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이콘산책8: 빛의 감각적 현현 - 부정에 의한 여백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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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3-06 ㅣ No.1052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8) 빛의 감각적 현현 - 부정에 의한 여백의 미


넓은 이마, 큰 눈, 긴 코에 작은 입…상징적 의미가 있다

 

 

 

- (작품1) 성 니콜라우스: 템페라, 28 x 22.3cm, 16세기, 레클링하우젠 이콘 미술관, 레클링하우젠, 독일. 얼굴의 주름은 단순화하였고, 머리카락은 세 가닥씩 정렬하였다. 주교복의 모든 옷주름이 직선으로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단순화하였다.

 

 

인물과 사물, 탈물질적으로 왜곡해 표현

 

하느님을 찾기 위한 삶의 과정은 이콘 예술에도 영향을 주어 독특한 심미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미학을 형성하였습니다. 부정에 따른 상징성도 표현하며 경우에 따라 묵상, 침묵,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신앙에서 비롯한 금욕주의적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 미학에 따르면 인물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物質的)인 형태를 탈물질적(脫物質的)으로 왜곡(歪曲)하여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실제 인물과 사물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면 너무나 육적(肉的)인 모습, 생물적인 모습 또는 조금 강하게 말하면 세속적인 모습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탈피해 인간의 육체성이 연상되지 않도록 색깔·빛·거리·크기 등을 왜곡하여, 더욱 드높인 세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콘의 인물과 배경 이외에 나머지 공간을 황금이나 토황(土黃) 또는 옅은 황색이 섞인 백색으로 여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인물과 배경 외 공간, 황금색으로 여백 형성

 

이해를 돕기 위해 사실 그대로가 아닌 탈물질적인 표현의 예를 든다면, 우리 선조의 옛 미술과 생활 공간에서 나타내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들 수 있습니다.

 

초록 색깔로 그리는 대나무보다, 먹을 이용해 옅고 진한 먹물을 사용한 대나무 그림이 왜 더 큰 감동을 가져올까요? 우리는 어째서 아무 무늬도 없고 약간은 찌그러진 듯한 둥근 달항아리를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느낄까요? 약간 모자라는 듯한 둥근 모양은 우리 삶이 부족하지만 부족한 것을 서로 돕는 듯한 여유를 줍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그릇보다 박을 켜서 바가지로 쓰는 것이 사람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합니다. 여름날 삼베나 모시 적삼을 입은 아낙네가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화려한 색깔이 없어도 시원한 여백을 느낍니다.

 

동양화 풍경 속에서는 원근법이 그리 작용하지 않습니다. 먼 곳의 높은 산을 앞으로 끌어당겨 마치 근처에 있는 듯 표현합니다. 그리고 앞부분에는 여유를 두어, 보는 사람이 산과 들판, 강가 풍경에 들어가 소요(逍遙)하는 여유로움을 만들어 줍니다. 또 산과 산 사이, 또는 계곡 사이에는 안개를 채우듯 여백을 남깁니다. 달을 그리되 먹으로 둥근 선을 넣지 않고 달 주변을 약간 흐린 먹물을 채워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여백의 달 모습을 그립니다. 서가의 책꽂이에는 책을 빽빽이 꽂지 않고 빈칸을 두어 화분이나 도자기를 넣음으로써 생활의 답답함을 풀어 숨을 쉬게 합니다.

 

- (작품2) 성 김대건 안드레아: 템페라, 76 x 54cm, 미리내 103위 시성기념성당, 안성, 한국

 

 

표현 단순화… 추상적 상징적 평면적

 

이콘의 표현은 실제 모습의 많은 부분을 단순화하여 정리합니다. 이는 단순화로 정리하지만, 전체적으로 빈틈없이 구성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섬세함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미술이 헬레니즘 문화에 힘입어 발전해왔지만, 당시 인물의 육감적인 모습 표현에서 교회 미술에서는 금욕적이고 육체를 강조하지 않는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인간적 욕망과 고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면서 이콘은 표현의 단순화를 이루면서, 얼굴은 어둡게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이콘은 눈에 보이는 사실적 표현보다는 물질을 강조하지 않는 현상을 통해 하느님 세계를 암시하고 상기시키기 위해서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이고, 인물을 평면적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콘은 왜 움직임 없는 정면 모습을 그리는 걸까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진과 옛 세대들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옛 세대 사진은 모두 차렷 자세에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이 정면을 향해 있습니다. 사진 찍기가 극히 어려운 당시에는 한 장을 찍어도 제대로 찍으려고 여러 가지로 부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을 보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하나, 둘, 셋 하면 찍습니다. 눈을 깜빡이지 마세요!”

 

아기 돌 사진 촬영 때는 주변 상황과 상위에 놓인 물건들에 관심이 많아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아기를 찍기 위해 더욱 부산을 떨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옛 사진을 보면 이콘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즉 똑바로 선 정면 모습입니다.

 

이콘은 어째서 움직임 없는 정면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유럽 미술관에 전시된 미술품을 보면 여러 자유로운 형태의 인물화들을 볼 수 있는데, ‘더 오래된 그림에서는 앞을 바라보고 서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기원전 그리스인들은 미의 기준을 적절한 균형에 두었습니다. 이에 미로의 비너스, 라오콘 조각상, 그리스 화병에 나타나는 신들과 인간의 모습은 황금 비율에 의한 균형 잡힌 육체와 자유분방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여러 형태는 요즘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시고 빛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있어야 빛을 많이 받을까요? 해바라기처럼 빛을 향해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얼굴을 돌리거나 아래를 보면 빛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콘에서 성인들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은 하느님께 향하는, 즉 하느님 빛을 받고자 하는 ‘내적’ 모습입니다. 바로 서서 그분과 눈을 마주하고 고요히 그분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모든 이콘은 ‘고요함’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도 큰 고통 속의 모습이 아니라 잠자는 듯한 고요한 모습이고, 순교하는 성인들도 거의 모든 모습에서 침묵 같은 고요함을 보입니다.

 

또 정면의 모습은 거룩하신 그분과 대화하기 위한 모습입니다. 마주 보고 선의 근원이신 그분과 대화를 하다 보면 세속에서 나온 대화는 날이 갈수록 차츰 걸러지고 사랑의 대화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보내시지만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속의 빛을 더 강렬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이콘의 얼굴은 정면이면서도 눈동자는 약간 오른쪽을 향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른편에 계신 분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눈은 먼 곳까지 바라보고 미래까지 내다봅니다. 우리 마음을 바라보시고 그 속까지 알아보시는 눈입니다. 또 이콘 속 인물의 눈은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위대한 것을 본 사람이고, 또한 하느님의 눈을 대신하는 의미로 눈을 크게 그립니다.

 

 

실제 사람 모습과 이콘은 어딘가 다르다

 

코는 하느님의 숨이 들어온 곳으로 코끝에 약한 붉은색을 칠해 ‘생명체가 됨’을 의미하며(창세 2,7), 길고 좁게 그립니다. 길고 좁게 그리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코에 하느님 영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이에 속세의 냄새를 맡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아름다운 향기를 맡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아울러 세상의 물욕(탐욕)이 없다는 뜻으로 입은 작게 그립니다. 그러나 이마는 하느님 지혜를 나타내는 의미로 넓게 그립니다. 이콘에서 아기 예수의 이마가 무척 넓게 그려진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콘을 자세히 보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실제 사람 모습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손가락도 축복하는 의미를 표현하느라 지나칠 정도로 길게 그리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이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은 갈색을 띱니다. 갈색의 얼굴은 육적(肉的)인 느낌과 세속의 물욕을 억제하고, 단식과 고행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나타냅니다. 머리카락의 흐름이라든지 평행적으로 흐르는 옷 주름 등도 단정하지만, 비사실적인 모습으로 내적 아름다움을 강조합니다.(작품 1, 2)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3월 3일,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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