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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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삶의 도리와 천주가사 - 선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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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5 ㅣ No.861

[인문학 강좌] 삶의 도리와 천주가사 <션죵가>

 

 

선종(善終)은 글자 그대로 착한 죽음 내지 거룩한 죽음을 의미한다.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일생을 마친다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다. 천주교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이 고유용어가 들어간 천주가사가 바로 <션죵가>다. 필사본으로 전해오는 《박동헌본》 <션죵가>에는 ‘최도마신부져술’이라는 표기가 부기되어 있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이 최양업 신부의 친작이냐, 아니면 신심이 깊고 교리에 해박한 어느 신자가 창작하여 최양업 신부에게 그 공을 돌렸느냐 하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션죵가>는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뉜다. 초반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죽을 운명인데도 헛된 욕심을 부리다 짧은 인생을 허비하고 있으므로 복된 죽음을 맞이하길 촉구한다. 이어 중반에서는 병들어 죽는 순간을 생각하여 후회하지 않는 선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종반에서는 장례와 묘지와 시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죽음의 비참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육신을 극복하라고 권고한다. 즉 <션죵가>는 한시적인 인간의 운명, 허망한 삶을 극복하기 위한 마귀 · 세속 · 육신 극복과 계명 준수, 그리고 비참한 죽음을 이겨내기 위한 육신 극복을 노래하고 있다.

 

<션죵가>의 작자는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삶을 대비함으로써 선종의 방도를 구체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예부터 선자는 현세를 귀양살이하는 찬류소(竄流所)로 여겼다. 따라서 선자는 잠시 머물다 떠날 나그네처럼 현세에 집착하지 않고 살았다. 또한 선자는 현세를 눈물의 골짜기인 체읍지곡(涕泣之谷)으로 간주하는 한편, 세상의 감옥으로 여겼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본향으로 돌아가 천주 앞에 서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현세에서 삼구(三仇)와 맞서 싸우고, 현실의 고통을 인내하며, 십계명과 사규(四規)를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읊는 삼구는 영혼의 세 가지 원수로서 마귀와 세속과 육신을 지칭한다. 인간을 죄로 유인하는 마귀, 헛된 욕망으로 가득 찬 세속, 그리고 그릇된 욕망과 감정에 치우친 육신이 바로 맞서 싸워야 할 원수인 것이다. <션죵가>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육신이 대수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추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선종하기 위해서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천주로부터 받은 십계명과 교회가 신자들에게 부과하는 사규를 준수하라고 노래한다. 사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모든 주일과 의무축일에 미사 참례, 그리고 1년에 한 번 고해성사와 영성체 등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선자의 태도는 죄를 피하고 덕을 닦는 피죄수덕, 평생 선을 행하는 평생위선, 선을 행하여 공을 세우는 행선입공의 조건이자 세목이었다. 이는 곧 사람이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었다. 그런 연후에 선자는 괴로운 옥에서 풀려나 천주와 성모를 만나 천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라 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악자는 현세를 영원히 사는 영거소(永居所)로 여겼다. 그러므로 악자는 부귀영화와 세상의 영원한 복을 추구하며 살았다. 악인이 자신의 뜻에 따라 지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죄인 칠죄종(七罪宗)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교만, 인색, 음란, 분노, 식탐, 질투, 나태에 빠질 수 있는 약한 존재다. 그러나 선인은 악인과 달리 칠죄종을 칠극(七克)으로써 넘어섰다. 즉 교만은 겸손으로, 인색은 은혜로, 음란은 정결로, 분노는 인내로, 식탐은 절제로, 질투는 관용으로, 나태는 근면으로 대처하여 죄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악자의 삶은 이 노래를 향유하는 이들에게 반면교사이자 타산지석이었다. 특히 <션죵가>의 작자는 악자가 삼구 중 육신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성경』의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로마 8,6-7)라는 구절을 그 기반으로 삼고 있다. 결국 악자는 자신의 이득에 따라 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하여 흉한 마귀의 종이 되는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 하였던 것이다.

 

<션죵가>는 죽을 운명에 처한 사실을 잊고 세속의 헛된 욕심만을 탐하다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육신을 극복하여 선종하길 권고하는 노래다. 마귀, 세속, 육신이야말로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면은 추악하고 천한 임종과 시체와 묘지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직한 장면을 세밀하게 그림으로써 삼구를 극복해야 하는 당위성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악마의 손에 떨어질 세속과 육신에 집착하지 않고, 영혼길을 잘 닦아야 선종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죽으면 썩어 없어질 한시적인 육체보다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영구적인 영혼을 구하는 데 힘써야 함을 사실적 묘사를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션죵가>는 잠시 머물다 떠날 현세와 썩어 없어질 육신을 극복하라고 강조함으로써 초기 교회의 신자들이 천주를 증거하며 순교하는 데 있어 든든한 지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죽음과 선종을 위한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관심은 비단 천주가사가 창작되었던 한국 천주교회 초기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정신적 가치 부재의 시대, 물질주의 시대가 된 오늘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션죵가>는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공히 무엇을 위해 어디에 어떻게 투신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돌려야만 하는 당위성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고령화와 자살과 낙태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나침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선종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묵상함으로써 오늘을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생활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아가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죽음, 심판, 천당, 지옥이라는 사말교리(四末敎理)와 이를 기반으로 한 천주가사를 오늘 곱씹는 까닭이다.

 

[평신도, 2016년 가을(계간 53호), 김문태 힐라리오(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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