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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길 수도의 길: 트르와 사랑의 성모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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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6-20 ㅣ No.237

영성의 길,수도의 길 (15) 트르와 사랑의 성모수녀회


굶주린 이에게 빵을, 외로운 이에게는 사랑 전해

 

 

- 고통받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를 찾고 섬기고자 십자가를 가운데에 놓고 그 안에 '좋은 이웃(Bon Secours)'이라는 뜻의 알파벳 줄임말 'BS'를 써넣었다. 성모를 본받아 겸손하게 착한 이웃으로 살겠다는 수도 공동체의 다짐이 담겼다. 아래엔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100㎞ 가량 떨어진 샹파뉴 지방 5대 도시 중 하나인 트르와에서 시작됐고 또 그곳에 본원이 있다는 의미로 트르와(Troyes)를 써놓았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삶의 보금자리다. 낡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길로 햇볕이 쨍쨍하다. 얼마나 뜨거운지 아이들 하나 보이지 않는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 2398, 무더운 골목길 사이로 평범한 일상이 흐른다.

 

이 골목엔 그러나 다른 도시엔 없는 특별한 게 있다. '트르와 가정방문센터'(센터장 허루비나 수녀)다.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뿐인 가정방문센터로, 일반 종합사회복지관의 재가복지활동과 달리 위기에 처한 가정과 동반하는 벗으로 활동한다. 사회복지라는 차원을 벗어나 '함께하는 여정의 진정한 동반자'를 지향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사도직을 실현해간다.

 

트르와 사랑의 성모수녀회 한국분원(분원장 송영란 수녀)이 수도원 곁에 세운 트르와 가정방문센터에 들어섰다. 20㎡쯤 될까 싶은 공간에 사무실이 세 칸이고, 방도 하나 따로 있다. 봉사자들이 PC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가정 방문을 통한 가정 복원'을 꿈꾸는 트르와 가정방문센터는 2008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지난 2년간 조손ㆍ모자ㆍ부자로만 구성된 282가정과 함께해왔다. 청주시와 함께하는 '드림 스타트(Dream Start)' 프로젝트 일환이긴 하지만, 사업비 전액 지원은 아니기에 늘 허덕인다.

 

- 아이들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선재(가운데) 수녀에게 스스럼이 없다. 집에서보다 지역아동센터인 '사랑의 울타리'에서 더 오래 먹고 자고 공부하기에 아이들은 자신이 꼭 입양된 것 같다고 고백할 정도다.

 

 

허루비나(루피나) 센터장수녀와 이선재(안느마리) 수녀는 시내 전역에 있는 가정들을 찾기 위한 세부방문계획을 짜느라 여념이 없다. 또 봉사자 모임으로 고교생 및 대학생 모임, 어머니 모임 등을 꾸리고 봉사자 교육도 갖고 있다. 사별이나 이혼으로 혼자 된 아버지들 자조모임도 꾸려 서로 자녀양육과 살림살이 애환을 나누도록 한다. 봉사자들과 함께 위기에 처한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는 것도, 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두 수녀의 몫이다.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습니다. 아픔을 이해하는 게 선행돼야 합니다. 마치 무덤과도 같은 가정의 끈적한 삶 안에 머무르며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뿐입니다. 가난과 질병, 소외와 좌절, 습관화된 무기력으로 고통받는 가정 안에 머무름으로써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자신에게서 찾아내도록 하는 것뿐이죠. 쉽지는 않지만 아주 매력적인 사도직입니다."

 

가정 방문을 하면 할수록 수도자들은 '하느님 강생의 신비'를 체험한다. 그들 안에서 하느님 모상을 찾아내고 빛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돌봄'이라는 카리스마를 실천하고자 수도자들은 청주에서 '동반'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트르와 가정방문센터 모토는 '아베크(avec)'다. 프랑스어로 '함께'라는 뜻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자 한다. 더불어 '열매교실'도 열어 아이들에 대한 학습지원활동도 펴왔다.

 

- 2009년 1월 내한한 이사벨 뒤테르트르 총원장 수녀와 함께한 트르와 사랑의 성모수녀회 한국분원 회원들. 왼쪽부터 허루비나, 송은주, 김민경, 송영란, 뒤테르트르, 채애선, 이선재, 김혜영 수녀.

 

 

이같은 가정방문 사도직에 앞서 수녀회는 '사랑의 울타리 지역아동센터'(센터장 이선재 수녀)를 시작했다. 2002년 10월 한국 파견 당시, 자신의 사도직을 찾고자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가정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수녀회는 사도직 초석을 청주의 대표적 영세민 아파트 거주지역에서 만난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데서 찾았다.

 

2003년 7월 청주시 수곡동에 '사랑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가정사도직이라는 트르와 영성으로 함께했다. 일종의 '변형된 가정공동체'였다. 마치 아이들을 입양한 것처럼(실제 아이들도 가족으로 입양된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보살폈다. 변화는 느렸지만 조금씩 이뤄졌다.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도 해봤지만, 아이들을 일으킨 건 성적 향상이었다. 성적이 10점만 올라도 아이들은 자신감을 회복하는 듯했다. 신채호 축구단과 미카엘 스카우트, 한솔초등학교 꿈비교실 및 나무팀 위탁 협약활동, 드림 스타트 위기아동 예방사업, 영어뮤지컬 대회 등은 부수적 소득이었다.

 

또 받는 것에만 익숙한 아이들이 복지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짜는 없다'는 모토로 가난 속에서도 부요함을 느끼도록 하면서 아이들을 돌봤다. 그 세월이 7년 흐르면서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사랑의 울타리를 거쳐갔고, 지금도 50명 안팎 아이들이 들락거린다.

 

이제 수녀회는 청주에서 새 사도직을 시작했다.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모퉁잇돌'이다. 2009년 12월 성폭력에 희생당한 여성 장애인들의 사회 복귀를 지향하며 시작한 시설엔 14명이 입주해 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체류할 수 있는 보호시설이다. 치료공동체가 아니어서 아쉽긴 하지만, 국내에 3곳밖에 없는 시설이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송영란(안젤라) 분원장수녀는 "지금까지 수도생활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증거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소명은 현 시대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존재에 대한 진정한 의문을 그들 삶 안에서 스스로 불러 일으키도록 알리는 것"이라며, 교회에서 받은 소명을 도전적 신앙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수도회 영성 및 역사


고통받는 이들의 좋은 이웃...1840년 프랑스서 설립...2002년 한국 진출

 

 

- 트르와 사랑의 성모수녀회 창립자 폴 세바스티안 밀레 신부.

 

 

'교회의 딸'로 불린 프랑스도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계몽주의를 거치며 19세기 들어 신앙적 역동성을 잃는다. 실업과 질병, 사망 등으로 가정 공동체는 해체되고, 신앙 또한 무뎌졌다.

 

이런 상황에서 1823년 8월 31일 사제품을 받고 프랑스 동북쪽 상파뉴에 파견된 폴 세바스티안 밀레(Paul-Sebastien Millet, 1797~1880) 신부는 특히 가정방문을 통해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을 목격한다. 불행이 가정을 무너뜨리고 신앙적 삶을 파괴하는 현실을 보며 밤낮으로 고민하던 밀레 신부는 트르와 사랑의 성모수녀회(Notre-Dame de Bon Secours de Troyes)를 설립한다. 1840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었다.

 

처음엔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가정에 입주해 가정간호 사도직을 하던 수도자들은 이제 가정에 입주하지는 않지만 깊은 상처를 지닌 가정이 성사와 기도생활을 하기까지 돌보는 사도직 여정을 걷고 있다. 지금도 가정간호가 사도직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에 사회복지활동과 교리교육도 하고 있다.

 

170년 역사 속에서 수녀회는 병자들에게 다가가 지속적으로 머물며 가정의 고통에 함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현존을 증거하며 살고 있다. 특히 고통받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를 발견하고 섬기며, 그리스도 강생과 수난에 함께한 성모의 삶을 본받으며, 봉헌된 삶 안에서 사랑과 겸손, 단순의 덕으로 살아간다. 그 정신은 "내가 병들었을 때 너희는 나를 돌보아 주었으며"(마태 25,36)라는 말씀에 요약돼 있다.

 

수도회 설립 초기엔 프랑스 전역을 비롯해 서유럽 일대, 북아프리카, 북미 등에 파견돼 회원만 1000여 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일랜드, 한국 등 4개국에 100여 명이 파견돼 있다. 국내에는 2002년 10월 청주교구를 통해 진출, 청주분원 설립과 함께 사도직을 시작했으며, 회원은 종신서원자 7명, 수련자 1명, 청원자 3명 등 총 11명이다. 2009년 11월엔 수도회 역사상 최초로 프랑스가 아닌 한국에 수련원을 개설해 지원자 4명도 양성과정에 있다.

 

※ 성소모임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청주분원서 개인 성소상담 및 식별과정(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 2398)

문의 : 043-271-1840, 010-7742-7413, 송영란(안젤라) 수녀

 

[평화신문, 2010년 6월 20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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