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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교계제도 설정 50돌 (하) 교계제도 설정 이후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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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10 ㅣ No.495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 50돌] (하) 교계제도 설정 이후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

한국교회, 아시아 대륙 복음화 희망으로 '우뚝'


1962년 6월 29일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식에서 대주교 상징인 팔리움을 받은 현 하롤드, 노기남, 서정길 대주교(왼쪽부터).
 

1962년 6월 29일 오후 4시 서울 명동대성당.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식이 거행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이날 전례는 3개월 전인 3월 10일 교황 요한 23세가 '한국에 교계제도를 설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교서 「페르틸레 에방젤리 세멘」(Fertile Evangelii semen)을 반포함에 따른 교황교서 시행 예식이었다. 예식의 절정은 대목구장에서 정주(定住)교구장으로 임명된 주교들과 노기남(서울)ㆍ서정길(대구)ㆍ현 하롤드(광주) 대주교가 주한 교황사절 직무대리 찰스 버튼 무튼 몬시뇰로에게 임명장과 대주교 상징인 팔리움을 받고, 노 대주교가 서울대교구장좌에 착좌하는 장면이었다.

이 예식으로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지 교회의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 보편교회의 성숙한 일원으로 당당히 평가받는 완전한 개별교회가 됐고, 한국의 모든 준주교좌본당과 준본당이 정식 주교좌본당과 본당으로 승격됐다. 또 교계제도 설정으로 한국 주교들은 같은 해 10월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진 공식 교부로서 모든 자격을 구비하고 당당히 참석할 수 있었다.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은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장관 아가지아니안 추기경이 설정식에 보내온 축전 내용처럼 지난 100여 년간 한국 교회의 눈부신 성장의 결실이었다.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교황청으로부터 아시아 지역 선교를 책임 맡을 만큼 괄목할 성장을 조기 달성해 나가고 있다.

1882년 한ㆍ미수호통상조약으로 박해를 피해 비로소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한국 천주교회는 대목구 설정 131년 만에 완전한 재치권을 인정받게 됐다.
 
한국 천주교회의 교계제도 설정은 주변국에 비해 결코 빠른 편은 아니었다. 일본교회는 1891년, 중국은 1946년에 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됐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교계제도 설정을 계기로, 아울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발판으로 인적ㆍ제도적 쇄신과 문화 토착화에 박차를 가해 오늘날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제도적 측면의 발전

교계제도 설정은 한국 천주교회 제도적 측면에서 일대 발전을 뜻하는 '사건'이었다. 서울대교구는 1963년 수원교구와 1965년 원주교구, 2004년 의정부교구를 분할 설립했다. 아울러 마산(1966년)ㆍ안동(1969년)ㆍ제주(1977년)교구가 대구대교구와 광주대교구에서 분할 설립됐다. 또한 군종교구도 1989년에 정식 설립됐다. 전국 교구장들이 모여 설립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1962년 9월 국내법에 따른 사단법인체로 설립 허가를 받았다.
 
한국 교회의 제도적 발전은 1968년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서임됨으로써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추기경 서임으로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의 주요 문제를 결정하는 데 그 참여의 폭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천주교회는 2002년 6월 '한국 지역 교회법'을 교황청으로부터 승인받아 교계제도 설정 40년 만에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완전한 형태의 제대로 된 지역 교회법을 갖추게 됐다.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은 교황청과 대한민국 정부 간 외교 관계도 공고히 했다. 1963년 대한민국과 교황청이 '공사급 외교사절' 교환을 합의해 그해 12월 주한 교황공사관이 설치됐다. 1966년 양국은 공사급 외교사절을 '대사'급으로 승격시켰고, 그해 9월 주한 교황대사관을 설치했다.
 
교계제도 설정 이후 제도적 성장에서 주목할 대목은 1975년 2월 한국 주교회의 결의로 '한국 외방 선교회'가 설립됐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교회에 대한 이웃 교회들의 형제적 협조에 대한 감사의 정신으로 복음화 활동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서든지 그 지방 교구장의 선교와 사목 협조 요청에 봉사하겠다는 결의를 제도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때부터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된다.


교세 성장

교계제도가 설정된 1962년 한국교회 신자 수는 53만여 명이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1974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한다. 다시 12년이 지난 1986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1992년 300만 명을 돌파하고 나서 8년 후인 2000년에는 400만 명을 상회했고, 다시 8년 후인 2008년 500만 명을 넘어섰다. 2010년 12월 31일 현재 한국 천주교회 신자는 520만 5589명으로 인구 대비 10.1%로 나타나 10% 벽을 넘어섰다.

교계설정 당시와 2010년 교세 통계를 비교하면 본당 수는 전국 275개소에서 1609개소로 6배, 성직자 수는 546명에서 4522명으로 8배, 남자 수도자 수는 98명에서 1558명으로 15배, 여자 수도자는 1234명에서 9838명으로 8배 성장했다.


한국교회의 토착화

교계제도 설정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에 따라 쇄신과 토착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성과로 1965년 1월 1일부터 '우리말 미사'가 봉헌됐다. 교회는 우리말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미사통상문」(1966년)을 간행하고, 박해 시대 이래 한국교회 공식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를 현대화해 「가톨릭 기도서」로 1968년에 펴냈다. 1971년에는 토요 특전 미사를 허용했다.
 
전국 본당에서도 본당 신부의 자문 기구인 '사목회'가 조직돼 평신도 활동이 활발해졌다. 1968년에는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출범해 평신도 운동의 전국 조직과 교구별 조직을 갖췄다.

한국 교회의 전통적 신심인 '순교신심'도 강화됐다. 순교자 신심은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에 대한 시복 운동을 통해 진행됐다. 그 결과 1968년에 순교 복자 24위 시복식이 로마에서 거행됐다. 순교자 신심 운동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103위 시성식을 거행함으로써 최고조에 달했고, 현재 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시복 및 근ㆍ현대 순교자 시복시성 청원 운동으로 그 맥을 계승하고 있다.

1969년 1월 신ㆍ구약 성서 공동 번역 작업을 시작해 1970년 공동 번역 신약성서가 간행되고, 1977년 구약성서가 간행된다. 이 공동번역본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성서를 받드는 하나의 형제임을 확인하고 서로의 오해를 청산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2005년 간행한 우리말 완역 신ㆍ구약 합본 「성경」을 공식 사용하고 있다.
 

사회 참여

한국 교회는 교회 쇄신과 사회 참여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들어 한국 교회는 '인간 기본권 보호' 차원에서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사회 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 1960년대 말부터 정치적 민주화 문제에 관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교회는 사회 양심 세력과 연대해 정의 구현 운동을 전개, 인권 유린에 대한 반대ㆍ부정부패 추방ㆍ기본 생존권 보장 등을 위해 다각적으로 활동해왔다.

- 1962년 11월 9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로 참석한 한국 주교단이 교황 요한 23세를 알현,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를 설정해 준 것에 감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망과 과제

한국 천주교 교계제도 설정 40주년을 기념해 2002년 3월 방한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크레센치오 세페 추기경은 "아시아 대륙 복음 선교의 몫을 한국 교회에 맡긴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세페 추기경은 한국 교회의 역동적 모습에 "천국을 보았다"고 감격해하며 평신도들의 적극적 교회 활동과 사회 영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 "평신도의 힘이 한국 교회 당면 과제 해결에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당면과제로 꼽는 것이 '내적 성숙' 부분이다. 너무 빨리 성장하다 보니 속이 영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냉담교우 증가ㆍ이해관계에 따른 신자간 갈등ㆍ성소 감소ㆍ기복신심 확산 등 다양한 부정적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에 교회 사목자들은 교황 베네딕토 16세 가르침대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새로 나는 것, 세속화에서 탈피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된 삶을 다시 살 때 영적으로 재도약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평화신문, 2012년 3월 11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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