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11-13: 교회 역사 안에서의 시노달리타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0-02 ㅣ No.757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11) 교회 역사 안에서의 시노달리타스 ①

 

 

앞서 살펴본 성경에 드러난 시노달리타스 신학을 교부들이 전승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시노드 정신은 초대 교회에서부터 이미 ‘하느님 백성이 복음에 충실히 다가가기 위하여 응답하도록 부름받은 초대’로 인식되었으며, 그래서 ‘교회의 사도적 기원과 보편적 소명에 대한 충실성의 보증이자 구현’으로서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여정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특히 2세기 초의 교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의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제자이자 주교였던 이냐시오 성인은 박해 시대 중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에 일곱 교회에 각각의 편지를 보내며, 지역 교회들이 오직 하나인 교회를 이룬다는 표현으로서 ‘서로 간의 시노드적 연대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그 중 ‘에페소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세례의 품위와 그리스도와 나누는 우정으로 말미암아 ‘쉬노도이(συνοδοι)’가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쉬노도이’는 시노드의 어원인 ‘쉬노도스’의 복수형 단어로, 곧 모든 신자들은 ‘여정의 동반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단일 개별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방에 흩어진 모든 교회를 하나로 묶어 주는 일치와 친교의 끈이 바로 ‘시노드 정신’이고, 이는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들”이라는 인식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첫 번째 보편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325년)부터 초기의 공의회들에서는 보편 교회의 권위 행사를 위해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식을 점진적으로 명확히 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 개별 교회 수장들의 조화, 로마 주교와의 협력, 다른 이들과의 동의,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 사이의 일치’였습니다.

 

즉, 개별 교회 안에서 ‘주교-사제-평신도’는 ‘동반자’로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 중에 있으며, 동시에 각 개별 교회의 모든 하느님 백성은 다른 개별 교회의 하느님 백성들과의 시노드적 연대성 안에서 일치와 친교로 결합되어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이룬다는 인식은 초대 교회에서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2023년 5월 7일(가해)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춘천주보 2면,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12) 교회 역사 안에서의 시노달리타스 ②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세력을 모아 자기의 주장을 관철한 것이 아니라 식별과 성령의 은사를 청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시노드적인 교회 회의를 통해 사도 전승 안에서 논의하며 깨우친 소중한 신앙 진리를 온 세상 보편 교회와 지혜롭게 공유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거룩한 전통’이라 불리는 교부들의 신학이 탄생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자신들이 마주해야 했던 많은 어려움을 해결해 나아가는 데에 있어 시노드적인 교회 회의를 통해 ‘함께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길’을 찾고자 노력했고, 그래서 그 교회 회의 안에는 ‘사도 전승’이라는 수직적 요소와 ‘친교’라는 수평적 요소가 조화롭게 결합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별 교회는 고립되지 않은 채 보편 교회 안에서 다른 교회들과 교류하고 일치하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 이후 교회는 새로운 상황과 맥락에 처하며 시노드 정신의 구체적인 적용과 관련해 새로운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에 의한 국교화(380년) 이후 교회는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시노드적 교회의 모습을 적용하여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요청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되던 ‘공의회’와 ‘시노드’라는 용어가 이제 구분된 제도로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교리 등에 있어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는 ‘공의회’, 이를 구체적으로 개별 교회에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주교가 그 방안을 결정하는 회의는 ‘시노드’로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자리하다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구 시노드’를 법제화하면서, 교회의 한 제도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나 황제와 교황의 대립 등 세속 권력과의 마찰을 겪으면서 교회는 그 권위를 더욱 굳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이에 따라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론은 잊혀졌습니다. ‘가르치는 교회(Ecclesia docens)’와 ‘배우는 교회(Ecclesia discens)’의 철저히 분리된 인식 안에서 성직자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평신도는 ‘배우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더 이상 교회는 자신들이 ‘함께 가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인식하지 않게 됨으로써, 시노드 정신 또한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시노드라는 제도는 유지가 되었으나, 평신도는 참여할 수조차 없었고, 참된 의미의 시노달리타스가 실현되는 ‘시노드’로서의 기능과 중요성은 점차 잊혀 갔습니다. [2023년 5월 21일(가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춘천주보 2면,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13) 교회 역사 안에서의 시노달리타스 ③

 

 

중세를 거치며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이 잊히다 보니, 18세기에 이르러 시노드 정신에 대한 기대와 관심 자체가 현저하게 상실되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교구 시노드에 관하여’라는 문헌을 반포하여 시노드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개별 교회 안에서 그 정신의 회복을 역설하였지만, 실질적인 영역에서는 쇠퇴의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태동이라는 시대 흐름과 함께 교회의 통치 제도에 있어서도 변화를 모색하게 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아직 정확한 교회법적 지위를 지니지는 않았지만 시노드 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제도들이 생겨났고, 1917년에 반포된 교회 법전에서는 ‘교구 시노드’에 규정도 명문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며 교회는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관습과 성찰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특히 교회 역사 안에서 대변혁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쇄신과 개혁’이라는 전망 안에서 시노드와 관련되어 수 세기에 걸친 교회의 전승과 실천을 통합시켜 그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론을 회복하였고, 시노드 정신을 반영하기 위한 보편 교회의 노력으로서의 ‘주교 시노드’라는 제도를 비롯하여 많은 시노드적 기구를 신설하여 법제화하거나 기존의 시노드적 기구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되었습니다.

 

공의회 이후 하느님 백성 안에서 교회의 친교적 본성에 대한 의식이 성숙되어 갔고, 교구와 지역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시노드 정신에 대한 긍정적 경험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14회 이상 개최된 세계 주교 시노드 정기 총회를 통해 교회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곳곳에서 시노드 회의들이 거행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각종 평의회들이 구성되어 다양한 차원에서 사목 노선들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하느님 백성 사이에서의 친교와 협력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거룩하고 살아 있는 교회의 전승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 안에서 발전시켰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부터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던 시노달리타스는 역사 안에서 그 중요성이 잠시 잊혔으나 상실되지는 않았고, 제삼천년기를 맞은 교회에 되살아나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다시금 요청받게 된 것입니다. 교부들의 전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하느님 백성의 삶의 자리에서 제자직을 진정성 있게 살면서, 동시에 친교적 관심 안에서 전체 교회의 복음적 사명을 살피라고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3년 6월 11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춘천주보 2면,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2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