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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나의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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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13 ㅣ No.947

[영화 속 신앙 찾기] 나의 산티아고

 

 

‘부엔 까미노!(Buen Camino)’는 ‘좋은 여행이 되길.’ 또는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함께하길.’이란 의미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스페인어 인사말인 ‘올라!(Hola)’와 함께 가장 많이 주고받는 말이다.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부터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km의 순례길을 42일의 여정 동안 걸으며 담은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여행을 꿈꾸는 이는 물론 신앙과 나 자신을 찾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시작의 손짓을 화면에 가득 담아서 미소를 짓게 하는 작품이다.

 

 

내일, 나는 계속 걸을 수 있을까

 

독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희극인 하페(데비드 슈트리조 분)는 무대 위에서 과로로 쓰러져 수술을 받는다.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에 긴 휴가를 맞지만 집안에서의 휴식은 낯설고 답답하기만 하여 갑자기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서른여섯 살의 예술가이며 애연가, 희극인인 하페는 이렇게 낭만의 순례자가 된다. 무언가 멋질 것으로만 생각했던 순례의 길은 쏟아지는 폭우와 허름하고 불편한 숙소, 소음으로 말미암은 불면의 밤, 호감을 보이면 경계심으로 되돌아오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등 즐거움보다 고통으로 가득 채워진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동료들에게 큰 힘이 되지만 동료들과 가까워지기를 거부하며 무엇보다 혼자 걷고 싶어하는 스텔라(마르티나 게덱 분),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내뱉고야 마는 철없지만 귀여운 잡지 기자 레나(카를리네 슈허 분)와 순례의 처음부터 좌충우돌 부딪히는 하페. 과연 이들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해 가며 순조롭게 완주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연출한 줄리아 폰 하인츠 감독은 여성 감독으로 이 작품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인물 여행을 통해 그의 진심어린 용기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원작, 이 작품을 이끄는 또 하나의 힘

 

주인공 하페는 순례의 여정을 보내며 얻게 된 깨달음을 수첩에 기록했고, 그것은 이 영화의 원작이 된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나의 야고보 길 여행)」로 세상에 알려졌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며 이 책을 쓴 하페 케르켈링은 독일에서 이십 년 이상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연예인이다. 희극인이며 사회자, 가수이며 작가로 활동하는 만능 연예인인 그는 산티아고 순례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고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길에서 만나고 헤어진 친구들과의 일상에 대한 경험을 책 속에 오롯이 담았다.

 

그리고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나의 산티아고’는 감동적인 드라마나 모험만을 자극하는 단순한 여행 영화가 아닌 진정한 사색의 영화로 관객을 사로 잡는다.

 

또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화면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며, 많은 생각과 떠남의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것은 원작에 담긴 매력적이고 탄탄한 메시지를 기초로 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하페의 얘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웅성거리는 소음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대화로 관객의 가슴을 강하게 자극한다.

 

순례 도중 느끼는 그의 긴장감, 포기하고픈 절망은 물론 사람들 앞에서 부려보는 허세와 객기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 걱정과 안도감까지 자아내게 한다.

 

“사람들은 속죄하려고 순례한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들 죄를 지으려고 순례하는 것 같아.” 영화 속 레나의 말처럼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솔직한 얘기는 작품에 독이 되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어느 순간 ‘하페’라는 인물에 몰입해, 화면 안에서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마주하는 나 자신, 속물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자신을 마주하며 미소짓기도 한다.

 

 

올여름, 아시시 성지를 순례하시는 교황님

 

많은 가톨릭 신자는 이스라엘이나 로마로 성지순례를 한다. 물론 다른 곳으로 순례를 하는 이도 있다. 일반 신자들뿐 아니라 성직자들도 순례의 길을 떠난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올여름에 순례를 떠날 예정이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에 따르면, 오는 8월 4일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영성이 살아 숨 쉬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의 아시시 성지를 순례하실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순례는 오노리오 3세 교황이 포르치운쿨라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아시시의 용서’라는 전대사를 베풀 수 있도록 허락한 지 8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려는 것이다. ‘작은 몫’이라는 뜻의 ‘포르치운쿨라’는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작은 경당이다.

 

프란치스코와 작은 형제들이 공동체 생활을 처음 시작한 장소인 이곳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교황님은 개인 기도를 바친 뒤 연설하신다. 그 기간이 짧건 길건 모든 순례는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과 몸을 치유하고 신앙적 영성을 새롭게 채우는 시간이다.

 

 

순례의 치유는 우리 곁에서도 가능하다

 

여름방학이나 휴가를 맞은 우리가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열망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라는 실질적인 거리감, 만만찮은 여정과 비용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부러워하기만 할 것인가?

 

그렇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곁에도 수많은 성지가 있으니까. 그곳을 찾아가 조용히 걸으며 상념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또 주위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순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순례 등이 그것이다.

 

이도 저도 다 복잡하고 어렵다 싶으면 가장 가까운 성당에 찾아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보자. 또한 가톨릭 교회에서 마련한 것은 아니더라도 국토 대장정 등 다양한 순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순례의 길을 한 걸음씩 성실하게 내딛다보면 힘들고 고달픈 길은 어느새 지나가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순례와 마찬가지 아닐까?

 

산티아고의 순례는 사람의 힘을 모두 빼앗아갔다가 몇 배로 돌려준다. 영화 속 주인공 하페도 순례를 시작할 때는 호텔을 고집하고, 인증도장을 받으려고 버스를 타고 이동했지만, 조금씩 변화해 어느새 줄에 매여있는 개와 물을 나누어 마시게 된다.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신은 올 수 없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누구든 신과 나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자만이 지속적인 관계가 가능하다.”

 

* 정지욱 이냐시오 - 영화평론가. 일본 리웍스(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과 푸드티비 푸드필름 페스티벌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심 심사위원과 일본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본심 심사위원, 영화 시민연대 대표를 맡았다.

 

[경향잡지, 2016년 8월호, 정지욱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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