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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나를 찾는 여정 속의 재속회: 재속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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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4 ㅣ No.223

[경향 돋보기 - 재속회] 나를 찾는 여정 속의 재속회 - 재속회의 역사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다 받아줄 것 같은 넉넉함에 나도 잠시 바다를 닮아간다. 그런 바다가 성이 나면 인간의 힘으로는 막기 힘들어진다. 화가 난 바다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육지의 모습도 변화시킨다. 깊은 곳에서부터 바꾸어버리려는 열정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하물며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어떠할까?

 

1938년에 스위스의 산갈로에서 한 모임이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평신도들의 회’를 만들었거나 이끌어가는 20여 개 회의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생긴 회들이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며, 언제나 세상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 자비로우신 성령의 활동에 기뻐하였다. 한 사람이나 단체가 만들어서 퍼뜨린 것도 아닌데도 추구하는 바가 이렇게 비슷하다니…. 하지만 이들이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독사에게 물린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야만 했다. 다들 머뭇거릴 때 한 수녀님이 환자의 발에 입을 댔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신앙의 힘을 느낀다. 그러면서 ‘수녀님이니까 했지, 나는 못해. 내가 잘못되면 우리 가정은 누가 지켜.’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누군가 구했다는 기사를 보면 ‘그래, 나도 기회가 오면 멋지게 구해줘야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떤 경우는 ‘수도자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 하고 말하고, 또 다른 때는 ‘그래 나도 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인가 아니면 우리 보통 사람과는 달리 세상과 분리된 존재인가.

 

세상을 그 깊은 속에서부터 변화시켜 하느님의 뜻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들은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그 심연부터 완전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교회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재속성과 봉헌을 교회 안에서 조화시키는 삶을 원하던 이들이 계속해서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제멜리 신부(그리스도왕직선교재속회 창설자)가 당시 수도회성성 장관인 가스파리 추기경에게 청하였다. “추기경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시면 저희는 확실하게 항구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1917년) 법전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917년의 교회법전에서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봉헌될 수 있는 토대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교회는 전통적인 모습만 고수하였다. 이렇게 법전에 없기에 이 새로운 성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1947년에 ‘재속회’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다.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선물

 

세상 안에 머물면서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특히 1900년대에 많이 생겨났다. 이 새로운 모습과 꼭 같지는 않지만 이들의 기원을 16세기에 안젤라 메리치가 세운 우술라회로 보기도 한다. 그들은 복음삼덕(정결, 청빈, 순명)을 서원하기를 바랐지만 수도회에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집에 살면서 사도직을 수행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뜻은 교회 교도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새로운 부르심을 느낀 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1938년에 스위스의 산갈로에 모여 각 회의 정신이 비슷하다는 것에 경탄하였다. 그 뒤 제멜리 신부가 비오 12세 교황에게 “메모리아”라는 문헌을 통하여 청원하였으나 또 다시 거부되었다.

 

 

교회 안의 새로운 은사 - 비오 12세 교황의 인준

 

1947년에 비오 12세 교황은 이들을 인정하는 역사적인 문헌인 교황령 Provida Mater Ecclesia를 통하여 이들에게 재속회란 이름을 주며 교회 안에 받아들였다.

 

이 문헌에 따르면 재속회는 성식과 단식 수도회, 공동생활회 다음에 오는 세 번째 단계의 회로서 수도자들과 사제들의 사도직을 보충하는 사도직을 수행한다. 또 이 문헌은 수도생활에 대해 자주 언급하면서 재속회가 따라가야 할 모태나 모범으로 수도생활을 제시하고 있으며, 공동의 집과 공동생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 헌장을 반포한 지 13개월 만에 자의 교서 Primo feliciter를 반포하였는데, 이 문헌은 그동안 회원들이 살아왔던 새로운 성소의 현실을 받아들였다. 세속에 대한 신학적인 개념과 평신도 신학을 받아들였으며, 재속성과 봉헌 그리고 사도직이라는 세 개념이 재속회 성소를 통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 성소가 특별한 성소임을 명확히 하였다. 특히 재속회원이 ‘세상 안에서 그리고 세상 속으로부터(in saeculo ex saeculo)’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임을 부각시켰다(마치 세상에 있는 것처럼 이들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세상에 있으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의 깊은 부분부터 변화시키는 사람들이다.).

 

왜 두 번째 문헌이 나왔을까? 첫 문헌을 낸 뒤 비오 12세 교황은 아르미다 바렐리 자매가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교황님, 그 문헌은 저희 이야기가 아닙니다.”라 하였고, 그때부터 자매를 교황청에 부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결국 13개월 뒤 새 문헌이 나오고 나서야 두 사람의 관계가 예전처럼 되었다고 한다. 두 개의 문헌은 공식적으로 반포된 것이므로 두 개의 큰 줄기가 재속회 역사 안에 흐르게 되었다.

 

 

건전하고 합당한 다양성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제1회 재속회 국제회의

 

1962년부터 1965년에 걸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재속회에 대해 약간의 혼동이 있었다. ‘교회헌장’에서는 재속회를 수도회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였기에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수도생활 교령’에서는 재속회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수도단체가 아니지만”(11항)이라고 말하여 논리적인 오류가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세상 것을 다루고 그것들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정리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평신도의 사명을 강조하였다.

 

이후 1970년에는 93개 재속회의 회원들이 처음으로 국제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가운데 어떤 회들은 재속성이란 개념을 내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공동체 생활이나 공동의 활동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다른 회들은 재속성을 ‘내적인 것만이 아니라 회원들을 세상에서 분리시킬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회 자체가 하는 고유한 활동도 없으며, 회원들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를 놓고 회의 참석자들은 교회 문헌이 말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건전한 다양성의 원칙’이 가능하다고 선언하고, 각자가 자신의 카리스마에 따라서 재속성의 개념을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다른 사람들과 공동의 삶의 양식을 보존하라.”고 하여 재속성을 단순히 사도직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적용시켰다. 그러면서 ‘합당한 다양함’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다양함은 인정하지만 교회법과 어긋나고 봉헌된 재속성의 전망과 다른 것이라면 합당하지 않기에 재속회가 아니며, 수도회만이 아니라 재속회 전체에도 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하였다.

 

 

봉헌생활회로서 재속회 - 새 교회법전

 

새 교회법전 위원회에서는 ‘수도회’라는 용어를 재검토하기 시작하였다. 1966년부터 ‘수도회’란 용어가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고 보고 1968년에 ‘완덕회’란 명칭을 찾아냈지만 모든 회에 공통적인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따르면서 수도생활을 봉헌의 원형으로 여길 필요도 사라졌고, 회마다의 자율성도 지켜야 했다. 이 원칙 아래 1974년에 ‘복음적 권고를 통한 봉헌생활회’로 정해지며 간략하게 ‘봉헌생활회’로 되었다.

 

현행 법전에서 ‘재속회’는 2권(하느님의 백성) 3편(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 1부(봉헌생활회) 안에 하나의 장으로 있다. 봉헌생활은 일반적인 신자들의 봉헌과는 달리 새롭고 다른 자격으로 이루어지는 봉헌으로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는 고정된 생활형식’이다. 교회법적으로 설립된 봉헌생활회 안에서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복음적 권고를 선서한 생활형식이 자유롭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봉헌생활과 봉헌생활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 속에서 법전은 먼저 봉헌생활회에 공통된 사항을 다룬다. 그 다음에 수도회를 다루고 나서, 수도회와 같은 위치에서 재속회에 고유한 사항들을 규정한다. 법전은 재속회를 수도회와 같은 위치에 놓아주고 그와 구별하면서 재속회의 고유한 성소를 지켜주려고 노력하였다.

 

1) 재속회의 개념 : 재속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속에 살면서 애덕의 완성을 향하여 노력하고 세상의 성화를 위하여, 특히 그 안에서부터 기여하기를 힘쓰는 봉헌생활회이다.

 

2) 회원들의 법적인 신분 : 재속회의 회원은 고유한 교회법상 신분 조건이 변경되지 않는다. 곧 입회 뒤에도 성직자는 성직자로, 평신도는 평신도로 남는다.

 

3) 재속회원의 복음적 권고에 따른 유대와 의무 : 각 회는 복음적 권고를 받아들이게 되는 방법을 정할 때에 언제나 그 회에 고유한 재속성이 생활양식에 보존되어야 한다.

 

4) 사도직 : 재속회원은 자신의 봉헌을 사도적 활동으로 드러내고 실행하며, 누룩처럼 모든 것을 복음정신으로 흠뻑 적시도록 힘써야 한다. 평신도 회원들은 신자 생활과 자기의 봉헌을 통하여 현세 사물을 하느님께 맞게 정돈하고 세상을 복음의 힘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세속 안에서 또 세속으로부터 교회의 복음화 임무에 참여한다. 성직자 회원들은 봉헌생활을 통하여 특히 사제단 안에서 동료들을 지원하고,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자기의 거룩한 교역으로 세상을 성화시킨다.

 

5) 삶의 형식 : 재속회원은 세상의 보통 조건 속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도회와 달리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 자신의 봉헌에 대한 어떠한 외적인 표시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혼자서 또는 자기 가정에서 살아간다. 교회법전은 회헌에 따라서 형제적 생활 집단 안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인정한다.

 

6) 성직자 회원의 입적 : 재속회원은 부제품을 받음으로써 교구에 입적되며,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회 자체로 입적된다.

 

 

온전히 봉헌된 평신도 - 수도회와 재속회 성 전체회의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수도회와 재속회 성’(1988년에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성’으로 바뀜)은 1983년에 전체 회의를 열어 재속회에 대하여 다루었다. 이 회의에서는 재속회는 수도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소이며, 봉헌생활과 수도생활은 동일시될 수 없으므로 수도회 규정은 이들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평신도 재속회원은 모든 점에서 평신도이며, 또 재속회들이 극단적으로 어떤 회들은 수도회와 닮아가고 또 다른 회들은 평신도 단체와 닮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염려하면서 현실적으로 다양한 모습임을 인정하였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재속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과 관련이 있으며, 평신도 재속회원이 평신도임을 강조하였다. 재속회원이 단순하게 사회적으로 세상에 있거나 신분이 바뀌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봉헌이 세상에 머무는 것을 더욱 강하게 해주고 그 전의 신분을 더욱 확고하게 해준다. 그래서 온전히 봉헌된 평신도인 것이다. 또 평신도들이 자신의 전문직과 자신의 영역에서 더욱 책임 있게 활동하도록 격려하였으며, 수도회와 재속회가 부르심에 충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재속회에 ‘건전한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한국의 재속회가 나아갈 길에 대한 소견

 

1) 재속회인가 아니면 수도회인가?

 

어떤 회들은 공동의 집을 가지고 있거나 함께 활동을 하고 때로는 자신이 봉헌자임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시들을 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수도회와 비슷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이해하여 왔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수녀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회들은 더 강한 재속성을 지향하여 세상 안으로 침투하여 들어가려 하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같은 조건에서 살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수도회와 구별하려고 한다. 재속회의 근본적인 문헌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두 개의 다른 성격은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혼돈을 가져오고 있다.

 

재속회가 수도회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수도회도 자신의 고유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을 부르신 하느님의 뜻에 충실할 때에 조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술라회는 결국 두 개의 회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재속회로, 또 다른 하나는 수도회로. 이러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재속 수도회’로 불리는 것은 정체성 자체를 뒤흔드는 일일 것이다.

 

2) 제3회와의 구별

 

회원들이 특정 수도회의 정신에 참여하여 그 수도회의 지도 속에 세속에서 완덕을 향하여 노력하는 단체는 제3회나 다른 적당한 이름으로 불린다. 재속성(在俗性)을 살아간다는 생각과 행동양식에서 이 회들은 재속회와 비슷하다.

 

하지만 재속회는 수도회와 함께 봉헌생활의 한 형태인 반면에, 이 회들은 봉헌생활회가 아니라 신자 단체 가운데 하나이므로, 이 둘은 완전히 구별된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러한 회들이 ‘00 재속회’나 ‘재속 00회’ 같은 이름을 써서 자칫 재속회로 오해될 수 있다. 이러한 단체들이 재속회와 혼동되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꼭 맞는 이름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을 더욱 더 발전시키는 길이 아닐까?

 

* 김길민 크리스토포로 - 안산 성 마리아 성당 주임신부. ‘재속회의 정체성’이란 논문으로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수원교구 1심 법원판사, 안산2지구 지구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0년 2월호, 김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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