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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본당 사도직 여성 수도자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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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3-01 ㅣ No.122

[경향 돋보기] 본당 사도직 여성 수도자의 정체성

 

 

오늘날의 세계는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되는 수평구조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상호 공존과 공생을 지향하고 창의력과 다양성의 조화, 정직과 신뢰, 연민, 관계 중심 등 여성성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중요시되고 동적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제 급변하는 이 시대에 본당 사도직 수도자들은 “전 생애를 걸고 자신의 삶을 봉헌한 여성 수도자로서의 삶이 이 세상에 주는 의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성령을 통해 일으켜주신 각 수도회 창립자의 다양한 카리스마를 우리는 세상과 교회를 위해 어떻게 실현해야만 하는가? 본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여성 수도자로서의 정체성 실현은 가능한가?”를 질문해 보고 미래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여성 수도자 본당 사도직의 어제와 오늘

 

우리나라 본당에서 수도자가 활동하게 된 것은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선교사가 이땅에 첫발을 디디면서 시작되었다. 서구의 수도자들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본당사목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고 수도승적인 삶의 형태를 고수했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 수도자들은 교회 초기부터 교회를 확장 발전시키고자 하는 본당의 시급한 사도직의 요청에 따라 본당에 거주하면서 다양하게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본당사목의 일선에서 성직자들의 중요한 협조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선교활동의 선봉에서 활동하였고, 신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도하는 역할은 물론,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이해하는 위로자이며 영적동반자의 역할까지 도맡아 늘 바쁘고 힘들게 살아왔다. 때로는 영적인 고갈상태를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위기에 놓이면서까지 지치도록 일해왔다.

 

 

본당 사도직 여성 수도자의 미래상

 

몇 년 전 ‘한국 천주교회 전교수녀 전국연합회’ 주최로 있었던 본당수녀를 위한 연수에서 박문수 박사는 ‘이 시대가 요청하는 본당수녀’라는 제목으로 교회 내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본당수녀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한국 교회 전체에서 제기되는 것으로 전통적인 역할의 지속(선교사, 수행자)과 시대에 따른 새로운 상황에 어울리는 역할(적극적인 사회참여)을 요구하고 있다. 관계에서는 수평적이고 섬기는 태도를, 역할수행 능력에서는 지적인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치유능력까지도 갖추기를 바란다. 또한 무엇보다도 영성 전문가이기를 요청한다. 가장 현대적인 전문인이면서 동시에 영성 전문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본당에서 요구되는 것으로는,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학력은 대졸이상, 인상은 지적이면서도 후덕해 보임, 외국 다녀온 경험도 있음, 교수능력이 탁월함(교리, 단체지도, 훈화 등), 사제와 신자들 사이를 사려 깊게 중재함, 늘 밝고 친절하게 신자들을 대하며 겸손함, 언어구사와 행동에 품위가 있음, 늘 기도하고 상담할 때 내적인 문제를 잘 듣고 해결해 줌, 사제의 권위에 잘 순명함, 신자들을 뒤에서 잘 보살피고 나서지 않음, 시대의 징표를 읽고 시대감각이 있음, 청빈하고 소박함, 대도시 본당에서 요구되는 이러한 본당 수녀상은 점차 모든 지역에 보편적으로 확산되는 중이다.”라고 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역할을 모두 잘해낼 수 있는 수도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한국의 여성 수도자들의 삶은 본당 사도직과 맞물려있었고, 이는 지금도 거부할 수 없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기에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사는 수도자의 소명에 충실하면서도 본당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본당 사도직

 

우리나라 활동 수도회들은 지역 교회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수도자들의 사도직 활동에서 본당 사도직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본당에서 수도자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큰 누룩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수도자의 정체성의 위기와 신원의식의 부재현상을 제일 많이 보여주는 곳이 본당이기도 하다. 1993년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총회에서는 1992-1993년의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 종합하면서 비록 신원의식을 잃기 쉽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곳이 본당이라 하더라도 본당에 수도자들이 필요하며, 본당에 미치는 수도자들의 영향이 크다고 보아, 본당사도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수도자들의 정체성 확립이 문제가 되듯이 수도회 역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에서 “수도생활의 쇄신과 적응이란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원천과 각 회의 창립 당시의 정신에 계속 ‘돌아감’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하는 상황에의 ‘적응’을 내포하는 데 있다.”(2항)라고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돌아감이란 창립 당시의 삶의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창립 당시에 복음을 특수한 양식으로 실천하고 체험한 창립자의 정신을 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실행하라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한국 교회 안에서도 고유 카리스마를 재발견하려는 노력과 창립자의 정신, 고유 카리스마에 따른 수도회의 사도직을 정리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수도회들은 고유한 카리스마에 따른 사도직이라기보다 한국 교회의 본당과 사목자의 절실한 부르심에 응답해 오기에 바빴다.

 

활동 수도회들은 하나의 유행이나 추세를 따라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각 수도회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살려 사도직을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수도생활 교령, 2항 참조). 각 수도자들은 사도직 현장에서 자기네 카리스마를 살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에 대한 교회의 배려도 중요하다. 물론 자기 수도회의 카리스마만 강조하여 지역 교회 복음화와 동떨어진 사도직을 해서도 안 된다.

 

 

봉헌생활과 본당 사도직

 

사도직 활동에 헌신하는 수도회 회원들의 생활은 사도직 정신에 젖어있어야 하며, 모든 사도직 활동은 수도정신으로 젖어있어야 한다(교회법 제675조 1항 참조). 사도직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행동으로 증언하는 사도로서의 직무를 말한다. 봉헌생활은 본질적으로 사도직 사명에로 불림을 받았다. 그러나 가끔 사도직 활동보다 관상생활이 참수도생활이라고 생각하며 동경하는 수도자들을 본다. 사도직을 2차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오는 오해이다. 은둔생활의 모형에서 사도직 활동의 모형으로 넘어가는 것이 봉헌생활의 개념을 비하시키고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도직 수도생활이라는 것은 사도직도 겸하는 은수자가 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는 데에 있고 사도직 활동은 우리 봉헌생활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자는 자기 수도회의 고유 카리스마를 삶의 고유한 현장에서 소신껏 구현해 나가면서 교회 안에서 봉사해야 한다.

 

1) 수도자의 위치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계제도 안에서 수도자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복음적 권고를 서원하는 수도 신분이 교회의 교계적 구성에 관계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생명과 성화에 속하는 것이 확실하다”(교회헌장, 44항). 따라서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은 지역 교회에서 요구되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교회 안에서 성성(聖性)의 역할 그리고 풍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녀들은 영성적 존재라기보다 가르치는 존재, 본당에서 무슨 일이나 다 하는 존재, 본당 신부님을 돕는 존재, 단체 지도자 등 기능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본당 사도직 수도자는 일 중심의 사도직에서 벗어나 기도와 사도직의 조화 안에서 증언 생활을 하는 봉헌생활인이 되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자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겠고, 다음으로 수도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평신도와 사제들의 의식도 바뀌어야한다. 그리고 사목 체제의 변화와 업무의 재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2) 업무 분담의 재조정 : 대형화 ? 중산층화되어 가고, 특히 대도시의 본당들에 제2 또는 제3 보좌까지 있는 오늘의 교회 안에서 수녀의 역할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수녀들이 사제들의 보조자가 아니라 본당사목의 협조자로 업무 분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실제로 업무분담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며 성직자와 수도자의 관계가 어려운 곳이 많다. 그리고 이는 평신도, 수녀, 사제들이 한데 모여 대화로써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또한 식별작업을 통해 일반 지식이나 전문적인 것은 평신도들이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수녀들은 신앙 안에서 올바른 식별과 영성적 뒷받침을 해주는 역할을 하여야 하겠다. 이 영성적 돌봄, 영성 상담을 위해서 본당에 본당수녀들이 신자들과 만나 상담을 할 수 있는 ‘영적 상담실’이 따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제 가르치는 자세와 지시하는 자세 그리고 ‘우리가 다 해야 한다’는 의식을 버리고 평신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넘기고 수도자들은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여야겠다. 냉담자들을 찾아나서는 일, 가진 자들과 소외된 이들이 함께 본당의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엮어주는 매듭의 역할, 가톨릭 신자나 본당이란 테두리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의 소외된 이들, 가난한 이들, 우리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을 찾아 사랑을 나누는 일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식별작업은 수도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개인적인 것으로 머무를 경우 실천해 나가는 데 어려움은 물론, 전임자와 후임자 간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바람직한 본당 사도직 수행을 위한 제안들

 

본당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수도자 자신의 본당 사도직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 정체성의 혼돈과 평신도와 사제들의 수도생활과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문제들이 많다. 따라서 수도자의 정체성을 실현하고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살리는 본당 수도자의 미래 지향적인 삶의 양식과 일의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본당에 소속되면서, 지역별로 수도자 공동체를 위한 주거를 마련한다.

 

수도회와 교구의 대화, 협력으로 본당 밖에 주거공간을 마련한다. 이 방식은 수도자가 본당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지도자, 관리직에서 벗어나 식별되어서 맡겨진 역할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고, 사도직의 영역을 본당 밖으로 넓힐 수 있다. 또한 수도자의 전문직인 성성(聖性)과 선교를 위해 투신할 수 있다.

 

2) 수도회별로 초본당차원의 카리스마 사도직을 수행한다.

 

지역별 초본당적 사도직을 교구와 계약하여 시도한다.

 

예) 00지역 내 주일학교, 청년 담당 수도회(000수녀회) / 00지역 내 성경공부 담당 수도회(000수녀회) / 00지역 내 교리, 방문 담당 수도회(000수녀회) / 00지역 내 사회사목 담당 수도회(000수녀회)

 

이 방식의 장점은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살리면서도 본당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자 각 개인에게 모든 것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고 수도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도 본당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쓸 수 있다.

 

3) 수도회가 교구와 계약을 맺을 때 사도직 수행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한다.

 

수도자를 본당에 파견할 때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그 본당에서 해야 할 일을 명시한다.

 

예) 상담, 가정방문 / 교리교육, 주일학교 / 영성교육, 성경교육 등

 

이 방식을 채택할 때, 수도회는 수도자를 특정 지역 공동체에 파견할 경우 적절한 준비가 된 수도자를 파견할 수 있고, 수도자 자신도 그 본당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당에 부임되는 사제가 그 본당 수도자에게 요구하는 것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어서 갈등의 요인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신자들도 수도자나 사제가 바뀔 때마다 수도자의 역할이 확대, 축소 또는 바뀌는 데서 오는 혼란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도자들 개개인이 예수님의 삶의 본질을 따르는 봉헌생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하겠다. 또한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충실하여 교회와 세상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여야 한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소명은 사도직 수도자의 소명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이 꺼진 곳에는 성령의 불씨를 일으키는 부싯돌의 역할이어야 하고,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는 곳에는 더욱 뜨겁고 넓게 타오르도록 지혜로운 부채질을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야겠다. 더불어 본당 사도직 수도자들의 정체성 실현을 위해서 교회 구성원 모두의 기도와 협조를 부탁드린다.

 

끝으로 하느님 나라와 교회,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 자기 고유의 역할에 충실함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각 교회 구성원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서 서로 분명히 알아야 하고, 서로의 신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대화와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교회 발전에 기여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때, 삼위일체의 신비를 드러내는 공동체로 ‘하느님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교회가 되리라고 본다.

 

* 김혜숙 아나니아 - 까리따스 수녀회 소속으로 광주대교구 성서사도직 전담 수녀로 있다.

 

[경향잡지, 2009년 2월호, 김혜숙 아나니아 수녀(까리따스 수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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