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승 양성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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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08 ㅣ No.249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형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2고린 3,18)


수도승 양성에 관한 고찰

 

 

1. 하느님의 모상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하느님과 유사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손상된 우리는 우리 안에 이 모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손상되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점차적으로 변형되도록 우리 자신을 개선해야 한다. 오랜 개선 혹은 회개의 과정을 통한 이 최종 변형은 수도승 양성의 목적이다.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주제는 초기 수도승 영성 안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o)으로, 하느님과 유사하게(similitudo) 창조되었다. 특권적인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신적 생명을 나누도록 불리웠다. 이러한 내용들은 죄로 인해서 역전되었지만, 인간은 하느님을 향해 돌아설 능력(capacitas Dei)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을 통하여 또 그분을 모방함으로써 신적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 만일 하느님을 향한 그의 성향(imago)이 지속적인 덕행의 생활 안에서 발전하고 나타난다면, 그는 유사성(similitudo)을 향하여 움직이며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가운데 자신의 성취를 발견한다."

 

수도승 양성의 목표는 그 모든 단계들에 있어서 수도승 안에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수도승이 태어나는 순간에 부여받았고 그 안에서 한 번 더 회복된 하느님의 모상이 이 유사성에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은 참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모방을 통해서이다. 인간이 더욱더 수도승이 되고 점차적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의 모상으로 변형되게 하는 것은 수도승 생활을 함으로써 이다.

 

 

2. 회수도생활적 문맥 안에서

 

회수도적 환경 안에서 수도승적 체험들이 전해지고 수도원 입회에서부터 다른 단계로 건너갈 때까지 그 수도승의 양성이 이루어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동체 생활 형태 그 자체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해서이다. 성 베네딕도는 이 위대한 회수도생활적 전통 안에서 발견되며, 베네딕도회 전통의 수도승들은 은수생활을 지향하는 영성 안에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서 수도승 양성의 기본 원리들을 찾아야 한다. 베네딕도가 규칙서 1장에서 수도승들의 종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는 1)공동체 안에서, 2)하나의 규칙 아래, 그리고 3) 한 아빠스 밑에서 사는 회수도자들을 가장 강한 종류의 수도자들이라고 정의한다. 공동체, 규칙, 아빠스. 이것들은 베네딕도회 꼰베르사씨오의 세가지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수도승적 체험의 각 단계에서 이것들에 의해서 생활함으로써 수도승은 점차적으로 참된 수도승이 된다.

 

1) 공동체

 

수도승 공동체는 단순히 우리가 개인적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느님의 뜻을 찾는 곳이다. 공동생활 안에서 정상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수도승은 언제나 자신을 적응시키고 자신의 견해와 태도를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임이 분명하다.

 

2) 규칙

 

현대의 수도승에게 있어 규칙은 RB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수도회의 회헌과 그의 지역 공동체의 문서 혹은 구두 규정들이다. 이 모든 규정들은 하나의 단순한 법이 아니다. 그것은 한 공동체 혹은 연합회의 고유한 신원에 대한 객관적인 표현이다. 참된 성소의 표지는 더욱더 자기 자신이 되면서 자기 공동체의 공동의 신원을 받아들이는 지원자의 능력이다.

 

3) 아빠스

 

베네딕도회 전통 안에서 아빠스는 영적 사부, 스승 그리고 치유자이다. 그의 역할은 분명 보다 최근의 전통들을 따르는 수도 공동체들의 장상들과는 매우 다르다. 그가 형제들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버지로 불리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된다.

 

한 수도승(수련자이건 서원자이건간에)의 성숙성은 공동체, 규칙, 그리고 아빠스와의 건강한 관계를 맺는 그의 능력에 크게 달려있다.

 

 

3. 수도승적 금욕주의의 주된 요소들

 

규칙과 아빠스 아래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수도승적 conversatio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 가운데 베네딕도가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또 양성에 있어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즉 하느님의 일(Opus Dei), 성독(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work)이다. 그러나 여전히 보다 근본적인 것은 수도승의 삶 안에 십자가의 위치이다.

 

1) 십자가를 짐

 

때때로 훌륭하게 보이는 어떤 수도승이 종신서원한지 얼마되지 않아 곧 수도원을 떠나는 일이 발생한다. 거의 모든 경우 십자가 안에서의 양성이 결여된 것이다. 그 수도승은 자신이 피어날 수 있고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환경들을 발견하는 한 수도승 생활에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시련이 닥치자마자 즉 십자가를 만나자마자 모든 것이 와해된다. 수도승이 십자가를 기쁘게 받아들일 때, 그것은 그의 삶 전체를 통하여 그를 형성할 것이다.

 

2) 하느님의 일

 

엄격히 말해서 수도승적 기도는 지속적인 기도이다.

 

3) 성독

 

4) 노동

 

성 베네딕도에게 있어 노동은 수도승 생활의 본질적 요소이다. "만일 그들이 손노동으로 생활한다면 그들은 참으로 수도승들이다"(RB48, 8).

 

 

4. 양성의 단계들

 

양성이 비록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하여 지속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지라도 이 과정은 각각 그 도전들과 은총들 그리고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매우 다양한 단계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단계들에 대해 상세히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들을 열거하고 보다 중요한 측면들 중 어떤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거기에는 청원자와 수련자가 지도와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혹은 유기서원자들이 많이 배워야 하는 때인 초기 단계들이 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책임감을 떠맡고 살아가는 삶의 중심 시기가 있다. 또한 각 시기에는 위기들이 있고 끝으로 노년과 죽음이라는 마지막 위기가 있다. 그러나 공동체 입회전 성소 분별의 시기를 첫 자리에 둔다.

 

1) 분별 기간

 

우리는 수도생활을 시험해 보기 위해, 그리고 수도생활이 우리를 만족시켜주는지 또는 우리가 수도생활의 요구들에 응답할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세속적인 경험에 입각하여 제정된 교회의 규정은 물론 결정적인 위탁이 이루어지기 전 수도승적 위탁 안에 몇 개의 연속적인 기간들을 도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지원자가 처음부터 수도생활에 자신을 완전히 투신하고자 하는 확고한 결정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구경'하기 위하여 수도원에 온다면 그는 수도원에 머물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것은 입회 전 분별이 그렇듯 중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분별없이 지원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과 교회 혹은 그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진지한 분별이 교회의 일이다.

 

누군가가 수도원에 입회하고자 할 때 우리는 먼저 그의 입회 동기들을 확인해야 한다. 많은 경우 지원자들은 자신들의 참된 동기들에 대해 완전하게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그들이 자신들의 동기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흔히 어떤 사람은 수도생활 혹은 크리스챤 삶에로의 일반적인 소명으로 온다. 혹은 아마도 그는 갑자기 회심하여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혹은 그가 강한 기도의 은총을 받아 자신을 기도의 삶에 봉헌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혹은 때때로 자유시간이 거의 없는 직무에 종사하는 사제 또는 활동 수도자가 관상생활을 갈망한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 우리는 하느님이 참으로 그들을 수도생활로 부르시고 계신지 혹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발견하는 그 상황 안에서 그렇듯 큰 필요성을 느끼는 그리스도교의 가치들을 심화하도록 하느님이 그들을 부르시는 것은 아닌지 분별하도록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분별의 또 다른 측면은 그 지원자가 착수해야 하는 그 과정에 머무를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에 있다. 즉 충분한 신체적, 심리적 건강, 절제된 생활 혹은 적어도 그러한 생활을 위한 능력, 그리고 항구성 등등. 특별한 방법으로 예컨대 불우한 유년기, 때 이르고 부정적인 성적 체험, 결혼의 실패 등으로 인해 삶을 통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만일 그들이 이미 이러한 시련들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면, 참된 분별은 그들이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 충분히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그들을 도와주는데 있다. 우리 모두는 삶을 통해서, 또한 우리 죄에 의해서 상처받는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수도승 공동체가 영적, 심리적인 인간 성장을 위한 정상적인 환경이라는 의미에서 비록 수도승 공동체가 합법적으로 치유적인 공동체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충분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충분한 균형과 건강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전문적인 심리학자의 도움이 필요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이에 대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치료는 수련기의 양성이 요구하는 것과 같이 한 인격의 모든 심리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착수할 수 없다.

 

오랜 수도승 전통을 지닌 견실한 공동체는 수도 성소가 여전히 의심스러운 지원자들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다. 최종 분별은 수도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 그 공동체의 신원은 한 지원자가 자신이 과연 올바른 자리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빨리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그리고 건실하게 정립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참된 수도성소가 없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지원자들의 존재는 수련장으로 하여금 수도승 생활과 관계없는 문제들로 인해 그들과 함께 귀중한 시간을 보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참된 성소자들을 소홀히 하게 될 것이다.

 

수도원 입회의 그릇된 동기들 가운데 먼저 물질적인 안정을 찾기 위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적어도 수도원에서 병이 났을 경우 받게 되는 필요한 의료 봉사와 마찬가지로 머무를 거처와 하루에 세기 식사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다. 이 동기는 아마도 제 1세계와 제 2세계 나라들에서는 그리 자주 나타나지 않고 신생 교회들 안에서 계속해서 작용할 것이다. 거기에는 사회적 출세를 위한 하나의 모색이 있을 수조차 있다.

 

오늘날과 같이 모든 차원에서 커다란 불안정의 시대에 누군가 심리적, 영적인 안정을 찾아 수도원에 오는 일이 흔히 있다. 만일 그것이 주된 동기가 아니라면, 여기에는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빨리 젊은이들이 엄격한 구조들과 시대에 뒤떨어진 규율들의 인위적인 보증 안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확고한 관계 안에서 그들의 안정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수도원들을 문화적 도피자들의 막사로 바꾸어서는 인된다.

 

소위 영성 문학의 많은 부분이 불행히도 요한 문학의 의미로 '세상을 떠나는 것'과 오늘날의 문화에 등을 돌리는 것 사이에 하나의 혼란을 야기한다. 만일 누군가가 세상이 병들고 악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봉쇄구역 안에서 자신의 구원을 찾기 위하여 세상을 떠나고자 한다면, 그를 세상에 돌려보내 하느님과 같이 이 병든 세상을 사랑하도록 그를 도와주는 것이 더 낫다. 그는 단지 사막 교부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투쟁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마음 안에서 작용하는 악의 세력들을 거슬러 싸우고자 사막으로 물러가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영성을 지닌 그리고 형제애를 매우 강조하는 어떤 특별한 종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체험을 한 후 수도원에 온다. 원칙적으로 이것은 공동체 생활을 위한 하나의 훌륭한 준비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공동체 생활'이 이 특별한 형태와 동일시된다면 이것이 문제를 야기하는 일이 때때로 발생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이 입회한 그 공동체 안에는 '공동체 생활'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이전에 알았던 것과 동일한 강한 공동체적인 함께함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주말 모임에서 체험될 수 있는 하지만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고 늘 유지할 수 없는 하나의 강한 형제적 관계가 있다.

 

어떤 사람이 수도원 입회 전에 체험했을 수도 있는 여러 형태의 기도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때때로 '기도'를 이러한 형태들 중 이것 혹은 저것과 동일화 할 위험이 있다. 성소의 표지는 전형적으로 수도승적 형태의 기도 즉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독에 의해서 자양분을 공급받는 개인기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2) 청원기

 

비록 교회법이 이 기간을 분명히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할지라도(교회법 597조 2항은 수련기에 들어가기 전에 적절한 준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동체들에서는 청원기를 두고 있다. 그 기간은 관습에 따라 상당히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청원기가 종종 입회 전에 이미 배웠어야 하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내용들을 가르치거나 수련기의 가르침을 시작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청원기로부터 독립된 수련기는 전환의 한 중요한 순간으로서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수도원 입회는 사실 한 인간의 삶 안에서 하나의 중요한 순간이다. 그것은 삶의 한 형태에서 또 다른 형태로의 전환이다. 이 전환은 지금까지 지원자의 개인적 신원 확립의 바탕이 되어 온 활동들과 개인적 관계들로부터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분리에 의해서 시작된다. 만일 그가 행복한 가정생활과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은총을 받았다면. 이 분리는 더욱 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는 또 다른 형태의 삶에로 완전히 통합되지 않고 삶의 한 형태를 포기하기 때문에 그 청원자가 소외감을 체험하고 소속감을 갖지 못하며 깊은 공허감과 때때로 일종의 혼란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이다. 그것은 죽음과 부활의 시기이며 그는 이 시기에 그가 이전에 한 모든 체험들과 그를 지금의 인격이 되게 한 모든 것, 그리고 그가 떠났고 계속해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가정, 친구 등등)의 중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수련장은 이 시기에 청원자들이 체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뇌'의 시간을 그들로부터 앗아가는 것은 중대한 실수가 될 수 있다. 적절히 그리고 양심적으로 이러한 고뇌를 격는 것은 이후의 수도생활을 위해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 첫 시기들을 청원자들에게 요구되는 많은 활동들과 모임들과 회의들로 채우는 것은 하나의 중대한 실수이다. 그것은 성실하게 이 사막을 통과하게 하는 가능성을 앗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청원기는 그들을 공동체의 일상생활 속으로 통합하기 위하여 엄격히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어떤 과정을 밟고 회의들을 하는 시기가 되어서는 인된다. 그것은 그들이 점차적으로 수도승 생활에 친숙하도록 하는 시기이다. 청원기는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새로운 상황과 그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의 규칙과 아빠스에 대한 하나의 발견이 되어야 한다.

 

3) 수련기와 유기서원기

 

비록 성소 분별이 수련기 중에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이것은 최초의 분별 시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수도성소를 분별 받은 사람들이 수련기에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수련기는 한 스승의 지도 하에 성장과 성숙의 시기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수용에서의 성장, 공동체 관계에서의 성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의 성장의 시기이다.

 

수련기는 수련자가 기도생활을 심화하고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자신을 양육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는 점차 자신의 신원을 확고히 하도록 도와주는 위대한 수도승 전통과 위대한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

 

종종 단지 학업의 시기로서 비쳐지는 유기서원기는 그것이 반드시 주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처음으로 젊은 수도승이 어떤 책임감을 수행하기 시작함으로써 그의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뿌리내리는 시기이며, 또한 그가 스스로 분명한 위탁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우리는 초기 양성의 이 두 가지 중요한 시기 즉 수련기와 유기서원기에 대해 더 이상 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많은 전문적인 연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4) 위기들

 

수도승 생활의 초기에 수련자는 보통 인격적인 행복감에 젖는다. 흔히 누군가 자신의 전 삶에서 결코 수련기 동안 느꼈던 그러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또한 심지어 수련기 혹은 이후 몇 년 동안에 그가 오래 전에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한 인식에서 유래하는 고통이 이제 새로운 강도로 나타난다. 만일 이러한 초기 동안 그가 공부나 혹은 다른 만족스런 활동들에 계속해서 빠져들게 되면 이 위기는 보다 후에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일은 종신서원 후에 곧바로 발생할 수 있다. 성직 수사들의 경우에는 사제서품 후에 바로 발생할 수 있다.

 

개인적인 문제들은 다양하다. 성이 불충분하게 통합되거나 혹은 방향이 잘못 놓여질 수도 있다. 그것은 알코올중독자의 가정에서 오는 심리적인 상처들 때문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곤란한 기질 혹은 예측불가능하고 신경질적인 변덕 등에 기인할 수도 있다. 인간적인 지주가 결핍된 수도승적 사막의 고독과 침묵, 그리고 공동체 생활 안에서 막연하게 자신을 감추면서 사는 것에 대한 큰 어려움은 이러한 문제들을 가볍게 해 줄 수 있다.

 

확실히 우리는 여기서 수도승 생활 자체에 속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 않다. 세상 안에서 그 문제들은 아마도 한 번에 하나씩 나타날 것이고 성공적인 경력과 심리적인 도움 혹은 훌륭한 결혼이라는 치유요법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 수도원 안에서 그 문제들은 흔히 모두 함께 나타난다. 이것은 그 집이 바위 위에 혹은 모래 위에 세워졌는가를 아는 순간이다(마태7, 25).

 

만일 공동생활이 그러한 위기의 분출에 호의적이라면 건강한 공동체는 또한 하느님의 은총과 영적 사부의 분별 그리고 형제들의 도움으로 그것을 긍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수단들을 제공한다. 성장을 위한 새로운 단계로의 모든 통과는 새로운 기초 위에서 재건되어야 하는 일종의 긍정적인 인격의 분열을 의미한다. 오늘날 심리적인 의기소침으로 간주되는 많은 단계들은 아마도 이러한 종류의 위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비가들의 언어로 '어둔 밤'이라 일컬어진다. 그러한 위기들은 인간적, 영적 성장을 위한 질적 도약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종종 주기적인 재정립과 동일시되는 양성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지속되는 것은 바로 여기이다.

 

마지막으로 수도승 공동체는 특히 각 구성원들이 아무도 피할 수 없고 그의 형상 위에 주어진 성령의 보증을 그리스도께 두는 마지막 큰 위기를 훌륭히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론

 

성 베네딕도의 규칙서에 따라 수도원에 오는 새 지원자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형성된다. 이것은 그가 영혼들에 대한 분별과 열정으로 충만한 한 성숙한 수도승에게 위탁되는 이유이다. 그 수도승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그가 모든 다른 것들에 앞서 그를 형성해야 하는 공동기도, 순명 그리고 굴욕들 같은 수도승 생활의 내용들에 부지런한지의 여부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의 감미로서 넓어진 마음으로 주의 계명 길을 달려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형되도록 해주는 마음의 자유에 이르도록 수도승 생활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양성의 방법이다. ("REFLECTIONS ON MONASTIC FORMATION", AIM, 14-27 번역) 

 

[글 Armand Veilleux ocso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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