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세계교회ㅣ기타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시성을 바라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143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시성을 바라며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순국 백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많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여러 학술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은 기념학술대회와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고, 정부는 안 의사 유해를 찾기 위해 국제간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기로 했으며, 육군은 안 의사를 '장군'으로 호칭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안 의사에 대한 추모 열기는 교회에서도 뜨겁다. 서울대교구를 비롯 여러 교구는 교구장 집전의 추도미사를 봉헌하면서 그의 신앙과 위업을 현양하고, '안중근 토마스 장군' 동상 건립과 장학회 설립, 노래 봉헌 등 기념행사들도 진행됐다. 그리고 몇몇 교회단체들은 묵주기도 100만 단 봉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회가 안 의사를 추모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다. 역사 청산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지만,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고(故) 노기남 대주교의 안 의사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히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노 대주교의 일기수첩을 정리한 「노기남대주교연보」 1947년 3월 26일자에는 "안중근(도마) 37주년 대례연미사 거행 → 안氏 가문의 주최로"라고 기록돼 있다. 당시 봉헌된 미사가 '대례(大禮)미사'였다면, 미사를 집전한 노 주교는 안 의사를 현양하는 강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 주교는 해방 직후 귀국한 안 의사 가족에게 명동성당 안에 있던 가옥을 거처로 마련해주고 생활비를 지원해주었으며, 1950년대에는 이승만 정권이 상해 임시정부 출신들과 야당 정치인들이 주최하는 안 의사 추모행사를 막기 위해 장소 허락을 해주지 않을 때마다 명동성당을 내어주곤 했다. 그리고 은퇴 후인 1979년 9월 2일에는 명동대성당에서 안 의사 탄생 백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안 의사의 의거가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지 않음을 천명함으로써 안 의사와 교회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한 가장 오래된 자료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내용이다.

 

김 추기경은 1993년 8월 21일 한국가톨릭문화사연구회가 주최한 '안중근 토마스의 신앙과 민족운동' 심포지엄 추도미사에서 "일제치하의 한국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의사 의거에 대해 …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이 모든 과오에 대해 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과를 하라면 사과를 할 것이고 속죄를 해야 한다면 속죄를 하겠습니다"하고 강론했다.

 

그러면서 김 추기경은 "안 의사의 삶은 크리스찬생활의 모범이었고… 안 의사의 의거는 교회정신으로 봐서도 충분히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음"을 천명했다.

 

김 추기경 강론은 그동안 한국교회와 역사학계에서 제기돼온 안 의사에 대한 제도교회의 과오를 인정하고 과거사를 청산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3월 26일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미사 강론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자신의 생애를 그리스도의 생애와 일치시키고자 노력하신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독립 투쟁과 의거는 신앙의 연장선상이었다"고 강조하고, 따라서 "안 의사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역설했다. 정 추기경은 또 이날 추모미사는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가톨릭 신자 신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 추기경, 정 추기경 강론과 여러 자료들 그리고 그간 연구결과들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안 의사가 열정적인 전도인, 민권운동가, 교육자, 산업경제인, 시민사회운동가, 군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에너지의 원천은 가톨릭신앙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찾아가 복음을 선포하며 교리를 설명했고, 억압받는 사람들 권리를 찾아주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신했으며, 전투 중 위기에 처했을 때는 동료들에게 교리를 설명하고 대세(代洗)를 베풀었다. 안 의사는 이토를 처단하기 전날 밤, 성공을 위해 기도하면서 탄알에다 십자가를 새겼고, 거사가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십자성호를 그었다.

 

안 의사는 옥중에서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 본당신부를 모셔줄 것을 요청했고, 뮈텔 주교에게는 한국교회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헌신해줄 것을 청하는 서신을 남겼으며,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일본인 변호사와 백부에게는 세례 받기를 부탁했고, 모친과 부인에게는 장남 분도를 신부로 키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안 의사는 자신에 대한 사형집행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 해달라고 청했고, 처형대에서는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며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최후 유언을 남겼다. 이처럼 안 의사는 신앙심과 민족애를 결합시킨 모범신앙인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일각에서는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했던 잔 다르크가 시성된 것처럼 안 의사도 성인품에 올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그런데, 지난 3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통합 추진'을 선언하고 담당 주교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시복 대상에는 안 의사도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 의사가 시복 시성될 때, 그분이 지녔던 신앙은 우리의 삶과 민족사 안에서 더욱 살아날 것이며, 그분의 삶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신앙의 모범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안 의사를 현양하는 앞으로의 교회 활동은 안 의사가 성인품에 오르도록 노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평화신문, 2010년 4월 4일,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1,41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