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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길 수도의 길: 성모영보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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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18 ㅣ No.227

영성의 길 수도의 길 (8) 성모영보수녀회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고

 

 

노인복지시설 '해 뜨는 마을'에서 한 수녀가 거동이 불편해 누워 있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다.

 

 

"할머니, 아 해보세요. 잘 하셨어요. 이젠 요구르트도 좀 드셔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에 자리 잡은 노인복지시설 '해 뜨는 마을'. 성모영보수녀회(총원장 박미숙 수녀)가 운영하는 이곳은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을 돌보는 무료 양로시설과 장기요양보험 대상 중증 노인들이 생활하는 전문요양원, 주간노인보호센터로 이뤄져 있다.

 

오후 간식 시간이 되자 수녀들 손길이 분주해 진다. 혼자 음식을 먹기 힘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일일이 먹여 주거나 옆에서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오늘은 남기지 않고 다 드셨네요. 아이고, 이뻐라. 또 고집 부리시면 집에 보낼 거예요."

 

수녀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르신들에 대한 정이 듬뿍 묻어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힘들게 해도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친딸처럼 옆에 붙어서 재롱(?)을 떤다. 돌봐줄 가족이 없어 무료로 입소해 있는 어르신이나, 비용을 내고 유료로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이나 수녀들 관심과 돌봄에는 차별이 없다.

 

성모영보수녀회 '성가정 수공예' 작업실에서 장명자 수녀가 멕시코 출신 네티시아 수녀와 기제르미나 수녀에게 매듭묵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요양원 밖으로 나와 '성가정 수공예'라는 현판을 건 작은 집에 들어가니 수녀 몇 명이 작업대에 앉아 빨갛고 파란 끈으로 매듭을 엮거나 율무를 끼워 묵주를 만들고 있다.

 

"어서 오세요."

 

수녀들은 눈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능숙한 솜씨로 묵주를 만드는 수녀들 손들이 얼마나 예쁜지…. 정성들여 한 알 한 알 엮어가는 표정에 기도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 한편에서는 젊은 수녀 두 명이 선배 수녀에게 매듭묵주 만드는 법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이것 좀 봐주세요."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발음이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웬 외국인 수녀지? 올해 종신서원을 앞둔 멕시코 출신 네티시아 수녀와 기제르미나 수녀라고 했다.

 

성모영보수녀회는 1991년 12월 멕시코에 진출해 수지침 등 대체의학을 통한 애덕 사업을 실천하고 있고, 두 수녀는 멕시코 분원을 통해 입회한 첫 이방인 수녀다.

 

수녀회는 농장에서 땀 흘리며 기도와 노동을 실천하는 반 봉쇄 관상적 활동 수도회로 출발했으나 1976년 9월 고 이경재 신부 요청으로 성 라자로 마을에 회원을 파견하면서 사회복지 사도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결핵환자 요양시설 파주 '시몬의 집'과 여성 질환자 보호시설인 용인 '서울시립 영보 자애원',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 나환자 시설인 '다미안 의원' 등 10여 곳에서 사회복지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성경학자이자 수녀회 설립자인 고 선종완(라우렌시오, 1915-1976) 신부는 수녀들에게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증거의 삶을 살도록 당부했다. 그래서 성모영보수녀회 회원들은 매일 30분씩 성경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어느 사도직현장에 있든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성경읽기 표를 따라 일정 분량의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복지 사도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원래 성경적 삶을 통해 하느님을 선포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회원들은 우선적으로, 절대적으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생명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심화시켜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총원장 박미숙(레지나) 수녀는 "성경을 학문적 이론이나 지식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하느님 말씀에 맛들인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모르는 이웃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좋은 모범을 보임으로써 복음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수녀는 "그동안 우리 수녀회가 조금은 사회복지 사도직에 치우쳤다는 자성과 함께 설립자 영성으로 돌아가 앞으로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파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을지 '말씀의 사도직'을 연구, 실천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수녀회는 제7차 총회(2009년 11월)에서 수도회 명칭을 '말씀의 성모영보 수녀회'로 변경하고 교황청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수도회 영성과 역사


기도와 노동 그리고 겸손...가난한 공동체 이뤄 복음 전해

 

 

올해 50주년을 맞은 성모영보수녀회는 성경 연구에 한 생을 봉헌하며 복음대로 살았던 성경학자 고 선종완<사진> 신부가 1960년 주님탄생예고(성모영보) 대축일인 3월 25일 설립했다. 선 신부가 사재를 털어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에 마련한 부지에서 가난과 겸손만으로 시작한 수녀들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메추라기ㆍ닭ㆍ젖소ㆍ돼지 사육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는 '농사짓고, 닭치는 수녀회'로 유명했다.

 

1967년 6월에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산골로 본원을 이전한 뒤에도 양계사업과 과수재배를 병행했으나 경험 부족으로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수도생활이 고된 탓에 한 때 성소자가 급격히 감소하기도 했으나, 육체적 노동이 영성강화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수녀회 이념에 따라 회원들은 더욱 엄격하게 양성됐다. 이후 1982년 막계리 수녀원이 서울대공원 부지로 수용됨에 따라 문원리로 수녀원을 이전했다. 현재 회원 수는 176명에 이른다.

 

선 신부는 평생 하느님 말씀을 양식과 의복삼아 청빈하고 겸손하게 살았다. 움막 같은 흙집에서 짚으로 만든 돗자리 하나 깔고 생활하며, 낮에는 고철 값밖에 쳐주지 않을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신학교 강의를 다니며 밤에는 등잔불 밑에서 성경번역에 몰두했다. 그러면서도 수녀원에 양식이 일주일분 이상 남으면 쌓아 두지 말고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라고 말하곤 했다.

 

물질이 풍족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태해지고 노동을 천시하게 마련이다. 이에 회원들은 정신적으로 가난해야 한다는 서원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로 가난한 생활을 함으로써 빈곤한 이를 돕고 근면한 생활로 노동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복음의 메시지가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듯, 선 신부는 수녀들이 가난한 공동체를 이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총원장 박미숙 수녀는 "청빈의 삶은 우리 수도회가 철저히 지켜야 할 가장 으뜸적인 특성으로 말로만이 아닌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이들의 어려움에 동참하며 영적 풍요로움을 성장시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녀회의 또 다른 영성적 특징은 '기도와 노동'이다. 설립자 고 선종완 신부는 "기도 없는 노동은 무의미하며 또한 노동 없는 기도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수녀회는 어떤 곳에서 활동하든지 '하루 5시간의 기도와 5시간의 노동'을 반드시 실천한다.

 

수녀회의 영성에서 '겸손의 삶' 또한 매우 중요하다. 겸손하게 십자가에서 당신을 봉헌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드러내지 않는 증거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래서 선종완 신부 출신 본당으로 선 신부 기념관이 있는 원주교구 용소막본당을 제외하고 본당 사도직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선 신부는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이들도 그리스도 말씀 안에서 완덕에 이를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녀회가 설립될 당시 한국 수녀회는 대부분 고졸 이상 학력을 요구해 수도성소의 뜻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선 신부의 수녀회 설립 정신은 초창기 수녀들에게 한 강화에도 잘 드러나 있다.

 

"가난하고 공부하지 못한 사람은 수녀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으나 우리 수도회는 주님 말씀을 알아듣고 실천하면 수녀가 될 수 있어요. 언제나 침묵 중에 주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하고 일하십시오."

 

이런 취지에 따라 성모영보수녀회는 지금도 나이와 학벌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하느님 종으로 살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두고 있다.

 

[평화신문, 2010년 4월 11일, 서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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