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오늘 저희는 레지오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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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08 ㅣ No.430

[레지오 영성] “오늘 저희는 레지오 있는데요~~”


 

교포성당에서 사목할 때의 일이다. 주일에는 옆 동네에 있는 예수회의 큰 성당에서 우리 한인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지만, 평일에는 우리가 예쁘게 꾸민 자그마한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평일미사에는 고작 서너 명의 자매님들이 오셨고, 우리는 늘 아침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멕시코 식으로 식사를 함께 하고 서로의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날은 성목요일이었다. 저녁 8시에 미사를 봉헌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저녁을 일찍 먹고, 미사 준비, 강론 준비, 세족례 준비며, 미사 끝나고 함께 먹을 빵과 포도주도 준비하면서, 나름 성목요일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꾸민 경당에서 드리는 첫 번째 성삼일 미사의 첫날이어서, 더욱 마음이 새로웠던 것 같다.

몇 명이나 미사에 오실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성목요일 전례를 준비했지만, 미사 10분 전쯤에 늘 평일미사에 오시던 자매님 세 명과 다른 열심한 신자 네 명이 앉아 계셨다. 조금은 실망스런 마음으로, 세족례를 하려면 열둘은 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아까부터 경당 앞방에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 게 기억나서, 그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남성 레지오 분들이 회합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교포성당에 부임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얼굴을 잘 모르고 있었고, 나는 오늘이 성목요일인데 레지오를 준비하는 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오늘 8시부터 성목요일 전례가 있는데요~”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레지오 단장님이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 “오늘 저희는 레지오 있는데요~~” “띠옹~~~”


자그마한 교포성당에서 잊지 못 할 해프닝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열심한 마음으로 레지오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성삼일 전례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할 수도 없고, 나는 굳어지는 얼굴을 억지로 참아가며, “아 그러시군요.. 근데 성목요일은 중요한 날이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오세요”하며, 타협 아닌 타협을 하고, 평소에 전례 교육 및 교리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내 탓을 하며 돌아서야 했다.

남성 레지오 단원들도 내가 조금은 화가 난 것을 아셨는지, 회합을 일찍 끝내고 세족례 전에 삐죽삐죽 미사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사에 오신 신자 일곱 명과 남성 레지오 단원 다섯 명, 총 열두 명의 세족례를 맞춰 주신 하느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미사에 오신 모든 신자들의 발을 닦아 드렸던, 잊지 못할 성목요일 전례가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체험해 볼 수 없는 자그마한 교포성당에서의 해프닝이었다.

해프닝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레지오를 위한 레지오 단원들의 모습을 종종 보면서, ‘레지오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레지오 선서식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제가 아옵니다. 또한 제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은 당신께 완전히 하나 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나이다.”


성모님은 예수님께로 가는 통로이며 사다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간절히 구하며, 성모님과 온전히 일치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예수님께로 가는 통로이며 사다리의 역할을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모님의 모범을 통하여 스승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모님 이야말로,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시고, 성모님은 모든 이들 중에 예수님과 가장 깊이 일치되어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일생은 그 아들 예수에게서 흘러나오는 하느님 아버지의 신비를 늘 곰곰이 묵상, 하고 관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서 기꺼이 믿음으로 순종하고 겸손되이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사셨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반문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실행하셨던 성모님께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시며 성모님이야 말로 당신의 참된 어머니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가족이며 어머니이심을 알려주신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이다. 모든 본당에서는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느라 바쁠 것이다.

부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아주 친절하게 “오늘 저희는 레지오 있는데요” 하지 말고, 기꺼이 주님의 성탄을 함께 준비하고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성모님의 군사가 되기를 청해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2월호, 이원희 사도요한 신부(모슬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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