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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늙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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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03 ㅣ No.912

[영화 속 신앙 찾기] 늙은 자전거



“풍도야~.”

“예, 할배~.”

“할배, 참 조용하데이. 너무너무 조용해서 세상에 할배랑 풍도만 있는 것 같다. 너무 좋다. 할배도 좋제?”

푸르른 초록을 풍광으로 가득한 시골길을 달리는 삐걱대는 자전거 위에서 손자와 할아버지가 주고받는 대화가 정겹다.


문예 영화 그리고 힐링 영화

할아버지 강만(최종원 분)은 괴팍한 성격 탓에 반겨주는 이도 없이 술과 낡은 자전거를 벗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나간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손자 풍도(박민상 분)가 나타난다.

강만은 손자를 거둬줄 수 없다며 풍도를 거부하지만, 당돌하고 뻔뻔한 풍도는 보육원에 가지 않으려고 강만을 조르고 강짜를 부리며 그의 곁에 남는다. 이렇게 괴짜 노인 강만과 당돌 소년 풍도가 낡은 자전거와 동행하는 영화 ‘늙은 자전거’가 시작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언제나 곁에 두고 있는 낡은 자전거만큼이나 늙고 기운이 없다. 고집불통의 성격인 그는 장터에서 만나는 속옷 판매상 복만을 보면 으르렁대며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지만, 손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여느 할아버지 못잖다.

파출소에서 태연히 ‘할아버지가 시한부’라며 동정심을 자아내는 풍도는 말썽꾸러기의 전형적인 표정을 지녔지만, 문득문득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따스한 마음을 지녔다.

영화 ‘늙은 자전거’는 고아가 된 손자를 갑자기 떠맡게 된 할아버지와 철없어 보이는 손자가 급작스러운 동거를 시작하며 애틋한 정을 나누는 휴먼 드라마로 얼개를 꾸미고 있다.

너무나 착한(이 작품을 연출한 문희융 감독에 따르면 참으로 ‘순한’) 영화다. 물론 시선에 따라서는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틀에 착하고 답답한 영화라고 보겠지만, 분명이 작품은 착함에만 머물지 않고 관객들에게 좋은 마음과 기운을 전달하는 순한 영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요즘은 만나기 힘든 ‘문예 영화’라 하겠다. 그렇다고 단순히 착하고 아름다운 문학적 감수성만 가득한 예술영화가 아닌 그 가치와 사회적 메시지가 가득한 다시 말해 요즘 시대에 맞는 ‘힐링 영화’임에 틀림없다.


매력적인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연출자의 시너지

속옷 판매상 복만, 다방 종업원 미자, 여인숙 주인 숙자 등 개성 있는 조연은 물론 다소 과장되고 작위적인 연기와 ‘화이트 아웃’(눈보라로 잘 보이지 않는 상황) 등의 전형적 기법을 사용해 요즘은 보기 힘든 ‘TV문학관’을 영화관에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부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영화를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전형적인 문예 영화를 만나는 반가움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할아버지 강만을 연기한 최종원은 40여 년 동안 150여 편의 연극과 영화에 출연한 대표적인 연기자다. 사랑을 향한 열혈남으로 포복절도한 연기를 보여준 속옷 판매상 복만을 연기한 박상면은 개성 넘치는 연기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이다.

그리고 다양한 작품에서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조안은 ‘장터의 꽃미녀 미자’로 열연하며 솔직발랄한 그녀만의 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호탕한 여인숙 주인 숙자는 가수인 춘자가 출연해 맛깔스런 연기를 구수하게 펼쳐 보였고, 착실한 9급 공무원 창식을 연기한 김형범은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감초역할을 잘하기로 소문난 연기자였다.

주인공 풍도를 연기한 박민상은 이 작품으로 영화에 데뷔했지만, 이미 ‘왔다 장보리’, ‘최고다 이순신’ 등 드라마와 광고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아역 연기자다. 특히 이 작품을 통해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크게 엿볼 수 있었고, 현재 강우석 감독의 차기작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어린 김정호 역을 연기해 조만간 영화관에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화려한 주조연이 합심해 출연한 이 작품을 연출한 문희융 감독은 ‘저먼 동화의 나라로’로 1987년 한국 청소년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시나리오 ‘처형’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선에 진출한 바 있다.

지난해 개봉한 ‘연평해전’의 시나리오 각색을 맡기도 했던 그는 연출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할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만큼이나 느리게 전개되지만, 그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견뎌내는 사람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이렇듯 화려한 주연과 조연들이 문희융 감독의 지휘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 한 편을 빚어낸 것이다.


수채화처럼 펼쳐진 장면들의 상징

우리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득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시골길과 푸른 들판은 물론 장터, 여인숙 등 장돌뱅이 할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가는 카메라를 위해 거의 모든 장면이 부여에서 촬영되었다. 덕분에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눈과 마음은 맑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광들의 모습에 저절로 깨끗해짐을 맛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연출자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강가에서 할아버지가 풍도에게 하는 강아지풀 장난은 과거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현재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어지며 이 가족에게 내재된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자전거를 타는 풍도의 위치가 옆에서, 나란히 그리고 일어서서 타는 모습으로 변하며 두 사람 관계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나면 제목의 ‘늙은’이란 단어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낡아버린 오래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시간, 역사, 가족 간의 기억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풍도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알게 해준다.

한편 상처를 지닌 풍도의 불같이 뜨거워진 감정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 배치함으로써 순화시켜주는 감각 또한 연출자의 배려라 하겠다.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들려주기보다 마치 반전처럼 후반부에 ‘속 깊은 풍도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이런 직접적인 표현보다 우회적인 상징과 암시가 감독의 의도였음을 관객들은 알게 된다. 영화 속에 가득한 상징과 암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화해하는 그리고 성장하며 새롭게 꾸려지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다.


영화에 알맞게 재단된 원작

우리나라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독보적인 존재인 이만희는 한국의 대표 극작가다. 그의 원작 연극 ‘늙은 자전거’에서 나온 이 영화는 원작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인물의 성격을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구성을 바꿨다.

또한 시대적 배경을 1970년대인 원작과는 달리 ‘스마트폰’이 등장하는 현재로 바꿨지만, 작품 안에 흐르는 정서는 1970년대를 유지하는 영화적 묘미를 살려냈다.

원작에서 보여준 가족 이야기를 좀 더 강렬하게 3대에 걸친 남자들의 연속성을 통해 들려준다. 그리고 ‘풍도’가 ‘복만’과 ‘미자’를 통해 새로운 가족으로 이루어지며 새로운 행복의 시작을 엿보여주는 것으로 가족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 가족, 가정의 소중함

지난해 10월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제14차 정기총회는 ‘교회와 현대세계에서의 가정의 소명과 사명’이란 주제로 열렸다. ‘가정’을 주제로 한 주교 시노드를 재작년에 이어 연속으로 두 번이나 개최할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정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시다.

교회는 물론이며 현대 아니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기초 공동체가 바로 가정이고 현대에 이르러 위기에 처한 것이 또한 가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교황님은 “가정은 희망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하셨고, “가정은 서로 용서하는 것을 훈련하는 커다란 체육관”이라며 가정에서 사과와 용서로 하루를 마감할 것을 권고하신 것처럼 가정의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이처럼 우리 교회에서 가족, 가정의 중요함은 아무리 많이 언급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핵가족 아니 가족 파괴가 예삿일이 된 요즘이지만 가끔 자녀들과 함께 부모님을 찾아가 뵙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나와 부모, 나와 자식과의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해줄 것이다. 영화 ‘늙은 자전거’는 그런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원고 마감을 넘겨가며 여러 작품들 속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 이 작품을 선택한 까닭은 조금이라도 더 교회의 영성에 가깝고 그런 작품을 소개하고자 하는 욕심에서였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여러 다양한 통로를 통해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 조금은 낯설지만 귀한 작품을 소개하려는 좋은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하여 수많은 상업영화의 틈 사이에서(간편하게 가까운 극장에 가서 볼 수 없기에) 조금은 수고스럽더라도 더욱 좋은 작품들을 만날 기회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필자의 작은 바람을 고백한다.

* 정지욱 이냐시오 로욜라 - 영화평론가. 일본 리웍스(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심 심사위원과 일본 유바리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본심 심사위원, 영화 시민연대 대표를 맡았다.

[경향잡지, 2016년 2월호, 정지욱 이냐시오 로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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