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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기도 - 위령 성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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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11 ㅣ No.426

[레지오 영성]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기도 - 위령 성월

 

 

마리아 할머니의 장례 미사를 드리며 자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미사에 참석한 자녀들이 계속 흐느끼는 소리도 그러했지만,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니 할머니 생각에 더 가슴이 먹먹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아픈 몸을 이끌고 주일 미사에 참석하셨다. 오랜 만에 뵙게 되어 반가워 인사를 드렸는데, 힘겨운 듯 웃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몸이 편찮으셔서 부천 자녀 집에 머물던 할머니는 추석이 가까이 오자 벌초를 하러 오는 아들의 차를 타고 내려오셨고, 일주일 정도 후에 돌아가신 것이다.

 

여산성지성당에 부임해 구역 미사를 시작할 때, 첫 번째 미사 자리가 성치 구역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모두가 정성껏 미사를 드리고 나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오랜 만에 드리는 구역 미사에 참석하고 싶으시다며 지팡이를 짚고 어렵고 어렵게 걸음을 하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자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었다.

 

오래 전 성탄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치공소 신자들이 산을 넘어 가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불을 밝히며 길잡이를 하시던 분들이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던 이야기부터 공소를 방문하시던 신부님들의 식사를 도맡아 하시던 이야기까지. 할머니는 이야기 하시는 동안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신 것 같았다.

 

터널 길이 생겨 공소가 지금은 구역으로 바뀌었지만, 할머니는 공소 시절의 아기자기한 추억들이 그득하셨다. 신자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본당 미사를 드릴 때면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없는데, 작은 모임에서 신자들은 각자 한 분 한 분 신앙을 살고 계셨다. 

 

그러던 할머니께서 주일에 돌아가신 것이다. 급히 병자성사를 청하셨지만 그날 순례를 오신 분들의 미사를 집전 중이라 끝내 성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미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할머니 앞에 절을 드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 성체를 모셔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 연도를 마치고 자녀들을 만났다. 할머니는 자녀 아홉을 두셨는데, 모두들 본당 신부인 나를 보며 할머니가 그렇게 내 얘기를 하셨다며 몇 번을 만난 사람들처럼 반가워하셨다. 

 

장례 절차를 상의하니, 장례 미사를 장례식장에서 해주실 수 없냐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할머니 시신을 화장하고 장지를 옮기는 길이 성당에서 정반대 길이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아픈 몸을 이끌고 성당에 오셔서 미사를 참석하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상주에게 부탁을 하였다. 마리아 할머니는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까지 성당에 오시려 하셨고, 누구보다 미사를 드리는 것을 행복해 하셨는데,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드린다면 할머니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다시 가족들이 모여 상의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계속 기도하였다.

 

 

하늘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이 순교자들의 순교지

 

‘성모님 도와주세요. 마리아 할머니를 장례식장에서 보내드리는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병자성사도 못 드리고 이제야 도착했는데 성당이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자리가 되게 해주세요.’ 간절한 기도를 성모님께서 들어주셨는지, 자녀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성당에서 장례 미사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장례 미사를 하는 날, 애령 분과장이 와서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자녀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홉 자녀 모두 세례를 받았지만 대부분 냉담한 세월이 오래이다. 할머니는 자녀들을 만날 때마다 성당에 나가라고 그렇게 당부하시고 묵주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자녀 모두가 고해소에서 성사를 본 것이다. 할머니께서 떠나시는 날 자녀들을 한데 모아,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불러주신 것이다.

 

여산성당은 순교 성지이기 때문에, 성지에 있는 신자들은 누구보다 축복 받은 이들이라는 말을 본당 신자들에게 자주 한다. 순교 성지는 천주교인들이 순교 당한 자리이고, 순교자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들어가셨을 테니 하늘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이 이곳 순교지이다. 그래서 여산성지를 ‘하늘의 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산성당에 발령 받고 성모님께 ‘왜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하며 기도를 드릴 때, ‘하늘의 문’이라는 어머니의 이름이 이곳 성지의 이름이라는 말씀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마리아 할머니가 신앙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이곳 성지는 순교자들처럼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따라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곳이다. 죽는 날까지 그리 산다면 순교자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축복 받은 땅이다.

 

 

성모송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기도

 

우리는 성모님께 ‘성모송’을 통해 이렇게 기도드린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이제’라는 청을 통해 ‘지금 살아가는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저희 죄인’이라는 말을 통해 ‘죄 지은 저, 그리고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난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저희 죽을 때’라는 말을 통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저희를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하고 부탁드리는 것이다.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기도는 무엇인가?

 

우리 신앙인이 세상을 떠날 때,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로 청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당신 아드님이 이 세상 구원을 위해 오셨고, 모든 이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한 삶을 하느님과 함께 살도록 성모님은 기도해주시고 계시지 않는가.

 

위령성월의 기도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지만, 우리 살아있는 이들이 이 세상의 삶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의 품에 언젠가 돌아갈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다. 

 

마리아 할머니는 자녀들을 주님께로 모아들이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하고 성모님을 찬송하는 우리는 늘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하늘나라를 기도하며 신앙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신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치며 가장 많이 반복하는 성모송은 그래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기도이다. 땅에 있는 우리는 늘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그 길을 성모님께서 이끌어 주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1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여산성지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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