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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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 구석진 자리로 초대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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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1-07 ㅣ No.213

[수도 영성]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 구석진 자리로 초대받다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는 “주님께는 풍요로운 구속이 있나이다.”(Copiosa apud eum redemptio; 시편 130,7)라는 좌우명 아래 알폰소 리구오리 성인(축일 8월 1일)께서 1732년 11월 9일 이탈리아 남부 스칼라(Scala)에서 창립하였다. 구속주회 회원들은 창립자 성인의 정신에 따라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명을 수행한다.

 

 

선교 사명 -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투신

 

변호사로서 전도유망한 청년 알폰소는 부모의 만류에도 성직자의 길을 걷는다. 당시 법조 비리에 큰 실망을 느끼고는 “법정이여, 너는 나를 이곳에서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법정을 떠난다. 그 뒤 병원에서 불치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던 중 “하느님을 위해 너 자신을 봉헌하라.”는 내적 부르심을 듣고 성직자가 될 준비를 하게 된다. 서품 후 나폴리에서 선교 사명을 수행하던 알폰소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스칼라에서 잠시 휴양하게 된다. 그곳에서 가난한 목동들이 복음의 가르침과 성사의 은총에 목말라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 알폰소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수도회 창립의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이러한 선교 사명은 구속주회 회원들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투신하면서, 오히려 그들 안에 현존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복음화하는 것을 회원들은 체험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르심과 파견으로 말미암아 성화를 체험하듯, 구속주회 회원은 자신을 포기하고 사목적 필요가 절실한 곳에서 풍요로운 구속의 기쁨을 충실히 선포하는 제자가 된다.

 

 

구속주회 영성의 핵심은 사랑

 

구속이란 말은 낯선 단어이다. 구원이란 단어와 같은 맥락이지만 구속이란 단어 안에는 “잃었던 것을 값을 치르고 되찾아옴”을 강조하는 뜻이 들어있다. 곧 하느님께서는 죄로 물든 우리의 영혼을 외아들의 목숨을 바치는 희생을 통해 되찾아오신 것이다. 구속자는 주님이신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구속주회가 탄생하였다.

 

구속주회 영성의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의 방향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이며 증거이다. 알폰소 성인은 구속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 집중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한 조건을 고스란히 짊어지시어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이시다. 부활하신 후 우리 삶에 항상 현존하시며 우리를 위해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에게 중개자로 세우셨다.

 

알폰소 성인의 영성은 하느님의 자기증여의 사랑과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현존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은 네 가지 상징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감실, 십자가, 제대 그리고 성모님이시다.

 

우리는 하느님이 강생을 통해 사람이 되심을 기억한다(감실).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종이 되시어 인간 삶의 모든 결과들을 받아들이신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상의 죽음을 의미한다(십자가).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성찬례를 통해 드러내신다(제대). 그리고 마리아의 중개를 통해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성모님). 감실과 십자가, 제대와 성모님, 이를 통해 우리 수도회는 강생, 구속, 성찬례, 어머니를 기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기억하고 확신하게 된다.

 

 

비움과 이탈

 

구속주회의 선교 영성은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신(kenosis) 그리스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사목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 파견되고자 친숙했던 모든 사물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준비한다(distacco). 이처럼 ‘비움과 이탈’은, 하느님의 뜻과 선교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덕목이며 창립자의 초대이기도 하다. 고해사제와 윤리신학자의 주보성인이신 알폰소 성인의 모범을 따라 구속주회 회원은 “회개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회헌, 11항).

 

회심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적 회심, 사회적 회심을 인도할 사명이 회원들에게 부여된다. 회개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윤리적 회심뿐만 아니라, 영적 회심을 통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고 응답하는 삶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속주회의 영성은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가난하고 버림받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풍요로운 구속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이다. 이에 회원들은 78개국에서 본당을 통한 선교활동과 영신수련, 영적지도와 피정지도, 미디어 사도직과 윤리와 사목신학의 연구들을 통해 세계 교회에 봉사해 오고 있다.

 

 

가난과 소외가 있는 자리

 

한국 천주교회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훌륭한 수도자들이 많은데 구속주회의 현존이 왜 필요한가를 묻게 된다. 우리의 현존 역시 하느님 섭리의 한 부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소외는 인간 실존의 한 부분이다. 정신적 가난이든 물질적 가난이든 인간은 가난함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소외 역시 마찬가지다. 소외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을 독대하게 된다. 부족함과 결핍이 오히려 우리를 스스로 성찰하고 사회를 통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난과 소외가 우리의 복된 탓이 된다.

 

가난과 소외가 있는 자리, 그곳이 바로 복음이 피어나야 할 자리이고,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장소이다. 하느님께서는 그 자리로 구속주회를 초대하셨다. 따라서 그 자리는 성공과 명성이 있는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불편함과 부족함이 있는 구석진 자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공을 위해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충실하도록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 권오상 가시미로 -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국지구장 신부.

 

[경향잡지, 2009년 12월호, 글 권오상 · 사진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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