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세계교회ㅣ기타

가깝고도 먼 한일관계: 친교와 화합의 다리 한일주교교류모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16 ㅣ No.226

[경향 돋보기 - 가깝고도 먼 한일관계] 친교와 화합의 다리 한일주교교류모임


새해 들어 아베 신조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상황이 이러한 때라 지리적으로 바로 이웃하면서도 과거의 역사로 거리가 생긴 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인식을 극복하여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고, 함께 손을 잡고 아시아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을 열고 있는 한일 양국 가톨릭교회의 노력이 더욱 뜻깊게 보인다.

올해로 19회째가 되는 한일주교교류모임은 한일 양국 신자들은 물론 양국 국민들의 감정의 골을 메우고 튼튼한 친교와 화합의 다리를 놓는 징표가 되고 있다.


양국 현황의 이해를 위해 역사의 공동 인식이 필요하다

“1996년 2월 16일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한국 주교님 세 분과 일본 주교님 두 분이 일본 가톨릭회관에서 첫 모임을 가진 이래, 한일주교교류모임은 이제 참가 주교가 30여 명에 이르는 큰 모임이 되었고, 의제도 교과서 문제에서 양국의 사목 정보 교환과 각계 각층의 교류 지원 문제 등으로 확대되었다”(한일주교교류모임 자료집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최창무 대주교의 발행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02년 발행).

한일주교교류모임은 이문희 대주교와 하마오 후미오 주교가 1995년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제6차 정기총회에서 만나 한국과 일본 교회가 협력하여 동아시아 선교에 힘쓰자는 뜻에서 시작하였다. 1996년 처음으로 일본을 찾아간 한국 주교는 이문희 대주교와 강우일 주교, 고 박석희 주교(전 안동교구장)였다. 일본 주교는 하마오 후미오 주교와 오카다 다케오 주교였다.

이문희 대주교(전 대구대교구장)는 첫 모임을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과 일본이 마주치는 곳에는 어디서나 늘 한국 사람에게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전후 세대들은 1945년 이전의 역사를 아는 이가 드물고 그래서 한편은 과거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생각하는데 한편에서는 도무지 지난날의 일을 모르고 대화를 하게 되니 감정의 흐름이 막히기 쉽고 일치를 이루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오래전부터 양국의 청소년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교류는 양국 현황의 이해를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또한 역사의 공동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가톨릭신문, 1997년 1월 1일자 ‘특별기고’).

이 첫 모임의 결과로, 양국 교회가 양국의 역사에 대한 동일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과, 장래의 양국민의 우애를 위하여 2세들에게 같은 역사를 가르치고자 공동 역사 교재를 편찬할 목적으로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 연락 책임 주교를 선정하였다.

또한 한일청년교류모임을 시작하기로 하여, 1997년 8월 프랑스 파리 세계청년대회에서 첫 모임을 가진 이후 해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지난해까지 18회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에서 ‘한일주교교류모임’으로

두 번째 모임은 일본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1996년 12월 18일 하마오 주교와 오카다 주교는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당시 주교회의 의장인 정진석 주교를 비롯해 모두 6명의 주교들을 만났다.

그런데 일본 주교가 한국 주교회의를 공식 방문한 것은 한일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모임에서 주교들은 한일 양국 역사 교육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한일 역사 문제와 교과서 문제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오카다 주교는 근현대사와 일본의 제국 지배를 자세히 가르치는 한국의 역사 교육과 가해자로서 했던 일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일본의 교육에 너무 많은 차이가 있어 놀랐다고 당시를 회고하였다. 이 제2회 모임에서 이문희 대주교는 해마다 주제를 달리해 10년쯤 모임을 가져보자고 제안하였다. 10년쯤 모임을 갖고 나면 한일 역사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갖게 되고 양국 사이에 더욱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1997년 제3회 모임에서는, 제4회부터는 이름을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에서 ‘한일주교교류모임’으로 바꾸기로 하고,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신앙과 사목에 관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모임에 참석하는 한일 양국 주교들의 숫자도 크게 늘어났다. 이후 해마다 거르지 않고 다양한 주제로 모임을 이어 오고 있다(‘역대 한일주교교류모임 일정과 주제’, 표 참조).

 

 

현실적이고 사목적인 문제들을 공유하고 토론하자

2002년 제8회 모임에서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행한, 1996년 제1회 부터 2001년 제7회까지의 한일주교교류모임에 관한 자료를 담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를 양국 주교들에게 증정하였으며, 아울러 양국의 교구와 학교에 배부하기로 하는 등 그동안의 결실을 나누기도 하였다.

2000년에는 부산교구가 히로시마 교구와, 2005년에는 제주교구가 교토 교구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 한일 양국 교구 차원의 교류도 이어지고 있다.

2004년 제10회 모임에서는 “역사적 문제에 머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사목적인 문제들에 대해 공유하고 토론하여 실질적으로 사목에 보탬이 되는 시간을 많이 갖자.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담당 분야별 또는 세분화된 사목 과제별 모임 시간을 갖자.”고 결의하였다.

모임의 큰 성과 가운데 하나인 한국어와 일본어로 출판한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읽는 한국사 입문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의 필자인 이원순 교수에게서 집필 과정과 의도를 듣기도 했다.

2005년 제11회 모임에서 장익 주교는 “화합과 기쁨의 내일을 위하여”라는 발표문을 통해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는 물론 도(道)를 두고 한 말씀입니다만, 어찌 도뿐이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더욱이 이미 한 몸인 교회와 교회 사이도 어찌 다르겠습니까.” 하며, 10년의 보람을 거두고 이제 또 새로운 나눔과 우정의 장을 열어가자고 하였다.

2007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제13회 모임에서는 그해 6월 1일 선종한 정명조 주교와 11월 8일 선종한 하마오 후미오 추기경을 추모하는 미사를 거행하였다. 하마오 추기경은 한일주교교류모임을 태동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정명조 주교는 일본 히로시마 교구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 한일 양국 간 교류에 크게 기여하였다.

제13회 모임에서는 2008년 11월 24일 나가사키에서 개최될 ‘188위 일본 순교자 시복식’을 앞두고 한일 양국의 박해와 순교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로써 양국 교회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고, 순교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대의 교회에서 복음 전파에 이바지하자는 데 뜻을 같이하였다.

2011년 제17회 모임은 대지진과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센다이 교구에서 열렸다. 주교들은 여기서 원자력발전소와 생태신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어 2012년에는 대구대교구 경주에서 제18회 모임을 가졌다. 여기에서도 원전의 문제점과 현황, 탈핵운동의 방향 등에 관한 심도 깊은 강의를 듣고 4개 그룹으로 나누어 원전 문제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해마다 11월이면 한일주교교류모임이 열린다. 올해는 오는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제19회 모임을 연다. 이번부터는 모임의 영어 명칭을 ‘Korean-Japanese Bishops’ Exchange Meeting’에서 간단하게 ‘Korean-Japanese Bishops’ Colloquium’으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1996년 첫 만남부터 함께했던 오카다 다케오 대주교(현 일본주교회의 의장, 도쿄 대교구장)는 2007년 삿포로에서 열린 제13회 모임 미사 강론에서 첫 모임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1996년 2월 눈이 내리는 날, 이문희 대주교님과 강우일 주교님, 박석희 주교님이 도쿄를 방문하였습니다. 확실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양국 교회는 동아시아 교회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뜻에서 이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주교 두 분의 만남으로 시작된 한일주교교류모임이 내년이면 20회를 맞이한다. 서산대사의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라는 시가 있다. 한일 양국이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나아가는 일에 앞장선 주교들의 곧은 발걸음을 따라가는 발길들이 더 많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 이기락 타대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처장으로 경향잡지 편집인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8월호, 이기락 타대오]



2,58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