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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예수님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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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7 ㅣ No.416

[레지오 영성] 예수님의 마음으로

 

 

개신교에 다니다가 예비신자 교리를 받는 이들에게 가톨릭교회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보입니다. “다른 종교에 관대해서 좋아요.” “경건해요.” “귀찮게 하지 않아서 좋아요.” “새로 온 사람에게 너무 무관심해요.” 

 

처음에는 칭찬처럼 들려서 기분이 좋다가 점점 씁쓸한 뒷맛을 느낍니다. 개신교와 비교해서 우리 신앙의 형태가 개인주의적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한국천주교회가 혹독한 박해를 거친 데 반해 개신교는 박해가 끝난 후 들어와서 그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에 저도 상당히 공감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박해를 거쳤지만, 특히 1866년부터 6년 동안 이어진 병인대박해 동안에는 거의 1만 명이 순교하였습니다. 박해가 시작될 무렵에 2만3000여명의 신자가 있었다고 하니까 40% 이상이 순교한 셈입니다.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1876년부터는 공식적인 박해가 사라졌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경향이 남아 있어서, 혼자서 하느님 앞에 올곧게 남아 있는 일이 최고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나 하는 거지요. 

 

문제는 박해와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 시대에도 그런 경향이 가톨릭 신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처럼 비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태오복음 9장 32~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시자 놀라워하는 군중과는 달리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하고 말합니다. 여기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셨을 때에도 그렇고(마태 9,1~8), 세리와 음식을 드실 때에도 그랬습니다(마태 9,9~13). 일반 사람들과 달리 모든 일을 왜 그렇게 삐딱한 시각으로 바라볼까 싶은데,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해할만합니다.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 바리사이들의 모습과 겹쳐 보여 

 

바리사이라는 이름은 반유대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시작할 때 적대자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분리된 사람’ 혹은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이들은 마카베오 항쟁이 이어지던 무렵에 안티오쿠스와 예루살렘의 사제계급에게 저항하여 유대교를 수호했던 하시딤의 후예들입니다. 박해의 와중에 비록 목숨을 잃을지언정 하느님을 배신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끝까지 하느님 앞에 정결하게 남아 있으려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유대교의 전통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자기들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데에만 마음을 쏟다 보니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겁니다. 사람의 마음 보따리는 한정되어 있어서 어떤 것이 가득 차 있으면 다른 것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법이지요.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선민의식과 자기만족감이라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주일미사 참례나 레지오 주회합에 참석하는 일마저도 힘들어하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자기의 내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뿐일 겁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시기 없이 사순시기만 계속되는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만을 향해 있는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도록 당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경탄하던 군중처럼, 가난한 이들 안에서 놀라운 일을 이뤄내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도록 권고합니다. 

 

 

고장 난 공감 능력 회복해야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고장이 나있는 공감 능력이 회복될 겁니다.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일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어야 할 모습인데, 현대인이 워낙 각박하게 살아가다 보니 특별한 노력을 통해서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마치 고무줄과 같아서, 어떤 때에는 세상 모든 사람을 품어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어느새 오그라들어 자기 자신에게만 쏠리게 됩니다. 그래서 전주교구 기도문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고 기쁘게 하느님을 향할 수 있도록 이 기도문을 자주 바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성령의 힘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9월호, 김광태 야고보 신부(전주교구 사목국장, 전주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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