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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길 수도의 길: 그리스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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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1 ㅣ No.220

영성의 길 수도의 길 (6) 그리스도 수도회


가장 낮은 곳에서 그들과 더불어

 

 

그리스도 수도회 상징=삼각형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를 뜻하며, 그 안에 그린 배와 돛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수도회, 십자가를 각각 상징한다. 또 배 밑에 작은 타원을 그려 성모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또 그 옆 알파와 오메가는 수도회가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존재할 것이라는 영성을 담고 있다.

 

 

수도원도 따로 없다. 행려자들 자활시설 한 쪽에 수도회 본원 성당과 수도자 숙소가 마련돼 있을 뿐이다. 수도자로서 기도와 영성, 전례적 삶은 그 소박한 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이 수도회 뼈대이자 골격이며 핵심이어서다. "가난한 자가 사라지면 수도회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철저한 가난의 영성이 이 수도회를 진정으로 수도회답게 한다.

 

9일 통일로변에서 미군 반환 공여지역인 캠프 자이언트를 지나 임진각 못미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이천리 485의1에 이르렀다. 아침나절부터 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후 늦게 점차 봄눈으로 바뀌어 갔다. 산자락을 돌아드니, 행려자들이 재활을 꿈꾸는 '늘 푸른 자활의 집'(원장 서상문 수사)이 나왔다.

 

이 시설은 중독 회복 및 사회 복귀를 위한 치료공동체로, 이 시설 2층에 '그리스도 수도회'(원장 김규한 신부)가 들어서 있다. 수도자들은 행려자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숨쉬며 새로운 삶을 지향한다.

 

- 서상문(오른쪽) 원장수사가 작업치료실에 들러 한창 종이 가방을 접고 「가톨릭 기도문 성가」에 책갈피용 끈을 매다는 늘 푸른 자활의 집 가족들과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설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작은 알림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07년 6월 늘 푸른 자활의 집이 '사회복지 윤리경영 선도기관'으로 선정됐다는 안내판이다. 국내 행려자 자활시설 가운데선 첫 번째로 안은 영예다. 늘 푸른 자활의 집은 이후 2년 6개월간 한국사회복지사협회가 주관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한 사회복지 종사자 역량 강화 및 투명성 확립을 위한 교육 지원사업을 수행해왔고, 지난해 말 '사회복지 윤리경영 실천기관'에 최종 지정됐다.

 

자조집단인 미국 윌리엄 B. 오브라이언 신부의 데이탑(DAYTOP) 치료공동체를 모델로 삼은 늘 푸른 자활의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입소자 스스로 일주일간 체험과정을 거쳐 공동체 참여를 결정할 뿐 아니라 치료공동체 프로그램 6개월, 수료 및 취업 12개월, 사회 복귀로 이어지기까지 1년 6개월여 기간을 오롯이 '자발적 의지'만으로 살아간다. 언제든 나갈 수 있고, 막는 사람도 없다. 뭐든지 공동체 가족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한다. 서상문(베드로) 원장수사를 비롯한 수도자들, 8명에 이르는 사회복지사들, 직원들은 도움을 줄 뿐이다.

 

현재 47명이 프로그램을 이수 중이다. 다들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서소문공원 등지에서 일주일에 월ㆍ목요일 두 차례씩 이뤄지는 상담을 받은 뒤 스스로 따라 나선 이들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알코올 중독으로, 나머지는 도박 혹은 게임 중독, 사회적응능력 부족 등으로 길거리에서 살다가 이 집에 들어왔다.

 

- 1981년 5월 창설 초창기 그리스도 수도회 회원들과 창설자인 알로이시오 슈월츠(뒷줄 가운데) 몬시뇰이 한데 모였다.

 

 

본관을 지나 작업치료실에 들어서자, 마침 자활의 집 가족들이 가제본한 「가톨릭 기도서 성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책갈피용 끈을 매는 단순 작업에 몰두해 있다. 집중력이 부족해 한두 시간밖에 못하지만, 작업할 때만은 열심을 보인다. 그 곁엔 종이 가방을 접고 있다. 봉투나 형광펜, 보드 제작 등 단순작업도 이뤄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연ㆍ소방ㆍ인권ㆍ스트레스 관리ㆍ영양 관리ㆍ시청각ㆍ신용 관리ㆍ중독 회복ㆍ인성 교육 등이 이뤄지고, 생활체육활동과 함께 웃음치료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다. 서울 은평의 마을에 있는 행려자들 가운데 사회복귀에 의지를 보이는 이들을 대상으로 2001년 11월 30일 설립됐지만, 자활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농업을 통한 자활 시도는 수익 창출이 어려워 실패로 끝났고, 교육만 시켜놓고 갈 데가 없어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인근 공장에 취업이 이뤄지면서 점차 자활의 집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교육을 마친 수료생들이 1년간 인근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며 자립금을 적립한 뒤 전셋집이나 사글셋방 같은 둥지를 마련해 독립했다. 그 인원이 2006년 이후 58명에 이르렀다.

 

서 수사의 말을 들어봤다.

 

"중독은 자발적 의지로만 치유가 가능합니다. 타의나 강제에 의해선 절대 치유될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중독을 치유하고 자립해 나간 분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헤어져 있던 가족, 어머니와 다시 합치는 가정도 있지요."

 

이처럼 늘 푸른 자활의 집에 수도회 본원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 수도회의 본래 사도직 터전은 서울 은평의 마을이다. 설립자인 미국 출신 선교사제 알로이시오 슈월츠(한국이름 소재건, 1930~1992) 몬시뇰이 1981년 1월 서울시립갱생원 운영 위탁을 받고 시설장으로 취임,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그리스도 정신으로 봉사할 젊은이들을 불러모으며 그해 5월 30일 수도회가 생겨났다.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처럼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모여든 수도형제들은 은평의 마을에서 2000여 명에 이르는 노약자와 정신질환자, 지체장애자, 알코올 중독자, 결핵 환자 등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또 늘 푸른 자활의 집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 75의4에 세운 피정의 집 '묵당(默堂)'을 통해 침묵과 기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수도회 영성 및 역사

 

 

- 그리스도 수도회 창설자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

 

 

그리스도 수도회(The Brothers of Christ)를 설립한 알로이시오 슈월츠 몬시뇰<사진>이 전한 영성과 카리스마의 핵심은 '가난한 자에 대한 열정적 사랑'이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수도회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슈월츠 몬시뇰은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은 수도자 개인의 에고(ego)를 비워버리게 한다"며 '에고의 죽음 영성'을 강조한다. 가난한 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 우리는 고여 있는 물처럼 오염되고 진흙과 오물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은 책임이고 맹세이며 수도자 개인 방식이나 취향을 초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도자가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을 선택해 자기 방식으로만 사랑할 때는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수도회 수사들은 가난한 자에게 봉사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더 키워가고 또 하느님에게서 계속적으로 항구히 봉사할 수 있는 은총을 받는다. 그러기에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봉사는 이들에게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수도자 개별 영혼의 변모 사건이고, 믿음의 심화 사건이며, 하느님 맛을 일별하는 기적 사건이다.

 

1981년 5월 한국에서 설립된 그리스도 수도회는 2004년 9월 멕시코 찰코, 2005년 4월 필리핀 실랑에 각각 진출, 현재 3개국 40명 수도자들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사도직 실천에 힘쓰고 있다. 가족 수도회로는 1964년 8월 부산에서 설립된 마리아 수녀회가 있다.

 

※ 성소모임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주일 오전 6시 은평의 마을(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산61의8)

문의 : 02-3156-6331, 010-3734-3492

 

[평화신문, 2010년 3월 21일, 오세택 기자, 사진=전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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