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수도 ㅣ 봉헌생활

재속회의 고민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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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4 ㅣ No.225

[경향 돋보기 - 재속회] 재속회의 고민과 과제

 

 

그리스도 왕직 선교 재속회, 돈보스코 여자 재속회, 성 마리아 재속회, 성 마리아 영보회, 예수 카리타스 우애회에 질문지를 보내 재속회의 고민과 바람, 역할과 과제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적 권고에 따라 순수한 봉헌의 삶을 살지만 일반 수도회의 봉헌생활이 요구하는 엄격한 공동생활이나 수도복 없이 생활합니다. 재속회 회원의 봉헌은 교회 안에서 새롭고 독특한 것입니다. 재속회 영성의 독특하고 예언적인 생활양식은 오늘의 교회에 주어진 새로운 길입니다”(1972. 9. 20, 재속회 총장들에게 하신 교황 바오로 6세의 연설에서).

 

 

용어상의 혼동

 

재속회를 ‘새로운 천년기의 성소’라고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 안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신 창조의 성령께서 새천년기에 들어 이에 걸맞은 새로운 성소인 재속회를 일으키신 데는 분명히 뜻하신 바가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에 재속회들을 진출하게 섭리하셨다면 거기에도 하느님의 뜻이 계실 것이 아닌가.

 

오늘날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재속회는 세계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만 한국 교회 안에서는 아직 재속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 신자들은 성소를 성직자, 수도자라는 두 가지 형태로만 인식하여, 봉헌생활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무엇보다 ‘재속회’라는 용어에서 오는 혼란이 크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는 수도회의 ‘제3회’를 흔히 재속회라고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재속회원들이 평신도로서 봉헌생활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서원을 하고 봉헌생활을 한다면 수도자하고 무엇이 다르냐며 옷을 안 입는 수녀 정도로 여긴다. 수녀라 부르지 말고 이름이나 세례명을 불러달라고 하면 의아해 한다.

 

사제들도 마찬가지다. 성소주일 담화문을 보면 봉헌된 재속회에 대한 소개가 거의 언급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본당 사제들도 강론 때 재속회 성소에 대해 소개하는 분이 없다. 교회가 재속회 성소의 특징 곧 신분에 대해서 ‘드러내지 않음’을 이해하고 도와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재속회 성소에 대한 홍보도 필요하다.

 

 

재속회 성소에 대한 고민

 

한국 문화에서 독신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이 아직 있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독신으로 살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사회와 가정의 분위기는 재속회 성소를 활성화시키는 데 장애가 된다.

 

수도원에 들어가는 드러나는 선택이 아닌 사회 안에서 독신으로 정결을 지키면서 사는 여성들에게는 편견과 함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오히려 하느님께 더욱 의탁하고 성소를 지켜주시는 섭리를 체험하게 되는 계기도 되지만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재속회 회원은 직업을 통하여 일에 파견된 선교사로서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은 단지 생계수단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방법이며,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투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일이 없이 회의 공동사업에서 일하기를 기대하며 문을 두드리는 지원자도 있다. 그러나 재속회는 공동사업체를 갖지 않는다. 청년 실업이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한 우리나라에서는 마땅한 일자리를 가질 수 없어서 봉헌의 소명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과도한 기도와 신심행위에 바쳐서 일과기도가 병행하는 재속성의 생활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여 다른 사람들까지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직장과 가정 등에서 너무 과다한 일에 눌려 아침 저녁 기도를 할 시간조차 없이 바쁜 경우도 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다 보면 봉헌의 정신과 목적을 잃어버리고 만다. 재속회원들은 기도로써 일을 성화하고, 일로써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 인간적인 또는 하느님 안에서의 성숙한 인격의 정도를 일에서 스스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속회를 수녀회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수녀회와 똑같은 3대 서원(정결 · 청빈 · 순명)을 발하지만 수녀회와 다를 수밖에 없는 재속성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옷을 안 입는 수녀로 스스로 받아들여서 신분에 대해 신중하지 못하고 외부에 알려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재속성은 세상의 모든 유혹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에 때때로 회와 장상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함께 살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으므로 꼭 원하거나 필요한 때에 적절한 도움을 주고받지 못한다. 인간적으로 안타깝지만 이 또한 재속성을 살아가는 하나의 수련으로써, 이런 생활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심신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의 고통들이 비켜가지는 않는다. 생활과 노후까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질병과 노후의 경제력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커간다. 이보다 더 큰 것은 가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회원들끼리도 공동체 생활이 없기에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후에 대한 어떤 보장의 기대는 터무니없는 욕심과 무책임이다. 재속회는 봉헌의 길에서 아주 자유롭기에 자유로운 생활을 누린 만큼 그 장래의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게 성숙한 태도 아니겠는가? 자유롭게 살면서 일반 수도회와 같은 보호와 보장을 기대한다면 재속성과는 거리가 좀 먼 것이 아닐까?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고 구원의 빛을 밝히려면 어디서나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표지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세상적인 보장들은 가장 먼저 하느님의 표지를 보이지 않게 한다. 재속회원들에게 보장이 없음은 세상 안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향하여 그분 안에서 걸어가게 하는 신비이다.

 

 

재속회 성소의 풍요를 나눌 소통의 장

 

한국의 재속회들 사이에 교류, 소통이 필요한 것 같다. 각 회가 지니는 카리스마를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누는 일은 우리를 더욱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세상 깊숙한 곳에서, 교회 안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닿을 수 없는 영역에서 경험하는 우리의 열매들을 공유하고 반성하여 풍요롭게 할 소통의 장이 부족하다. 한국의 재속회들 간에 프랑스에서처럼 재속회국가연합(CNIS) 같은 유대체계를 만들어 서로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재속회의 특성상 신분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러나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시작되었던 재속회는 이제 좀 더 재속회에 대해 알리고 이해를 돕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아시아와 세계 재속회들과 연대하며, 세계적인 재속회의 관심과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기회를 공동으로 모색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주교회의 홈페이지 성소 사이트에 들어가면 사제성소와 수도성소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재속회 성소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신학교와 수도자 교육에서도 ‘재속회’에 관한 내용이나 이를 조명할 수 있는 과목이 있으면 좋겠다. 완덕의 봉헌생활회인 재속회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재속회의 정체성을 밝히고 한국 교회 안에 재속회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재속회의 역할과 과제

 

재속회는 사회 안에서 사도직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들에 부딪치게 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현 사회를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교회와 세상 사이에 새로운 소통의 방법들을 찾아내면서, 세상 깊숙한 곳의 드러나지 않는 문제에까지 손을 뻗고자 계속 노력해야 한다. 세상 안에서 복음적 권고 생활을 어떻게 잘 실행해 나갈 것인지 그 해결 방안을 찾고, 세상의 것과 함께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물질만능, 황금만능주의에 따른 인간성 상실과 비인간화가 팽배한 우리 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어떻게 심을 수 있는가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물질만능주의로 영적 갈증을 느끼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내적 품위를 되찾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사명을 인지해야 한다.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직면한 문제들을 자각하고, 하느님의 현존과 그 계획의 참된 표지를 복음의 빛으로 밝혀냄으로써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재속회는 사회의 여러 방면에 깊숙이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수도 공동체와 사제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재속회와 재속회 회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도직 활동을 위해 회원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저마다 가진 탈렌트를 충분히 발휘하여 사도직에 철저하게 투신함으로써 그 안에서 재속성을 살아가야 한다.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하여 사도직에 임할 때 봉헌과 재속성의 진정한 통합이 이루어지고 정체성을 굳힐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시대가 요청하는 살아있는 신앙의 증인들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필요로 하고 교회는 세속에 머물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에 동참할 일꾼들을 요청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의식(sensus ecclesiae)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재속회를 통하여 봉헌된 여러분은 교회의 특별한 지체들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발전을 주목하면서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충실한 지체들이며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헌신하는 말없는 봉사자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누구보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1970. 9. 26, 재속회 국제대회 참석자들에게 하신 교황 바오로 6세의 강론에서).

 

[경향잡지, 2010년 2월호,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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