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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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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23 ㅣ No.580

[통일 대비, 어떻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평화의 하느님

 

평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하느님의 계획에는 인간의 순종이 포함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서, 생명의 충만함을 나타낸다(말라 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신비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회복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사랑과 정의가 조화를 이루는 참평화이다. 따라서 정의와 사랑의 열매인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는 것이다(마태 5,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복음’(에페 6,15 참조)을 선포하는 사명을 주셨고, 갈등과 대립이 있는 곳에서 중개자로서의 ‘화해의 직분’(2코린 5,18)을 주셨다. 신앙인은 늘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간직하고 하느님의 주권이 넘쳐나는 평화의 나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고, 미움과 다툼이 있는 곳에 중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평화는 아름답지만 얻기가 어렵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한 의지와 악한 의지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얻으려면 악을 이기고 공동선을 쟁취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정한 한반도 평화

 

한반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60년 동안 이 불안정한 분단 상황을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평도 포격전이 있었고 민간인까지 사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가끔씩 있었지만 연평도 포격 사건이 새롭고 거대한 비극의 전주곡으로 들리는 것은 그동안 은밀하게 진행되던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공개적이고 대담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분단의 비극이 다시 모습을 바꾸고 있다.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비극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삶이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땅이 한반도이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책임과 죄를 묻는다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신앙인은 한반도의 비극이 계속되는 악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그 악은 남북한에 걸쳐있고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목표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것

 

첫째, 희생 없는 통일은 허구이다. 2009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55.8%였다.

 

청소년들의 통일에 대한 의지는 이보다 더 떨어진다. 통일 때문에 잃는 것이 있다면 통일이 필요 없다는 것이 국민 의식의 밑바탕에 있고, 특히 청소년들은 더욱 그렇다.  이러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남북간 화해와 교류가 확대되면서 우리가 잃을 것이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일구어낼 수 없다.

 

통일은 결국 양보이다. 북한은 핵포기와 체제의 변화를 결단하고, 남한은 그 비용에 대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통일 방안은 없다.

 

둘째, 북한이 곧 붕괴한다는 것은 허구이다. 김일성 주석이 죽으면 북한은 붕괴할 것이라는 생각이 1970, 80년대에 만연했다. 독재와 억압에 눌린 북한 주민들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게다가 1990년대 후반 엄청난 자연재해가 닥쳤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북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연재해로 국가가 붕괴되기는 어렵고 북한에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저변 세력이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다. 남북한의 대결과 긴장은 북한 정권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또 하나의 축이기에 군사적 외교적 압박은 북한 정권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또한 북한의 붕괴가 곧 남한 주도의 통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중국, 미국, 러시아 심지어 일본도 지배력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변의 강대국 특히 미국도 자신의 국익을 위해 움직일 뿐 우리의 처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셋째, 북한의 정치적 독재구조와 남한의 독점적 자본구조이다.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식량난이나 군사적 호전주의가 아니라 독재적 정치체제이다. 이 독재구조는 북한의 모든 불행을 만들고 통일을 방해하는 주된 요소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독재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면 통일은 어렵다.

 

또한 남한은 경제구조가 재벌위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통일이 독점적 재벌의 경제적 이익에 상충되지 않는다면 그 비용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재벌 구조의 경제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통일은 어렵다.

 

넷째, 남북한 지배계급의 평화와 통일의지의 박약이다. 지난 60년 동안 평화와 통일 노력은 계속되었다. 사실 7.4남북공동성명은 통일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충분한 합의였다. 이후에도 많은 합의문이 있었지만 단 하나도 지켜진 적이 없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통일 논의는 남북한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지 민족의 번영과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의 회개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하다. 남북한 정치권력이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급급하다면 통일의 가장 큰 장해요인이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

 

이러한 근본적인 요인들을 극복하려면 교회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가장 절실하다. 반복되는 요청이지만 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다음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첫째, 인도주의의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교회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북한 주민의 삶의 개선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다. 북한의 정치와 대남정책만을 바라보면 결코 평화로 나아갈 수 없다. 분단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인 북한 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계속될 때 평화와 통일은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식량, 의료, 영유아 지원에 중점을 두고 교육과 복지 증진에 노력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동독의 정치범과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서독으로 이주시킬 때 서독정부가 동독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고 협상 여건을 조성하였지만 실질적으로 협상을 담당한 것은 서독의 교회였다. 앞으로 북한의 개방화가 이루어지면 한국교회도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신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화해와 포용의 정신을 전파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통일 논의를 건전한 장으로 이끌어야 하고, 대립과 갈등이 있는 곳에서 ‘화해의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 대립과 분열의 상처는 신앙으로 극복될 수 있다. 이 역할을 정치권과 사회에서 종교계에 절실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먼저 교회 내부에서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셋째, 교회는 평화를 전파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평화가 정착되는 데 교회의 역할이 크다. 평화에는 무력충돌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억지하려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안보를 강조하는 지키는 평화 곧 소극적 평화와 갈등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사회적 · 경제적 · 문화적 대립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평화가 뿌리내리게 하는 만드는 평화 곧 적극적 평화가 있다.

 

교회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갈등과 대립, 증오를 제거함으로써 분쟁의 근원적 씨앗을 없애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적극적 평화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넷째, 지속적인 기도 운동이다. 교회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간다. 남남갈등, 남북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도의 힘만이 이 모든 것을 중재할 수 있다. 점차 열기가 식어가는 교회의 통일 노력에 많은 교회 구성원들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선시대 말기에 교회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다. 일제시대에 교회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이제 분단시대 교회의 역할은 민족 통일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한반도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교도권과 사목적 실천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노력이 꼭 주안점이 되어야 한다.

 

* 김훈일 세례자 요한 - 청주교구 문의본당 주임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분과 대표.

 

[경향잡지, 2011년 6월호, 김훈일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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