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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가톨릭 신자의 미디어 교육: 대중매체의 선정성과 폭력에 대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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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06 ㅣ No.536

[대중매체에 대한 교회의 시각] 가톨릭 신자의 미디어 교육


대중매체의 선정성과 폭력에 대항하여

 

 

하루에 만나는 매체의 현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수많은 매체와 더불어 살아간다. 아침에 읽은 조간신문 속에서 지난 밤 이루어진 한국의 현실을 직시한다. 직장과 학교에 나서고자 올라탄 지하철 속에서도 다양한 신문매체의 내용들이 타블로이드판을 통해 우리 눈을 유혹하며, 스포츠 뉴스와 더불어 있는 선정적인 글과 그림들이 현란하게 우리의 생각을 마비시킨다.

 

또한 늘 우리와 가까이 있는 컴퓨터의 메일함에 뜻하지 않은 손님들인 ‘스팸메일’이 가득하다. 이러한 스팸메일들은 나이를 초월하여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메일에도 무얼 좀 사라고 하고, 외롭다며 선정적인 글과 그림들을 보내고, 우수고객이라며 돈도 한 5천만 원쯤 빌려준다며 유혹한다. 더불어 스카이라이프나 쿡TV, 그리고 유선방송과 연결된 텔레비전 속에서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얼핏 보기에도 화끈거리는 성인물들과 폭력물들이 여과 없이 아이들의 눈에도 비춰지고 있다. 무얼 좀 팔겠다는 광고 문구에도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문구가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가창력이 좋은 가수보다는 다소 선정적이며 옷을 많이 풀어헤친 ‘걸 그룹’들이 그리고 미소년 그룹들이 가요 채널을 장악하고 있다. 텔레비전에 비춰진 소년소녀 그룹들을 보고, “저 아이들은 학교 안 가고 노래만 부르냐?” 하고 물으면 시대에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대중매체는 적극적인 삶의 동반자라는 긍정적인 요소들과 함께 부정적인 요소들도 우리 생활에 젖어들어 있다. 텔레비전과 신문, 영화와 인터넷, 모바일 모두 ‘경제성’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무분별하게 소비자요 수용자인 우리에게 전해진다. 매체를 이용함에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나 다른 종교인들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

 

경제성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뿜어내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들, 곧 콘텐츠는 일상에 파괴를 일으키고 있다.

 

그 실례를 보면, 2001년 개봉되었던 영화 ‘친구’는 조직폭력배들의 의리와 배신을 다룬 이야기이다. 한류 스타로 알려진 장동건과 연기파 배우 유오성의 선정적인 욕설과 폭력 장면이 청소년들에게 우상이 되었다. 한때 한국 사회에 ‘짱’ 열풍을 일으킨 이들의 캐릭터는 청소년과 젊은 층으로 하여금 그들의 폭력까지도 미화시켜 모방범죄를 일으켰다.

 

평소 소심한 성격의 고등학교 1년생인 김모 군이 자신을 괴롭혀온 같은 반 친구 박모 군을 과도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박 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김 군의 뒤통수를 때리는 등 6개월 이상 괴롭혀 죽이고 싶었는데, 영화 ‘친구’를 보고 용기를 얻어 이 방법을 생각해 냈다.” 한다.

 

이렇게 청소년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텔레비전과 폭력적인 영화, 폭력성 · 음란성을 지닌 컴퓨터 게임은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범죄를 일으키게 하며, 때로는 이러한 비행을 미화하여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청소년의 가치관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소년만이 이러한 유혹에 속한 것은 아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미국 드라마 속칭 ‘미드’의 대명사로 ‘CSI 과학수사대’ 드라마를 지상파 공중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케이블 방송으로만 보던 이 드라마를 공중파 방송에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피가 날 정도로 긁혀, DNA가 묻었을까봐 손가락 끝을 훼손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피해자들의 옷을 벗긴 뒤 불태웠다.” 범죄수사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현실화되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이 드라마를 보고 살인의 증거들을 인멸하였다니 드라마와 영화가 일종의 ‘범죄 교과서’가 된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흘러나오는 선정적인 화면과 글로 받아 보는 스팸메일은 왜곡된 성문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들은 선정적인 장면을 통해 성적인 흥분과 자극을 경험한다. 때로는 강렬한 충동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일으켜 성폭력, 폭행, 임신, 변태적인 행위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1998년 중고생들이 부모가 외출한 사이 여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 가정용 8mm 캠코더로 찍고 유포시킨 ‘빨간 마후라 사건’은 일본 비디오를 보고 따라한 것이다. 올해 초 그 심각성을 보여준 경기도 고양의 모 중학교의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급우 20명의 옷을 벗기고 폭력을 가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장면을 무슨 승리의 결과물인 양 과시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일탈행위를 일으킨 바 있다.

 

 

교회의 가르침

 

대희년에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가 발표한 “커뮤니케이션 윤리”에서는 말한다. 오늘날 매체는 쉽게 죽음에 이르는 문화의 바탕이 되는 윤리 상대주의와 실용주의를 보급시키고 있다.

 

매체는 현대의 ‘생명의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 피임, 불임수술, 낙태, 심지어 안락사까지도 진보의 표시이며 자유의 승리로 제시하는 그런 문화에는 공신력을 심어주면서, 반면에 생명을 옹호하는 입장들은 무조건 자유와 진보의 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생명의 복음”, 15항).

 

또한 오락매체는 성이나 폭력을 이용한 장면을 비롯, 퇴폐적이고 비판적인 장면들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외설과 가학적 폭력이 성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간관계를 좀먹으며 개인, 특히 여성과 청소년을 착취하고, 혼인과 가정생활을 훼손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촉진하고 사회 자체의 윤리조직을 약화시킨다.”(“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외설과 폭력 : 사목적 대응”, 10항)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것이다(16항).

 

미디어 역시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일치와 발전”, 2항). 이 소중한 선물을 “교회가 나날이 더 완전해지는 인간 기술이 만들어낸 힘 있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현대의 복음 선교”, 45항) 하신 바오로 6세 교황의 가르침이 새롭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만나고 활용하는 미디어들을 잘 알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적인 미디어 교육(Media Literacy)’이다.

 

 

신앙인다운 가톨릭 매체 활용 교육

 

성적 욕망의 통제여부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상관없다. 그것은 본능이어서 우리 의지대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적 유혹 앞에서 성조 야곱의 아들 요셉이 포티파르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보여준 구체적인 행동은 오늘날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매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① 유혹에 ‘싫다!’고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시청연령이 가능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채널 주권을 지킨다. 프로그램 등급관련 제공 시스템이 불완전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방송사에 옴부즈만(시청자 주권 참여 프로그램) 권리를 행사한다(KBS ‘TV 비평 시청자 데스크’, SBS ‘열린 TV 시청자 세상’, MBC ‘TV 속의 TV’ ).

 

② 유혹하는 상대를 가능한 한 멀리한다. 모바일폰이나 메일을 통해 들어오는 폭력적인 게임이나 음란성을 강요하는 동영상, 채팅을 거부 처리한다.

 

③ 성적 유혹에서 도망쳐야 한다. 주님의 기도 가운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를 화살기도로 바친다. 늘 다가오는 유혹들 속에 천주교 신자다운 매체 활용을 하기에 앞서 성호를 긋고 유해한 환경에서 벗어나자. “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지금 이 유혹을 따라가는 것은 내 신원에 맞지 않기에 거절하겠습니다.”

 

2005년 “급속한 발전” 교서를 통해 언론인들에게 보여주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는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매체 생활교육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주의 깊은 식별력과 지속적인 경각심을 키우고,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설득력에 관하여 건전한 비판능력을 기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분야에서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커뮤니케이션에 내재된 장애가 이념이나 이윤추구, 권력욕, 개인과 집단의 경쟁과 알력, 인간의 나약함과 사회적 분란 때문에 얼마나 크게 증대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때 성령의 도우심이 더더욱 필요합니다”(13항).

 

* 김현수 바오로 - 원주교구 신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미디어 교육을 전공(언론학석사)하였으며, 현재 황지성당 주임신부로 있다.

 

[경향잡지, 2010년 6월호, 김현수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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