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내 마음의 북녘본당: 평양교구 신의주본당 - 가난한 이들 위해 병원과 학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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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5 ㅣ No.973

[내 마음의 북녘본당] 신의주(新義州) 본당(1922~1949)


가난한 이들 위해 병원과 학교 운영

 

 

신의주 지방에는 1910년 ‘김소사 구네군다’ 자매가 이주하면서 신앙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김소사 자매는 1912년에 작은 공소를 마련하고 열심히 전교 활동을 펼쳐 공소가 비좁을 지경이 되었다. 1921년 신의주가 평양북도 지방의 중심 행정구역이 되자 교회는 이 지방의 발전에 큰 기대를 하게 된다.

 

마침내 1922년 신의주본당을 신설하고 초대 본당신부로 박정렬(바오로) 신부를 임명하였다. 1924년 1월에 박우철(바오로) 신부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1926년에 제3대 방(P. Byrne) 신부가, 1927년 제4대 변(Roy Petipren) 신부가 차례로 주임신부가 되었다. 변 신부는 야학을 개설하고, 메리놀 수녀회를 초빙하였으며, 시약소와 병원을 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풀었다. 1930년에는 성당이 신축되어 제2대 목(J. Morris) 교구장에 의해 장엄한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1935년 제5대 기(Hugh Craig)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전임자의 사업을 계승, 확장하는 데 힘썼다. 이렇게 신의주본당은 10년 동안 크게 성장하였는데, 1936년 부활주일로부터 성신강림 사이 영세자가 200여 명, 견진자 300명이나 되었다. 신의주 지역의 대표적인 자선병원인 성모병원은 그간 성당의 좁은 지하실에서 많은 환자 진료에 큰 곤란을 겪다가 1936년 봄부터 백(Leo Peloquin) 신부의 도움으로 본당 구역 내에 새로이 연와제 2층 건물을 착공하여 가을에 완공을 보아 새 건물로 옮기게 되었다.

 

1940년 3대 주임으로 다년간 봉직했던 변(Roy Petipren) 신부가 다시 부임하였다. 그리고 로마 유학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박용옥(디모테오) 신부가 보좌로 임명되어 사제로서의 첫발을 신의주에서 내디뎠다. 1941년 12월8일 신의주 경찰서에서는 시내 진사동, 마전동 두 천주교회의 성직자, 수도자 전원을 연행하여 감금시켰다. 그리고 메리놀 수도회 소속 성직자와 수녀님들이 추방된다.

 

1942년 2월 서울에서 파견된 오기선(요셉) 신부가 부임하면서 평양교구는 한국인 성직자들에 의해 재출발한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종교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는데, 1943년 교회에서 운영하던 성심학교와 야학은 폐교당하고 성탄절 미사를 일경들 몰래 거행하다가 문제가 되어 오 신부와 신자들 모두 연행되어 문초를 당하고 신사참배를 강요받았다. 1944년 5월 신의주본당에 홍건항(갈리스도)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은 신의주본당은 이 벅찬 감격을 교회의 상징으로 남아 있던 성당의 종을 울려서 해방의 기쁨을 압록강 건너에까지 울려 퍼지게 했다.

 

그러나 1948년 12월, 소련군 철수를 전후하여 공산정권은 교회를 더 탄압하기 시작하였고 사제들은 선교 활동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 신의주본당은 공산정권이 진사동의 성당과 사제관 등 부속 건물 전부를 몰수하자 홍건항 신부는 부득이 이석태(베드로) 본당 회장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로부터 이석태 회장 집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1949년 12월10일 밤 본당 홍건항(갈리스도) 신부는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보위부원들에게 연행되어 가며 신의주본당은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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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한 살아있고, 기도하는 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지금은 한 명의 사제, 한 명의 수도자도 찾기 힘든 북녘 땅에 한국전쟁 이전에는 57개의 본당과 5만2천여 명의 신자가 있었습니다. 그 북녘 땅의 교회가 70년째 신앙의 자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북녘 땅의 57개 본당공동체가 다시 되살아날 때까지 한반도 평화와 북한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www.mychurch.co.kr)을 펼치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7월호, 김훈일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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