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ㅣ사상

과학칼럼: 점을 치는 행위와 결정론적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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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0-03 ㅣ No.463

[과학칼럼] 점을 치는 행위와 결정론적 세계관

 

 

제가 사제서품을 받은 후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매우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우리 신자분들 중에 점집에 다니는 분이 예상외로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철학관이나 타로 점집뿐만 아니라 무당이 운영하는 점집도 다니시곤 하더군요. 특히 혼기가 찬 자식을 둔 부모님들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점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주는 것만 같은 점쟁이에게 기대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점을 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점을 봐도 잘 안 맞는다면 굳이 점을 볼 필요가 없

지 않겠습니까?

 

동양에서 점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사주(四柱)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이 네 가지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간지(干支)로 풀어쓰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둘을 합해서 흔히 사주팔자(四柱八字)라 부릅니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행위 안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은 그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로 결정된다’는 철학이 내재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개념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인데, 이것은 음(陰, 달), 양(陽, 해), 그리고 오행성(五行星)인 화성(火星), 수성(水星), 목성(木星), 금성(金星), 토성(土星)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특정 행성의 기운을 더 많이 지닌 채 태어나고, 그 기운으로 인해 성격과 건강 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금의 기운이 강하고, 또 어떤 사람은 화의 기운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죠. 음양오행을 따지는 행위 안에도 역시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은 그 사람이 태어난 시점에 따라 결정된다.’는 철학이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주팔자-음양오행 분석법은 물리학의 용어를 빌리면 ‘한 사람이 태어난 시점인 초기 조건’과 ‘사주팔자-음양오행의 기본 법칙’을 통해 한 사람의 미래의 운명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습니다.(물론 한 사람의 운명에는 그 사람의 태어난 시점 외의 다른 요소들, 예를 들어 부모의 환경 등도 고려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은 사실 17세기 이래로 고전물리학이 강조하던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질량을 가진 두 물체 간에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설명하는 중력 법칙(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도 불리죠.)을 발견한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그의 위대한 저서 『프린키피아』와 『광학』을 통해 ‘한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한 특정 시점인 초기 조건’과 ‘역학의 기본 법칙’을 통해 한 물체의 미래의 운동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강조했었습니다. 그래서 뉴턴의 세계관은 사주팔자-음양오행 분석법과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2022년 10월 2일(다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서울주보 7면, 김도현 바오로 신부(예수회, 대구 동촌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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