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수도 ㅣ 봉헌생활

카르투시오회의 삶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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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08 ㅣ No.245

카르투시오회의 삶과 영성

 

 

카르투시오회는 1084년 성 브루노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몇명의 동료들과 함께 은수생활을 하기 위해 샤르트르 계곡으로 갔다. 카르투시안 생활은 오늘날 약간 변화했다. 거기에는 두 부류의 수도승들이 있는데 곧 신부들과 평수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수도승들이다. 전자는 사제가 되어 보다 큰 고독의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한다. 그들은 큰 수도원 주변의 암자에 흩어져 생활하며 전례를 위해 하루에 세 번 함께 모인다. 대화는 단지 일주일에 두번 즉, 주일 점심식사 후와 월요일 약 4시간 동안 지속되는 산책 중에 할 수 있다.

 

후자 즉 평수사들은 그들의 수도원을 따라서 있는 암자들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수도원 주위에서 손노등을 하기 위해 매일 약 8시간 동안 그들의 암자를 떠난다. 이 때문에 그들이 전례거행으로 보내는 시간은 사제들보다 적다. 입회자는 자신이 되고자 원하는 수도승의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 전자를 위한 양성 기간은 후자의 양성을 위해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원했던 것'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브루노 축일은 10월 6일이다.

 

 

1. 카르투시안의 하루 일과

 

카르투시안의 하루는 전례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전례는 묵상, 성가(chants), 찬미가(hymns), 독서, 그리고 기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하루의 시간과 한 해의 시간에 따라 적절히 함께 배열되어 있다. 이것의 핵심은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즉 하느님의 생명과 지식과 사랑 속으로,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 초대는 얼마나 훌륭한가! 그래서 우리 혹은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이 초대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전통이 생겨났다. 여기서 '시간경들'이 발전되었다. 그 시간들은 전례가 거행되는 때이다. 유대의 하루 중 제 1시는 최초의 전례가 거행되는 때이다. 이것은 하루 시간 분량에 따라 대략 오전 6시 경으로 '1시경'이라 불린다. 3 시간 후인 제 3시에 '3시경'이 거행된다. 또 3시간 후인 제 6시에는 '6시경'이 거행되며, '9시경'은 제 9시에 거행된다. 저녁 시간경은 '저녁기도'(Vespers)라 불리며, 밤 시간경은 '끝기도'(compline)라 불린다. 그다음 '독서의 기도'(martins)가 있다. 이것은 긴 독서들로 이루어진 이른 아침의 시간경이다. 이 다음 동이 틀 무렵 새로운 하루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는 '찬미의 기도'(lauds)가 있다. 그리고 다시 '1시경'으로 돌아간다. 이 시간경들이 거행되는 하루의 실제 시간은 다양할 수 있다. 문화, 기후, 그리고 일출, 일몰이 이것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모든 시간경들은 미사라고 부르는 또다른 전례 예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미사는 매일 전례의 정점이다. 다음은 St. Hugh's Charterhouse 카르투시안 수도원의 일과표이다.

 

1시경 ........................................... 07 : 00

영적 기도(정신 기도) ....................... 07 : 30

3시경 ........................................... 08 : 00

공동체 미사 ................................... 08 : 15

개인미사/영적독서 .......................... 09 : 00

손노동 ......................................... 10 : 30

6시경 .......................................... 11 : 15

점심식사, 가벼운 노동, 휴식 ............. 11 : 30

9시경 .......................................... 13 : 15

공부 ............................................ 13 : 30

손노동 ......................................... 15 : 00

저녁기도 ...................................... 15 : 30

영적 수행들 .................................. 16 : 00

저녁식사 ...................................... 17 : 30

성찰 ............................................ 18 : 15

끝기도, 정리/잔무들 ........................ 18 : 45 

취침 ............................................ 19 : 45

독서의 기도 ................................... 00 : 00

찬미의 기도 ................................... 02 : 00

취침 ............................................ 02 : 30 - 03 : 30 ∼ 07 : 00

 

아침기도의 길이는 축일에 따라 다양하다. 물은 언제든지 마실 수 있고, 몸이 요구하면 소금도 얼마간 섭취할 수 있다. 반면 식사는 위의 시간들로 제한된다. 겨울철 저녁식사 단지 빵과 음료이며, 여름철에는 토스트 위에 햄을 곁들인다. 점심식사는 언제나 알차다. 아침식사는 없다. 음료는 차나 커피 혹은 상당히 달콤하고 매우 영양가 있는 수도원산 사과술로 이루어 진다.

 

아침기도, 찬미경, 미사, 저녁기도는 성당에서 거행된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1시경을 제외한 모든 시간경들이 성당에서 바쳐진다. 이 날들은 수도승들 중 하나가 독서하는 중에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이외의 모든 것은 독방에서 고독 중에 행해진다. 월요일에는 6시경, 점심식사, 9시경을 좀더 빨리 바치고, 저녁기도는 산보에 맞추어 후에 거행한다. 원장은 만일 그가 원한다면 암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방문할 수 있다. 수도승들은 만일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원장을 찾을 수 있다. 하나의 일반적인 규정으로서, 수도승들은 일 년에 4번 자기 가족에게 편지를 쓸 수 있고, 가족들은 일 년에 한 번 약 3일간 방문할 수 있다.

 

 

2. 수련장과의 시간

 

수련자들은 수련장과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수련자들의 영성생활을 돕기 위해서이며 또한 그들에게 수도원의 관례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 만남들은 대개 수도회 회헌에 대한 독서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 회헌은 카르투시안 삶의 방법과 이유를 설명한다. 성 베네딕도 규칙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용은 매우 중요하다. 암자에서의 건강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균형을 가르친다. 하루의 일과는 수련자들을 위하여 짜여진다. 엄격한 규율이 그 수련자를 균형있게 남아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나중에 그 수도승의 생활 안에서 더 많은 유연성이 받아들여진다.

 

회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혀진다. 어떤 내용들은 발췌되어 토의된다. 수련자들의 영성생활과 관련되는 내용들도 또한 그렇다. 많은 사람이 그 영적 여정은 걷는다.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될 비슷한 만남들이 있다. 이것은 이 길을 걸어온 누군가가 그 길을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안내자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여정은 실재와의 진정한 만남이며 성숙을 향한 영적인 길이다. 이 여정은 단지 그 길을 여행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그 길을 여행하도록 초대된다.

 

 

3. 카르투시안의 길

 

그 길은 무엇인가? 그 여정은 무엇인가? 암자의 고요함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우리 안에는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우리 삶 전체를 통하여 이 질문에 대답한다.

 

카르투시안의 삶은 크리스챤 삶의 특별한 표현이다. 크리스챤 삶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바와 같이 하느님을 전전으로 신뢰하는 삶이다.

 

암자에서 카르투시안 수도승은 혼자가 아니다.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카르투시안들은 그들 자신을 나누기 위하여 암자에서 생활한다. 그 암자는 그들에게 하느님과 보다 쉽게 통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혼자라 하더라도 카르투시안의 삶은 지속적인 관계와 통교의 삶이다. 신앙이 없는 외부인들은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카르투시안들을 홀로 있는 존재로 간주한다. 카르투시안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만일 카르투시안이 혼자라면 그 삶은 비인간적이고 역겨운 것이 될 것이다. 혼자 있기를 원하여 카르투시안 삶을 살고자 했던 어떤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실패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곧 떠나가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되었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였다. 카르투시안 삶은, 크리스챤 삶은 확실성과 행복의 생활, 성숙과 안정의 생활, 평화와 지식의 생활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체험하는 바와 같이 이런 생활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능력이 온다. 카르투시안 수도승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지 않다. 그들은 하느님을 보는 은총을 받았다. 비록 그들이 하느님을 보기에 부당하고 또 희미하게 본다고 할지라도.

 

그 길은 하느님을 하느님이게 하는 삶의 한 양식이다. 그것은 내적 생활 혹은 영성 생활이다. 카르투시안들은 이 내적 생활을 매일의 일들, 의복들, 관습들, 그리고 건물들 안에서 극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하느님과 함께 생활하는 그들의 단순한 삶의 양식이다. 크리스챤 삶, 그 여정의 목적은 거기에 들어갈 때 그 자체가 분명해 진다. 그것은 진리이며 기쁨이자 통교이다.

 

 

4. 카르투시안 영성

 

카르투시안들은 한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은수자들이다. 그들은 고독속에서 하느님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규칙서가 없고 단지 회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회헌은 거의 천년 동안 별로 바뀌지 않고 잘 존속되어 왔다. 비록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어떤 방법들로 교회의 예배를 바꾸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카르투시안 전례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고독의 삶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4천년 전에도 상당히 가치있는 삶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그 삶을 위해 생명 외에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회헌은 그들에게 활동적 사도직을 금하고 있다. 그들의 일은 기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의 질과 성과를 측정할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농사를 짓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판매를 위해 진력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하는 많은 수도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분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팔 가치가 있는 하나의 진주를 찾는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고, 그것을 원하며, 그것에 '예'라고 말하고 그것을 취한다.

 

그들 개인의 익명성은 그들에게 있어 중요하다. 카르투시오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기 쉽다. 그러나 그들은 외부인들이 그 수도승들을 아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들은 천국의 사람들과 그렇듯 더 관계하기 위하여 세상의 사람들에게 죽는다. 그들은 만일 그것이 그 수도원의 수도승들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 도움과 관련된 어떤 것도 피한다. 수도원 밖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안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가져서는 않된다. 그러나 가까운 가족은 어느정도 이것으로부터 면제된다. 이것의 핵심은 수도승들로 하여금 그 여정에 계속해서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그 여정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하는 여정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 그렇듯 힘든 이유이다.

 

이 수도회의 수도승들은 한 수도원 안에 정주할 것을 서원하지 않고, 그 수도회에 대한 정주를 서원한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카르투시안 수도원에도 이전이 가능하다. 그 수도원의 원장은 모든 우편물을 개봉하여 읽어볼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편지를 해당 수도승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내버릴 권리도 있다. 수도승들은 이 점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자유롭게 선택하였다.

 

비록 카르투시안들이 라디오, TV, 신문을 못갖고, 편지나 방문을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스스로 이런 것들을 갖지 않는 것을 몸에 익히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세상의 특별한 일들을 모른다 할지라도 그들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안다. 그들은 세상에서 전쟁, 살인, 절도, 교만, 시기, 강간, 정치적 타락, 모든 종류의 타락 등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들의 동료 형제 자매들을 통해서 그들이 받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의 삶은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의 중재 기도이다. 그들은 수도원에 있음으로써 우리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우리와 훨씬 더 가깝게 일치되어 있다. 오히려 우리와 가까운 누군가가 죽었을 때 그들이 여전히 늘 우리와 함께 있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이 그 수도승들은 그들 자신에 죽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서 우리와 함께 생활한다.

 

이 세상의 사물들에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두는 것으로부터 그 수도승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도원에는 세속적인 쾌락들에 너무 마음을 끌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관습들이 있다. 그 수도승들은 털 셔츠를 입는데 그것은 육체적 건강과 감각적 쾌락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같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늘 상기시켜 준다. 그들은 하루에 단지 한 끼만 식사한다. 그것은 비록 고기를 포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건실하다. 여름철에 그들은 오후 늦게 하나의 작은 스넥(예컨데 구운 빵에 햄을 곁들인)을 먹는다. 겨울철에 그 스넥은 단지 빵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이 시간 외에 어떠한 것도 먹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지 물을 마실 수 있다. 거기에는 아침식사는 없다.

 

이것은 그들이 육체적 건강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양식은 우리가 건강에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즉 규칙적인 수면, 신선한 음식, 심리적 긴장을 해소시키는 수행들이 그것들이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우리보다 더 오래 산다. 그들에게 있어 90대는 흔하다.

 

산책은 그들에게 어떤 것에 관해 다른 모든 사람과 이야기 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대화는 거의 언제나 영적 여정과 관련된 것이며, 그 여정을 얼마나 잘 혹는 얼마나 못가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시간이다. 그들은 어떤 다른 때에는 이야기 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이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 할지라도 그들은 형제들과 우정을 나눈다. 그들은 비록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루에 서로 3번 본다. 달과 해가 갈수록 그들은 누군가를 잘 알게 된다.

 

비록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회원수는 적지만, 성소를 시험하는 젊은이들은 끊이지 않는다. 그들 중 매우 소수만이 머무르며, 회원수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전세계에 카르트시안 수녀 공동체들(Convents)을 포함하여 30개 미만의 카르투시안 수도원이 있다. 그 수녀들도 남자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지만, 그 생활이 그들에게 너무 어렵다고 간주되어 왔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덜 엄격하다(고독에 있어서 덜하고, 성무일도에 있어서도 분량이 덜하다). 이제 여자들도 남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활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카르투시안 삶은 그들의 회헌에 의해 이루어 진다. 그 회헌은 카르투시안의 삶을 가장 훌륭히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성 베네딕도 규칙서 다음으로 그것을 읽는다.

 

 

5. 카르투시안 수도원들 목록

 

인터넷 address.htm at outworld.compuserve.com나 혹은 책 Robin Bruce Lockhart, Halfway to Heaven, Vanguard Press, 1985. 참조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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