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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교황주일: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아간 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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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29 ㅣ No.221

[교황주일]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아간 목자들

낮은 곳으로 임해 섬김의 삶 보여준 '하느님 종들의 종'


30일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교회 최고 목자인 교황을 기억하는 교황주일이다.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현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강조하며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교황주일을 맞아 소박한 삶을 살며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자로서의 삶을 산 역대 교황을 소개한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는 수도자로서 베드로좌에 착좌한 최초의 교황이다. 그는 교황에 선출됐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거운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열과 성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며, 당시 로마를 덮친 기아 해결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이탈리아 곳곳에 산재한 광대한 교황령의 관리를 재정비해서 유사시에 빈민구제에 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했다.

그는 매달 1일 가난한 이들에게 교회가 받은 갖가지 봉헌물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조금씩이지만 옥수수, 포도주, 치즈, 야채, 생선, 기름 등 계절별로 종류도 다양했다. 사람들을 골목골목에 보내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조리된 음식을 전해줬으며, 몹시 아픈 이에게는 자신 식탁에 놓인 요리를 시식도 하지 않고 보내면서 초대 교황 사도 베드로의 축복을 전했다. 그의 친절에서 제외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교황 그레고리오는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칭호로 불렀다. 이는 이후 오늘까지 교황을 호칭하는 관용어가 됐다. 동방 교회와의 관계 개선과 교황 수위권 강화에 관심을 쏟았으며 영국의 그리스도교화에 공헌했다. 광범위한 저술로 그 시대 종교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전례와 관련해서는 오늘날까지 유효하게 사용되는 양식을 로마 미사 전례서에 제공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이런 업적으로 교황 대(大) 그레고리오라 불린다.


베네딕토 13세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추기경이기도 했던 베네딕토 13세(재위 1724~1730)는 교황직을 극구 사양하다 마지못해 수락했다고 한다. 교황이 된 후에도 탁발 수사의 삶을 지속하며, 과거 그 어떤 교황보다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병자와 죽음을 앞둔 이들을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삶으로 '진지한 목자' 혹은 '이웃 사랑의 실천가'라는 명성도 얻었다.

베네딕토 13세는 결코 주교 이상으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청빈한 삶을 추구하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 소박한 삶을 살며, 화려한 교황 집무실이 아닌 수사들이 거주하는 방에서 살았다. 그의 청빈의 기준은 추기경들에게도 적용됐다. 추기경들의 화려한 겉치레를 단속하고 가발 착용을 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니콜로 코스키아라는 부적절한 인물을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교황 임무를 위임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본인은 청렴했지만 측근 기용 실패가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니콜로 코스키아 추기경과 그 측근은 고위 성직을 팔아 뇌물을 챙기고 사유 재산을 늘리고 다른 사람의 진언이 교황 귀에 들어갈 통로를 차단했다. 코스키아 추기경은 베네딕토 13세 서거 후 재판에 회부, 축적한 재산을 몰수당했다. 교황이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물론 교황권을 효과적으로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교도소를 방문한 복자 교황 요한 23세.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구호 활동을 중시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어 교회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요한 23세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의 산골마을 소토일몬테에서 가난한 농부의 13명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1904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사제품을 받았다.

1935년 대주교품을 받은 그는 성직자들에게 그 나라 말로 전례를 하고, 구호활동에 힘쓸 것을 강조해 많은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유다인들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유다인 수천 명에게 '가톨릭 세례 증명서'를 만들어 줘 목숨을 구했다. 1944년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가 된 후에는 프랑스에 수용된 25만 명의 전쟁포로 석방을 위해 힘썼다.

1958년 10월 28일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23세는 즉위 이후에도 병원과 감옥을 방문해 환자들과 수감자들을 위로했고, 회칙 「어머니요 스승」, 「지상의 평화」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국제 연대와 평화를 강조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교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62년 한국 천주교 교계제도를 설정해 한국교회의 자립 기틀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교회를 민중에게 다가가게 한 착한 목자는 2000년 9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됐다.


요한 바오로 2세

1984년 5월 4일 소록도 한센인들이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과 환영 현수막을 들고 교황을 맞이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하면, 따뜻한 눈빛과 미소가 떠오른다. 한국 교회에 대한 큰 사랑을 드러낸 교황이기도 하다. 재임 중 104차례 국외방문을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평화의 사도로, 복음의 사도로 전 세계를 순방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호소력 있게 전했다.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어린이와 장애인, 온갖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 위로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을 방문한 1984년 5월 4일에는 일정에도 없는 소록도를 찾았다. 소외된 사람을 찾고 싶다는 교황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교황은 한센환자를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축복하며 "예수님께서 친히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라고 격려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윤리 등의 분야에서 교회의 전통적 도덕관을 제시하고 세계 평화와 반전을 위해 힘쏟았다. 다른 교파 및 타종교들과의 대화에도 적극 나섰다.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내세워 인류에게 저지른 여러 잘못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5년 4월 2일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기며 지상순례를 마쳤다. 6년 뒤인 2011년 5월 1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복자로 시복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는 인간이 교회의 길이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길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초월하는 쇄신된 교회의 미래와 진정한 희망의 모습을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교황의 유래와 직무


- 성 베드로 대성전 앞에 있는 베드로 사도상.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동시에 그를 위한 구체적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셨다. 그래서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공동체를 지도할 권한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를 으뜸으로 뽑고, 베드로를 통해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지상의 양들을 맡기셨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교회법에서도 "주께로부터 사도들 중 첫째인 베드로에게 독특하게 수여되고 그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될 임무가 영속되는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교회의 목자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임무에 의하여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331조)고 명시하고 있다. 교황은 측근들의 보좌를 받지만 그 모든 것의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 자신이다. 교회 공동체의 절대적 가장인 셈이다.

가톨릭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과 가장 가까운 주일을 교황주일로 지내며, 교황을 위한 강론과 특별 헌금을 한다. 이 헌금은 교황청으로 보내져 세계 각처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30일,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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