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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쇄신하기 위해 쇄신해야 할 하느님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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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12 ㅣ No.259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 특별기고


쇄신(刷新)하기 위해 쇄신(碎身)해야 할 하느님 백성



교회는 본질적으로 쇄신하는 공동체이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항상 위기 앞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쇄신을 통해 다시금 그 힘과 열정을 되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을 깊이 성찰하며 한국교회의 변화를 고대하고 있는 박동호 신부로부터 오늘날 한국교회의 쇄신 노력이 필연적인 과제임을 들어본다.


사전을 찾아보니, ‘쇄신(刷新)’은 “묵은 나쁜 폐단을 없애고 새롭게 함”이다. 그 밑에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줄임말인 ‘쇄신(碎身)’이 있는데, 그 뜻은 ①“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함” ②“목숨을 내놓고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움”, ③“참혹하게 죽음 또는 죽임”이라고 적혀있다. 이 두 말은 한자로는 다르지만 우리말로 읽고 쓸 때는 같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쇄신(刷新)하기 위해 쇄신(碎身)해야 한다. 사람의 몸도 수명을 다한 세포는 소멸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냄으로써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무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를 우리는 대를 잇는다고 말한다. 쇄신하지 않으면 ‘묵은 나쁜 폐단’이 축적되어 결국 ‘생명력’을 잃고 쇄신(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세상 속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쇄신하기 위해 쇄신하면 ‘발전(생성)’할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소멸한다. 한국교회에는 낯설지만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는 역사 속에서 세 번의 큰 전환기(위기)를 겪었다. 첫 번째는 초대교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였다. 성경을 공부할 때 흔히 ‘바오로 사도의 이방 선교’도 들어봤을 것이다. 교회는 이를 ‘성령강림’으로 기념한다. 두 번째는 중세의 ‘종교개혁’ 혹은 ‘그리스도교 분열’이다. 이 위기에서 (가톨릭)교회는 쇄신하기 위해 쇄신했다. 그런데 이 쇄신은 분열을 극복하고 ‘일치’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교회의 세 번째 쇄신의 열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3)에서 드러났다. 공의회의 정신은 교회의 (세상에 대한) ‘쇄신과 적응’, ‘원천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찾기’ 정도로 요약된다. 이 공의회를 ‘제2의 성령강림 사건’으로 또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가져온 사건이라고 평가하는데, 그에 걸맞게 이 공의회를 ‘개혁(쇄신) 공의회’ ‘사목 공의회’ ‘일치 공의회’라고 부른다.

공의회는 교회의 자기이해를 ‘지상의 완전한 사회’에서 ‘역사를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으로 전환한다. 하느님 백성(교회)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결합, 인류의 일치를 위한 표징이며 도구이다.(교회헌장 참조) 19세기 20세기의 세계는 북반부 지역과 남반부 지역 사이의 경제적 불균형과 지구 동쪽의 ‘사회주의 국가’와 서쪽의 ‘(개인의)자유주의 국가’ 사이의 갈등과 분열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교회)에게 이 세상에서 ‘일치’와 ‘구원’의 표징이 되라고, 세상과 모든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라고(보편적 성화소명), 세상을 복음화 하라는 사명을 주셨다.(사목헌장 참조) 물론 교회의 이 모든 쇄신과 사명 수행의 ‘원천’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온 인류의 구원과 해방’이다.

공의회가 폐막한 지 반세기가 흘렀다. 정보통신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은 이 세상을 ‘지구촌’으로 변화시켰다. 이를 ‘세계화’라고 한다. 그러는 동안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을까? 하느님의 얼굴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이는가? 하느님의 이름과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가?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 물음을 요약하면 “세상이 ‘세계화’의 길을 밟는 과정에서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에 헌신했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성찰과 평가는 다양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 역시 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며 인류와 교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최근에 예수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제자’로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보편교회에 제시한 「복음의 기쁨」에서 ‘세계화의 과정’과 ‘교회의 사명수행’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복음의 기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세상에 대한 우려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교종은 ‘세계화’가 드리운 ‘그늘’(경제적 불균형과 인류의 분열과 폭력)이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미래를 형성할 것”(185항)이라고 믿는다. 「복음의 기쁨」은 오늘의 신자유주의 경제를 “새로운 독재의 출현”(56항)으로, 아예 “새로운 독”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문제에 대해 문헌은 전체 288항 가운데 무려 40개 항을 할애하고 있는데다가 그 내용 역시 명료하다. 교종은 인류의 분열과 폭력(무력사용의 전쟁과 테러) 역시 세계화되고 있는데다가, 다른 자리에서는 심지어 오늘날의 전쟁과 테러가 경제적 이익을 노린 이들이 획책한 ‘상업전쟁’의 의구심이 든다고까지 비판한다. 물론 세상이 가야 할 길은 ‘사회적 약자의 통합’이며 ‘대화로 가꾸는 평화실현’이다.

교회의 사명 수행에 대해서, 아마도 다음의 인용은 교종의 우려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의심과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용기를 꺾는다면, 창조적이 되기보다는 편한 상태로 머물게 되고, 결국 그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제자인) 우리는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아무런 적극적 역할을 맡지 않게 될 것이며, 게다가 교회가 천천히 썩어가는 데도 그저 바라만 보는 방관자가 되어버릴 것입니다.”(129항, 필자 역)

「복음의 기쁨」이 제시하는 교회가 가야할 길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는 것이며, 평화 실현을 위해 ‘사회적 대화’의 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징표(sign)는 두 가지가 있다. 지양(止揚) 또는 경고의 기능을 하는 표지와 가야 할 길 또는 지향(指向)의 기능을 하는 표지가 있다. 죽음의 길과 생명의 길을 미리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지양해야 할 길은 ‘자기보전’이며 지향해야 할 길은 ‘세상의 복음화’이다.(27항) 이를 프란치스코 교종은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길을 나섭시다. 모든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건네기 위해 나아갑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제가 사제들과 교우들에게 자주 한 말을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전 교회에 말씀드립니다. 저는 갇혀있으면서 자기만의 안전에 몰두하다가 건전하지 못한 교회가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거리에 나섰기 때문에 상처를 입고 다치고 먼지 묻히는 그런 교회를 더 좋아합니다.”

소수의 경제·정치·문화 영역에서의 독점과 다수의 배제가 일상화되고,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이 식어가는 이 땅에서 한국 교회는 ‘자기보전’의 길을 갈 것인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의 길’과 평화 통일을 위한 대화의 길로 나설 것인지 묻게 된다.

8월에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를 만나러 올 것이며, 우리는 그분을 환영할 것이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환영은 무엇일까? 마음에 담은 그의 뜻(지양과 지향), 그의 희망과 기쁨, 슬픔과 고뇌를 ‘공감’하며 ‘동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겉으로 잠시 환영하면서 속으로 언제나 공감하지도 동행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 땅의 교회와 세상의 쇄신(刷新)과 복음화를 위해 우리에게 쇄신(碎身)과 헌신을 간절하게 호소한다.

[가톨릭신문, 2014년 6월 8일,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정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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