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승이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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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08 ㅣ No.242

수도승이란 누구인가?

 

 

수도승은 세상 사람들의 걱정거리와 욕망들과 야심을 버리고 하느님을 찾는데에 자신의 전 삶을 바치도록 성령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이 개념은 친숙하다. 이 개념이 나타내는 실재는 하나의 신비이다. 왜냐하면 사실상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스스로 하느님을 찾기 시작할 때까지는 "하느님을 찾음"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만일 이미 하느님을 발견하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분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하느님이 먼저 수도승을 찾아주지 않으신다면, 그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도승은 "하느님의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찾도록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 있어 "하느님의 사람"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수도승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수도승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한가지 필요한 일 즉 '하느님을 찾는 일'에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투시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간접적인 길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고, 세상 안에서 훌륭한 생활을 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수도승은 그것들이 비록 선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것들을 뒤로 제쳐둔다. 그는 직접적인 길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간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물러난다. 그는 하느님 면전에서 기도, 묵상, 성독, 노동, 그리고 고행에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한다. 수도승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혼들을 찾는 일 보다도 오히려 하느님을 찾는 일에 봉헌된다는 사실로서, 다른 수도적 소명들과 조차도 구분된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발견되어질 수 있는가? 인간 존재 안에 있는 가장 심오한 법은 하느님과 생명에 대한 요구이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4-5). 우리 어둠의 가장 강렬한 요구는 그 안에서 빛나고 있는 빛을 사로잡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다음과 같은 첫 번째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너의 온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수도승 생활은 이 첫 번째 계명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 즉 성 베네딕도의 표현대로 하면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지기 않는" 사람들의 삶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누구인가? 그분은 어디에 계신가? 그리스도교 수도승생활은 절대자에 대한 어떤 순수한 직관력을 추구하는 것인가? 초월적인 선(善)에 대한 숭배인가? 완전하고 불변하는 미(美)에 대한 경배인가? 바로 이러한 추상적 개념들의 공허함은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 거룩하시고 불가시적이며 전능하신 분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떠한 추상적 개념보다도 더 무한히 더 크고 더 실재적인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셨다. "아무도 나를 보고서는 살지 못할 것이다."(출래 33,20). 하지만 수도승은 모세와 같이 완강히 부르짖는다. "나에게 당신 얼굴을 보여주십시요"(출애 33,13).

 

이처럼 수도승은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해서 그분을 보기 위하여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수도승 생활이 "천국의 삶"일뿐만 아니라 "순교의 삶" 즉 천사적이며 동시에 십자가에 못박히는 삶인 이유이다. 성 바울로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친히 우리 마음속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2고린 4,6).

 

수도승 생활은 이 신비스러운 빛의 영적인 광선들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에 대한 거부이다. 수도승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안에 투신하기 위하여 인간의 영성에 대한 상상들과 환상들을 떨쳐버리는 사람이다. 신앙은 신비로이 그를 비추는 빛이다. 수도승 생활은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의 생활이며,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그를 변형시키는 하느님의 사랑에 전적으로 투신하는 생활이다.

 

성바울로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는 참으로 고독한 봉쇄구역 안에서 생활하는 수도승의 주된 목표가 된다. 그리스도인 완덕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수도승은 그리스도인 삶의 충만성과, 그리스도인 신앙의 완전한 성숙을 추구한다. 그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하여 수도승 자신의 뜻, 재물, 편위와 안락에의 욕구, 자존심, 가정을 꾸릴 권리, 자기 좋은대로 시간을 사용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 가거나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생활하는 자유를 포기한다. 그는 침묵 속에서 홀로 가난하게 생활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믿는 것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하셨다. "하느님 나라 때문에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으로서, 이미 현세에서도 몇배로, 또한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되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루가 18,29-30).

 

수도승은 평야에 있는 전쟁터를 향해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의 눈은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천상 구름 위에서 영광 중에 다시 한번 나타나실 사막을 응시한다.

 

[글 토마스 머튼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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