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농민사목] 피로사회 탈출, 귀농: 도시와 농촌의 상생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17 ㅣ No.647

[경향 돋보기 - 피로사회 탈출, 귀농] 도시와 농촌의 상생


“우리 마을은 … 약 20가구밖에 살지 않는 아주 아담하고 조그마한 가난한 시골마을이다. … 마을사람들은 낮에는 (논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는 서로 모여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도 하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는 한집안같이 정답게 살아가고 있다. 봄이 되면 마을은 온통 진달래꽃으로 빨갛게 된다. 어머니들은 뒷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뜯어오기도 하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다가 도토리묵을 만들어서 먹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1982년에 나온 「서울로 가는 길」이란 책 속에서 묘사된 송효순 씨의 고향 풍경이다.


이농향도와 도농격차

스웨덴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우연히 방문했다가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공동체에 감탄하며 눌러앉은 인도 북부의 라다크 마을이 곧 우리의 전통 시골 마을이다. 그러나 잘못된 개발정책이나 돈벌이 중심의 경제정책, 농업과 여성에 대한 멸시 풍토 등으로 말미암아 농어촌의 젊은이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향한다.

“1973년 봄이었다. 서울로 이사를 하신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을 다니러 오셨다. 외할머니는 내게 새 일자리를 내놓으셨다. 서울 사는 이모가 잘 아는 목욕탕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송 씨는 서울에서 돈을 벌어 동생 학비에 보태려고 취업을 한다. 처음엔 목욕탕에, 나중엔 공장에 취업한다. 이런 식으로 새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도시 또는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이 1960-70년대에 이농향도(離農向都)물결을 이루었다. 많을 때는 해마다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도시로 향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약 5천만 명이 사는 대한민국엔 서울과 수도권에 무려 그 절반인 2천 5백만이 몰려 살고, 그나마 나머지 50%도 그 외의 도시에 많이 몰려 산다. 1960년대 초에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던 농어촌 인구는 오늘날 5%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아직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60-70세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농어촌 인구는 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우리 모두가 ‘발전’이라 부르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내면의 고통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농상생의 필요성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 곧 도농격차는 한편으로 도시의 과밀화, 다른 편으로 농촌의 공동화라는 양극화의 모순을 낳았다. 그러나 이 양극화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내부 식민화’라는 고리이다. 도시가 농어촌을 식민지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농어촌은 처음엔 도시의 공업단지 또는 수출산업기지를 위한 노동력의 공급원이자 각종 공업 원료나 도시 노동자를 위한 식량의 공급처였고, 다음엔 저가의 공산품이나 농약, 비료 등을 파는 시장이 되었으며, 또 공장이나 아파트 건설을 위한 토지의 공급원, 나아가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토지도 자연도 마을도 사람도 마음도 마치 단물이 다 빠진 껌처럼 황폐화할 대로 황폐화해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 되어버렸다.

물론 가톨릭농민회나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그리고 전국귀농운동본부처럼 죽어가는 농촌, 농민, 농업을 살리자는 운동이 꾸준히 있어 왔고, 한살림을 비롯한 다양한 생협 운동이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생산자를 모두 살리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도시를 떠나 농어촌으로 돌아간 귀농 인구가 2011년에 1만 가구를 넘어섰을 정도라 한다. 하지만, 도농격차나 모순을 해소하기엔 아직도 역부족이다. 오히려 우리의 사회구조나 사람들의 의식수준 어느 면을 보더라도, 갈수록 희망의 웃음보다는 절망의 한숨이 더 많이 나온다.

그 와중에 나라 전체적으로 식량 자급률이 25% 정도라 한다. 이것도 실은 과장된 면이 있다. 우선은 석유를 써서 하는 농업이 이 정도다. 석유에 의존하는 농기계, 그리고 비닐하우스 등은 석유 고갈 시대를 맞아 위기에 처할 것이다. 나아가 석유에서 나오는 비료, 농약 등은 자립의 요소에서 빠져야 한다. 그나마 쌀의 상대적 자급률이 높아서 그렇지 그 외 대부분의 곡물이나 과일은 갈수록 많이 수입에 의존한다.

칠레, 미국, 유럽연합, 그리고 중국 등과 맺는 각종 FTA(자유무역협정)는 당장에는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고 공산품을 더 많이 수출함으로써 ‘국익’이 증대하고 ‘소비자’가 덕을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재벌급 대기업만 이득을 본다. 또 ‘트리클다운(낙수) 효과’라 해서 수출기업이나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중소기업이나 나라 전체가 떡고물을 많이 얻을 것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농민의 생명력을 독점 대기업이 체계적으로 빨아들이는 ‘스펀지 효과’가 더 크다.

실제 현실이 이렇게 뒤틀려있는데도 정치와 경제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국민을 기만하고 자신도 기만한다. 석유가 고갈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기후위기와 식량대란의 위기가 다가오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고급 자동차를 사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며 수출만 많이 하면 잘살게 된다고 믿고 있고 그 잘못된 믿음을 전 사회에 강요한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농업, 농촌, 농민을 무시한 공업화나 산업화, 그러한 경제성장정책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 의식이나 행동의 밑바탕에는 “농업은 저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농업은 ‘산업’의 일환으로 바라볼 대상이 아니다. 농업은 그 자체로 생명활동이며 모든 경제활동의 근본적 기초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살아가려면 매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한 사회가 지탱되려면 절대로 필요한 활동이다.

비유컨대, 한 가정의 밥상을 어머니가 차린다면, 한 사회의 밥상은 농민들이 차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농민이 종사하는 농업이란 화학농업이 아니라 유기농업이 원칙이다.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이 되는’ 순환농법,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겸손하게 따르는 농법이 유기농업이다. 게다가 유기농법으로 지은 농산물조차 가능한 한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것을 유통, 소비하는 것이 옳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텃밭 경작을 하거나 자영농으로 자급자족을 하는 것이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지역에서 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다.

결국, 우리는 단순히 도농격차나 모순을 완화하는 수준을 넘어 더욱 종합적인 대안을 구상하고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거나 새로운 형태로 지양되기를 꿈꾸어야 한다.

종합적 대안이란 나라 정책의 기본에 ‘농자천하지대본’이 근간이 되는 것이다. 특히 식량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높이기 위한 ‘식량자급 5개년 계획’을 순차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헌법에 있는 ‘경자유전’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유기농업 공무원제’ 같은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유기농업을 일상화해야 한다. 유기농법으로 하는 학교 텃밭이나 직장 텃밭 운동도 권장할 필요가 있다. 농업 생산물은 일반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최소한 다단계 식으로 조성된 유통 마진을 없애고 농협이나 농민회 같은 전국 조직이 중심이 되어 도농 직거래를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각종 부동산 투기를 원천봉쇄한 위에서 귀농과 귀촌 희망자를 지원하는 ‘귀농간사’ 제도를 도입하고 집과 농지를 쉽게 구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공업과 서비스업을 배제하진 않되, 농업이 다른 모든 것의 근간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종합적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이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유통, 대량폐기라는 ‘악순환’ 구조 속의 공업이나 상업의 기형적 팽창에 제동을 거는 것이기도 하다.

그 위에서 도시와 농촌이 상생한다는 것은 더 이상 농촌이 도시를 위한 식민지가 아니라 농촌은 농촌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자기완결적인 발전을 해나가되, 서로 부족한 부분은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협력하는 형태로 해결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를 넘어 도시와 농촌이 새로운 형태로 지양된다는 것은 더 이상 도시와 농촌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 곳곳을 ‘전원마을’ 형태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전원마을은 농촌의 정겨운 공동체나 자연 생태계, 유기농업은 원래의 모습처럼 잘 살리면서도 교육이나 문화, 정치 등 도시적인 요소를 적절히 가미하여 더욱 살기 좋은 공간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도농상생의 가능성 - 선순환 구조와 사회적 실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밥 한 그릇 안에 천지인(天地人)이 다 들어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른바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이다. 이 말은 한편으로 밥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협동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편으로는 인간이 우주적인 협동을 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 경제를 보라. 우주적인 협동보다는 우주적인 경쟁을 하고 있고, 범지구적인 상생이 아니라 범지구적 분열이 가속화한다. 앞의 송효순 씨도 “같은 현장에서 함께 일을 했건만 마땅히 받을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서로 경쟁을 시키는 것”이 직장 현실이라 꼬집었다. 나라와 나라, 기업과 기업만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 사이도 그렇다. 어쩌면 나라와 나라의 경쟁과 분열, 구체적으로는 기업과 기업 사이의 경쟁과 분열은 각 사회마다 존재하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분열과 모순에 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심지의 독점 대기업 본사는, 도심은 물론 그 주변부와 인근 농촌, 그리고 원거리 농촌에, 더 멀리는 해외의 도시와 농촌에 빨대를 꽂고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인다. 이 자본이라는 흡혈귀는 일반적인 동물과는 달리 만족을 모른다. 배부름을 모르기 때문에 국경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려 한다. 국내외 어디든 ‘24시간 슈퍼’나 ‘24시간 편의점’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물론 그 뒤엔 ‘24시간 공장’이 돌아간다. 이제 자본은 더 이상 공장 안의 노동력만이 아니라 인간의 온 삶 전체를 대상으로 이윤 추구를 한다. 갈수록 사람들이 “대안이 없다.”며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식으로, ‘대안’에 대한 상상의 여지조차 좁아지거나 없어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숨 막히는 현실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면, 또 무한히 지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발상의 전환을 하고 국가, 지역, 개인적 차원 등 다차원에서 뼈를 깎는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주 안의 천지인 사이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선순환이 되며, 도시와 농촌 사이에, 밥과 똥 사이에 선순환이 된다.

첫째, 국가적 차원에서는 더 이상 북미 식의 (농촌을 희생시켜 공업을 발전시키고, 중소기업을 희생시켜 독점 대기업만 돈 버는) ‘자유무역’이 아니라 남미 식의 ‘민중무역’ 협정을 추구해야 한다. 남미의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3국은 서로 어떻게 하면 이득을 더 많이 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서로 어떻게 하면 도움을 더 줄까를 고민하며 우애 관계를 맺고 있다. 쿠바는 다른 나라에 의료 지원하고,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지원하며, 볼리비아는 광물을 지원한다.

이런 호혜와 선물, 우애와 환대의 아이디어를 확장해 우리도 뜻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민중무역 협정을 맺고 상부상조의 관계를 넓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나라가 도농상생과 도농지양을 이루는 방식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말한 종합적 대안을 국가시책으로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둘째, 지역적 차원에서는 한편으로 도농상생을 위한 ‘직거래’ 방식이나 ‘생협’ 운동, 학교급식 운동, 직장급식 운동, 나아가 ‘협동조합’ 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다른 편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모순을 극복하고 지양할 수 있는 ‘전원마을’을 더욱 체계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셋째, 개인적 차원에서는 ‘나부터’ 할 수 있는 실천을 하면서도 사회적 실천(국가적, 지역적 차원의 과제 해결)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례로, 귀농·귀촌을 하고 텃밭을 일구거나 생태화장실을 쓰면서 똥과 오줌을 거름으로 만드는 일, 아니면 생협에 참여하거나 도농 직거래에 참여하는 일, 최소한 그런 활동을 하는 모임이나 운동을 후원하는 일, 자녀들의 학교급식(유기농, 지역 농산물) 운동에 참여하는 일, 직장급식을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일, 1사 1농 운동에 동참하는 일, 앞서 말한 ‘전원마을’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마을 만들기 운동에 동참하는 일 같은 실천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실천의 바탕에는 ‘농촌, 농민, 농업이 살아야 온 사회가 산다.’는 신념이 깔려있다. 서두에 나온 이농향도의 물결도 결국은 ‘잘살아보겠다.’는 (개인적, 집단적) 의지의 결과였다. 그러나 40-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과연 잘사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막연히 강대국을 따라 하고 부자가 되고 재벌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참되게 잘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식량자급률을 높이면서도 이웃 나라와 연대하고, 유기농업을 발전시키면서도 나라 전체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 생산과 소비 등 모든 경제활동을 이윤이나 차별의 원리가 아니라 필요와 만족의 원리에 따라 하는 것이며, 전체적으로 경제와 사회, 생태 사이에 적대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옳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단기적으로는 도시와 농촌이 ‘공생공락’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더 이상 도농 사이의 모순이 없게 전원마을의 형태로 ‘도농지양’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 대안이 될 것이다.

* 강수돌 - 고려대학교 교수, 전 조치원 마을 이장.

[경향잡지, 2012년 9월호, 강수돌]


1,50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