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2016-0111.....연중 제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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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1-10 ㅣ No.1955

연중 제1주간 월요일 - 짝수 해

1사무엘 1,1-8         마르코 1,14-20

2016. 1. 11.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이 즐기시는 인간의 고통(?)

세상에서 열심히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질문의 한 가지가 하느님의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말을 바꿔서 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기거나 우리가 하는 일에 얼마나 만족하면 하느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거나 하느님은 내편이라고 생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조금 더 과하게 진행되면,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을 모르신다고 말하거나 하느님은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라고 함부로 말하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세상의 삶에서 나름대로 고통을 느꼈거나 힘겨움을 느꼈다면 분명히 그렇게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 그러지 않다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만, 우리가 이렇게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제가 하는 질문을 듣자마자 예나 아니오를 즉시 대답하는 것보다는 잠시 큰 호흡을 한 뒤, 대답을 해도 똑같은 표현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에서는 사람에게 생기는 고통과 힘겨움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함이라고 설명은 합니다만,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해석하거나 해결하기가 힘들다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은 무슨 확신을 주고, 초창기의 제자들을 부르셨을까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로 불리운 4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몇 마디에 그저 무작정 따라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2016년에 사는 우리들보다 좀 더 어리숙했다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드러난 일에 대한 평가이기는 합니다만, 초창기의 제자들이 과연 우리보다 어리석고 제대로 현상을 파악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을까요? 물론 성경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면서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즐기시는 하느님이라고 말하면 우리에게 생기는 이익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에게 생기는 것은 인간의 비난이지만, 인간에게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자유의지로 해도 좋은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는 것도 구별해야 합니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영장이라는 소리이지 하느님께도 적용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현실이 변화되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던 엘카나는 한나를 향하여 자신이 아들 열 명보다 낫다는 소리를 하지만, 한나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일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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