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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총선에서 그리스도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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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0 ㅣ No.1310

[경향 돋보기 - 다시 총선에] 총선에서 그리스도인은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4월 13일에 실시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국민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표를 통해 행사할 수 있고 국민이 던진 표에 의해 국민의 대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제19대 국회는 왜 최악이 되었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15년 사회통합 인식조사에서는 입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76.7%에 달하는 등 조사대상 13개 기관과 단체 가운데 국회의 신뢰도가 꼴찌였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2015년 10월 6-8일)에서는 제19대 국회가 ‘잘못했다.’는 평가가 82%인 반면, ‘잘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한국방송(KBS)과 코리아리서치가 최근에 실시한 조사(2016년 2월 11-12일) 결과, 거주 지역의 현역의원이 재출마했을 때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59.8%로, “현역의원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답변(24.5%)보다 훨씬 높았다.

 

현역의원에 대한 물갈이 욕구가 많다는 것과 제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가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회 무용론과 국회 해산론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일하는 국회’, ‘개혁 국회’를 표방했던 제19대 국회는 왜 최악이 되었을까?

 

첫째, 제19대 국회는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라는 중대한 정치적 사건을 앞둔 2012년 6월에 개원했다. 여야의 관심과 초점이 오직 대선승리에 집중되어 국회의원들의 국회 내 모든 행태와 결정의 기준은 대선에 맞춰졌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회 개원 일 년을 정쟁으로 날을 세우며 보냈다.

 

둘째, 국회의원들의 이념은 지난날에 비해 정당별로 매우 뚜렷해졌고 정책에 대한 태도도 뚜렷한 이념적 차이를 보였다. 이념적으로 양극화한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쳤다.

 

셋째, 당의 소수 실력자의 친소 관계에 따라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밀실 공천과 낙하산 공천으로 국회에 입성해서 완장정치에 앞장섰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자신을 공천해준 사람의 지시와 명령을 충실히 따르면서 파행을 일삼았기에 선거를 해봐야 정치는 바뀌지 않고 저질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선거를 위한 선거에서 벗어나, 지난날의 정치 적폐를 청산하고 국회가 국회답게 제대로 일을 하도록 능력있고 양심있는 선량을 뽑아야 한다.

 

 

2016년 총선 환경의 이해

 

유권자들의 총선 환경에 대한 이해는 좋은 선택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번 총선은 여러 면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인다.

 

첫째, 현실과 인식의 충돌이다. ‘정권 심판론’에 대한 인식은 높지만 심판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그대로 존재한다.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2015년 12월 28일)에 따르면, ‘국정 안정론’보다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무게를 두는 유권자가 더 많았다.

 

총선에서 ‘현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비율은 39.3%인 반면, ‘정부 심판과 여당 독주를 견제하려고 야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응답자는 49.8%로 약 10퍼센트포인트 더 많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46.9%였다.

 

이와 같이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민심은 결국 유권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보낼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스스로 냉정하게 파악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둘째, 정책과 전망이 사라졌다.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들은 공약과 정책을 통해 유권자와 소통한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은 정책보다는 선거법 개정과 공천에만 매몰되면서 선거의 질을 스스로 떨어뜨렸다.

 

지난 2012년 총선 때만 해도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등의 쟁점이 제기되었지만, 이번 총선에서 여야는 오직 선거구 획정과 현역의원을 총선 공천 예비후보에서 탈락시키는 컷오프와 친노 패권주의 청산, 진박과 비박 논쟁, 제3정당 창당 등 정쟁적 요소에만 당력을 집중했다.

 

선거에서 유권자가 쟁점 정책을 보고 투표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유권자가 정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가져야 하고, 정책에 대해 후보와 정당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또한 그 쟁점 정책이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선거가 정책보다 정쟁에만 매몰되면 ‘묻지마 선거’, ‘깜깜이 선거’로 전락할 수 있다.

 

셋째, 보수가 단일 구조에서 실시되는 최초의 선거이며 동시에 야권은 분열되었다.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야당 분열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여당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야당이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으로 분열되어 치른 지난 1996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수도권 전체 96개 선거구 가운데 54개(56.3%) 지역에서 승리했던 것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이번에도 일어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야권통합을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 그 이유는 그래야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대표가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가 불공정하게 치러진다면 그 선거로 선출된 대표가 국민을 대표해서 일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난 뒤 패자가 선거 과정을 문제 삼아 승복하지 않으면 당선자는 정치적 정통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정통성의 위기는 정치 불안정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정치 체제의 위기로 연결된다. 따라서 공정선거 없이는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될 수 없다.

 

이러한 공정선거는 정부만이 책임질 수는 없다. 유권자가 깨어있어야 공정하고 가치있는 선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유권자가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정치권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선거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유권자가 ‘대중 영합주의’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공약과 후보자의 능력은 보지 않고 오직 지역주의 감정에 매몰되어 ‘묻지마 투표’나 ‘미워도 다시 한번’ 투표를 하면 선거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시키는 괴물로 전락한다. 결과적으로 정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비정상이 정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누구에게 투표할까

 

이번 총선은 최악의 국회를 최고의 국회로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지파별로 지혜롭고 슬기로우며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뽑아라. 그러면 내가 그들을 너희의 우두머리로 세우겠다.”(신명 1,13)는 성경 말씀처럼 신자들이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면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첫째, 시대정신에 입각해 공동선을 실현할 후보와 정당을 현명하게 선별해서 투표해야 한다. 선거의 기본은 심판이다. 정부 여당이 잘못했으면 심판받는 것은 당연하다.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12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가톨릭 주간지인 ‘아워 선데이 비지터’는 선거에서 가톨릭 신자가 취해야 할 자세를 소개했다. “가톨릭 유권자로서 우리는 4년 전보다 우리 자신이 나아졌는지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해 묻고 성찰해야 한다. 투표소에서 우리는 나라에 기여할 소중한 기회를 얻는 것이며,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에 대해 우리 신앙의 가르침에 대한 가치들을 적용함으로써 공동선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와 선거에 참여하는 근본 이유는 ‘정치권력이 공동선을 위하여 행사하고, 법과 정의를 제대로 세우고,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공명하게 누리는 그러한 세상이 오도록 정치 질서를 쇄신하기 위해서다’(「간추린 사회교리」, 168항 참조). 따라서 신자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참된 공동선 달성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을 잘 선별해서 지지해야 한다.

 

둘째, 감성과 이미지가 아니라 공약과 정책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 후보들의 이미지에만 현혹되어 ‘묻지마 투표’만 일삼는 유권자의 비뚤어진 자유는 썩고 껍데기만 앙상한 민주주의를 양산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신자들은 무엇보다 감성 투표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신이 던진 한 표에 책임을 지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여름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가 소리없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불꽃놀이형 선거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국회를 바로잡아 국회답게 만들려면 국민이 변해야 한다. 정치를 파괴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국회를 욕보이는데 앞장섰던 ‘민주주의 파괴 10적’에 대해선 가차없이 심판해야 한다. 이러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민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1)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부정하는 사람. (2) 법안 하나 제대로 발의하지 못한 사람. (3) 국회 절차와 규칙을 무시하면서 돌출 행동을 일삼았던 사람. (4) ‘갑질’하고 막말한 사람. (5)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권력과 계파에만 줄을 서서 아첨한 사람. (6) 부패와 성희롱에 연루된 사람. (7)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선동한 사람. (8) 근거 없는 것을 사실로 선동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9) 삐뚤어진 매카시즘에 빠져 종북몰이에 앞장섰던 사람. (10) 독재 정치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사람.

 

셋째, 복음 정신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거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더욱 정의롭고 인간 존엄과 일치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세상 곳곳에 복음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누룩의 구실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총선 투표율은 1988년에 75.8%로 최고점에 다다른 뒤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급기야 2008년 총선과 2012년 총선에서는 46.1%와 54.2%로 추락했다. 우려되는 것은 ‘세대별 투표 양극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20대와 30대의 선거인 수의 비율은 각각 16.4%와 20.4%인 반면,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18.9%와 20.7%였다. 그런데 투표자 수의 비율은 20대와 30대는 12.5%와 17.0%로 오히려 하락했고, 50대와 60대 이상은 21.6%와 26.1%로 상승했다. 이런 세대별 투표 불균형은 결국 선거의 균형성을 해칠 수 있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늘 깨어있고, 총선에서 반드시 투표에 참여해 존재감을 높여야 한다. 비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참여하지 않고 비판만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모두가 승리하는 ‘아름답고 정의로운 선거’가 되도록 앞장서야 한다.

 

* 김형준 다니엘 - 명지대학교 인문교양학부 교수.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선거학회 회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김형준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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