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세계교회ㅣ기타

만민에게 복음을: 볼리비아 -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8 ㅣ No.198

[만민에게 복음을 - 볼리비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루카 4,34)


볼리비아는 남미 내륙에 있는, 비교적 가난하지만 사람들의 종교성이 강하고 심성이 순박하며 따스함이 스며있는 나라입니다. 가톨릭 국가라서 국민 대다수가 세례를 받지만 삶 안에서 미신적 요소와 결합된 것들이 많아 실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굉장히 적습니다. 이런 미흡한 신앙생활 때문에 방인사제가 부족한 형편이라 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제들이 더 많은 상황입니다. 사람들의 근본의식을 신앙적으로 만들고, 우리 신앙이 가르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교사제가 할 일입니다.

올해부터 미사를 마치면서 공지, 아니 예언을 했다. “빤딜례로(pandillero : 깡패, 조직폭력배, 학교의 일진 등을 의미한다.)를 조심하세요. 3년 안에 재수 없는 일이 닥칠 겁니다.”

사람들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한다. 조금 설명을 덧붙인다.

“열매가 익으면 떨어지지요? 어떤 열매든 추수의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빤딜례로들의 악의 열매가 거의 다 익어 곧 터질 지경이 된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둡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재수 없는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하느님께 돌아오세요. 청년들은 기회 있을 때 고해성사를 보세요. 감방가거나 죽으면 끝입니다. 요즘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장례가 잦은데, 나이나 능력은 아무 소용 없어요. 한 번 가면 끝이에요. 조심들 하세요.”

솔직히 뻥이다.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3년을 어찌 내다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3년이라는 기간을 둔 이유는 있다. 첫째, 3년 안에 이 본당에서 내 임기가 끝날 것이기에 후임 사제는 책임질 일 없이 그저 “마 신부 탓!”이라고만 하면 될 것이다. 둘째, 3년 안에 ‘재수 없는 일’이 한 번이라도 생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본인이 내키지 않는 일이 생길 것이고 무슨 일이든지 생기고 나면 내가 한 말들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벌써 1년이 지났으니 기한은 2년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이곳을 떠나 다른 예정된 선교임지로 떠날 계획이다.

그런데 그 결과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청년들이 고해성사를 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씨구나, 4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첫영성체 때나 견진 전, 그리고 혼배 전에 고해성사를 보는 일은 있어도 평소에는 거의 없었다. 특별한 시기도 아닌데 청년들이 다가와 묻는다. “신부님, 고해성사는 언제 줘요?”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이야기한다. “지금 당장!”

그런데 들어보면 그 내용이 아주 가관이다. 음주, 마약, 임신, 낙태…. 무슨 가톨릭 윤리신학
의 주제를 다 모아놓은 느낌이다. 부모들도 결과보고를 해준다. “우리 아이가 신부님이 미사 때 한 그 말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저도 들으란 듯 이야기해요. 봐라, 신부님이 저렇게 경고하지 않느냐고 말이에요. 하하하.”


재력과 권력과 향락을 좇는 아이들

내가 일하는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스데라시에라는 요즘 청년들의 탈선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어른 폭력조직이 법에 걸리지 않는 미성년자들을 찾아 그들에게 마약을 공급하고 용돈벌이를 시켜주면서 철없는 아이들을 꾀고 있다. 그들로서는 청소년들이니 법망에 걸릴 일이 없어서 좋고, 청소년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재력과 권력과 향락의 단맛에 넋을 잃게 된다. 아이들은 그룹을 지어 몰려다니며 툭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부추기고, 자기편이 지면 떼로 몰려와 상대 아이를 제압하면서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길거리마다 세력을 표시하는 낙서가 판을 친다. 아이들은 밤이면 떼로 몰려다니며 술을 진탕 마시거나 나쁜 짓 할 거리를 찾고 소매치기나 강도, 성폭행을 일삼는다. 아이들이 무서워 마을주민들이 밤에 거리에 나가지를 못하는 현실이다.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은 누가 가담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손을 쓰지 못한다. 어쩔 수 없다. 나라도 나서는 수밖에….

먼저 성당 미사 공지사항 때 예언을 거창하게 한 뒤에, 학교에서 미사를 청하면 ‘얼씨구나!’하고 달려가서 교사들은 결코 하지 못할 일장 연설을 한다. 물론 학생들이니까 지루하게 하면 안 된다. 때로는 ‘비트박스’도 하고 노래도 한 곡 뽑고 학생들이 시원하게 웃게 만들고는 하고픈 이야기를 해준다. 일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빤딜례로를 구분하는 법

“아이들아, 삶의 방향을 잘 정해야 해.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어두움이 가득한 끝이 훤히 보이는데도 그 길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새들이 모이를 쫓다가 올가미에 걸리는 것처럼, 눈앞에 있는 단 것만 바라보면 덫에 걸리는 거야. 시선을 조금 더 높이 들고 조금만 더 멀리 바라봐. 그러면 지금 내가 어느 길을 걸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할 거야. 일단은 이렇게 삶의 계획을 잘 세우기를 바란다. 혹시 그래도 잘 모르겠거든, 신부님이 길 하나 알려줄게. 바로 하느님이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그분.

그리고 너희 빤딜례로들(학교에서 미사를 드리면 그 가운데 상당수의 아이들이 가담하고 있다.) 조심해. 너희들이 몰려다니면서 힘 자랑을 하니까 마치 너희들이 슈퍼맨이라도 된 것 같지? 정작 너희들이 진정으로 힘들 때는 아무도 안 도와줄 거다. 그건 거짓 우정이니까.

악의 열매가 너무 커져서 터질 지경이야. 신문 좀 읽어라 제발. 눈에 빤히 보이지 않니? 어른들이 너희들 이용해 먹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은 너희 삶을 망쳐버릴 거고….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마음 준비하고 돌아오는 게 좋아.”

말을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교사들은 꼭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못하고 있던 걸 내가 대신 해주는 것 같아서 좋은 모양이고, 학생들은 나쁜 친구들이 괴롭히긴 하는데 딱히 어떻게 해보지 못하고 참고만 있던 차라 나의 말에 “와아~” 하고 박수를 친 것이다.

빤딜례로를 구분하는 법은 쉽다. 미사를 마치고 성수를 축복해서 들고 다니면서 뿌리면, 꼭 주변에서 “얘 좀 더 뿌려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럼 그 친구가 빤딜례로다. 하하하.


‘하느님’을 마음에 품은 가정은

비단 아이들만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도는 건 가정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다. 사실이다. 가정을 방문해 보면 먼저 살림이 너무 없다. 방 하나에 침대 3개 놓고 6~7명이 자는 집이 적지 않다. 컴퓨터? 꿈도 못 꿀 소리다. 공부할 책상이나 있으면 다행이다. 집에 들어오면 텔레비전만 보고, 딱히 다른 취미생활은 없다. 부모들은 일한다고 늦게 들어오니, 자연스레 아이들은 밖으로 나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모든 가정을 다 끌어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정 안에 ‘하느님 심기’다.

주변을 살펴보니 신실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데 그들이 지내온 가정상황도 별반 다를 건 없다. 비결이라면 ‘신앙’이었다. ‘하느님’을 마음에 품은 가정은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키운다. 그리고 하느님도 도와주신다.

사실 어느 가정이든 마찬가지다. 가정의 문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지 아닌지가 아니라 가정의 근본에 무엇을 두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닌 신앙은 모든 그릇된 것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머무는 곳곳에 신앙을 심어주는 것, 그게 선교사의 본연의 역할이고,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신앙인은 선교사여야 한다. 선교하려고 전부 오지에 올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 머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내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 마진우 요셉 - 대구대교구 소속 볼리비아 선교신부. 2008년 7월부터 산타크루스데라시에라 교구에서 사목하고 있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글을 보내왔다.

[경향잡지, 2012년 8월호, 마진우 요셉]


1,89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