의 효과를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③ 문화사목의 한 방법

 

종교의 탈사사화로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 사목의 한계를 느끼며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사목을 지향하게 되었다. 단순히 영혼의 구원이라는 개인구원 차원에만 머무는 사목에서 벗어나 사회구원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목변동과 더불어 교회는 사회의 문화변동에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 정보화와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가 높아지면서, 욕구 충족 방식의 하나로 평생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 백화점, 아울렛, 문화센터, 구민회관, 복지관 등에서 요즘 유행하는 다양한 문화강좌를 매우 활발하게 실시하고 있다. 또한 스포츠, 댄스, 요가, 테디베어, 음악, 미술 등 수많은 강좌가 개설되고 증가되고 있다.

 

특별히 생각해야 할 점은 일반 사회에서 실시되고 있는 문화강좌는 백화점이나 문화센터와 같이 이미 자본화된 공간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에 따른 공간의 자본화로 공적 공간이 점차 사적 공간으로 되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 현상에 대응한 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비록 지방자치제의 도입에 따라 지방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중소도시나 도서지방일수록 공적 문화 공간의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성당을 자본화된 공간에 대한 대안공간으로 지역사회에 점차 개방하고 있다. 사목에도 문화적 접근이 요구되면서 이러한 대안공간을 활용하여 문화강좌를 개설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본당은 그 구성원과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문화강좌를 실시함으로써 이 시대에 필요한 문화사목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2) 본당별 문화강좌 개괄

 

필자는 서울대교구에서 문화강좌를 실시하는 본당 가운데 4곳(명동 주교좌 본당, 목5동본당, 신수동본당, 화곡본동본당)을 선정하여, 그곳에서 실시되고 있는 문화강좌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각 본당 문화강좌의 프로그램명과 전체 참여자 수는 다음 표에 나타나 있다. <표> 4개 본당 문화강좌 현황(2004년 현재)

 

① 분류

 

본당별로 문화강좌는 약간의 차이는 보이지만 대체로 ‘교양교육’과 ‘문화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교양교육에는 한문, 한글학교 등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비롯해서 독서지도자 양성, 수화교실, 언어회화반 등 목적지향적인 과정이 있다. 문화교육으로는 오르간, 기타, 바이올린, 노래교실과 같은 각종 문화예술의 기능교육, 꽃꽂이나 퀼트, 또는 사진과 같은 취미생활교육, 수지침이나 댄스 등의 건강 관련 교육 등이 있다. 초창기의 문화강좌는 주로 취미생활교육을 위주로 하였지만, 최근에는 건강이나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요가, 스포츠댄스, 벨리댄스 등 건강 관련 교육에 비중이 커지고 있다. 

 

② 일반 문화강좌와 다른 점

 

일반사회에서는 백화점, 각 신문사의 문화센터, 구민회관 등에서 대형으로 문화강좌를 실시하고 있어서 종교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성당에서 실시하는 교육 시스템은 상당 부분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강좌에 참여하는 신자와 비신자의 비율을 본다면 명동본당은 60:40, 목5동본당은 50:50, 화곡본동본당은 70:30, 그리고 신수동본당은 90:10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가 일반 사회단체에서 하는 교육과 또 다른 점은 저렴한 비용과 접근의 용이성, 그리고 프로그램 선택의 자율성에 있다. 물론 이외에도 문화강좌 강사들의 일부는 본당 구성원 중에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경우도 많고, 더군다나 저렴한 강사비를 받고 자원봉사를 한다는 면에서 일반 문화강좌와 구별되기도 한다. 

 

③ 참여도와 만족도

 

본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에 대한 참여자는 본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존 신자 수에 비하면 많은 편은 아니다. 그 이유로는, 홍보 부족, 본당신부의 관심 부족, 시설의 열세, 다양하지 못하거나 시대 코드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문화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은 교육에 대단한 만족감을 보이고 있고 지속적인 교육을 원하고 있다. 

 

참여자들 가운데는 배우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성당에 와서 문화강좌를 듣는 사람들, 특히 기혼여성들, 그중에서도 다른 기관에서 교육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높은 참여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성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강좌들에 대해 만족하는 편이었다. 특히 참여자는 강좌의 내용에 만족함을 나타내고 있다.

 

④ 효과

 

본당에서 마련하는 문화강좌는 세 가지 주된 효과를 내는 역할을 한다고 보겠다. 첫째로, 문화강좌는 본당 신자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둘째로, 문화강좌는 본당신자들에게 소속감을 갖게 하여 냉담을 방지하며 동시에 친교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시켜 준다. 셋째로, 문화강좌는 지역주민들에게 성당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여 간접선교의 역할을 수행한다. 문화강좌와 같은 문화사목 프로그램은 위에서 언급한 부가가치라는 효과를 교회 안에서 창출하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보겠다.

 

 

5. 결론

 

지금까지 3회에 걸쳐 가톨릭 공간의 문화적 활용에 관해 이론적 틀을 마련하고 본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를 이 틀에 따라 간단히 설명해 보았다. 근대사회에서는 세속화로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그 권위와 힘이 축소되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종교의 탈사사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성과 속의 이원론을 타파하고 성과 속을 통합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또한 종교의 탈사사화 현상은 전통적 사목의 형식과 내용을 변화시키면서 환경, 생명, 인권, 통일 등 현대의 당면한 문제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사목으로 나아가도록 영향을 미쳐왔다. 더 나아가서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거대한 문화변동은 교회의 제도나 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교회는 문화적 접근을 통한 사목인 문화사목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화사목의 한 예로서 성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는 종교의 탈사사화, 성과 속의 통합, 그리고 사목과 문화의 변동에 따른 결과이다. 이미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1980년대 말 이후로 현재까지 여러 본당에서 점차 문화강좌를 실시해 오고 있다. 일반 사회에서 실시되는 문화강좌와 차이를 두면서 본당에서는 그 구성원과 지역주민들 모두에게 그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열린 공간이 되고 있다. 본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는 그 구성원들에게는 친교와 일치를 나누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비신자들에게는 간접선교의 효과를 거두는 바람직한 문화사목의 전형적인 예가 되고 있다고 보겠다. 앞으로 본당에서 실시되는 문화강좌가 더욱 확산되기를 바라며 몇 가지 개선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성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기회만 되면 더 배우고 싶다.’고 대답한 참여자가 많기 때문에 학습지향적인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되도록 많이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실현을 위한 방편이고 자기 삶의 만족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향후 문화강좌가 크게 역점을 두어야 할 점은 질 좋은 문화강좌 프로그램 개발이다. 최근 한국인들의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점을 감안한다면 프로그램 개발은 문화강좌의 지속성에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 다양한 문화강좌 참여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프로그램 유치는 참여자들에게 취향에 따른 선택의 폭을 넓혀주며,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 문화강좌에 대한 인식 확대이다. 성당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는 주로 본당 주보나 개인 접촉을 통해 홍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홍보는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에도 문화강좌를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저변 인식 작업이 필요하다. 

 

- 가급적이면 문화강좌에서 배운 것을 본당 미사전례나 행사와 관련지어 발표하거나 전시하는 연계 행위가 따라야 한다. 이것이 통합사목의 일환이다. 이러한 사목적 견지에서 문화강좌가 실시될 때 비참여자들에게도 강좌내용이 전달되고 그들의 참여 동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 향후 문화강좌는 참여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이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곧 문화강좌에서 배운 것을 일상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으로 강좌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성당에서 실시되는 문화강좌는 지역사회의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강좌와 경쟁이 되기 때문에 성당에서만 할 수 있는 고유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특별히 지역사회 안에 소외된 계층에 우선적 관심을 두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목, 2005년 6월호, 김민수(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1,57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